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35)
“그 사람한테 제대로 된 사과를 어떻게 하는 건지 배워 오라고 하고, 사과문에서 ‘술’이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같은 핑계들이 모두 사라지면 다시 보여 주세요.”
“그래. 너한테 주마.”
“아뇨. 불편한 경험을 한 건 제가 아니라 이은지잖아요.”
박 대표는 잠시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사과문이 나름대로 구색을 갖추면, 그땐 저 말고 이은지한테 용서하든 진행하든 알아서 하라고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
은호는 언제 쌀쌀한 표정을 짓기나 했었냐는 듯 평소처럼 웃으며 말을 이었다.
“걔도 이제 성인이니까요.”
“그래…… 알겠다.”
은호는 짧게 묵례를 하며 대표실 문으로 향했다.
“저, 대표님.”
“응?”
은호는 잠시 걸음을 멈추며 박 대표를 돌아봤다.
“항상 감사합니다.”
“별소리를 다 하는구나. 됐으니까 얼른 가 봐. 이런 게 내 일이잖니.”
“그래도요. 감사합니다.”
“얼른 안무 연습이나 하러 가.”
“하하, 네.”
웃으며 나온 은호의 표정은 현관에 다다르면서 다시 굳어졌다.
‘이은지가 직접 결정하게 하라고 말은 했지만…….’
어떤 식으로 처리할지 알기에 표정이 곱지 못했다.
예전처럼 내가 다 총대 메고 처리해 줄 수도 있지만 그러고 난 이후가 문제였다.
당시 은지는 판사의 결정에 모든 걸 맡긴 내 결과를 보고 ‘지나치다’라고 말했다.
은지는 놈들이 판결보다 가벼운 벌을 받길 원한 모양이었다.
내 기준에선 그런 이은지를 이해할 수 없었고, 이은지 역시 그랬다.
그리고 그게 시작이었다.
가까운 곳에서 일정이 있을 땐 밥값을 줄인다는 핑계로 시간이 맞으면 같이 밥을 먹고는 했었다.
그때 주로 일정이라든가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곤 했었는데, 그날 이후로는 그런 일이 없었다.
이은지는 이후로 내 앞에서 조금의 불만도 힘듦도 티를 내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지만…….’
이은지가 음주 운전 차량과 사고가 난 것도, 우리가 그렇게 멀어지지 않았다면 안 벌어질 사고였지 않았을까.
기우라는 건 알지만, 난 그 ‘혹시나’를 놓기가 힘들었다.
그러니, 이번엔 본인이 직접 겪다 보면 알아서 앞으로는 자기한테 맞는 결정을 하겠지.
사옥 1층 문을 열고 조금 멈칫했다.
“이야기 다 끝났어?”
“어.”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문 앞에 기다리고 있었는지 이은지가 있었다.
“얼른 안무 연습하러 가자.”
“무슨 이야기 했는지는 안 궁금하냐?”
“중요한 거야?”
음.
난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됐어. 매니저님 기다리고 계셔. 얼른 오기나 해.”
대문 너머 골목으로 향하는 그동안.
이은지는 계속 앞서 걸으면서 길을 막아 댔다.
“길이나 막지 마.”
그때였다.
“니가 불가사리냐?”
“아닌뒈요, 뜡인뒈요?”
이은지는 오히려 보란 듯 양 팔다리를 활짝 펼치며 대놓고 길을 막았다.
거기다 되지도 않는 성대모사를 곁들이며 대꾸까지.
하하하.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하여간 고집은, 못 말리겠다.
이은지는 어정쩡하게 그 자세로 골목에 나올 때까지 길을 막았다.
“무……슨?”
골목 밖까지 나왔을 때였다.
이 광경을 맨눈으로 마주한 현우 형님이 입을 떡 벌리며 어색하게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쟤 오늘부터 불가사리래요.”
형님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는지 머리 위로 수많은 물음표가 떠올랐다.
“장난친 거예요. 얼른 가요, 매니저님…….”
“아, 예.”
이은지는 뻔뻔하게 말했다.
자기도 유치한 건 알고 있는지 귀 끝이 붉었다.
떠밀리며 차로 돌아온 현우 형님은 이은지가 뒷좌석에 타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운전석에 올랐다.
* * *
안무 연습을 위해 연습실로 향했다.
“은호, 은지, 왔구나!”
한 건물의 지하에 들어서자 보컬 트레이너이신, 익숙한 이하늘 선생님이 우리를 반겼다.
“구름아, 애들 왔다.”
“오, 왔어?”
<듀오>의 안무는 이구름 안무가 선생님이 함께였다.
이은지와 난 실내용 운동화로 갈아 신으며 기지개를 켜다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이구름 안무가.
그녀는 보컬 트레이너 이하늘의 동생이었고 업계에선 자매 모두 실력자로 소문이 나 있다.
“저희 늦었어요?”
“안 늦었어. 안 늦었어. 얼른 스트레칭하고 거기 있는 거 차고 들어와.”
“네!”
이은지와 난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평소라면 티격태격했겠지만 여기서는 그런 투덕거림은 금지였다.
난 조용히 손목과 발목에 묵직한 5kg짜리 모래주머니를 달았다.
이 묵직한 모래주머니에는 사연이 있었다.
“아니, 망할 우럭 X끼야! 곧 내 파트잖아! 그럼 내가 여기 서야지!”
“곧이잖아. 아직 내 파트 막 끝난 거 안 들었냐?”
“끝난 지 2초나 지났잖아! 뭘 막 끝나!”
“2초면 막 끝난 거지! 호박아!”
안무를 처음 본 며칠 뒤, 우리는 이번 활동을 함께할 클라우드 댄스 팀과 인사도 할 겸 이곳을 미리 방문했었다.
<듀오> 중 훅에서 브리지로 넘어가는 타이밍 사이.
문제는 여기서 시작이었다.
이은지랑 난 대형을 짜던 중에 ‘중앙에 누가 설까?’ 하는 문제로 큰 소리가 오갔다.
결국 점점 커진 우리 목소리는 이구름 선생님의 신경을 건드렸다.
“너희 계속 싸우면 댄스 팀 독주 안무로 뜯어고칠 줄 알아.”
“죄송합니다.”
“앞으로 이틀 동안 모래주머니 차고 참여해. 벌이야.”
이 5kg짜리 모래주머니는 그 결과였다.
“오늘도 싸우면 1kg씩 무게 늘어날 거다.”
“안 싸워요! 절대로 안 싸울 겁니다…….”
최근 데뷔 전 관리로 빡빡한 다이어트에 들어간 이은지는 핼쑥해진 얼굴로 대답했다.
연습실 벽을 가득 메운 거울을 보자 초췌해진 건 나 또한 다르진 않은 것 같았다.
“난 가 볼게, 구름아.”
“언니, 들어가.”
“다들 화이팅 해!”
“선생님…….”
본격적으로 연습에 들어가려 하자 이하늘 선생님이 떠날 채비를 하며 손을 흔들었다.
진심으로 이하늘 선생님 발목이라도 붙잡고 가지 말라고 빌고 싶은 심정이었다.
손수 직접 물까지 챙겨 주시는 이하늘 선생님은 이구름 선생님에 비하자면 천사였다.
“오늘도 달려 봅시다!”
잠시 후.
이하늘 선생님이 건물을 떠났다는 것을 알리는 종소리를 시작으로 활기찬 구름 선생님의 목소리가 연습실에 울렸다.
이 문 너머의 넌 왜 대답이 없을까
트랙.
한 곡의 인트로부터 아웃트로까지 끝냈을 때, 한 트랙을 끝냈다고 한다.
‘얼마나 지났을까.’
모래주머니를 달고 49번째 트랙을 달렸을 무렵이었다.
습기 가득한 연습실 안, 벽면을 가득 메운 거울에 물방울이 맺혔다.
“허억…… 헉.”
“은호는 스텝 부분부터 한 번 더! 은지는 훅에서 발 양쪽 다 똑바로 오므리고 뛰라니까!”
“네! 허억.”
“꿈, 이길, 바랐…… 무릎, 무릎! 똑바로 써!”
“으헉…… 네!”
“줄 맞춰, 줄!”
“네!”
“한 번만 더 확인하고, 잠깐 쉬고 가자.”
50번째 트랙이 끝났을 때였다.
축구 한 경기를 쉬지 않고 달린 것처럼 비가 오듯 땀이 쏟아졌다.
스르륵.
물 밖에 놓인 오징어처럼 내 몸이 저절로 바닥에 퍼졌다.
힘들어서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옆을 돌아보니 이은지도 씹다 버린 껌처럼 퍼져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숨이 가쁜 건 이은지랑 나뿐이었다.
심지어 우리는 최근에 체력 관리랍시고 이 악물고 PT를 받고 있는데도 이 정도 차이였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차이기도 했다.
우리는 ‘벌’로 이 모래주머니를 달고 있지만, 선생님의 댄스 팀인 클라우드에게 이 모래주머니는 일상이었다
“형님, 누님들…….”
“응? 은호 왜?”
“혹시 심장이 두 개예요?”
하하하.
무슨 농담을 하냐며 연습실에 한바탕 웃음이 쏟아졌다.
난 농담으로 한 말이 아니었는데…….
“자자, 이 정도면 많이 쉬었잖아? 얼른 마저 100트랙 채우고 집에 가자.”
100트랙.
바닥에 드러누운 이은지와 난 본능적으로 움직임을 멈췄다.
바닥과 한 몸이라도 된 듯.
아니, 차라리 한 몸이 되고 싶었다.
“지금부터 3초 안에 일어나면 모래주머니 풀고 간다.”
움찔.
“늦으면 무게 더 추가하고, 3.”
선택지는 무슨.
숫자 2는 듣지도 못했다.
먼저 벌떡 몸을 일으키고 옆을 보니 웬 귀신이 흐느적거리며 서 있다.
“클라우드도 주머니 해방! 얼른 풀어. 하고 어서 쉬자!”
“와아!!!”
아무리 괴물 같던 형님, 누님들이라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는지, 격한 환호성에 연습실 거울이 떨리는 듯했다.
찌치지지직―.
찌지지직―.
연습실 안에 단체로 찍찍이 떨어지는 소리가 계속됐다.
모래주머니에서 해방되자 몸이 한결 더 가벼워졌다.
‘확실히 효과는 좋네…….’
모래주머니를 달고 수십번의 안무 연습을 반복했다.
어떤 몸치가 와도 이 정도의 연습이면 몸치 탈출이 가능할 것이다.
난 언제 바닥에 퍼져 있었냐는 듯 가뿐해진 발로 땅을 구르며 뛰었다.
이은지도 모래주머니에서 해방되며 머리를 묶은 건지, 귀신 같던 산발 머리에서 멀끔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연습마저 들어가기 전에, 자켓을 다시 걸치는 안무를 두 번째 벌스 들어가기 전에 넣을까 하는데.”
“‘나 꿈을 꿨는데, 네가 사라진―’ 이 부분이요?”
“응.”
내가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는 그때였다.
‘뭘 저렇게 보는 거야?’
모습은 멀쩡해졌지만 말할 기운은 여전히 없는 건지, 은지는 공허한 눈으로 아무 말 하지 않고 거울을 빤히 바라봤다.
호기심에 시선을 따라가 보자, 거울 너머 물병으로 가득한 작은 냉장고에 붙은 작은 전단지 하나가 눈에 닿았다.
‘아.’
이거였구나.
“선생님.”
“응?”
“저희 100트랙 다 채우면, 떡볶이 시켜 주시면 안 될까요.”
“너희 관리 중 아니었어?”
난 선생님을 설득하며 이은지 좀 보라며 눈길로 신호를 보냈다.
“이번 주 주말까지 두 타임 뛰면 어떻게든 맞출 수 있지 않을까요…….”
뒤늦게 내 제안이 어떤 의미인지 아셨는지, 선생님은 활짝 웃음을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 줄게.”
선생님의 대답과 동시에 이은지가 섬뜩하게 휙 고개를 돌렸다.
“떡볶이? 사 줘요?”
“응. 새 안무 넣고 100트랙까지 완벽하게 달리면.”
순간 이은지의 눈이 번뜩인 것 같았는데…….
기분 탓일까.
“이은호, 뭐 해. 빨리 100트랙 채워야지.”
“예. 예.”
지금까지 반쯤 시체처럼 희게 질려 있던 이은지의 피부색이 갑자기 제 색을 찾았다.
나도 마시던 물 한 모금을 마저 넘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느낌으로…….”
선생님은 새 안무라며 멋지게 한 턴을 돈 후 뒤도 보지 않은 채 댄스 팀이 들고 있던 후드 집업에 팔을 넣었다.
정확히는, 넣으려고 했었다.
“어, 이거 힘드네. 다시, 이런, 느낌…….”
약 세 차례 더 연습해 봤지만 실패였다.
나도 해 보고 이은지도 해 봤다.
하지만 안무 자체의 성공률이 지극히 낮았다.
이 정도 성공률이라면 연습을 해도 무대 위에서는 실수가 날 확률이 높다는 말이기도 했다.
“이거 넣으면 오히려 무대 날에 없던 실수도 할 것 같은데요.”
“그러게. 새 안무는 빼야겠다. 자, 100트랙이나 마저 달리자.”
선생님은 결국 후드 집업을 연습실 구석에 내던지며 손을 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