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34)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은지는 뒷좌석에 앉았다.
‘꿈에 나올까 봐 무섭네.’
난 기괴하게 누운 이은지를 보면서 생각했다.
하체는 나름 정상적으로 앉은 듯 보였다.
하지만 상체는 조금 섬찟할 정도로 완전히 꺾인 채 옆자리로 누운 형상이었다
현우 형님은 백미러를 통해 뒤를 보고 나서 흠칫 놀라며 운전대를 더 꽉 잡았다.
“그르르릉…….”
“무슨 오토바이 시동 같지 않아요?”
하하하!
장난 반, 진심 반으로 물었는데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모양인지 형님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움찔.
큰 웃음에 깬 건지 은지의 상체가 꿈틀거렸다.
“그르릉…….”
그러나 잠귀가 어두운 이은지가 완전히 깨어나기엔 턱없이 모자란 소리였는지 은지는 ‘으음’ 하는 소리만 낼 뿐.
여전히 잠에 취해 있다.
“저희가 어릴 때 공터에 공사장에서 쓰다 버린 판자 같은 게 있었는데, 거기서 콘서트 놀이를 하곤 했었……거든요.”
난 형님이 운전하시는 동안 말동무가 되어 주겠다고 조수석에 앉았다.
하지만 신나게 뛰어놀았던 무대의 여파 때문일까.
말동무 역할을 오래할 수는 없었다.
잠들지 않으려는 이성과 본능에 충실한 눈꺼풀.
약 10분간 내면의 싸움 결과는 결국 본능이 이겼다.
아마 실제로는 10분도 못 견딘 것 같지만…….
내 기억이 존재하는 구간이 그 정도였다.
“은호 씨, 들어가서 편하게 자요.”
“혀, 형님…….”
다시 눈을 떴을 땐 도로는커녕 이미 기숙사 앞에 주차를 마친 차 안이었다.
“옆에서 말동무라도 되어 드리려고 했는데, 죄송해요.”
“괜찮습니다. 오늘 공연 생각하면서 와서.”
별생각 없이 한 이야기일 테지만 형님의 대답은 꽤 감동적인 인사였다.
“그르르…….”
달칵.
난 차에서 내린 후 이은지를 챙기기 위해 뒷좌석 문을 열었다.
이은지는 녹아내린 슬라임처럼 뒷좌석 절반을 차지하며 널브러져 있었다.
일부러 정신 차리라고 찬바람을 직접 쐬었는데…….
‘도대체가 누구 동생인지.’
이 정도로는 전혀 깰 기색조차 보이지 않는다.
‘한 대 쳐서 깨울까.’
잠시 진지하게 고민해 봤다.
아마 평소 집에서였다면 그렇게 했겠지만 무대에서 열심히 했던 이은지를 생각하며 고민을 접었다.
옆에 형님이 있다는 것도 물론 이유 중 하나이긴 했다.
“도와드릴까요?”
“괜찮습니다. 시간도 늦었는데 얼른 들어가 보세요.”
난 은지를 짐짝처럼 둘러메며 말했다.
이은지를 어깨에 걸치고 일으킨 순간.
‘뭐야, 얘 X나 무거워!’
비명이 절로 나올 무게였다.
솔직히 잠깐 그냥 도와달라고 말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괜한 자존심에 결국, 겉모습으로는 전혀 무리 없는 척.
은호는 뻔뻔함을 유지하며 덜덜 떨리는 다리로 2층 계단을 올랐다.
“내일 봬요, 형님!”
2층에 오른 은호가 조금 가빠 보이는 입김을 내쉬며 손을 흔들었다.
현우는 은호를 따라 손을 흔들어 준 후 은호가 완전히 집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발을 옮겼다.
‘실수는 잦았지만…….’
현우는 처음 팬이 된 가수의 매니저가 되기를 결심한 이후 NRY 엔터테인먼트에 와서 돈을 벌면서 동시에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아직은 부족한 경험치 탓에 두 사람을 사소하게 돕는 일밖에 못 하지만 그래도 전과는 하루하루가 달랐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산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수원역에서 은호와 은지를 보기 전까지 하고 싶은 것 따위는 생각조차 안 해 봤다.
그런 건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생각이라고.
나는, 맨날 내일 나갈 돈만 생각해야 했던 사람이었으니까.
‘이제야 제대로 살아가는 것 같다.’
현우는 이미 컴컴해진 밤하늘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흰 입김이 진하게 드러났다가 불어오는 바람에 흐려졌다.
‘은지 씨는…….’
노력은 해 보고 있지만, 다양한 이유 탓에 여전히 눈도 못 마주치고 있다.
하지만 오늘 홍대에서의 일로 약한 줄만 알았던 은호 씨의 의외의 단호한 면, 강한 면을 봤다.
곁에 있다 보니 두 사람의 새로운 면을 매번 직접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전까진 아침마다 항상 ‘오늘도 잘 버티자.’라며 하루를 시작했는데…….’
이젠 매일 ‘오늘은 또 어떤 걸 하게 될까.’라는 ‘기대’를 하게 됐다.
이런 기분은 솔직히 처음이었다.
‘매일 쌓여 있는 병원 빚 때문에 하고 싶은 건커녕 돈만 바라보고 살았으니까.’
하지만 이젠 아니다.
‘내일은 더 열심히.’
내일모레는 더욱더 열심히!
지금까지 해 왔듯이.
이젠 팬으로서, E-UNG의 매니저로서.
내가 바라서 시작하게 된 좋아하는 일에.
늘 그래 왔듯.
‘최선을 다해야지.’
현우는 고개를 돌렸다.
때마침 불이 켜진 2층을 보며 눈웃음을 짓고는, 다시 멈췄던 걸음을 마저 걸어갔다.
* * *
안무
투웨니스 라이브 바에서의 공연 이후 며칠 뒤.
안무 미팅, 앨범 커버 미팅, MV 제작을 위해 다크오션 프로덕션 팀과 미팅 등 본격적인 데뷔 준비를 위한 온갖 미팅의 연속이었다.
거기다 이은지는 투웨니스 라이브 바에서의 공연이 큰 영감이라도 준 걸까.
잦은 미팅에 지칠 법도 하건만, 집에만 돌아오면 방에 박혀서 멜로디를 찍어 내는 데에 바빠 보였다.
“안 지치냐?”
“이걸로 힘든 걸 푸는 거지.”
“하하…….”
옛날엔 저런 재능에 질투를 했다.
하지만 이젠 흐른 시간 때문일까.
대단함에 마냥 감탄만 나온다.
지잉.
익숙한 진동에 휴대폰을 꺼내자 박 대표님의 깨톡이 와 있었다.
[은지는 두고, 은호 너만 잠깐 내려와.]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누군데?”
이은지는 여전히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물었다.
“대표님. 잠깐 내려오라고 하셔서.”
“나도?”
“나만.”
“얼른 가셔.”
“안 그래도 그럴 거였어.”
별거 아닌 걸로 투덕거리다가 1층으로 내려갔다.
똑똑.
“들어와.”
문을 노크하자, 알고 있었다는 듯 대표님이 말했다.
허락을 받자마자 문을 여니 대표실 안에는 손님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예, 안녕하세요…….”
상대는 멀끔한 정장 차림에 깃에는 천칭 모양이 새겨진 황금색 배지.
처음엔 정치계 사람이 오기라도 한 걸까 의심하며 조금 흠칫했다.
하지만 다행히 적의는 없어 보이는 지적인 미소를 보며 한결 경계를 풀었다.
“그럼 전 이만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떻게 하실지 정하게 되시면 연락해 주십시오.”
“네, 감사합니다. 들어가세요, 선생님.”
남자와 대표님은 서로 정중히 인사를 한 뒤, 그가 날 지나치며 사옥을 떠났다.
“변호사님이셔.”
“아.”
선생님이라는 이야기에 고개를 잠시 갸웃거렸지만, 대표님의 말에 뒤늦게 이해했다.
“자.”
소파로 가서 앉자 대표님은 대뜸 삐뚤삐뚤한 손 글씨가 눈에 띄는 A4 용지 한 장을 들이밀었다.
“이게, 뭐예요? 아…….”
종이를 받기 전에 물은 질문이었는데…….
「죄송합니다.」
종이의 첫 문장을 본 순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용지의 절반을 채 읽기 전에 난 사과문을 테이블 위로 다시 내려 뒀다.
“일전에 성추행했다던 그놈한테 고소장 보냈다. 이건 그놈이 보낸 사과문이고. 취하해 줬으면 한다더라.”
“그렇……군요.”
눈은 여전히 A4 용지에 둔 채였다.
“대표님.”
“그래.”
“성인이면 본인 행동에 책임을 지는 거라고, 대표님이 어릴 적 저희한테 가르쳐 주셨죠.”
“그랬지.”
박 대표는 그때를 떠올리듯 흐뭇하게 웃으며 은호를 바라봤다.
은지보다 제일 말썽이었던 녀석이 이런 소리를 다 하다니, 감개가 다 무량이었다.
은호는 내려 둔 사과문에 냉랭한 시선을 던지며 말을 이었다.
“이은지는 겉으로는 성격이 더러워도, 속은 답답할 만큼 착한 면이 있거든요.”
“그런가?”
박 대표가 되묻자, 은호는 평소처럼 장난스럽게 웃음을 띠었다.
은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
인터넷에는, 갑작스럽게 올라간 인기만큼이나 은지를 향한 악플과 성희롱이 담긴 댓글이 난무했다.
하지만 이은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든 문제는 대화로 풀 수 있다’라며 악플러들을 선처하고 그들과 함께 봉사 활동을 했다.
이은지는 자신의 철학을 믿었다.
「“분명히 또 보게 될 거야. 오히려 그때보다 널 더 만만하게 볼 수도 있어.”」
당시 나는 이은지한테 그렇게 말했다.
내가 미치기 직전까지 가서 바뀌었듯 사람의 본성은 쉽게 바뀌질 않으니까, 그렇게 못하니까.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몇 개월 뒤, 당시에 봉사 활동을 함께했던 익숙한 이름과 얼굴들이 변호사님의 손 위에 서류로 올려졌다.
「“오빠 말이 맞았네…….”」
내가 옳았다.
이은지의 수긍 이후로 두 번의 용서는 없었다.
그땐 방 안에 박혀 울고 있던 이은지를 대신해서 내가 총대를 멨으니까.
정말 적잖은 양이었다.
그리고 그 날 선 말들은 은지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는 모두 나한테 돌아왔다.
하지만 나는 이은지처럼은 할 수 없었다.
‘나더러 수십 번이나 죽으라고 손가락을 놀리던 놈들과 같이 봉사 활동이라니…….’
하루에 몇 번이고 그들 뜻대로 죽음을 떠올릴 만큼 괴로웠다.
하지만 나는 살고 싶었다.
손가락만 놀리는 놈들에게 흔들리고 싶지 않았다.
놈들과 세 번째 만남 후, 나는 감정을 죽였다.
그들이 잘못했다며 울고 빌어도 난 강경하게 밀어붙였다.
‘우스워.’
그런 경험들 때문일까.
이런 사과가 적힌 종이 쪼가리를 보면 솔직히 웃음만 터진다.
‘술 때문에…….’
‘술을 먹어서…….’
‘기억이 나지 않지만…….’
‘술’로 모든 이유를 둘러대는 그 취객이 건넨 사과문.
애초에 이 술 핑계로 도배된 사과문이 과연 진정성이 있는 ‘사과’일까.
“이은지는 입은 더러워도 착해요. 옆에서 보는 사람 속이 터질 정도로…….”
은호의 눈빛이 차게 식었다.
조금 전보다 더 굳어진 은호의 표정은 침착했지만 동시에 살벌했다.
“대표님도 은지한테 넘기면 조용히 넘어가자고 할까 봐 저한테 연락하신 거잖아요.”
박 대표는 잠시 흠칫 숨을 멈췄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은지의 성격을 입 밖에 내질 않았을 뿐 ‘그렇게 넘어가지 않을까’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긴 했으니까.
그래서 은호를 불렀다.
두 남매의 얼굴은 처음 본 사람들이 한 번쯤 흠칫할 정도로 닮았지만, 둘은 너무 다르다.
겉모습으로 기분도 생각도 쉽게 드러나는 은지.
그런 은지는 의외로 선을 넘을 땐 화를 내되, 상대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준다.
거기다 자신이 받은 피해에는 애써 별것 아니라는 양 화를 삭이는 편이다.
‘하지만 은호는…….’
은호는 겉으로는 남을 잘 배려하고 착한 녀석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녀석은 제 속을 쉬이 비추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만일에라도 선을 넘거나 은지를 건들면 그 순간 끝이었다.
‘데뷔 이야기가 나오기 전만 해도 이렇게까지 냉랭한 애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