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33)
6시를 넘길 무렵.
두 사람은 조금 일찍 투웨니스 라이브 바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다행히 처음 왔을 때랑은 다르게 지금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모양인 듯.
투웨니스 라이브 바 직원이 그녀들을 반겼다.
“와…….”
안내를 받아 내부로 들어서자 ‘바’라기에는 놀랄 만큼 넓은 내부가 드러났다.
그 안은 벌써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슬기는 주변을 돌아보며 상당히 마음에 드는지 흡족한 감탄을 흘렸다.
“야, 야! 쭈. 감상 자체는 무료인 것 같은데, 편하게 앉으려면 테이블 잡고 술이랑 안주 하나 시켜야 한대.”
“그래? 난 서서 봐도 괜찮은데.”
“넌 운동화잖아.”
슬기는 높은 제 힐을 가리키며 푹 한숨을 내쉬었다.
“여긴 내가 쏠 테니까. 대신 쭈, 네가 직원 좀 불러 줘.”
“알겠어.”
주연은 아파하는 슬기를 안쓰럽게 보며 곁으로 지나가던 직원을 불렀다.
“저기!”
“네?”
투웨니스 라이브 바의 직원들은 모두 자신을 소개하는 목걸이를 걸고 있었다.
하지만 하필 주연이 붙잡은 그의 목걸이에는 ‘E-UNG Manager’라고 쓰여 있었다.
주연은 주변의 다른 직원들의 목걸이를 힐끗 바라보다 어색하게 현우의 소매를 놓고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다른 직원들의 목걸이에는 단순히 [STAFF]라고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직원분으로 착각해서…….”
“아.”
현우는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제 목걸이를 잠시 내려보다 주연에게 친절하게 웃어 보였다.
“금방 보내 드릴게요.”
현우는 고개를 숙인 후 직원들이 모여 있는 무대 옆 바 테이블로 향했다.
“저쪽 손님이…….”
“아, 제가…….”
직원과 무슨 이야기를 하는 듯하더니, 현우는 직원에게 생수 통 두 개를 건네받은 후 바 뒤편의 작은 문으로 사라졌다.
현우에게 이야기를 들은 직원은 주연과 슬기에게 다가갔다.
“부르셨나요?”
“네. 저희 테이블 잡고 공연을 보고 싶어서요.”
슬기가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그동안.
‘E-UNG 매니저…….’
주연의 눈이 반짝였다.
“슬기야, 잠깐만 여기 있어. 나 금방 나갔다가 올게!”
“뭐? 야! 어디 가는데!”
투웨니스 라이브 바를 나온 뒤.
[이런 기회가 또 없을 것 같아서, 좋은 추억으로 남게 선물 주고 싶었거든.]
주연은 이동하면서 슬기에게 깨톡으로 사정을 설명했다.
[진작 말하지.]
슬기는 의외로 침착하게 상황을 받아들였다.
[마음이 급했어.]
[나도 그 언니한테 선물할래.]
슬기는 좋아하는 연예인이 있어도 팬 카페나 선물은커녕 앨범을 산 적도 없었다.
그저 출근하며 한두 차례 노래를 즐기는 정도만 할 뿐.
[진짜?]
[ㅇㅇ]
주연이 믿기지 않아서 재차 묻기까지 했는데, 정말 진심인 것 같았다.
[음, 영상통화로 가게 비춰 줄까?]
[오, 좋다. 혹시 근처에 귀걸이 파는 곳 있으면 거기 들어가면서 전화 걸어 줘.]
* * *
“어, 물! 감사합니다! 매니저님!”
“별말씀을요……. 그보다, 편하게 불러 주세요, 은지 씨.”
“그럼 매니저님부터 ‘은지’라고만 불러 봐요. 내가 수박도 아니고 자꾸 씨, 씨 붙이지 말고.”
“그게…….”
은지가 빤히 바라보며 묻자, 현우는 대답은커녕 눈도 못 마주친 채 끝내 고개를 돌렸다.
반면, 현우의 반응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듯.
은지는 태연하게 받아 든 생수 통 두 개를 들고 창고 구석으로 들어갔다.
“이은호, 매니저님이 물 챙겨 주셨어.”
탁.
은호는 진행하던 스트레칭을 멈추며 은지가 대충 던진 생수 통을 가뿐하게 받았다.
“감사하다고 인사는 했고?”
“당연하지.”
“잘했네.”
투웨니스 라이브 바에는 큰 무대가 있는 만큼 대기실도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인테리어 공사 중으로,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그래서 선택한 임시 대기실이 바로 창고였다.
편안하게 메이크업도 수정하고 목도 푸는 등 창고치고는 넓은 방 크기 덕분에―늘어진 술병과 냉장고 틈이긴 했지만― 스트레칭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저, 매니저님?”
“네?”
“잠시…….”
6시 40분.
곧 나갈 준비를 하고 있을 무렵.
한 스태프가 창고 문을 열며 형님을 불렀다.
잠시 후, 다시 돌아온 형님의 손에는 쇼핑백 두 개가 함께였다.
“선물이 왔는데요.”
“선물이요?”
“이주연이라는 여성분이 은호 씨한테, 그리고 주슬기라는 분이 은지 씨한테 이걸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뭔데요?”
이은지에게 건네진 건 손바닥만큼 작은 크기의 하얀 쇼핑백.
내가 받은 건 이은지보다는 훨씬 커다란 남색의 쇼핑백이었다.
“와, 하! 이뻐!”
이제 막 형님에게 쇼핑백을 받고 있던 그때였다.
이은지는 이미 쇼핑백에서 작고 투명한 봉지를 꺼내 들고 있었다.
“완전 마음에 들어!”
시끄러운 환호에 놀라 뒤를 돌아본 순간.
투명한 봉지 안에는 이은지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금색의 화려한 귀걸이가 들어 있었다.
“나랑 딱이지!”
이은지는 제 귀에 귀걸이를 가져다 대며 물었다.
“나쁘진 않네.”
“오, 그거 이은호 언어로는 극찬인데?”
“어.”
평소라면 장난으로라도 별로라느니 할 텐데…….
솔직히 진심으로 찰떡이라 그렇게 말할 수가 없었다.
“넌 어떤 거야?”
“아.”
은지가 호기심을 드러내 보이자 난 그제야 손에 들려 있는 남색 쇼핑백을 열었다.
“어? 버건디…….”
안에는 이은지가 수원역 공연 당시 ‘버건디’라며 몇 번이고 강조했던 색으로 가득했다.
정확히는 그때 이은지의 립스틱과 똑같은 색의 셔츠가 있었다.
“와.”
이은지가 셔츠에 감탄하고 있는 동안, 난 봉투에서 여전히 느껴지는 무게감에 다시 쇼핑백을 살폈다.
안에는 같이 쓰길 바란 건지, 검은 넥타이가 함께 들어 있었다.
“나 이거 끼고 공연할 건데, 이은호는?”
“갈아입을까?”
“그러던지. 보기 싫으니까 난 뒤돌아 있을게.”
“그래.”
이은지가 등 돌리자마자 난 입고 있던 베이지색 니트를 벗고 선물 받은 셔츠로 갈아입었다.
마침 입고 있는 것도 검은 바지라 그런지 꼭 미리 생각해 두고 입은 것처럼 잘 어울렸다.
“다 입었어?”
“어.”
셔츠는 목 부분을 제외하면 꼭 잰 것처럼 딱 맞았다.
비싼 명품은 아니었지만 어떤 명품을 받은 것보다 더 찢어지게 기분이 좋았다.
“오, 옷이 날개네.”
놀리는 건지 진심인지, 이러나저러나 민망한 마음에 못 들은 척해 버렸다.
이은지도 뱉고 나니 어색했는지 두 번 같은 말을 하진 않았다.
“이거 아까 입구에서 만났던 분들이 준 거죠?”
은지가 묻자 현우 형님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진짜 열심히 해야겠네…….”
이은지가 한 말이었지만 나도 마찬가지인 마음이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E-UNG입니다!”
무대에 오른 은호와 은지는 서로의 엄지와 검지를 닿게 하며 인사했다.
자칫 하트 모양이 되지 않도록 빳빳하게 엄지를 세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급조한 인사법이긴 하지만 나쁘진 않았다.
손을 떼어 낸 이후에는 마저 자기소개를 이었다.
“이은호.”
“이은지입니다!”
무대에 등장한 은호와 은지가 인사를 마치자 환호성이 쏟아졌다.
드문드문 빈 곳이 있긴 했지만 예상보다는 그래도 꽤 많은 관객 수였다.
여느 콘서트처럼 광란의 환호성은 아니었지만 가수를 위한 관객의 서비스 정도로는 충분한 소리였다.
“이 귀걸이 어때요?”
―예뻐요! 잘 어울린다!
“헤헤. 감사합니다.”
은지가 귀걸이를 자랑하며 관객들 가까이 다가가자 칭찬이 쏟아졌다.
“오늘 오빠도 원래 입고 나오려던 옷이랑 달라지긴 했는데, 어때요? 괜찮나요?”
―잘생겼다! 꺄아아악!
한 여성 팬의 광적인 반응에 당황한 은호의 얼굴이 옷 색처럼 붉어졌다.
은지는 멈추지 않고 짓궂은 농담을 이어 갔다.
“우리 이은호가 칭찬에 좀 Shy한 남자예요.”
“헛소리하지 마.”
은호는 은지를 밀어내고 마이크를 빼앗아 들며 진행을 이어 나갔다.
그때, 즐기는 관객들 사이.
“가게에서 영상통화로 귀걸이 고를 땐 쪽팔려 미치는 줄 알았는데.”
“그러게.”
셔츠와 귀걸이를 선물한 주연과 슬기는 감동하며 은호와 은지를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봤다.
‘내’ 연예인이 자신이 준 선물을 소중하게 여긴다.
그리고 감사함을 표현하며 어느 때보다 좋은 공연으로 보답한다.
그 기분은 이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뿌듯하고 행복했다.
“슬기야.”
“응.”
주연은 화려한 고음과 기교를 뽐내며 투웨니스 라이브 바에 소름을 선물한 은호를 빤히 보며 말을 이었다.
“나, E-UNG 팬 카페 만들래.”
“톡신 이후로는 그렇게까지 덕질 안 할 거라더니.”
“저걸 보고 어떻게 안 할 수 있겠어.”
“그럼 나도 거기 들어가야겠네.”
예상치 못한 슬기의 말에 주연이 놀라며 돌아봤다.
“선물도 그렇고, 네가 진짜 웬일이냐.”
“노래도 노래지만……. 솔직히 네가 저 남자 찾을 땐 별로 관심 없었거든?”
“그랬지.”
슬기는 귀여운 친구 동생을 바라보는 다정한 시선으로 은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근데 동생이 귀엽잖아.”
“멋있는 쪽 아니야?”
“내 기준엔 귀여워. 내 취향인 언니가 저렇게까지 내가 준 선물을 좋아하면서 자랑해 주는데 애정이 안 가기가 힘들지.”
귀여운 건 모르겠지만, 슬기의 애정이 안 가기가 힘들다는 말은 격하게 긍정하는지 주연은 끄덕거리며 다시 무대 위로 눈을 돌렸다.
“내가 너 덕에 26년 인생 처음으로 아이돌도 아니고 남매 덕질을 다 해 보네.”
하하.
슬기가 중얼거린 이야기에 주연은 잠시 웃음을 터뜨렸다.
* * *
공연은 홍보를 직접 발로 뛴 덕분일까.
수원역에서의 버스킹보다는 더 많은 인원이 온 것 같았다.
사실 느낌상으로는 그랬지만, 막혀 있는 실내라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정말 신나게 놀았다.
행사를 위해 가 놓고 어떻게 놀고 올 수 있느냐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회귀 전, 이은지가 말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 이은호.
우린 노래와 퍼포먼스로 ‘나’를 팔아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잖아.」
정확히는 이은지의 일기장에 그렇게 쓰여 있었다.
그래서 세상에 내 힘듦을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지금, 이은지의 말마따나 우리는 열심히 우리를 팔았다.
사람들은 우리가 부르는 노래에 뛰고, 손을 흔들고, 따라서 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놀았다.
한편, 우리는 신나게 노는 동시에 우리의 욕심을 감췄다.
코러스를 주고받던 그때.
가족이기 때문일까.
그냥 우리이기 때문일까.
이은지와 난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만든, 우리의 곡으로.’
OST 공연도 물론 좋다.
오히려 과분할 정도로 행복했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말처럼.
‘데뷔하고 싶다.’
데뷔하고 당당히 우리의 이름으로, 우리의 곡으로 활동하고 싶다.
다음엔 꼭 ‘우리’의 콘서트를, 무대를 하고 싶다.
원래도 가지고 있던 마음이었지만, 즐거운 무대를 하면서 격하게 더더욱 바랐다.
그럼 바람이 합쳐진 덕분일까.
공연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