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32)
“괜찮아요, 형님.”
하지만 그런 현우를 막은 건 오히려 놈에게 멱살을 붙잡힌 은호였다.
“형님, 그보다.”
“예?”
“영상은 잘 찍혔죠?”
이런 상황에서도 은호는 여유롭게 현우를 돌아보며 물었다.
“예. 찍히긴 했는데…….”
설마 이런 상황에서도 영상을 먼저 생각한 건가.
현우는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순간.
은호는 세상 친절한 미소를 띤 채 입을 열었다.
“주먹을 잘 쓰면 벌을 받지만, 법을 잘 쓰면 인생 하나를 족칠 수 있거든요.”
조용히 뱉은 은호의 한마디에 현우는 머리털이 쭈뼛 섰다.
“뭐, 뭘 족쳐?”
“형님, 대표님한테 전화 좀 걸어 줄래요?”
아직 술에 절어 있는 놈은 제정신이 돌아오지 않는지 반쯤 풀린 눈으로 물었다.
“대, 대표? 무슨 대표?”
“뭐긴, 당신한테 고소장 날려 줄 대표지.”
“고소는 무슨! 내가 뭘 했다고!”
당당히 소리치는 것과는 다르게 취객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뒷걸음질을 쳤다.
“와, 대단하네. 그걸 진짜 몰라서 물어요?”
한 걸음씩 멀어진다 싶던 놈은 곧이어 쥐새끼처럼 재빨리 모습을 감춰 버렸다.
그래도 상관은 없었다.
‘이럴 줄 알아서 잘 찍었는지 확인했던 거니까.’
촬영한 영상에는 또렷이 놈의 얼굴, 목소리가 녹음되었다.
일부러 걸릴까 싶어 속삭이듯 흘렸던 ‘개가 됐으면 집에나 들어가’라며 했던 말은 다행히 의도대로 녹음되지 않았다.
놈이 도망친 후, 난 대표님께 직접 전화를 걸어 사정을 이야기했다.
“이건 내가 알아서 처리해 두마.”
“네.”
“이런 문제는 나한테 맡기고 너희는 오늘 공연만 생각해. 잘하고 와.”
“네.”
“은지가 충격 많이 받았을 텐데. 은호, 네가 잘 지켜 주고.”
“네.”
“전 괜찮아요! 대표님!”
통화하는 목소리가 들린 건지, 이은지가 뒤에서 활발하게 대답했다.
이후 우린 계속 홍보를 이어 갔다.
그 취객뿐만 아니라 이상한 사람은 종종 마주쳤다.
하지만 적어도 그 취객의 주정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큰 부담은 되지 않았다.
* * *
“이주연!”
“여기야, 슬기야! 여기 맞아!”
공연 시작까지 3시간 전.
은호는 은지와 현우와 함께 공연이 예정된 투웨니스 라이브 바로 돌아갔다.
투웨니스 라이브 바 건물에 도착할 무렵.
열리지도 않은 가게 앞에서 두 여자의 큰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도 아니라고 하면 공연이고 뭐고, 나 집에 갈 거야.”
“여긴 진짜 맞아. 진짜로!”
“내가 떡볶이에 홀리지만 않았어도…….”
“콩불까지 샀잖아!”
“그래서 공연은 몇 시부터인데?”
같이 공연을 보는 대가로 사 준 것들이 많긴 했는지.
슬기는 은근슬쩍 말을 돌리며 물었다.
“입구에는 5시에 열린다고 되어 있기는 했는데, 불이 미리 켜져 있어서…….”
“연습이라도 하는가 보지!”
그동안에도 주연은 가게 문을 힐끔거리며 언제 시작하는지를 살펴보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때였다.
“꺄악!”
주연을 빤히 구경하던 슬기가 비명을 지르며 물러섰다.
‘뭐야, 언제 간 거야?’
방금 전까지 옆에 있던 은지가 눈을 깜빡인 짧은 찰나에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언니들! 무슨 일이에요?”
“저…….”
죄라도 저지른 듯 주연은 은지와 눈도 못 마주친 채 조심스레 입을 뗐다.
“여기서 이은호 씨가 오늘 공연한다고 해서 왔는데요…….”
“우리 오빠 알아요?”
이은호.
명확한 이름에 은지가 갸웃거리며 물었다.
“네? 우리 오빠요?”
주연은 그제야 은지와 시선을 맞췄다.
그러자 믿을 수 없는 것을 본 듯 주연은 재차 눈을 끔뻑이며 은지를 쳐다봤다.
그리고 주연의 입에서 탄식을 흘렸다.
사진과 영상으로 이미 몇 번이나 봤던 얼굴이다.
하지만 그녀의 실물을 직접 본 순간, 사진은 그녀의 분위기를 절반도 채 담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야, 이은호!”
그때.
은지는 은호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이은호! 여기 이분들 오늘 공연 보러 오셨대!”
“어, 그래?”
설마.
익숙한 목소리에, 은지를 따라 뒤를 본 주연의 눈이 곧 튀어나올 듯 커졌다.
“아니, X친! 그게! 세상에.”
주연은 놀란 마음에 욕을 뱉은 것도 잊은 채, 천천히 다가오는 은호를 보며 입을 틀어막았다.
“저희 공연 보러 오신 거예요?”
은호의 목소리가 다정했다.
거기에 주연은 홀린 듯 입을 막던 손을 풀며 소리쳤다.
“네. 패, 팬이에요!”
* * *
“저요?”
“네!”
처음엔 믿기질 않아서 다시 물어봤다.
그녀는 곧 울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재차 답했다.
“예찬 오빠 쇼케이스 때 보고 열심히 찾았었는데, 이번에 공연한다는 걸 알게 돼서 왔어요…….”
“……수원역이 아니라 쇼케이스 때요?”
생각지도 못했다.
예찬 선배의 피처링을 돕고 그 쇼케이스에 참여한 덕분에 OST를 부를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덕분에 이런 공연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이르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애초에 팬까진 바라지도 않았다.
‘그랬는데…….’
예상치 못한 시기라 놀라긴 했지만 그래서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저, 저는 이주연이예요.”
“주연 씨구나. 고마워요.”
고마워요.
머릿속에선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지만 막상 입 밖으로 흘러나온 말은 그것밖에 없었다.
이후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으려는 그때, 이은지가 틈새를 파고들며 말했다.
“참, 그런데 언니, 공연은 7시에 시작이에요.”
마침 어떻게 이야기를 이어 가야 하나 난감하던 차에 큰 도움이 됐다.
난 이은지가 한 말에 조금 내용을 보태며 말했다.
“스태프분들도 이제 막 세팅에 들어갈 거라 6시 반은 지나야 입장할 수 있을 거예요.”
“아, 그래서 아무도 없었구나.”
“네. 그러니까 주연 씨랑 친구분…….”
“주슬기에요.”
곁에 주연 씨의 친구로 보이는, 단발머리에 겨울에는 추워 보이는 패션의 그녀가 말했다.
왠지 이은지랑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슬기 씨도, 7시에 다시 와 주실 수 있을까요?”
“그럴게요.”
은호가 나름 친절한 미소를 보이며 말하자, 대답은 주연을 끌어당기는 슬기가 대신했다.
주연은 새빨개진 얼굴로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방해가 되고 싶진 않다며 금세 건물 주변을 떠났다.
난 떠나는 그들에게 손을 흔들며 멀어지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팬이라니…….
“개인 팬이라니! 좋겠다!”
고백을 받은 나보다 오히려 이은지가 더 흥분하며 소리쳤다.
온종일 무시당하다가 취객에게 겪은 거지 같은 경험까지.
그 고생 끝에 직접 마주한 사람이기 때문일까.
난 좀 신기한 기분이었다.
‘회귀 전이었다면…….’
팬들이 찾아오고, 인사를 건네고, 선물을 건네는 등 보통 이런 상황은 이은지가 겪던 일이었다.
그리고 내 역할은 항상 그걸 구경하며 ‘좋겠네.’ 하는 축하를 건네는 엑스트라 정도였다.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난 정신을 차리기 위해 들뜬 기분을 애써 가라앉히며 말했다.
“얼른 들어가서 연습이나 하자. 실수 없게.”
“침착한 척하기는.”
“하하.”
이은지는 장난스럽게 어깨를 밀치며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라서 어색하게 웃어 넘기며 같이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1층 입구를 지나 내부로 들어서자 ‘바’라는 이름과 다르게, 내부는 클럽이나 감성 주점에 더 가까운 것 같았다.
“이 정도면 진짜 콘서트 하는 느낌 나겠는데?”
이은지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화려한 조명과 그럴싸한 단상까지.
무대다운 무대를 보니 흥분되는 모양.
그런 이은지를 잠시 바라보다, 나도 무대로 눈을 돌리며 답했다.
“그러게.”
‘얼마 만이지, 이게.’
무덤덤하게 대답하긴 했지만 설레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마이크와 나쁘지 않은 앰프와 스피커 그리고 내리쬐는 조명.
콘서트홀이나 음악 방송 무대처럼 화려한 레이저 조명도, 끝내주는 음향의 스피커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지금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니.
팬과의 만남 때문에 더 크게 버프라도 받은 듯, 오히려 조금 과분하게 느껴질 정도로 행복했다.
“리허설 준비해 주세요!”
2주 만에 다시 만난 스태프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더 밝았다.
이은지와 난 무대에 서서 간단히 리허설을 진행했다.
♪♬
이번 공연은 무대다운 무대만큼이나 나름대로 구색을 갖추려는 듯.
‘그는 1+1=1’ 드라마 안에서 또 다른 OST 두 곡이 더 추가됐다.
간단한 리허설을 마친 후, 난 CK E&M 측에서 무대 세팅을 위해 온 스태프에게 물었다.
“어땠어요?”
스태프들은 묵묵히 엄지를 치켜세우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2차 강남역 버스킹이 무산되면서 연습만 2주를 했던 곡이기 때문일까.
리허설은 완벽했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는 실수한 부분 없이 깔끔하다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형님?”
“어?”
“혹시 문제 있는 부분이라도 있었어요?”
“아, 아니.”
뭔가 걸리는 부분이라도 있었던 걸까.
현우 형님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이건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형님은 격하게 기뻐졌을 때, 도리어 표정이 화난 것처럼 굳어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 * *
“나 꿈꾼 건가?”
“벌써 열 번도 더 물었어, 이 X아.”
“너도 봤지…….”
“봤어. 봤다고. 스무 번도 더 대답했다.”
슬기의 대답은 전혀 들리지 않는 듯, 주연은 홀린 눈으로 천장 조명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을 흘렸다.
“……어떡해, 나 지금 극락 갈 거 같아.”
“푸흡!”
슬기는 빙수를 입 안에 넣다, 급하게 손으로 틀어막았다.
이후 뜬금없는 ‘극락’에 지저분해진 손을 보며 그녀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 이쭈…… 에휴.”
겨우 뒤처리를 마친 후 슬기는 다시 자리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네가 왜 그렇게 환장하는지는 알겠다.”
“진짜?”
“확실히 잘생기긴 했어. ‘그는 1+1=1’ OST 생각하면 노래도 잘하는 거 같고.”
“당연하지!”
주연은 발끈하더니 이내 의자에 퍼지며 한숨을 쉬었다.
“아, 생각할수록 수원역에서 공연했다는 걸 몰랐던 게 한이야…….”
“영상은 봤었잖아?”
“봤지. 하지만 영상이랑 직접 보는 거랑은 또 다르다고.”
“그러시겠지.”
슬기는 연유 범벅이 된, 빙수의 우유 얼음을 입안에 밀어 넣으며 말했다.
“근데 난 남자 쪽보다 여자 쪽이 더 좋던데.”
“여자 쪽? 아, 남매인 은지 언니?”
“어? 그 사람 어려 보이던데 우리보다 언니야?”
“아니, 이제 20살이래.”
슬기는 황당한 눈길로 주연을 바라봤다.
그런 눈빛에도 주연은 뻔뻔히 어깨를 으쓱거리며 답했다.
“왜, 나보다 잘나면 다 언니, 오빠 맞잖아.”
그건…….
“……그렇지. 그건 인정.”
주연과 슬기는 서로를 보며 밝게 웃었다.
“조금 일찍 가 있을까?”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