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31)
FAN
“어? 그래요?”
“예…….”
흐음?
“왜 그래?”
은지가 갸웃거리며 의심하는 눈초리로 현우를 쳐다보자 은호가 물었다.
“아니…… 팬이라는데 왜 이렇게 무말랭이처럼 쪼그라들어 계시는가 싶어…….”
“쫌, 쫌! 이은지…….”
“아, 왜!”
“말 그렇게 하지 말라니까.”
“내가 뭘!”
“사람한테 무말랭이가 뭐야. 버릇없게.”
“아, 알았어, 몰랐어…….”
수원 로데오 거리의 골목에서 몰아붙이던 분위기와는 전혀 달랐다.
현우는 은지가 은호에게 혼나는 분위기에 당황한 듯 입을 뻐끔거렸다.
은호가 은지의 목덜미를 누르며 함께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형님. 너도 사과드려야지, 이은지.”
“알겠어…….”
은지는 힘으로 버티던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나쁜 의미로 꺼낸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기분 나쁘셨으면 죄송해요. 제가 입이 좀 험해서. 죄송합니다…….”
사과는 진심이었는지, 은지는 소심하게 현우의 눈치를 보다 다시 푹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전 괜찮아요.”
현우는 양손까지 들어 보이며 정말 괜찮다는 걸 강조해 보였다.
어색한 분위기가 더 짙어져 버렸다.
“뭐야? 지금까지 계속 이러고만 있던 거야?”
박 대표는 두툼한 파일을 챙겨 나오다 황당한 눈으로 거실을 바라봤다.
은지는 꼬리 말린 고양이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은호는 무슨 생각인지 모를 얼굴.
‘현우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는지 막 나타난 박 대표를 구세주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박 대표는 푹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가지고 온 파일을 내려 두자 은호와 은지의 시선이 파일로 향했다.
“그건 뭐예요?”
“이거, 안 그래도 이야기해 줄 거였는데.”
“공연 기획서?”
은호가 파일에 쓰인 글씨를 읽자 박 대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계획이 틀어졌거든.”
“무슨, 아…….”
“뭔데?”
은호는 단번에 눈치챈 듯 아쉬운 탄식을 터뜨렸다.
반면, 은지는 무슨 상황인지 아직 이해되지 않는 듯 은호를 돌아보며 설명을 요구했다.
“2차 공연이 캔슬되면서 틀어진 거죠?”
“……그래.”
‘그는 1+1=1’ 드라마 방영 이후 OST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들이 많았다.
덕분에 E-UNG은 수원역 버스킹 이후 다시 반짝 관심을 얻은 듯했다.
하지만 아직 정식적인 데뷔를 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강남역 11번 출구 앞에서 예정되어 있던 2차 버스킹이 난데없는 폭설로 인해 취소되고.
그 후로 실질적인 활동이 없으니 팬층은커녕 겨우 쌓아 올렸던 관심도도 쭉쭉 떨어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3차 공연은 홍대에서 열릴 예정이지.”
“네.”
“그래서 말인데.”
박 대표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너희가 직접 관객을 모아 왔으면 좋겠거든.”
“저희가요?”
“관객 수가 모자랄 것 같아서. 오튜브 영상도 찍을 겸 말이야.”
박 대표는 현우를 돌아보며 싱긋 웃었다.
* * *
토요일 점심시간 무렵.
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이은지는 딸기 요거트 스무디를 들고 홍대 입구역 9번 출구 앞에서 형님을 기다렸다.
“와, 사람 많다.”
지하철이 도착했는지 조용했던 9번 출구에서 살면서 쉬이 보기 힘든 인파의 파도가 몰아쳤다.
“중간에 서 있으면 깔릴 거 같다…….”
이은지가 질겁하던 그때였다.
“은호 씨! 은지 씨!”
그 인파의 틈에서 익숙한 사람이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어, 형님이다.”
몰아치는 인간 파도를 가르며 형님이 나왔다.
“근처에 주차할 만한 곳 없었나 보네요.”
“네…… 전혀 없었습니다.”
근처에 주차하는 게 여간 힘들었는지, 대답하는 형님의 얼굴이 왠지 핼쑥해진 것 같았다.
“자, 그럼…….”
“꺼내?”
“꺼내야지…….”
3차 공연은 원래대로라면 홍대 놀이터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버스킹이 아니라 라이브 바에서의 공연으로 바뀌었다.
어른들의 사정상 그렇게 되었다고 박 대표님이 설명하긴 했지만, 2차 버스킹을 한 후 CK E&M 측에선 우리에게 나름대로 팬층이 쌓여 홍보 효과가 클 줄 알았던 모양.
하지만 알다시피 폭설로 공연은 무산됐다.
거기다, 쏟아지던 관심조차 현재는 미미할 정도로 불이 꺼졌다.
그런 상황을 증명하듯 어제저녁에 올라간 3차 공연 소식의 조회 수는 두 자리를 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 실내 공연이라니…….’
참담한 기분이었다.
가방 속에 쌓여 있는 두둑한 전단지의 두께만큼이나 마음이 무거웠다.
‘둘이 갈라져서 나눠 주면……. 아.’
카메라가 하나뿐이네.
결국은 같이 해야 했다.
“네가 먼저 인사할래?”
“싫어. 오빠가 해.”
다가가서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전단지를 드려야 하는데, 문제가 생겼다.
타인에게 간단한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건네는 것부터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위바위보로 먼저 할 사람 정할래?”
“그래.”
“좋아! 가위바위보!”
“가위바위, 보! 젠장…….”
이은지와 가위바위보로 내기를 했지만 결국은 내가 졌다.
어릴 적부터 항상 그랬다.
회귀해도 운이 없는 건 여전한 걸까.
……라고 은호는 생각했지만.
‘바보, 이은호.’
사실 은호는 항상 두 번째 차례에 주먹을 낸다.
은지는 그 사실을 어릴 적부터 알고 있었고 여태껏 잘 이용했다.
“빨리 가!”
“아, 갈 거야! 재촉하지 마!”
은지의 재촉에 은호는 숨을 고르며 오늘의 관객이 될지 모르는 첫 사람에게 다가갔다.
“저기…….”
“어머, 깜짝이야.”
“죄송합니다.”
“아뇨. 괘, 괜찮아요. 근데 왜…….”
너무 화들짝 놀라시는 바람에 겨우 풀었던 긴장감이 다시 솟아올랐다.
“저, 저희가 ‘E-UNG’이라는 듀오인데, 이번에 여기 투웨니스 라이브 바에서 공연하게 됐거든요. 혹시 오늘 7시에 시간 괜찮으시다면…….”
떨리는 혓바닥을 두어 번 씹어 가며 겨우 설명을 마친 그때였다.
“오, 네! 갈게요.”
“감사합니다! 꼭 와 주세요!”
예상보다 긍정적인 대답에 재차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첫 관객을 맞이한 후.
난 이은지와 형님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 등을 돌렸다.
“왜 받았어?”
“잘생겼잖아. 받으면 번호라도 줄 줄 알았지.”
“X친, 그래서 진짜 가려고?”
“아니? 굳이?”
“하하하, 너 진짜 못됐다.”
조금 일찍 멀어질 걸 그랬다.
성공했다는 기분에 웃음이 나왔는데 이야기를 들어 버린 이상 표정이 굳어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왜?”
이은지는 성큼성큼 걸어서 이쪽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급하게 표정을 풀었지만 그 찰나에 내 얼굴이 굳어진 걸 알아챈 것 같았다.
“넌 꼭 이럴 때만 눈치가 좋더라.”
“이 정도는 알아야 가족이지. 왜, 저 사람들이 뭐라고 그랬어?”
“아냐. 별말 안 했어.”
“아닌 거 같은데…….”
이은지는 사나운 눈길로 그사이 바닥에 버려진 전단지를 바라봤다.
“쉽진 않을 것 같네.”
은지는 묵묵히 버려진 전단지를 주워 들며 말했다.
“더러워진 건 내가 챙길게. 쓰레기니까.”
쓰레기.
가위바위보를 할 때보다 차게 식은 이은지의 눈을 보자, 차마 나한테 달라고 할 수 없었다.
현우는 묵묵히 두 사람의 그런 모습도 모두 카메라에 담았다.
위로라도 해 주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할 수 없었다.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면, 웬만해선 스스로 해결하도록 두라는 대표의 명령 때문이었다.
“저기…….”
“안 받아요.”
“안녕하세요.”
“아, 씨. 치워요!”
전단지를 나눠 주는 그마저도 절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조용히 받아 주는 사람들도 있긴 했다.
다만 그만큼 버려지는 양 또한 만만치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길가에 버려져 여러 번 밟힌 우리 공연 전단지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걸 다시 주우면서 느낀 기분은, 차마 말로 설명할 자신이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이은지와 난 눈을 마주칠 때면 슬쩍 입꼬리를 올렸지만, 그때뿐이었다.
서로를 위해 애써 지어 본 위로의 웃음이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E-UNG이라는 데뷔를 준비하고 있는 가수입니다. 7시에 투웨니스 라이브 바에서 무료로 공연을 하는데…….”
“7시요? 아, 죄송해요. 그땐 바빠서.”
“안녕하…….”
“아, 뭐야. X발.”
계속 거절을 당하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은 덤덤해져 갔다.
하지만 그건 양호했던 거였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저희가 여기 투웨니스 라이브 바에서 7시에 공연을 하는데…….”
“오, 여기 이쁜 아가씨가 노래 불러 주는 거야?”
우연히 낮부터 심하게 취한 취객을 마주한 순간.
차라리 거절이 낫다고 생각될 만큼 취객의 주정은 견디기 힘들었다.
“오, 이야, 거기 형님도 얼굴 좀 되시네.”
“감사합니다…….”
“근데 난 남자는 관심 없어서. 형님은 미안! 하하. 공연이라, 거기 이쁜 아가씨가 나한테 번호 찍어 주면 갈게.”
거기까진 괜찮았다.
그 취객 놈이 이은지를 직접 건드리지만 않았다면, 잘 참아 낼 자신이 있었다.
“어때? 아가씨, 나랑 같이 방까지 잡아서 놀아 주면 더 좋고. 반반한 만큼 돈 좀 써 줄 테니까. 응?”
“이―!”
“하하. 번호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저희가 연습생 신분이다 보니 휴대폰이 없거든요.”
난 이은지를 등 뒤로 당기며 취객 놈에게 붙들린 손을 떼어 냈다.
“에헤이. 거짓말.”
놈은 인상을 구겼다.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휴대폰이 없긴커녕 대표님은 항상 고장 날 때마다 당시 신상으로 바꿔 주셨으니까
좀 조용히 꺼져 줬으면 좋겠건만.
취객은 조용히 갈 생각은 없는지 가볍게 코웃음을 쳐 댔다.
“형님, 재미있는 사람이네. 눈치 없어? 난 거기 형님이 아니라, 여기 아가씨한테 물었잖아.”
“그만하―.”
“넌 꺼지시고, 아, 연습생이라고 했지?”
내 어깨를 밀치며 지나친 놈은 이른 시간임에도 술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거기 아가씨야, 내가 유―명한 기획사에 아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때. 기분 좋게 만들어 주면 좋은 곳 연결해 줄게.”
이은지는 놈을 한대 칠 기세로 가까이 다가왔다.
하지만 난 그런 이은지를 뒤로 밀어내며 은지와 취객 앞을 막아섰다.
“이은호?”
은지는 당황하며 은호를 바라봤다.
은호의 눈빛에 섬뜩하리만큼 날이 서 있었다.
처음엔 왜 막냐며 소리치려고 했는데, 더 입을 뗄 수 없었다.
아무리 은지가 거칠게 장난쳐도 이은호는 저렇게까지 직접적으로 화를 낸 적은 없었으니까.
은호는 취객에게만 들릴 정도로 조용히 속삭였다.
“술에 X새끼가 됐으면 얌전히 집구석에나 기어들어 갈 것이지.”
“이 새끼가!”
취객은 욱하는 마음에 곧장 은호의 멱살을 쥐었다.
낮부터 얼마나 거하게 마셨는지, 입을 벌릴 때마다 술 냄새에 머리가 울릴 지경이었다.
현우는 은호를 지키기 위해 급하게 취객을 막아서며 소리쳤다.
“멈추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