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30)
“오, 대표님 뭐예요?”
“응?”
“오늘 퇴근하시고 선이라도 보는 거예요?”
은지의 장난 가득한 질문에 박 대표는 옷을 내려다봤다.
“하하. 선이라니, 요 녀석아.”
“아니에요?”
“아니야.”
은지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호기심을 드러내고 있던 그사이.
은호가 집 문을 잠그고 오는 듯 열쇠를 짤랑이며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어? 대표님 오늘 퇴근하고…….”
“선 아니야. 근데 너희는 이 시간부터 어디 나가는 거야?”
“아, 믹싱 중인데 은지가 답답했는지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해서 미팅 나가고 있어요.”
“잘하고 오고.”
“그래서 오늘 차려입으신 이유는 뭔데요?”
누가 남매 아니랄까 봐.
호기심이 해결되지 않는지, 은호가 다시 한 번 물었다.
은지도 여전히 궁금했던 건지 눈을 빛냈다.
박 대표는 못 말린다는 듯 짧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오늘 새로 매니저가 될 사람이 오거든. 이번엔 좀 오래갔으면 해서, 이렇게라도 신경 써 보는 거지.”
박 대표가 어깨를 으쓱이며 쓸쓸하게 웃었다.
은호는 무슨 의미인지 이해했다는 듯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좀 옷발은 잘 받아서 있어 보이잖냐. 안 그래?”
이어진 박 대표의 너스레에 은호는 의미 없는 대답을 하며 마저 계단을 내려왔다.
“……뭐, 네. 그렇죠.”
“있어 보이지는 않…….”
은지는 아무리 그래도 빈말은 못 하겠는지 조용히 읊조렸다.
은호가 눈치를 던지자 은지는 눈길을 피하며 말을 멈췄다.
그때였다.
“어? 아, 안녕하십니까!”
낯선 목소리에 세 사람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본래라면 대문이 있어야 했지만, 진작에 철거했던 터라 골목길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구조였다.
그곳엔 검은 정장 차림을 한, 순한 시골 청년 같은 외모의 낯선 남자가 있었다.
“오늘 면접 보기로 한 김현우라고 합니다!”
씩씩한 인사에 박 대표는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은호는 옅은 호기심을 보였고 은지는 ‘춥겠다’는 생각만 할 뿐 아무 관심도 없어 보이는 표정이었다.
“저희는 그럼 가 보겠습니다.”
“그래. 잘 다녀와.”
“네.”
은호는 박 대표에게 간단히 인사를 하고 현우에게 짧은 묵례 후 그를 지나쳤다.
“이은호, 같이 가!”
은지도 따라 고개를 숙이긴 했지만, 은지의 시선은 은호를 뒤쫓는 데만 꽂혀 있었다.
은호와 은지가 떠나고 사옥 앞마당에는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일단, 들어와서 이야기하시죠.”
“예!”
박 대표는 대표실로 향하려다 발길을 멈췄다.
‘이번에도 너무 많은 걸 보여 주는 건 안 좋으려나…….’
일전에 관뒀던 매니저 때문이었다.
그와 함께 면접을 위해 대표실에 들어섰을 때 전 매니저의 얼굴에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었다.
박 대표는 힐끔 뒤를 돌아봤다.
‘겉으로 보기에는 성격 좋은 청년으로 보이는데…….’
이번엔 부디 오래 일할 사람을 구하는 만큼―박 대표는 평소 괜찮아 보이면 무조건 ‘OK’를 외쳤지만― 이번엔 나름대로 깐깐히 따져 볼 예정이었다.
“거기 앉으시죠.”
“네!”
본래 거실이었을 위치에는 회의실 겸 넓은 테이블이 놓여 있다.
박 대표가 건너 자리에 앉으며 말하자, 현우는 박 대표가 앉는 것을 확인한 후에 자리에 앉았다.
“이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수원역 로데오 거리에 있는 작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습니다.”
“수원역이라면, 우리…….”
매일 입에 달고 있던 말이라, 하마터면 은호와 은지를 ‘애들’이라 표현할 뻔했다.
“우리 아티스트들 공연을 보셨을 수도 있겠네요.”
“네, 아주 가까이서 직관했었습니다. 굉장히 기억에 남을 만큼 좋은 공연이었고, 그날 이후 E-UNG 팀을 관심이 있게 지켜보다가 NRY 엔터테인먼트에서 매니저를 구한다는 공고도 알게 되었습니다.”
“오호…….”
박 대표는 감탄을 흘리며 은근슬쩍 물었다.
“그럼, 우리 오튜브 채널도 보셨습니까?”
“네. 하하. 그, 최근에 두 분께서 눈싸움하셨던 영상에서 눈사람 던지는 장면이 너무 재미있어서 댓글까지 남겼습니다.”
박 대표의 눈이 커졌다.
“설마, 혹시 ‘카페알바’가 본인입니까?”
“어…… 예, 맞습니다. 기억해 주실 줄은 예상하지 못해서, 하하. 조금 민망하네요.”
현우는 민망한지 박 대표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기억할 수밖에…….’
‘카페알바’의 첫 댓글이 마치 신호탄처럼, 이때만 기다렸다는 듯 그간 조용했던 댓글 창에 글이 하나둘씩 쌓여 갔다.
그래서 박 대표는 마침 첫 댓글을 달아 줬던 그에게 고마운 마음이 진하게 남있던 차였다.
‘마음에 드네.’
김현우 씨의 첫인상부터 지금까진 호감만 가득했다.
은호와 은지에게 관심이 깊은 것도 좋았고, 대답하는 말솜씨를 보아 말도 바르게 하는 청년 같아서 더더욱 마음에 들었다.
다만 지금부터는 오래 함께 할 사람인지, 일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지 등 직업적인 측면에서 냉정하게 다가가야 했다.
“이전에 일하던 곳에선 얼마나 일했습니까?”
“오래는 못 했습니다. 한 8개월 정도는 다녔던 것 같습니다.”
“왜 그만두게 됐습니까?”
“가게 주변으로 프랜차이즈 지점들이 들어서면서 사장님께서 가게를 접게 되셨습니다.”
“매니저 일에 대한 경험은 있습니까?”
“죄송합니다. 사실 매니저 일에 대한 경험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열심히 하겠다는 뻔한 대답이 나오겠지.’
그렇게 예상했다.
“대표님은 업계에서 유명하신 베테랑으로 알고 있습니다.”
“흐음?”
“현재 가장 성공한 아이돌로 알려진 TaKa 엔터테인먼트의 톡신도 대표님께서 만드셨다고 들었습니다.”
박 대표는 예상치 못한 답안에 흥미를 보이며 말했다.
“내가 만든 건 아니긴 한데, 계속해 봐요.”
“당시 멤버들의 요청에 대표님께서 직접 매니저직을 하셨고, 당시의 실력을 인정받아서 기획 관리 A&R로서 팀장직에 계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랬었지요.”
“그래서 그런 대표님께 배운다면 E-UNG 남매분들께도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혹시 방금 내용 연습이라도 해 왔어요?”
“예.”
현우의 대답은 당황스러울 만큼 솔직했다.
“틀린 말은 아니긴 합니다. 잘 알아보셨네요.”
현우의 말대로 박 대표가 일을 가르치는 것쯤이야 큰 문제는 없었다.
어느 정도.
아니, 적어도 지금 활동 중인 웬만한 매니저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잘 키워 낼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껏 그렇게 배워 간 녀석들이 죄다 어떻게 됐었나.’
과거 몸담았던 TaKa 엔터테인먼트는 물론.
DIS 엔터테인먼트, ALV 미디어 등 유명 소속사의 헤드헌터들에게 홀려 모두 우리 NRY 엔터테인먼트를 떠나 버렸다.
“저, 대표님께 불편하셨던 부분이 있었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뇨. 그런 건 없었어요.”
박 대표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때.
현우는 어쩔지 고민하다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다.
“사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전 E-UNG 남매분들께만 관심이 있었던 터라 NRY 엔터테인먼트에 대해선 이번에 처음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랬군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하지만……?”
“이번에 NRY 엔터테인먼트를 세우신 박창석 대표님과 회사의 현재 상황 등 다양한 분야를 알아보면서 저는 E-UNG 남매들만큼이나 NRY 엔터테인먼트에도 관심이 깊어졌습니다.”
아마 이런 게 정상적인 면접은 아닐 터였다.
「“박 팀장, 자넨 너무 정이 많아서 문제야. 뭐 하나 뽑은 건더기가 없는 놈인데 뭐 그런 놈을…….”」
TaKa 엔터테인먼트에 다닐 때 당시.
나는 오디션은커녕 면접관 자리에는 딱 한 번 앉아 본 이후 참여한 적이 없었다.
그래도 보는 눈이 없는 건 아닌지, 당시 뽑았던 녀석 중 현재까지 버티고 앉아 있는 놈은 내가 뽑은 놈이 유일했다.
‘지금은 그놈이 내가 있던 자리를 꿰차고 있으니…….’
이 감을 믿는 게 과연 좋을까.
“현우 씨는…….”
“네.”
“5년 후, 10년 후에는 뭘 하고 싶습니까?”
“5년…….”
현우는 곰곰이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정말 짧은 기간인지라…….”
“그렇겠지요.”
박 대표는 조금 실망한 듯 한결 낮아진 목소리로 답했다.
하지만 현우의 대답은 계속 이어졌다.
“저는 5년 후라면 유명해진 E-UNG 남매분들의 곁에서 일하고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흐음.”
“10년 후라면…… 조금은 과한 욕심일지는 모르겠지만, NRY 엔터테인먼트를 신사옥으로 이전하고 지금의 저와 같이 이제 막 일을 시작하는 신입들을 가르치는 일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하하하…….
올라간 입꼬리를 감추지 못한 채 흐린 웃음소리를 흘렸다.
이게 준비한 멘트라면 어쩜 이렇게 마음에 들게 짜 왔는지 칭찬해 주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게 만일 준비한 멘트가 아니라 진심이라면?
이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그간 기다렸다.
박 대표는 확신을 두며 손을 내밀었다.
“합격입니다, 김현우 씨.”
“예? 버, 벌써요?”
지금까지 차분하던 현우가 당황하며 묻자, 박 대표는 호쾌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안 그래도 매니저가 급했거든요.”
빠른 합격 소식에 아직은 얼떨떨한 듯, 현우는 떨리는 양손으로 박 대표가 내민 손을 잡았다.
“앞으로 잘 지내 봅시다.”
“자, 잘 부탁드립니다!”
* * *
현우는 이틀간 박 대표에게 속성으로 일을 배웠다.
그렇게 현우가 입사 후 이틀이 지난 날.
“오, 그 면접 보러 오셨던 분! 합격하셨구나!”
“그래. 은지야, 일단 앉아서 이야기하자.”
박 대표는 은호와 은지에게 현우를 소개했다.
“앞으로 너희랑 함께 움직일 김현우 매니저다.”
“김현우입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겠지만 열심히 배워 보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현우는 떨리는 기분을 겨우 가라앉히며 차분하게 인사했다.
은지가 먼저 현우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전 이은지예요. 잘 부탁드려요, 매니저님.”
현우는 내민 손을 붙잡으며 짧게 고개를 숙였다.
뒤이어 은호가 손을 내밀며 인사를 이었다.
“이은호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형님이라고 부르면 될까요?”
“편하신 대로 불러 주세요.”
“예, 형님.”
은호가 너스레를 떨자, 현우는 잠시 당황하다 가볍게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럼 난 잠깐 할 일이 있어서, 잠시 이야기들 나누고 있어.”
간단한 인사가 끝난 뒤.
박 대표는 잠시 자리를 피해 줬다.
박 대표가 사라진 거실 겸 회의실에는 굉장히 숨 막히는 침묵이 맴돌았다.
어색한 분위기는 못 견디겠는지 결국 참다못한 은지가 물었다.
“혹시 매니저님은 여기 오시기 전에 저희를 알고 계셨었어요?”
“예, 패…… 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