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9)
뉴 페이스
수원역 로데오 거리 구석의 한 작은 카페 안.
“현우 씨.”
“네, 매니저님.”
“저기 빈 컵 있는 자리 치워요.”
“네!”
매니저가 가리킨 자리로 가자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빈 컵이 놓여 있었다.
‘얼마나 오래 있었으면…….’
컵 밑바닥에는 바싹 마른 커피 자국만 깔려 있었다.
그래서 당연히 뒷정리하지 않고 떠난 손님의 자리인 줄만 알았다.
빈 컵을 치운 후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던 그때였다.
“거기, 학생.”
그는 본인을 부르는 손님의 목소리에 왠지 불길한 기분이 엄습했다.
“여기 있는 컵 학생이 치웠어?”
“아, 네.”
대답과 동시에 구겨지는 손님의 얼굴.
“왜 다 마시지도 않았는데 그걸 버려!”
“네? 이거 빈 컵인 걸 확인하고 버린…….”
“어른한테 얻다 대고 말대답이야! 여기 사장 나오라그래.”
“죄송합니다, 손님.”
할 말이 많았다.
크게 한숨도 쉬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알바생이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개를 숙이는 것밖에 없다.
“진작 그럴 것이지.”
현우의 사과를 받은 고객은 승리에 취한 듯 게슴츠레 눈을 뜨며 말했다.
“내 커피 학생이 버렸으니까 그대로 한 잔 가져와.”
그건 안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경험으로 이런 류의 고객은 처음부터 무언가를 노리고 이렇게 행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현우는 대답은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며 등을 돌렸다.
매니저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묻기 위해서였다.
“그러게 손님이 있는 걸 확인하고 치웠어야지.”
네가 치우라며, X새끼야.
홧김에 뱉어 버리고 관두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다.
따져 봐야 일만 꼬이고 나만 이상한 놈이 되니까.
“커피값은 현우 씨가 내도록 해.”
“예.”
현우는 제 카드로 아메리카노 한 잔을 결제한 후 떨리는 손으로 쟁반에 커피를 올렸다.
이 컵을 구겨 버리고 싶다는 본능과 손‘놈’에게 일일이 흥분하지 말자는 이성.
깊은 갈등을 빚던 그때였다.
“나가서 담배라도 하나 피우고 와.”
“어?”
“곧 네가 쉬는 타임이기도 하니까 진상한테는 내가 가져다줄게.”
“……고맙다.”
마침 답답했던 차에 앞치마를 벗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데 이 정도는 해 줄 수 있지.”
“고맙다.”
오늘 유일하게 힘이 되어 주는 동료도 카페를 관두기로 한 날이었다.
카페를 나서자 숨통이 트인다.
‘나도 관둬야 하나…….’
로데오 골목 구석.
주머니를 뒤적여 나온 담뱃갑을 열었다.
‘이제 돗대네.’
두 개밖에 남지 않은 담배 중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아침에는 버스도 놓치고, 카페에선 진상한테 걸리고, 매니저 새끼도 X랄이고…….’
오늘은 뭐 하나 제대로 풀리는 일이 없는 날이었다.
“X발.”
낙이라고는 없는 일상.
“이거, 모두 다 네가 원했던 일이잖아.”
인기척에 놀라 황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취객인가?’
눈을 비비고 팔을 내리자 멀지 않은 건물 입구 앞에 웬 멀쩡한 놈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여자 친구?’
긴 머리칼의 여자가 현우를 등진 채 삐딱하게 팔짱을 끼고 고개 숙인 남자를 지켜보고 있었다.
비록 옆 모습이긴 하지만 그림 같은 남자의 옆모습에 감탄이 흘렀다.
‘저런 얼굴로 연예인 하면 잘 먹고 잘 살겠다…….’
소감은 딱 거기까지였다.
남을 부러워하는 것도 당장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있는 놈들이나 하는 거였으니까.
심지에 가까워져 가는 마지막 담배 한 모금을 들이마시며 담뱃불을 털어 냈다.
담배꽁초는 가는 길에 버리기 위해 끝부분만 발로 짓이기던 그때였다.
“이은호, 하기 싫으면 하지 마.”
“뭐?”
“안 해도 돼. 하지 마. 못하겠으면 그냥 다 때려치우자.”
처음엔 무슨 대화를 하는 건가 싶었다.
“몇 년 동안 우리 X 빠지게 고생시작한 거지만 어쩔 수 없지. 이은호 씨가 못 하겠다는데 때려치워야지. 안 그래?”
“하…… 하하.”
여자가 쏘아붙이듯 말하자 남자가 갑자기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솔직히 ‘진짜 미친X인가?’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까처럼 또 길바닥에 엎어지려고?”
“엎어지면 누워서라도 부르면 돼.”
부른다? 뭘?
그제야 골목 바깥을 보니 로데오 거리 중앙에 평소보다 많은 인파가 모인 걸 알았다.
‘뭐야, 진짜 연예인이었네.’
간이로 설치된 무대이긴 했지만 저렇게 인파가 몰린 걸 보니 유명한 사람인 모양이다.
연예인을 직접 본 건 처음이라 감탄을 흘린 것도 잠시.
여자는 아직 할 말이 남았는지 삐딱하게 자세를 잡으며 말을 이었다.
“X랄. 저 사람들이 너 누워 있는 거 보려고 왔어? 못 할 거 같으면 관두라니까? 정 못 하겠다 싶으면, 옆에서 내가 잘하는 거 손가락 빨면서 구경이나 하던지.”
“와, 내가? 그 꼴을 어떻게 보고만 있냐? 안 관둬, 안 누워, 안 때려치워.”
“또 쓰러지면 그대로 밟아 버릴 줄 알아.”
“얼굴 안 갈리게 잘 밟아라.”
“싫어. 얼굴만 밟아 버릴 거야.”
“하하핰.”
하하.
랩이라도 하는 줄 알았다.
묵직하게 내려찍는 그녀의 찰진 어투에 진상 일도 잊고 남자와 함께 웃음이 터졌다.
그러고서 두 사람은 무대가 설치된 곳으로 향했다.
현우는 잠시 시계를 확인하더니 두 사람을 뒤따라 무대가 설치된 중앙으로 향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E-UNG의…….”
이응.
처음 들었을 땐 분위기와 전혀 다른 느낌이라 어울리지 않는 팀명이라고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어진 이은지, 이은호의 소개에 두 사람의 이름을 생각하니 나름 잘 고른 이름이란 생각도 들었다.
처음엔 진한 눈매에 눈길이 갔고, 다음엔 듣기 좋은 편안한 낮은 목소리에 귀가 열렸다.
거리의 가로등이 하나둘씩 빛을 내며 밝혀지자, 이은지의 밝은 갈색 눈동자도 따라서 반짝였다.
몇몇 사람들이 처음 보는 연예인이라며 관심을 끄고 자리를 떠날 때도 현우는 그 자리에 굳어 은지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이은지가 기타를 품에 안으며 편한 자세를 잡았다.
‘와…….’
마치 사는 세계가 다른 것 같았다.
만화로 치자면 여긴 3등신 짤막한 그림체의 네 컷 만화라면 저긴 온갖 반짝이는 다 붙인 순정 만화라고나 할까.
한두 번 쳐 본 솜씨가 아닌 듯.
그녀는 자리를 떠나려는 사람들에게 보란 듯 농염한 분위기의 화려한 연주를 선보였다.
선술집에서 흘러나올 법한 리드미컬한 재즈풍 멜로디에 감탄하며 연주를 감상했다.
‘……언제였지.’
이렇게 노래를 감상해 본 게 언제였더라.
사실 카페에서는 항상 노래를 틀어 둔다.
다만 일에 치이다 보면 제대로 된 ‘감상’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집에서 따로 노래를 찾아 듣는 일도 없었다.
그간 일에 치여 퇴근 후에는 곧장 침대에 뻗기에 바빴으니까.
커피를 잘 마시지도 않으면서 카페에서 일한 몇 개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의미 없이 돈을 벌기 위해 흘러간 시간도.
어느새 멎어 버린 기타 연주도.
현우는 아쉬운 한숨을 흘렸다.
키릭―.
그때, 아쉬운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그녀의 손은 자연스레 코드를 바꿔 연주를 이어 갔다.
조금 전에 연주했던 곡과는 또 다른 곡이었다.
이번엔 연주뿐만이 아니라 노래도 부르는지 곁에 있던 이은호가 마이크를 들었다.
우리가 서로의 것이라며 외치던 Last Day
이은호의 목소리를 처음 들은 그 순간엔 정말 놀랐다.
무대에 서기 전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기 때문일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그녀의 말이었다.
「“안 해도 돼. 하지 마. 못하겠으면 그냥 다 때려치우자.”」
같은 남자의 목소리에 ‘감미롭다’라는 생각이 드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은호의 노래는 달랐다.
감미로움을 넘어 ‘귀가 녹는다’라는 표현이 더 맞을 정도로.
‘이런 노래를 하는 사람한테 때려치우라니…….’
재능 낭비가 따로 없다.
이은호의 파트가 끝난 건지, 바뀐 멜로디와 동시에 건반과 쨍한 악기의 연주가 함께 터져 나왔다.
네 이불에 취해 속삭인 우리의 Last Day
R&B가 잘 어울리는 깊고 울림 있는 음색으로, 이번엔 이은지가 연주와 동시에 노래를 이어 갔다.
‘좋다.’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노래에 왠지 뭉클해진 기분마저 드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의 하모니는 똑 닮은 얼굴만큼이나, 마치 날 때부터 하나였다는 듯이 완벽했다.
‘이런 가수가 안 유명하다고……?’
처음에 자리를 떠나려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갑자기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와…….”
자신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노래를 들은 많은 사람이 동시에 감탄을 터뜨렸다.
‘그럴 수밖에…….’
음악에서 들리는 악기들은 클라이맥스에 닿자 연주를 멈췄다.
하지만 음악은 끊기지 않았다.
두 사람이 목소리를 마치 악기처럼 다루며 연주를 이어 갔기 때문이다.
잊지 말아 Last Day
가사대로 정말 잊을 수 없는 공연이 될 것 같았다.
노래가 멎은 후.
나는 이은호가 마이크를 내리고 나서야 나는 노래가 끝났다는 걸 의식했다.
짝, 짝…….
연주에 푹 빠져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이후 하나둘씩 모여들던 박수 소리가 파도처럼 쏟아졌다.
수줍게 웃고 있는 그녀를 보니 오랜만에 가슴에 온기가 피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면도 있는 사람이었구나.’
이은지를 보며, 그렇게 강하게 그를 쏘아붙이던 사람이 맞나 싶었다.
그리고 그날이 시작이었다.
생전 해 본 적 없던 ‘덕질’을 무의식적으로 하게 된 날이.
현우는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휴대폰을 이용해서 ‘이응’을 검색해 봤다.
머리에 남는 팀명이라 두 사람을 다시 한 번 찾아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민스타에 올라온 오늘 공연 영상을 보며 몇 번이고 그날을 다시 되뇌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그는 1+1=1’ 드라마의 방영이 시작되자 E-UNG의 음원이 나왔다.
비록 OST 트랙에 포함되어 있긴 했지만, 현우는 잡음 가득한 동영상이 아닌 깨끗한 음질로 아침을 시작하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뻤다.
그렇게 버릇처럼 매일 새로운 소식이 없나 찾아보던 그때.
‘이건 뭐지?’
우연히 오튜브의 NRY 엔터테인먼트 채널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이응 남매다.’
한눈에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이 얼굴을 절대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넌 왜 재능을 이런 데다 쏟냐?
이은호는 모니터 속 음악 프로그램에 생선 머리 모양을 보며 물었다.
‘이은호 얼굴…….’
하하.
곁에 쓰인 글귀를 보자 웃음이 터졌다.
―옆에 호박도 그려 줘.”
―왜?
―니 얼굴이니까. 어억!
“하하하하하.”
난장판과 그 틈에 끼어든 고양이 화면까지.
도망치는 은호를 보며 현우는 오랜만에 소리 내서 웃음을 터뜨렸다.
이후 다른 영상도 있나 확인했지만 아쉽게도 다음 영상은 없었다.
나와 같은 팬들의 반응이 궁금해서 스크롤을 내렸으나 아쉽게도 아직은 댓글이 없었다.
[현우 씨]
아쉬운 마음도 잠시.
갑작스러운 매니저의 문자에 언제 웃었냐는 양 현우의 얼굴이 다시 굳어졌다.
[사장님이 곧 가게를 정리하게 돼서…….]
그동안 일한 돈은 다음 주 안으로 주겠다는 말을 끝으로 문자로 날아온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
전화를 걸어 봤지만 사장도 매니저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