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8)
꿈인 줄 알았는데
꿈이길 바랐는데
방문 너머의 넌 왜 대답이 없을까
파트가 브리지로 넘어가는 순간.
베이스 드럼이 방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처럼 둥둥, 울림을 냈다.
쿵쿵.
항상 돌아오던 ‘왜?’라던 대답이 들리지 않네
슬퍼
여기 조용히 비어 버린 방 안이 고요해서
쿵쿵.
문을 열어 주던 다정한 네 손이 보이질 않네
울어
항상 짝이던 우리 것이 하나만 남아서
스튜디오 안은 스피커를 통해 넘어온 은호의 목소리만 가득했다.
꿈인 줄 알았는데
꿈이길 바랐는데
방문 너머의 넌 왜 대답이 없을까
누구도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창 너머로 보이는 은호는 노래에 심취한 듯 편안하게 부르고 있었다.
은호의 표정 또한 평온했다.
찬 바람 부는 옥탑방
여기 홀로 달을 바라봐
그런데 왜일까.
은호의 입술 너머로 흘러나온 그 목소리는 얼굴과 매치가 되지 않을 정도로 슬펐다.
목소리만 들으면 펑펑 우는 걸로 착각할 만큼 슬픈데 막상 은호가 부르는 노래는 너무나 덤덤했다.
그 괴리감 때문이었다.
은지도, 박 대표도, 지예찬도, 오태진 기사도.
하나같이 스튜디오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목이 멨다.
네가 오기를 바라서
꿈을 꾸기를 바라며
감정이 닳고 또 닳으면 슬프다는 걸 머리는 알지만 느낄 순 없게 되듯.
꼭 은호의 상태가 그런 것 같아서.
거기 그대로
여기 그대로
끝끝내 은호가 덤덤하게 내뱉은 마지막 가사에 은지의 표면장력을 넘어선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자갈이 튀듯 스네어 드럼의 잔잔한 연주로 은지가 처음에 부탁했던 한 트랙이 드디어 끝났다.
* * *
“됐어?”
녹음 부스 안.
노래가 끝난 지 1분은 족히 흐른 것 같은데 스튜디오 쪽에선 대답이 없다.
“이은지.”
헤드셋을 빼도 되느냐는 의미에서 불렀건만 계속 대답이 없었다.
“아, 쫌!”
“대답은 해 줘야 할 거 아냐. 더 불러?”
“잠깐만, 기다려 봐.”
겨우 이은지의 대답을 듣긴 했는데 뭔가 이상하다.
“야, 너 우냐?”
“X쳐.”
“하하하, 선배님이랑 대표님도 있는데, 말조심해.”
“몰라, 씨…….”
그래도 말은 잘 듣는다.
씨, 다음에 무언가 이어질 것 같은 발성이었는데.
은지는 입술을 깨물며 뒷말을 참았다.
“왜 울고 그래.”
“아, 몰라.”
리메이크 된 <듀오>를 부르면서 정말 많은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하지만 그게 슬프지도 불편하지도 않았다.
그저 흘러가는 기억들이었고, 나는 묵묵히 그 시간들을 떠올리며 노래를 불렀다.
이은지가 잘 만들어 준 곡에, 지금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었으니까.
* * *
‘하하…….’
눈앞에서 끝내 미완성 가이드를 완성된 곡처럼 불러낸 은호를 보며 지예찬은 헛웃음을 흘렸다.
‘배진수 작곡가였던가.’
엔지니어 출신인 그가 평소 은지 양의 스승으로 도움을 주고는 있다지만, 박 팀장의 말로는 대부분 기본적인 기술에 대한 가르침이라고 했었다.
고로 이 <듀오>라는 곡은 은지 양의 감각이라는 말이었다.
‘은호가 도대체 어떤 곡으로 데뷔하길래 박 팀장님이 내 곡을 안 받나 했더니…….’
지예찬은 박 대표에게 먼저 곡을 주겠다며 이야기를 꺼냈던 녹음 때를 떠올리며 허탈한 한숨을 터뜨렸다.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작사, 작곡에 이름을 올리는 가수들은 많다.
물론 그것 역시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가수들조차도 정작 편곡에 이름을 올리는 가수들은 많지 않았다.
그것도 하물며 연습생이 작사, 작곡, 편곡에 이름을 다 올렸다.
게다가 ‘이런’ 곡을…….
‘이건 사기지…….’
은지의 곡은 놀라웠다.
시작부터 화려한 노래는 대다수 뒷부분에서 그 힘을 잃기 마련이었다.
애피타이저가 너무 맛있으면 뒤에 오는 음식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듯 음악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듀오>는 그 힘을 잃지 않았다.
그 ‘굉장히 좋은’ 시작은 좋은 그대로.
반복에 지루해질 즈음에는 코드를 변경하며 리듬을 신선하게 살렸고, 다시 원래의 코드로 돌아왔을 땐 쉬운 훅과 반복적인 멜로디를 이용해 귀를 낚았다.
어렵게 느껴질 만도 한 노래였건만, 쉬운 훅이 제 역할을 착실하게 수행했다.
꿈인 줄 알았는데
꿈이길 바랐는데
방문 너머의 넌 왜 대답이 없을까
어느새 지예찬은 은호가 훅을 부를 때 함께 흥얼거릴 만큼 노래가 입에 익어 버렸다.
‘미완성인 곡을 단번에 질주해 버린 은호나, 이런 곡을 만들어 낸 은지 양이나…….’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회의감을 뒤로하며 지예찬은 고인 눈물을 찍어 내고 고개를 들었다.
* * *
녹음 부스 안에서 장난치는 은호.
그리고 그런 은호에게 놀림당하고 있는 은지.
은지는 어지간히 펑펑 울어 버린 듯 두 눈이 붉게 퉁퉁 부어 오른 상태였다.
“그래서 그만 울고 어땠는지 이야기해 줘.”
“우리 이제 집에 가면 되겠다.”
“하하하하.”
은호는 밝은 웃음을 터뜨리더니, 금세 표정을 굳히며 말을 이었다.
“뭐라는 거야. 일부러 너 할 부분 죽여서 부른 거 많았는데.”
“죽인 게 그 정도였어? 난 그냥 버리고 가. 나 작곡에만 이름 올릴게. 네가 다 해.”
“헛소리 하지 말고 불러라.”
은지는 달아올라 붉어진 눈을 식히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일단 한 트랙 다 달리느라 고생했으니까 나와서 쉬고 있어.”
“너 하려고?”
“어. 내가 더 잘하면 그 부분 내 거 넣어야지.”
“파트 미리 안 나눴냐?”
“나누긴 했는데…… 원래 소스는 많을수록 좋고 파트는 더 잘 부른다 싶은 사람으로 바꾸는 거지.”
“그게 뭐야.”
“뭐긴, 파트 분배는 작곡가 마음이잖아?”
“하, 네, 네.”
듣는 둥 마는 둥.
은호는 헤드셋을 벗어 놓으며 대답했다.
“기사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은지는 녹음 부스에 들어서기 전, 오태진 기사에게 짧게 인사를 건넸다.
오태진 기사는 그런 은지에게 가볍게 손을 들어 보이며 웃었다.
믿고 맡겨 달라는 의미였다.
“이은호, 어땠어?”
“……똑같은데.”
“아냐, 아닌 거 같아.”
“똑같다니까…….”
“아니야. 방금 좀 쳐졌어.”
“너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지.”
“다시 갈게요.”
분명 똑같은 것 같은데.
이은지는 이게 아니라며 도자기를 빚는 장인처럼 날리고 다시.
또 날리고 다시.
또 다시를 계속 반복했다.
약 5분 안에 첫 녹음을 끝낸 나와 달리, 이은지의 녹음은 장장 20배인 1시간 40분간 이어졌다.
그렇게 겨우 이은지의 첫 녹음이 마무리된 뒤.
“더블링 부탁해. 하는 김에 쌓을 곳 있으면 마음대로 쌓아 주고.”
“디렉팅 이렇게 대충해도 되는 거야?”
“네가 내가 원하는 대로 잘 불러 준 거지.”
“아닌 거 같은데…….”
장난스레 고개를 갸웃거리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믿어 주는 이은지가 한편으로는 고마웠다.
마지막으로 더블링과 코러스를 쌓는 작업을 위해 난 다시 한 번 녹음 부스로 들어섰다.
꿈이라면 깨게 해 줘
아니라면 꾸게 해 줘
처음보다 풍부해진 곡 위로 난 편안하게 마지막 녹음을 마쳤다.
그리고 그날 저녁.
일전에 먹었던 갈빗집에서 배부른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누웠다.
새하얀 커버가 씌워진 꺼진 천장 등을 바라보며 난 조용히 손을 뻗었다.
‘하나, 둘…….’
펼친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 가며 생각에 잠겼다.
‘앞으로 믹싱이 끝나면…….’
마스터링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재킷 촬영과 뮤직비디오 촬영을 마무리하겠지.
난 접힌 손가락 두 개를 보며 왠지 예상보다 여유로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 참, 그걸 잊고 있었네.’
그때였다.
녹음에 너무 취한 나머지 중요한 걸 잊어버렸다.
수원역 로데오에서 그러했듯, 며칠 뒤 토요일.
이은지는 오로지 그날을 위해 CK E&M 스튜디오 측에서 전달받은 ‘그는 1+1=1’의 OST를 다양한 방식으로 편곡 중이었다.
‘이번엔 강남역이었지.’
곧 다가올 토요일에는 11번가 출구에서 벌일 2차 버스킹 행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하루 전날 예상치 못한 폭설 소식만 아니었다면…….
―오늘 오후부터 많은 눈이 내릴 것으로 보고, 서울시가…….
그랬다.
결국 다음 날까지도 이어진 폭설과 두툼하게 쌓여 버린 눈 때문에 안전상 예정되어 있던 2차 버스킹은 완전히 취소됐다.
이은지와 난 마이크 대신 하늘에서 내리는 하얀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쓰레받기와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회사 앞이긴 하지만 여기가 우리의 집이었고, 우리 집 앞 눈은 우리가 치워야 하니까.
이은지는 불만 없이 나오는 듯하더니 청소하면서 잘 모은 눈으로 열심히 꼼지락거리며 무언가를 만드는 듯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야, 안 치우냐?”
“오빠, 안녕.”
“갑자기 소름 돋게 왜 저래?”
순간 이은지를 병원에 데려가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은지가 갑자기 자기가 만든 눈사람에게 살가운 인사를 건넸기 때문이었다.
“왜 그…….”
진심으로 걱정하면서 가까이 다가갔건만.
이은지는 미디 창으로 그랬듯 이번에도 생선 대가리 눈사람을 만들었다.
방금 이 괴상한 눈사람에게 인사를 한 것도, 그럼…….
“하아…….”
어이가 없어서 한숨이 터졌다.
하지만 손댈 수 없는 미디 창과 다르게 손재주는 이은지보다 내가 더 좋다.
잠시 후.
난 온 힘을 기울여 이은지를 닮은, 눈, 코, 입이 달린 호박을 완벽하게 만들어 냈다.
“이은지, 이거 봐.”
“아악! 징그러워!”
“하하핰. 거기 물고기 인간이 더 징그럽거든!”
이은지는 발악하며 내가 만든 이은지 눈사람(호박 얼굴 눈사람)을 부수기 위해 잘 모은 눈을 뭉쳐 던져 댔다.
“억!”
하지만 싸움의 결과에는 승자가 없었다.
이은지의 생선 대가리 눈사람과 내 호박 대가리 눈사람 모두 파괴되었으니까.
“X친, 그걸 던지면 어떡하냐!”
“본인한테 맞아 봐라!”
이은지는 미친 듯이 눈을 던지는 듯하더니, 던질 눈이 부족해지자 생선 대가리 눈사람을 던졌다.
족히 사람 상체만 한 그 거대한 물고기 눈사람을 맞고, 난 넘어질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내 역작이었던, 잘 만들어진 호박 대가리 눈사람은 내 엉덩이에 처참하게 깔려 버렸다.
* * *
“이것들이 눈 치우라고 했더니…….”
은호는 눈 청소를 시작하는 시작할 때부터 싸움 내내 G프로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그런 만큼 이 영상도 박 대표에게 그대로 전달됐다.
“파, 하하하하.”
영상을 보던 박 대표는 두 사람의 난리 통에 한숨을 흘리는 것도 잠시.
곧 눈사람 전쟁을 보며 오랜만에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거기 아가씨랑 총각! 기껏 잘 치워 놓고 놀면서 다 뿌리면 어쩌니!
―죄송합니다! 얼른 정리해 두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동네 아주머니께 잔소리 들은 후에는 미끄러운 부분에 소금까지 꼼꼼히 뿌리며 열심히 눈을 치웠다.
박 대표는 스치듯 나온 동네 아주머니만 모자이크하고 난 뒤, 이번 영상 또한 따로 편집된 부분 없이 그대로 채널에 올렸다.
그리고 오늘도 차마 인터넷 창을 닫지 못하고 새로 고침을 반복하던 그때.
「카페알바생 30초 전
수원에서 공연했을 때 듣고 팬 됐어요. 7:10 눈사람 던지는 거 귀엽네요 ㅋㅋㅋㅋ」
박 대표의 눈이 크게 뜨였다.
첫 댓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