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27화 (27/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7)

은지의 작곡 및 편곡 실력은 실전 경험이 조금 부족할 뿐,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엔 이미 프로의 경지에 가까웠다.

은호의 노래 실력 또한 웬만한 베테랑 가수들에게 뒤지지 않을 실력이었다.

하지만 이 나라에는 가수와 아이돌이 상상 이상으로 많다.

지금도 피를 토해 가며 연습하고 있을 연습생들을 생각하면 더더욱 은호와 은지가 설 자리는 좁아진다.

‘캐릭터를 쥐고 가는 것이 큰 장점이 될 수 있어.’

캐릭터는 팬층을 단단하게 만드는 걸 돕는다.

곧 수입에도 큰 이득이 된다는 말이다.

은지와 은호의 장난 가득한 진짜 일상의 모습은 두 사람이 활동하는 모습과 다른 반전 매력을 보여 줄 수 있었다.

하지만 만약 이 계획이 실패하게 된다면?

‘그 리스크 또한 배가 되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양날의 검이나 다름없을 만큼 위험도가 높다는 말이었다.

박 대표는 최악의 최악을 상상하며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결과는?

‘믿어 보자.’

이성적으로 판단했다가 페이옵 작곡가 일로 손해를 봤었으니까.

이번엔 느낌을 믿어 보기로 했다.

선택된 건 은지의 옷 폭탄이 터진 방 내부만 삼색 고양이 영상으로 대체한 초본을 거의 손대지 않은 영상이었다.

영상이 업로드된 후.

박 대표는 원래 계획대로라면 저녁 식사를 위해 퇴근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는 컴퓨터 앞을 떠날 수 없었다.

새로 고침.

또 새로 고침.

조회 수에 홀려 자리에 있는 동안 한 건이라도 오르길 바랐다.

‘아무도 안 봐…….’

제목 어그로가 부족한 걸까 싶어, 박 대표는 머리를 싸매며 세 차례나 제목을 바꿔 봤다.

하지만 여전히 본인의 조회 수 외에는 숫자에 변화가 없었다.

‘아…….’

박 대표는 문득 예전 일이 떠올라 잠시 눈을 감았다.

시작은 길게 멀리 보려고 넣어 뒀던 주식이었다.

하지만 정작 시작과 다르게 내려가는 가격에 결국 장 마감까지 모니터를 붙들고 있었지.

‘나는…… 장독대다. 나는, 장독대야.’

묻어 놓고 잊어야 맛있게 익는다.

차마 창을 꺼 버리는 ‘X’를 누를 수 없어서 박 대표는 곧장 컴퓨터 자체를 종료 해버렸다.

본체가 웅웅거리는 울림을 멈춘 후, 그제야 박 대표는 자리를 박차고 대표실을 떠났다.

* * *

오늘은 드디어 은지의 신곡이자 E-UNG의 타이틀곡이 될 <듀오>를 녹음하는 날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지난번에 작업했던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했으면 될 일이었는데…….

이건 모두 페이옵 때문이었다.

페이옵이 악의를 가지고 지인들이 엮인 스튜디오 곳곳에 우리를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인맥이 넓다는 말이 빈말은 아니었는지, 연락하는 족족 스튜디오 측에선 ‘미안하다’라는 대답만 돌려줬다.

대표님은 덕분에 한동안 새 스튜디오를 찾기 위해 바쁘게 연락을 돌려야 했다.

그때, 그런 우리에게 빛처럼 다가온 한 사람이 있었다.

“스튜디오 정말 고맙다, 예찬아.”

“우리 사이에, 별말씀을요. 저야말로 우리 귀여운 후배님들 데뷔곡을 먼저 들어 볼 수 있다니 영광이죠.”

“X끼, 말은…….”

“하하.”

대표님과 지예찬 선배의 대화를 곁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그때였다.

지예찬 선배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감사합니다, 선배님!”

“가, 감, 감사합니다!”

난 선배에게 허리가 폴더처럼 접힐 만큼 깊은 감사를 전했다.

이은지는 대선배와의 첫 만남이라 떨리는 건지, 개인적으로 톡신의 팬이었기 때문에 떨리는 건지.

하여튼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며 날 따라 고개를 숙였다.

“오늘 녹음하는 거 은지 씨가 직접 작곡, 편곡했다면서요?”

“네…… 헤헤.”

조금 소름 돋았다.

이은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인 양, 어울리지 않게 얼굴까지 붉히면서 수줍게 대답했다.

난 도저히 보고 있기 힘들어서 대표님이 계신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잘할 수 있지?”

시선이 마주치자 대표님은 당연한 질문을 던졌다.

“‘그’ 작곡가님하고 작업하는 동안 못 불렀던 한을 담아서 불러야죠.”

“하하하하.”

대표님은 호쾌한 웃음을 터뜨리며 내가 쥐고 있던 G프로 카메라를 받아 들었다.

“오늘 촬영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일일 카메라맨님.”

“너 말고 은지만 찍어야지.”

“아, 대표님!”

대표님과 가볍게 장난치는 동안.

은지는 지예찬 선배와 인사를 마친 듯 오늘 작업을 도와주실― 녹음 때도 함께했던― 오태진 기사님과 첫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이은지, 나부터 해?”

“그럴래? 가볍게 가이드 따라서도 좋고, 느낌대로 일단 한 트랙 다 찍어 줘. 가능하지?”

이은지는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노래를 부를 때도, 건반을 이용해서 멜로디를 만들어낼 때도.

‘찍는다’라고 표현할 때가 많았다.

그래도 본격적인 장비 앞에서는 처음인 만큼 많이 떨리면서도 설레는지, 오늘따라 ‘찍어 줘’라는 평범한 말에 상당한 힘이 실려 있는 것 같았다.

한편, 은지의 물음에 가만히 두 사람의 이야기를 지켜보던 박 대표와 지예찬은 놀란 듯 눈을 끔뻑였다.

‘마스터링된 곡도 아닌, 가이드밖에 없는 곡을 단번에 한 트랙을 달린다니…….’

아무리 두 사람의 능력이 뛰어난들 은지와 은호는 아직 데뷔 전인, 경험이 부족한 연습생이다.

그래서 당연히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박 대표도, 지예찬도. 심지어 오태진 기사마저도 그건 힘들 거라며 고개를 젓던 그때였다.

“해 볼게.”

마치 ‘그쯤이야’라고 말하듯 가볍게 뱉어 버린 은호의 대답에 세 사람은 탁, 맥이 풀려 버렸다.

반면, 바깥의 분위기를 뒤로하고 은호는 태연하게 녹음 부스 안으로 향했다.

한 번 녹음했던 곳이기 때문일까.

이번에 녹음할 곡은 ‘우리’의 곡이기 때문일까.

익숙한 장소인 덕분인지 여기서 을 녹음하던 그때에 비해 긴장감은 한결 덜한 기분이었다.

“이은호.”

“어.”

꽉 막힌 헤드셋으로 귀를 막자 주변과 동떨어진 기분에 잠시 불안감이 앞섰다.

하지만 곧 토크 백을 누르며 말을 걸어오는 이은지 덕에 불안감은 언제 그랬냐는 듯 모습을 감췄다.

“잘해 줘.”

“어.”

좀 민망한 기분이 들어서 무뚝뚝하게 대답했는데.

“화이팅.”

생각지 못한 은지의 깜짝 응원에 웃음이 새 버렸다.

“잘해 줘.”

은지가 작게 중얼거렸다.

주변에는 숨소리처럼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였다.

남들이 보기엔 무뚝뚝하기만 한 인사였지만, 은지는 이번만큼은 진심을 담아 응원하고 있었다.

이윽고 전에 들었던 장난기 가득한 트랩 비트와는 전혀 다른, 묵직한 베이스 드럼이 노래의 시작을 알렸다.

<듀오>는 마치 새로운 곡처럼 가사와 리듬 모든 것들이 달라져 있었다.

인트로가 시작되자 악몽을 의미하는 장난스러운 와글 베이스의 연주가 인트로를 가득 메웠다.

하지만 정작 벌스 파트로 들어선 순간.

와글 베이스는 모습을 감추고 익숙한 808 베이스가 베이스 드럼 위로 중심을 잡아 나가더니 곧이어 스네어 드럼이 얹어졌다.

전과 다르게 화려한 건반도 하이햇도 없는, 베이스와 드럼밖에 없는 리듬이었다.

페이옵에게서 타이틀곡 자리를 다시 가져오기 위해 은지가 그간 남몰래 노력해 온 것들이 이 곡에 모두 담겨 있었다.

기존에 화려하던 이은지 특유의 곡과는 또 다른 깔끔하고 세련된 느낌으로 가득한 시작이었다.

나 꿈을 꿨는데 네가 사라진 꿈이었어 //기울임

* * *

왠지 이상해 공간이 고요해

아 이런, 현실이 닥쳐 와

문득 돌아본 옆이 비어 있네

은지는 은호가 노래하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이은호는 아직 모르지만, 이번 곡의 가사는 은호한테 영향을 정말 많이 받았다.

‘해가 뜨기도 전에 매일 악몽에서 깨어난 듯 소리를 지르던 모습…….’

이은호 방에서 그렇게 비명 소리가 들리면, 항상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방문으로 ‘똑똑’ 소리가 이어진다.

“왜?”

내가 물으면 항상 이은호는 잠에 취한 목소리로 매일 같은 대답을 했다.

“있구나. 아무것도 아니야.”

그것뿐이었다면 괜찮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은호는 왜인지 그 일을 단순히 꿈이라 여긴 듯, 항상 기억하지 못했다.

‘왜일까.’

처음엔 그런 이은호가 귀찮았다.

그냥 이상하다며 넘겼던 일상이었다.

하지만 그게 하루, 이틀, 사흘, 나흘…….

하루하루 쌓여 가면서 가슴을 쿡쿡 찔러 댔다.

그 후로 정말 대답을 바라고 “왜?”라며 물어봤지만, 이은호는 여전히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대답했다.

「“넌 내가 갑자기 사라지면 어떨 거 같냐?”」

벌써 몇 개월이나 흘러 버린 이은호의 질문.

「“오, X나 후련할 거 같은데?”」

「“하하.”」

이은호는 그날 내 대답에 웃었다.

눈에는 세상 쓸쓸한 빛을 띤 채.

그게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추측이란 걸 해 봤다.

신발도 두 짝이 하나인데

하나로는 나가질 못해

날카로운 길 위로 걸음을 못 해

이게 현실이라면 꿈이길 바랐어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난다.

왜 그러냐 물어도 항상 ‘아무것도 아니야.’

걱정은 되지만 우린 그런 사이도, 그런 분위기도 아니니까.

은지가 할 수 있는 일은 일부러 모른 척해 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노래를 부르는 이은호의 목소리가 옅게 떨리고 있었다.

괜히 울컥하는 마음에 은지는 소매로 눈가를 찍어 내며 눈물 자국을 감췄다.

꿈인 줄 알았는데

꿈이길 바랐는데

방문 너머의 넌 왜 대답이 없을까

훅(Hook)이었다.

이은호가 가장 불안해하는 것이 이게 아닐까.

절대 그런 일은 없다고, 나는 말로는 민망해서 할 수 없으니까.

대신 노래로라도 전하고 싶었다.

나 꿈을 꿨는데 네가 사라진 꿈이었어

그래서 눈을 떴는데 왜 난 아직 꿈일까

꿈이라면 깨게 해줘

아니라면 꾸게 해 줘

이은호의 꿈이 악몽이라면 깨어나길 바랐고, 반대로 그게 바라던 꿈이라면 계속 꾸길 바랐다.

아무리 매일 싸우고 부딪쳐도 이은호가 아프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우린 세상에 서로밖에 남지 않은 가족이니까.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아도 우린 항상 함께였어

손을 맞잡고 죽음에 맞서 왔어

이제 고작 초등학생인 나이에 우리가 짊어진 삶은 또래 친구들과 달랐다.

납치를 당해 납치범의 팔을 깨물고 도망치려다 붙잡혀 목이 졸리던 그때.

“X같은 X새끼야!”

억지로 대문의 걸쇠를 부쉈는지 부러진 내 다리만큼이나 퉁퉁 부어 있던 이은호의 손.

밑창이 사라진 이은호의 신발.

이은호는 내 위로 올라탄 납치범을 밀어내고 재빠르게 나를 둘러업었다.

그리고 내가 며칠간 보지 못했던, 너무나 그리워했던 빛을 향해 나아갔다.

“왜 아무나 믿고 따라가! 이 멍청아!”

이은호는 화를 냈었다.

동시에 우린 서로 펑펑 눈물을 쏟아 냈다.

서로를 잃을까 불안했던 시간과 다시 만났다는 안도감이 한데 뭉쳐져 흐른 눈물이었다.

그런데 오늘 넌 왜 말이 없어

아 이런, 현실이 닥쳐 와

찾은 방 안이 비어 있네

이 노래를 부르는 지금.

나는 여기 있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이은호가 불안해하던 것을 묻고 싶었다.

하지만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노래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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