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5)
박 대표는 헤드폰을 착용한 채 눈을 감았다.
노트북 속 음원이 재생된 그때였다.
다가와서 말해 줘
기계음이 떡칠된 목소리에 박 대표의 미간이 험악하게 비틀렸다.
거기선 들리지 않아
머리 아파 흔들지 마 (네가)
손 틈새로 빠져, 나간 (네가)
은지의 깊은 목소리를 기계로 얼마나 만져 댔으면 왜곡에 귀가 아릴 지경이었다.
눈을 까뒤집은 박 대표는 엄지를 이용해 미간의 주름을 풀어 냈다.
“후…….”
참다 참다 터져 버린, 땅이 꺼질 듯한 깊은 한숨이 흘렀다.
머리 아파 흔들지 마
손 틈새로 빠져나간
하하.
싸늘한 웃음소리가 대표실을 맴돌다 사그라들었다.
너무 지끈지끈해
또는 미끈미끈해
음원을 듣는 내내 그랬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은호의 목소리였는지, 은지의 목소리였는지 구분이 가질 않았다.
속삭여
은지의 속삭임을 끝으로, 박 대표는 채 2절로 넘어가지 못하고 음원을 정지시켰다.
헤드폰을 다소 거칠게 벗어 던진 그는 팔짱을 끼며 의자에 몸을 묻었다.
「“아마 이대로라면 분명 대표님께서 계획해 두셨던 것보다 결과물이 기대 이하일 수도 있어요.”」
은호의 이야기는 예언처럼 들어맞았다.
페이옵 작곡가는 첫 작부터 히트작을 낸 작곡가였다.
단, A&R로 오랜 기간 이 바닥을 굴러 본 박창석에게는 그런 페이옵도 쓸 만한 작곡가에 불과했다.
그런 페이옵의 곡을 픽스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기초를 지킨 리듬과 멜로디 등 기본 베이스가 나쁘지 않아서.
온전히 은지의 편곡 실력.
그리고 은호의 곡 해석력.
지금껏 봐 온 우리 애들이라면, 이 곡을 평범하지 않게 자기들 색을 잘 입혀서 잘 해석해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 애들이 이걸 소화해 낸다면 최고일 것 같다.’
그래서였다.
페이옵이 아니라 두 사람의 능력을 믿고 한 선택이었다.
「“……아직 신인인 저희는 불러 주는 곳이 있어야 무대에서 제대로 노래할 수 있잖아요.”」
은호의 말이 계속 머리를 맴돈다.
은호와 은지가 막차를 놓친 그날.
「“……불협화음이 잦아요.”」
최근의 은호는 그가 기억하던 은호와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그래서 더 신경이 쓰였다.
예전이었다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지만, 지금의 은호는 사회생활을 잘한다.
어디서든 말이 잘못 돌아서 불이익이 올 법한 언급을 최대한 조심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었다.
그랬던 은호가 페이옵과의 작업을 명확하게 ‘불협화음’이라고 칭하고 있다.
‘쎄―하네.’
페이옵 작곡가의 성향을 생각하지 못한 게 미스였다.
음악은 결과물만 본다면 참 좋다.
아름답고 멋있고 짧은 시간 안에 문화생활로 소비하기에 이보다 좋은 것을 찾기란 힘들 정도로 좋은 것은 없으니까.
하지만 그 한 곡에 수많은 사람의 노고와 상상치 못할 큰 자본이 담겨 있다.
또한 어느 부분에 어떤 식으로 예민한가의 차이에 불과할 뿐.
가수도, 작곡가도, 작사가들 역시도 대다수가 예민한 편에 속했다.
박창석은 지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런 예민 보스들의 불만을 그 어떤 사람들 보다 잘 조율하는 중간다리 역할을 해 왔었다.
긴 시간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해 온 덕분일까.
박 대표의 촉은 송곳만큼이나 날카로웠다.
그리고 그런 그의 촉이 말하고 있었다.
페이옵은 아니라고.
자칫 애지중지 키운 자식 같은 은호와 은지를 잃을 수도 있다고.
“NRY 엔터테인먼트 박창석입니다.”
원래대로였다면 버스킹 행사는 페이옵과 작업 중인 곡들이 모두 끝난 이후부터 할 계획이었다.
‘드라마 홍보에 우리 E-ung 신곡도 함께 홍보할 생각이었건만…….’
아쉽지만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을 수는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박 대표는 두 사람을 집에 돌려보낸 후 CK E&M에 연락해서 버스킹 일정을 재조정했다.
다음 날에는 은지에게 버스킹 소식을 전하며 의 편곡을 맡겼다.
수원역에서의 첫 버스킹은 그야말로 성공적이었다.
은지의 편곡이 성공에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온갖 SNS에는 두 사람의 공연 영상이 돌아다녔다.
그 영상을 보고 회사로 오는 연락도 쉴 틈이 없을 정도로 쏟아졌다.
한편, 박 대표의 고민은 그래서 더 깊어졌다.
‘지금이 노를 저어야 할 때인데…….’
곡이라도 잘 나오면 싱글로나마 데뷔 일을 앞당길 생각도 해 봤다.
‘곡만 잘 나오면…….’
은호의 ‘불협화음’ 경고를 무시해서라도 페이옵과 나머지 작업을 계속 이어 가려고 했었다.
그랬는데…….
“끔찍하네.”
노래가 너무 끔찍하다.
지난 몇 년간 꾼 악몽을 다 합쳐도 이 노래보단 나을 것 같다.
‘이 정도는 은호가 충분히 할 수 있었을 텐데…….’
기계음으로 떡칠이 되면서 은지의 깊은 목소리가 가진 매력이 사라졌다.
심지어 은호 파트에서의 고음과 같이, 충분히 안 써도 좋은 부분을 도대체 왜 기계로 만진 건가 싶기도 했다.
「“저도 은지도 기회만 준다면 더 잘할 자신이 있는데…….”」
몇 번을 다시 들어도 객관적으로 은호의 말이 옳았다.
디렉터는 요리사다.
그리고 페이옵은 케첩과 마요네즈 맛을 모르는 요리사였다.
우연히 한두 차례는 성공할 수 있었을지언정 재료의 맛조차 모르는 요리사가 어떻게 요리를 ‘잘할’ 수 있을까.
고로 그의 디렉팅이 아니었다면 이런 쓰레기 같은 곡이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박 대표는 마른세수를 하며 천장을 올려다봤다.
최악이 따로 없다.
‘진작 엎지 않았던 게 후회될 정도로.’
은호의 경고에도 혹시나 해서 기대를 한 자신이 바보 같았다.
이젠 정말 결단을 내려야 했다.
실수를 인정하고 냉정하게 처음부터 할지, 아니면…….
‘하하.’
아니면…….
그 이후로 이어질 말은 없었다.
결단은 이미 기계로 떡칠이 된 음원을 들은 순간 내렸으니까.
* * *
“하, 녹음까지 다 해 놓고 인제 와서 까겠다고?”
전화를 받은 페이옵은 뒷목을 붙들며 헛숨을 터뜨렸다.
손에 쥐고 있던 담배를 거칠게 바닥에 내던져 짓이겨 댔다.
“동네 구멍가게만도 못한 소속사 대표 주제에……!”
―하하.
페이옵이 던진 도발에도 불구하고 박 대표는 여유롭게 웃으며 천천히 입을 뗐다.
―안타깝습니다.
“안타깝겠지요. 이봐요, 박 대표.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할 겁니다! 내 지인이 사운드메이트 소속인데, 당신들 회사 신인한테 곡 파는 일 따위 절대 없게 만들어 줄 테니까!”
―오.
박 대표의 뻔뻔한 감탄에 페이옵은 이를 갈며 통화를 끊었다.
“동네 구멍가게 대표 주제에! 아아악!”
페이옵은 홧김에 가죽 소파에 휴대폰을 내던졌다.
파작.
소파에서 튀어 오르며 바닥에 떨어진 사과 폰이 불길한 소리를 내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페이옵은 쏟아진 스트레스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쳤다.
“두고 봐, X새끼들. 감히 날 까놓고 얼마나 잘되나 두고 보자! X발!”
그렇게 저주를 쏟아 냈으니 속이 좀 시원해질 법도 하건만 화가 난 속은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수원역 로데오 거리에서 버스킹을 본 그날, 거기서 봐 버렸던 많은 것들 때문이었다.
「잘한다!」
「우리 은호 씨가 최고다!」
노래가 끝나고 쏟아지는 박수 세례 틈에서 들린, 핸드폰 스피커를 타고 나온 익숙한 목소리.
이은호 본인은 정작 보지 못했지만 페이옵은 그들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검은 마스크와 깊이 모자를 눌러썼음에도 눈에 띄던 덩치 큰 한 남자.
「영희야, 조금만 더 높게 들어 줘!」
“예, 행님.”
웬 마봉석같은 우락부락한 몸집의 남자가 쥔 휴대폰 속에서 멤버 전체가 저 싹수없는 신인에게 아니, 아직 데뷔조차 하지 않은 연습생들에게 열광하는 모습은 가히 기이할 지경이었다.
웬만한 후배가 아니고서야, 같은 TaKa 소속사 신인들에게도 관심이라고는 일절 없다던 황제 그룹 ‘톡신’.
‘비주얼, 보컬, 인맥…….’
누구보다 그놈들이 망하길 바라는데, 망할 그 남매들은 벌써 가진 것들이 너무 많았다.
“X발!!!”
페이옵은 책상을 내려찍으며 분노를 터뜨렸다.
“아악!”
하지만 닿을 곳 없는 화는 다시 자신에게 돌아온 듯 페이옵은 붉게 부어오른, 애꿎은 제 손목을 감싸 쥐며 흐느꼈다.
* * *
“엎는다고요?”
“너희가 고생을 많이 한 건 알지만, 노래가…….”
“구렸죠! 그쵸?”
은지가 밝은 목소리로 묻자, 박 대표는 소리 없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대답이 흐뭇했는지, 은지는 진한 보조개까지 패며 활짝 웃어 보였다.
“그래서 첫 싱글을 은지가 작업 중이던 ‘듀오’로 다시 작업을 했으면 좋겠는데…….”
“오!”
“너희 생각은 어떤지 확인하려고. 그간 고생한 게 아깝겠지만―.”
“그딴 거 전혀 안 아깝고, 저는 좋아요!”
난 이은지의 대답에 공감하며 말을 덧붙였다.
“오히려 대표님 지갑이 더 걱정이죠.”
“하하, 그건 걱정 안 해도 된다. 아직은 아슬아슬하게 안전한 구간이니까.”
“아슬아슬하다니, 이런 일이 두 번은 없게 해야겠네요.”
대표님은 왠지 핼쑥해 보이는 얼굴로 씁쓸한 답을 아꼈다.
“그나저나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려면 최대한 빠르게 준비되는 게 좋을 텐데.”
“아무래도 지금이 적기긴 하죠.”
요즘 SNS는 물론이고 온갖 기사에 ‘수원역 쌍둥이 공연’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다.
2월 8일을 데뷔 일정으로 잡긴 했지만, 꼭 데뷔가 아니라도 괜찮았다.
뭔가, 우리를 더 더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박 대표는 <듀오>의 디렉팅을 맡은 은지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래서 혹시 녹음은 언제가 좋을 것 같니, 은지야?”
“가이드랑 믹싱도 다 준비돼 있어서 저는 당장 기사님만 있으면 언제든 상관없어요.”
“그거다……. 그래! 그게 있었네!”
“아악! 왜 이래!”
난 기쁜 마음에 은지의 팔을 붙잡고 있는 힘껏 흔들어 댔다.
잊고 있었는데, 그게 있었다.
“‘그거’가 대체 뭔데?”
이은지는 신경질적으로 내 손을 쳐 내며 물었다.
“오튜브!”
“뭔…….”
“오튜브?”
은지가 ‘무슨 헛소리냐’는 반응을 하던 그때. 박 대표는 ‘오튜브’에 대해 곱씹어 보는 듯했다.
회귀 전.
NRY 엔터테인먼트는 당시 늦은 것을 넘어 시대에 뒤떨어졌었다.
그만큼 밀리고 밀려 버린 후발 주자였고, 그로 인해 이 플랫폼에서 놓친 이득이 너무나 많았다.
그러니 이번엔 선두 주자로 몇 수 앞을 내다보자고.
은호는 열띤 설명을 이어 갔다.
박 대표는 은호가 차분히 설명을 마칠 때쯤, 내용을 정리하며 차분히 물었다.
“그러니까 은호 이야기는 ‘듀오’ 같은 곡들을 녹음하고 작업하는 장면들을 거기에 직접 공개해 보자, 이 말인 거지?”
“네. 그 외에도 브이로그처럼 일상도 종종 공개하고요.”
“브이로그?”
“영상으로 남기는 일상에 대한 일기 같은 거요.”
“오, 하긴. 거기선 제작한다고 편당 따로 비용도 들지 않으니까…….”
박 대표는 진지하게 이런저런 구상을 해 보고 있는지 턱을 쥔 채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