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24화 (24/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4)

“안녕하십니까! 저는 E-ung의 이은호!”

“이은지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은지, 이은호.

이름을 듣자, 의문의 ‘이응’이라는 팀명이 이해된 듯.

무대 주변은 은지와 은호가 등장할 때보다 가벼운 분위기를 띠었다.

은호는 고개를 들며 다시 마이크를 입가로 끌어갔다.

“앞으로 저희 E-ung은 매주 금요일!”

“기억해 주세요!”

“NRY 엔터테인먼트 민스타와 짹짹이, 얼굴 책을 통해 오늘처럼 공연할 장소를 공개할 예정입니다!”

“앞으로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적절하게 끼어든 은지의 도움을 받으며 편안하게 홍보를 마쳤다.

인사를 하며 고개 숙인 그때.

모든 사람들의 반응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아, 뭐야. 유명한 사람이라도 온 줄 알았더니.”

“잘생기긴 했는데, 모르는 사람이네.”

“재미없다. 그냥 가자.”

몇몇은 기대와 달랐던 걸까.

모르는 가수라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런 반응을 각오하고 자리에 섰지만 직접 마주하자 속이 쓰리긴 했다.

잡설이 길어질수록 관객들은 더 사라지겠지.

‘바로 하자.’

난 이은지에게 신호를 보냈다.

이은지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시간을 더 끌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이어서 곁에 준비되어 있던 기타를 품에 안으며 편한 자세를 잡았다.

“쟤가 기타 치는 건가?”

당연히 기타는 은호가 칠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관객 중 몇몇은 예상치 못했다는 듯 의외라는 반응이 있었다.

♪♬♬♬

이은지는 그런 그들에게 보란 듯 화려한 아르페지오 솜씨를 보였다.

몽환적인 낯선 곡은 어디선가 들어 본 적 있는 멜로디로 연주되고 있었다.

‘아, 이거.’

얼마 전, 이은지가 어떻냐며 들려줬던 신곡 <엘리스>의 멜로디였다.

숲속을 헤매듯 여러 음이 이리저리 통통 튀어 댔다.

따로 노는 듯 흩어진 모든 멜로디가 조합되자 신비한 분위기의 농염한 재즈풍 곡이 완성되었다.

“오…….”

짝짝짝짝짝.

화려했던 이은지의 연주가 끝나자 관객들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다만, 이제 끝났다고 생각한 건지 몇몇은 다시 자리를 떠나려 등을 돌렸다.

‘시작.’

이걸 어떻게 겨우 잡은 발걸음인데, 놓아 줄 순 없지.

이은지에게 눈짓하자 은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연주를 시작했다.

키릭―.

은지의 손끝에서 시작된 프랫 노이즈에 떠나던 관객들의 발길이 멈칫했다.

‘하나, 둘.’

‘그는 1+1=1’ 드라마의 홍보차 시작된 공연인 만큼, 인사를 알리는 첫 곡은 반드시 로 시작하기로 약속됐다.

단, 그 외에는 다른 조건이 없었다.

편곡도 그러했다.

‘안 그래도 잘하던 애가 노력까지 했으니…….’

이건 내 동생이라서가 아니라, 이은지의 능력에 보내는 경의였다.

이은지는 자유롭게 를 다양한 방식으로 바꿨다.

덕분에 이은지의 손이 닿은 는 풍부한 멜로디와 동시에 우리의 색을 더 강렬하게 살릴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은지의 손끝이 바쁘게 움직이며 본격적인 어쿠스틱 기타의 화려한 연주가 시작됐다.

그때부터였다.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눈길을 주었다.

‘3, 2, 1.’

인트로의 끝이 다다른 그때.

우리가 서로의 것이라며 외치던 Last Day

날 문지르는 다가오는 네 한 걸음에 나는 숨이 막혀 와

이 부분은 녹음 당시에는 이은지가 맡았던 파트였다.

하지만 오늘은 내가 욕심을 내서 도입부를 맡았다.

날 분지르는 떠나겠단 싫은 한마디

나도 이런 내가 싫은데 내 욕심인 거 알아

이은지가 손을 대기 전엔 는 잔잔하고 조금은 애잔한 그런 느낌의 발라드곡이었다.

하지만 이은지의 손이 닿자 는 멜로디의 흔적만 남아 있을 뿐, 완전히 바뀌었다.

언제 어디서든 느낌대로 뜯어 놀 수 있도록.

이전에 연주한 <엘리스>와는 또 다르게 팝과 같은 분위기로 편곡되었다.

날 아프게 하지 말아

위한다면 움직이지 말아

그렇게 첫 벌스가 끝난 그때였다.

그날을 기억해

우리가 처음 사랑을 속삭인 Last Day

스피커를 통해 여유로운 어쿠스틱 피아노 연주와 쨍한 금관악기 연주가 폭죽처럼 시원하게 터져 나왔다.

은지는 자연스레 배경에 깔린 연주에 기타 소리를 얹으며 은호가 멈춘 노래를 이어 나갔다.

네 이불에 취해 속삭인 우리의 Last Day

우리가 서로의 것이라며 외치던 그 Last Day

은지의 손은 마이크만 쥔 내 손보다 바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실수를 하는 일은 없었다.

이미 우린, 서로의 섬에 갇혀 있어

숨 한 번 뱉기가 힘들어

내가 애드리브로 음을 던져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핏줄 아니랄까 봐.

알고 있잖아

Last Day

생각이 통하기라도 하듯 이은지는 자연스레 내 애드리브를 받아치며 화음을 맞춰 왔다.

관객들은 다들 그 자리에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대며 노래를 감상했다.

다행히 이젠 이 자리를 떠나려는 생각은 완전히 잊은 듯 보였다.

내 심장은 가난해서 너 하나밖에 담을 수 없어

이은지와 나 또한 노래에 취해 1절이 지나고, 2절의 클라이맥스에 다다른 그때였다.

이게 유난이라는 건 알아

조난된 우린 서로에게 재난밖에 되지 않아

알고 있잖아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며 가진 장기를 모두 꺼내 보였다.

떨림과 더불어 화려한 기교의 향연이었다.

배경으로 깔린 금관악기와 피아노 연주는 이미 멎었건만, 그걸 신경 쓸 새가 없었다.

금관악기와 피아노를 목 안에 삽입이라도 한 건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연주가 계속되고 있다는 착각이 들 만큼 리듬이 여전히 풍부했기 때문이었다.

은지의 노래는 마치 목에 베이스를 삼킨 듯한 낮은 음색을 뽐내며 스피커를 울렸다.

이미 악기들의 연주는 멎었는데 두 사람은 목으로 연주를 계속 이어 갔다.

마치 장난감처럼 음을 가지고 놀아 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두 사람은 관객들의 혼을 쏙 빼먹고서야 서로를 바라보며 장난기가 가득한 미소를 띠었다.

Last Day

잊지 말아 Last Day

단 두 사람이었지만 베테랑 재즈 밴드의 즉석 공연 못지않았다.

하지만 정작 둘에겐 단순한 놀이에 불과한 하모니였던 걸까.

우리가 서로의 것이라며 외치던 Last Day

우리가 서로의 것이라며 외치던 그 Last Day

그 Last Day

노래가 멎자 로데오 거리 중앙은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음에도 정적만이 맴돌았다.

한참이 지난 후, 은호가 마이크를 내렸다.

그제야 관객들은 노래가 멎었다는 것을 그제야 의식한 듯 홀려 있던 눈동자에 하나둘씩 다시 정신이 돌아왔다.

짝, 짝…….

한 사람에게서 시작된 작은 박수 소리가 차근차근 모여들었다.

짝짝짝짝짝!

느린 박수가 어느새 휘파람 소리가 섞인 갈채가 되어 은호와 은지에게 쏟아졌다.

우린 자리에 남아 주신 관객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이런 와중에 은지는 예상하지 못한 박수 세례에 조금 놀라기라도 한 듯, 어울리지 않게 뺨까지 붉히며 푹 고개를 숙였다.

이후에는 우린 조금 들뜬 기분으로 다른 OST 두 곡을 커버하며 남은 공연을 이어 갔다.

* * *

「“꼭 와 주세요. 작가님이 자리에 계셔 주시면 정말 큰 힘이 될 것 같거든요.”」

이은호가 가식적으로 한 부탁이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같잖은 연습생들이 해 봐야 얼마나 하겠어.

페이옵은 오늘 공연에서 본 문제점들을 꼬집으며 이 남매의 불만을 완전히 닥치게 할 심산으로 오늘 수원역을 찾았다.

로데오 거리로 연결된 지하상가에 들어선 그때였다.

페이옵은 앞서 가던 행인들의 이야기에 바짝 귀를 세웠다.

“야야, 로데오 중앙에 X나 잘생긴 쌍둥이가 공연하고 있대.”

그 호칭이 곧장 누구를 말하는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잘생긴 쌍둥이.’

계집애나 가식 떠는 그놈이나 솔직히 잘생기긴 했었으니까.

다만…….

‘얼굴만큼 실력은 안 돼서 그게 문제였지.’

페이옵은 은지와 은호를 떠올리곤 거칠게 콧김을 내뿜으며 지하철역 입구를 빠져나왔다.

하지만 그렇게 로데오 거리에 들어선 순간.

이게 유난이라는 건 알아

페이옵은 ‘쌍둥이들은 실력이 안 된다’라던 제 판단에 의심의 싹을 틔웠다.

조난된 우린 서로에게 재난밖에 되지 않아

알고 있잖아

굵직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듯, 깔끔하지만 동시에 화려하게 뻗어 가는 고음.

늦게 들은 것이 아쉬울 정도로 깔끔한 기교와 귀에 맴도는 노래 솜씨였다.

솔직히 익숙했던 그 남매의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당장 내 곡을 불러 달라며 붙잡고 싶은 그런 보컬들이었다.

Last Day

잊지 말아 Last Day

설마.

아니라고 믿고 싶은 마음에 머리는 몇 번이고 저었지만, 귀는 솔직했다.

페이옵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제발 아니길 바라며, 이 목소리의 주인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한 걸음이었다.

‘아…….’

그토록 아니길 바랐는데.

무대 앞 간이 의자에 앉은 새까만 머리칼과 거울에 비춘 듯 똑 닮은 강한 눈매.

우리가 서로의 것이라며 외치던 Last Day

굵직한 나무를 감아 오르는 덩굴처럼 자연히 섞여 드는 또 다른 노랫소리.

이은지는 음역대가 여자 가수지만 낮은 편에 속한다.

굵직하다는 말이었다.

맑고 옥구슬 같은 목소리를 좋아하는 페이옵으로선 ‘취향에 더럽게 안 맞는다’라며 판단했던 그런 목소리였다.

우리가 서로의 것이라며 외치던 Last Day

우리가 서로의 것이라며 외치던 그 Last Day

노래의 끝.

엔딩을 알리는 다정한 노랫말이었다.

반면, 은지의 깊은 목소리는 페이옵의 귀에 껌딱지처럼 눌어붙어 떨어지질 않았다.

그 Last Day

그 Last Day

깊기만 한 은지의 목소리에 부족했던, 깔끔한 음색이 덧씌워졌다.

이은호의 목소리였다.

‘쟤가 저런 목소리였던가…….’

페이옵은 끔찍한 기분에 눈을 질끈 감았다.

동시에 뎅―.

머리에 종소리가 울린다.

축복이 아니라 넌 끝났다는 엔딩을 알리는 종소리가.

생각하고 싶지 않았는데, 절로 떠올랐다.

‘프로듀서인 박 대표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달랐겠지만…….’

스튜디오 안에서 나는 왕이었다.

「“작가님, 여기 부분 말인데요. 은지가 저보다 댐핑 감이 높아서 이 부분에서 느낌을 더 잘 살릴 수 있을 것 같은데…… 한 번만 기회를 주시면 안 될까요?”」

「“작가님, 더블링을 기계로 쌓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저희가 한 번만 직접 쌓으면 안 될까요? 디테일을…….”」

「“저, 여기 고음 충분히 올릴 수 있어요. 끊지 말고 기계로 만지지 않아도 되니까 기회를 주시면 안 될까요?”」

이은호가 던졌던 수많은 ‘~하면 안 될까요?’ 시리즈들이 스쳐 간다.

당시에 실력도 없는 것들이 되지도 않는 훈수를 놓는다는 생각에 눈과 귀를 닫았다.

스튜디오에서 왕좌는 디렉팅을 맡은 내 것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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