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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23화 (23/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3)

“연예인인가?”

“봤어? X나 예뻐.”

“쌍둥이인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던 남매는 스쳐 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데 끌어모았다.

깔끔한 차림에 고급스럽고 반듯한 겉모습으로 거리에 늘어진 매장을 지나치며 걷는 동안.

두 사람은 웃으며 서로에게만 들릴 목소리로 사이좋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야 이은지, 니 입술 아무리 봐도 쥐 한 마리 잡아먹은 거 같애.”

“이게 올해 유행하는 ‘burgundy’ 색이란다. 모자란 놈아.”

“대추색?”

“와인색 버건디라고. 대추는 니 뇌 사이즈고.”

“네가 하니까 그냥 쥐 잡아먹은 것 같은데. 참, 그런데 은지야.”

“또 뭐.”

“호박 대가리에 빨간 줄 그으면 수박도 못 돼.”

“응. 우럭 대가리 새끼는 X치세요.”

겉으로 보이는 분위기와 달리 대화는 살기가 가득했다.

그래도 나름 사이좋게(?) 두 사람은 나란히 무대가 준비된 로데오 거리 중앙으로 걸어갔다.

그러던 중.

“…….”

“사람들 왜 이렇게 많아?”

SNS에 손조차 대지 않는 은호.

SNS를 하긴 하지만 최근엔 바빠서 확인할 틈이 없었던 은지.

지예찬이 홍보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두 사람은 예상치 못한 인파에 놀라다 못해 몸이 굳었다.

「남매 듀오 ‘E-UNG’의 주말 버스킹!」

생각보다 본격적인 공연인지, 현수막만큼은 화려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그는 1+1=1>과 함께하는 ‘E-UNG’의 특별 공연!」

이번 버스킹은 곧 방영할 ‘그는 1+1=1’ 드라마의 홍보를 위해 준비된 듯, 현수막 아래에는 오늘 이 버스킹을 누가 후원하는지를 당당히 드러내 보이는 문장이 함께였다.

은지는 공연이 예정된 곳에 걸린 현수막을 읽더니 긴장한 듯 한숨을 푹 뱉어 냈다.

그래도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땐 입가에 들뜬 미소를 띠며 무대를 향해 걸음 했다.

“가자, 이은호. 어?”

갑자기 곁에 있던 그림자가 훅, 사라지지 않았다면 그러려고 했다.

은지의 그림자는 아니었다.

“이은호! 왜 그래! 야!”

다리에 힘이라도 풀린 듯 은호가 바닥으로 쓰러지던 그때였다.

은지는 온 힘을 다해 은호의 큰 덩치를 겨우 받쳐 들며 다급하게 되물었다.

“왜 그래!”

“미안…… 가, 갑자기 눈앞이 지직거려서…….”

“무슨 헛소리야! 뜬금없이 저혈압이라도 왔어?”

은지가 물었지만, 은호의 상태는 숨소리마저 헐떡거릴 정도로 점점 더 나빠지기만 했다.

“뭔데! 대체!”

은지의 목소리에 신경질이 묻어났다.

날카로운 목소리와 다르게 표정은 울상에 가까웠다.

은호의 손목을 쥐고 있는 은지의 손이 덜덜 떨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절대 장난은 아닌 듯 은호는 흐리멍덩한 시야로 허공을 바라보며 손을 허우적거렸다.

“아, 갑자기 왜 그러는 건데?”

은지는 화도 나지만 걱정이 많이 되는지 목소리가 떨렸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조금 일찍 도착한 덕분에 공연까지는 아직 시간 여유가 있었다.

다행히 이 일은 은지밖에 모르는 상황이었다.

모여 있던 사람들은 은지와 은호를 보긴 했지만 남녀의 혼성 듀오가 이 자리의 주인공이라고 추측만 할 뿐.

E-ung 두 사람의 얼굴이 잘 알려진 건 아닌 터라 알아보지 못한 덕분이었다.

은지는 눈치껏 은호를 부축하며 그늘진 곳으로 장소를 옮겼다.

“여기 물.”

가까운 편의점에서 사 온 생수를 건넸다.

찬 생수를 이마에 올리고 20분 남짓한 시간이 흘렀을 때였을까.

은호는 안정적인 호흡을 되찾은 후에서야 생수 뚜껑을 열어 물 한 모금을 넘겼다.

“말해 봐. 왜 그랬던 거야?”

한결 나아진 은호의 상태에, 은지는 한숨과 함께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물었다.

샵에서는 조금 긴장한 것 같았지만 차에 오를 때만 해도 은호의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분명 여기 올 때까지만 해도 시비 걸 건 다 걸고 떠들면서 왔었으니까. 그럼 대체 뭐 때문에…….’

아, 설마.

이어지던 은지의 생각이 툭 하니 끊어졌다.

많은 인파에 말문이 멈춘 순간.

곁눈질로 보인 파랗게 질린 이은호의 얼굴.

“설마…….”

은지가 중얼거리자 은호가 갸웃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이은호, 너 공황 있어?”

“뭐?”

은호가 당황한 눈으로 은지를 올려 봤다.

“니가 그 단어를 어떻게 알아?”

“장난치는 거 아니야.”

“알아. 나도 진짜 놀라서 물어본 거야.”

며칠 전 배진수 작곡가와 작업 중이던 가수가 공황 발작을 일으켜서 급하게 병원에 실려 갔었다며.

그는 현재 약과 상담을 병행하며 치료를 이어 가고 있다 했다.

그러면서 배진수 작곡가는 은지에게 ‘멘탈 관리’도 곡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 일이 아니었다면 은지 역시 몰랐을 생소한 병명이었다.

“얼마 전에 이야기를 들은 적 있었어. 그런 병도 있다고.”

은지는 ‘설마’ 하는 마음과 동시에 아니길 바라며 걱정스레 은호를 봤다.

은호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곧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공황같은 건 아닐 거야. 그냥 잠깐 불안해서, 단순히 긴장을 좀 심하게 한 것 같애.”

“불안했다고?”

“어.”

“대체 뭐가?”

은호는 입을 달싹이다 겨우 말을 이었다.

“……사람들 앞에 서야 하는 게.”

은지의 미간이 뒤틀렸다.

이은호는 어릴 적부터 콘서트 놀이를 하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

이렇게 되기 위해 수없이 오디션을 보며 부딪쳤던 그런 사람이었다.

“사람들 앞에 서는 거, 그게 왜? 오빠가 왜?”

은지는 은호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 왔었던 유일한 가족이다.

그래서 더더욱, 은지는 방금 은호가 했던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오늘과 같은 공연을 그간 얼마나 바랐는지 누구보다 잘 아니까.

“이거, 모두 다 오빠가 원했던 일이잖아.”

“어…….”

그랬다.

이은지가 한 말 중 틀린 말은 전혀 없었다.

난 여전히 오늘과 같은 공연을 바랐고, 바라고 있으니까.

이렇게 바보같이 무너질 일도 아니고 애초부터 못 하던 일도 못 할 일도 아니었다.

심지어 관객들 앞에서 노래하고 소통을 하고, 그런 일들은 이미 일상처럼 해 오던 일이기도 했었다.

직업이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한 걸까.’

그것도 인제 와서.

눌어붙은 껌과 담배꽁초로 가득한 바닥을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모여 있는 인파를 다시 눈에 담아 봤다.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 다시 숨이 가빠지고 속이 뒤틀렸다.

꼭 서서히 누군가 목을 죄듯 숨통이 틀어막는 것 같다.

‘도대체 왜?’

스스로한테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나도 몰라’였다.

‘노래하기 싫어?’

그건 아니다.

당장이라도 누구보다 저 인파의 중심에서 노래하고 싶으니까.

하지만 시선이 무섭다.

저들 중 누구 하나는 나를 싫어할 것이라는 의심이 쉬이 가시질 않는다.

“이은호.”

그때였다.

“하기 싫으면 하지 마.”

“뭐?”

“안 해도 돼. 하지 마.”

“뭔…….”

이은지는 눈앞에 쪼그려 앉더니 정확히 시선을 맞춰 왔다.

“못 하겠으면 그냥 다 때려치우자. 몇 년 동안 우리 X 빠지게 고생해 가면서 겨우 시작한 거지만 어쩔 수 없지. 이은호 씨가 못 하겠다는데 때려치워야지. 안 그래?”

다른 사람이었다면 ‘왜 말을 그렇게 하냐’라고 할 만큼 공격적인 말들이었다.

“하…… 하하.”

하지만 어째서일까.

난 이은지의 도발에 오히려 웃음이 터졌다.

잠깐 미친 척 웃어 버리고 나자 갑자기 정신이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웃음이 옅은 한숨으로 바뀔 때쯤.

난 묵직한 심호흡을 뱉으며 이은지의 질문에 답했다.

“할 거야. 안 관둬.”

왜 관둬, 이 좋은걸.

‘괜찮아.’

‘좋아질 거야.’

‘힘내.’

‘응원할게.’

‘우리가 옆에 있을게.’

다양한 위로의 말은 달콤하다.

‘이곳에서 무너져도 괜찮아. 이 정도면 내 나름대로 열심히 한 거잖아.’

……라고.

위로는 나를, 내 실패를 자위하도록 만들어 주니까.

물론 이런 위로를 받으며 이겨 내는 사람도 분명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위로도 받아 본 사람이나 받을 줄 아는 거니까.

“아까처럼 또 길바닥에 엎어지려고?”

“엎어지면 누워서라도 부르면 돼.”

“X랄. 저 사람들이 너 누워 있는 거 보려고 왔어? 못 할 것 같으면 관두라니까?”

이은지와 난 서로 그런 낯간지러운 위로를 못 한다.

게다가 누가 좋은 말을 해 준들.

우린 그걸 헤실거리며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그렇게 순수하지도 않다.

애초에 우리가 그런 위로에 기대며 살았다면…….

‘이은지가 납치를 당했던 그날. 그때가 우리의 마지막 날이었겠지.’

이 나라는 우리에게 위로의 말만큼 다정하지만은 않은 세상이었다.

그제야 불안을 던져 내며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정 못하겠다 싶으면, 옆에서 내가 잘하는 거 손가락 빨면서 구경이나 하던지.”

“와, 내가? 그 꼴을 어떻게 보고만 있냐? 안 관둬, 안 누워, 안 때려치워.”

좀 전만 해도 불안해서 죽을 것 같았는데, 생각해 보면 죽음은 항상 가까이에 있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자꾸만 이은지 때문에 일어난다.

회귀 전 이은지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이은지가 남긴 한마디 때문에 살아남았으니까.

생각해 보면 그때도 악플에 마음이 곪았고, 무섭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항상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공격해 왔었다.

하지만 그땐 그들을 무시할 수 있었다.

‘어떻게 그랬었지?’

이유는 단순했다.

이은지가 했던 ‘살아’라는 그 말만 되뇄으니까.

독기를 품고, ‘나’를 감추되 거짓은 없었다.

그렇게 독하게 활동하면서부터였던가.

내가 세상을 무서워했던 이유가 사라졌다.

생각해보니, 지금은 이은지가 옆에 있다.

그렇네.

여긴 이은지가 살아있다.

그때 내가 받은 악플이 또 한 번 이은지한테 쏟아진다면, 이은지는 받아칠 생각도 못 한 채 곪아 간다.

이은지는 겉은 거칠어 보이지만, 남한테 상처를 주느니 본인이 아프고 마는 그런 멍청한 녀석이니까.

회귀 전, 나는 손가락을 잘못 놀린 죄로 그들을 현실로 끌어냈고, 그들을 직접 마주했다.

그리고 선처는 없었다.

그런 모습에 눈살을 찌푸리며 등을 돌리는 팬들도 있었지만, 반대로 그 모습이 옳다며 지지하는 팬들도 적진 않았다.

굳어 있던 어깨에 그제야 힘이 풀어졌다.

마음도, 몸도.

스스로 그늘을 벗어났다.

지금은, 지킬 존재가 있으니까.

난 뒤따라 일어난 이은지와 함께 걸음을 맞추며 무대가 설치된 곳으로 함께 향했다.

“또 쓰러지면 그대로 밟아 버릴 줄 알아.”

“얼굴 안 갈리게 잘 밟아라.”

“싫어. 얼굴만 밟아 버릴 거야.”

“하하핰.”

걸어가는 그동안 은지의 대답에 소리 내 웃었다.

가슴 한편 애써 이겨 내지 못한 불쾌한 불안감은 이은지에게 맡겼다.

‘그래.’

넌 내가 또 무너지면 정말 그러고도 남을 녀석이니까.

그땐 정말 내 얼굴을 밟아서라도 정신 차리게 도와주겠지.

* * *

“이―웅? 팀명 되게 웃긴다.”

“왜 이응이지?”

은호와 은지는 수군거리는 인파를 가르며 현수막이 설치된 무대로 나왔다.

차에서 내린 그때 봤던 걸까.

“저기 아까 그 쌍둥이……!”

몇몇 사람들은 먼저 둘을 알아보며 반가워하는 기색을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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