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2)
박 대표는 힐끔 백미러로 은호를 바라보다 입을 뗐다.
“버스킹.”
“버스킹……?”
“매주 주말마다.”
“매주 한다고요?”
버스킹이라는 단어에 자고 있던 은지의 눈마저도 번쩍 뜨였다.
“버스킹? 무슨 버스킹?”
은지가 돌아보며 물었다.
나 또한 예상치 못한 이야기라 말문이 턱 막혔다.
“그럼 최근 자주 미팅한다고 나가셨던 게…….”
“하하, 맞아. 적어도 세 차례 정도는 열 수 있게 해 보려고 사 측이랑 맞춰서 미리 장소를 섭외하느라 바빴거든.”
“와…….”
“너희가 성격이 여전히 거칠긴 해도 노래나 외모에선 빠지는 게 없잖아.”
그런가.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은지와 난 눈에 띄진 않아도 나름대로 발전해 왔다.
이젠 예전 같은 기교에 묻은 나쁜 버릇도 없고,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사랑 노래도 모두 할 수 있게 됐다.
서로의 목소리로 화음을 맞춰 가는 것도 이젠 척척 해낼 수 있게 됐다.
그러니 버스킹도 충분히 해낼 자신은 있었다.
좋다.
너무 좋다.
‘그런데…….’
머리는 이 기회를 놓치지 말자며 다짐하는데.
왜일까.
가슴 한쪽이 묵직하게 짓눌린다.
“데뷔 전이긴 하지만, 미리 사람들한테 알려져서 나쁠 건 없어서 준비했다. 무엇보다 너희는 부스에서보다 관객들 앞에서 노래하는 거 좋아하니까.”
입소문의 힘은 절대 무시하지 못한다.
대표님의 이야기는 모두 맞는 말이었다.
좋은 곡도 좋지만, 이은지와 난 ‘노래하는 것’ 자체를 좋아한다.
노래만큼이나 좋아하는 건 우리의 노래를 들어 주는 관객이었다.
어릴 땐 관객을 상상하며 매일 콘서트 놀이를 했을 정도로 우리는 관심이 많이 고팠었다.
바랐던 일인만큼 잠에 취해 있던 이은지의 눈동자에 생기가 반짝였다.
‘그런데 대체 왜일까.’
이은지가 마냥 순수하게 기뻐하는 동안, 난 이은지처럼 들뜨기만 할 수는 없었다.
그게 어디서 시작된 불안인지는 금세 눈치챌 수 있었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이은지가 세상을 떠난 후 쏟아졌던 악플들.
악의적으로 쓰였던 ‘나’를 말하는 기사들.
진실을 숨기고 편집되어 버린 솔직한 인터뷰들까지.
그땐 이쯤이야 하고 넘겼던 일이었다.
하지만 되돌아온 시간에서 그때를 되짚어 보자,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상처를 입었다.
또, 상처를 상처라 인정하지 않은 그 시간 동안 내 상처들은 꾸준히 곪아 가고 있던 모양이다.
“은호는 별로냐?”
“아뇨, 좋아요.”
“아무튼 주말 공연 이야기는 다음 주에 말해 주마.”
“네.”
복잡한 마음이었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입꼬리를 끌어 올리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은지는 조금 눈치챈 걸까.
‘왜 그래?’
은지가 머리를 갸웃거리며 눈으로 물었다.
난 아무것도 아니라며 소리 없이 고개를 저었다.
뭔가 찜찜하긴 했지만, 딱히 깊이 신경 쓰고 싶지는 않은 듯.
이은지는 다시 버스킹 일정에 히죽거리며 얼굴에 들뜬 기분을 드러냈다.
버스킹 제안 한 번에, 오늘 페이옵에게 화가 났던 건 모두 잊어버린 듯 단세포가 따로 없다.
‘버스킹이라…….’
아직 알려지지 않은 만큼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는 않겠지.
앞으로 일어날 일은 전혀 모른 채 그렇게 생각했다.
* * *
박 대표의 제안이 있던 이후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난 날이었다.
“이야, 너 사람 속 터지게 하는 재주 있다? 그거 한 마디를 왜 못 따라와!”
페이옵은 녹음 부스 안 은지를 보며 한숨과 함께 머리를 짚었다.
‘얼굴만 보면 미인이 따로 없는데…….’
노래하는 꼴을 보면 한숨이 절로 터져 나온다.
“연습생 주제에 스스로 해석하지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따라오니까! 너 머저리야? 왜 이렇게 사람 말귀를 못 알아들어?”
하여간 마음에 안 든다.
한 번만 터지면 기를 납작하게 해 주려고 벼르고 있건만.
‘딱 봐도 저년은 분을 못 이겨서 주먹이 덜덜 떨리는 게 눈에 보이는데…….’
꼭 이렇게 한쪽을 몰아붙이면 항상 저 이은호 자식이 나서서 머리를 먼저 숙이게 만든다.
“죄송합니다.”
‘저놈이 더 마음에 안 들어.’
몇 살 더 많다고 꼴에 보호자 노릇을 하는 꼴이라니.
두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남매의 배우상에 가까운 굴곡 있는 입체적인 얼굴과 여유 있는 분위기.
박 대표를 만나 미팅을 하던 당시에 이야기를 들은 거 같긴 한데, 밤새 달린 술자리로 아직 술이 깨지 않아서 드문드문 기억이 잘려버렸다.
덕분에 난 두 사람의 분위기에 속아, 이 녀석들이 이미 데뷔를 했지만 인지도가 없는 가수이거나 배우 겸 가수이겠거니…….
완전히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엔 그에 맞게 극진하게 대우해 줬다.
여동생인지 걔가 꽤 반반하게 생겨서, 솔직히 이뻐서 잘해준 게 컸다.
물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뒤통수를 거하게 얻어맞았다.
핑계를 대자면 누구라도 속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은호 저 자식이 너무 뻔뻔했으니까.’
데뷔 몇 년 차라고 해도 믿을 만큼 작업 과정이라든가 업계를 꿰고 있는 듯한 말을 툭툭 던져 대는데, 누가 안 속겠냐고.
‘신인도 아니고 이제 곧 데뷔할 데뷔조 연습생이라니…….’
하!
지금 생각해도 구겨진 자존심에 이가 갈린다.
‘완전 깜빡 속아 버렸지.’
그래서 그때부터였다.
이은호 저 녀석이 고작 데뷔조 연습생인 걸 알게 된 그때부터, 저놈이 입을 열 때마다 거슬렸다.
“저, 작곡가님, 방금 부분은 그렇게 끊어 가는 것보다…….”
“야, 너가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내가 너보다 이 바닥에 몇 년이나 더 있었는지는 알고 주둥이 놀리는 거야?”
“……죄송합니다.”
“쓸데없는 의견 낼 시간에 똑바로 잘 따라오기나 해. 다시.”
이 꼬맹이들이 부탁하는 건 단순했다.
한 트랙 전체를 딱 한 번만 달리게 해 달라고 했던가?
사실 긴 녹음 시간 사이에 그 정도 기회를 한 번쯤 주는 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감히 연습생들 주제에 기 싸움에서 이기려는 게 괘씸해서 해 주기 싫었다.
얼굴만 믿고 나대는 연습생 주제에 내 말에 또박또박 토를 달던 것이 같잖아서.
그게 정말 틀린 말이면 그냥 멍청한 놈이려니 할 텐데, 입만 열면 거슬릴 정도로 콕 집어 맞는 말만 해 대니 더 짜증이 솟았다.
게다가 애초에 들어 봐야 부족할 게 뻔한데 왜 굳이?
“두 사람 내일 수원에서 공연한다고 했었나?”
아직 데뷔도 못 한 연습생들 주제에 어쭙잖은 실력으로 딴에 공연이랍시고 나대기는.
“여기서처럼 실수 안 하게 조심들 하시고.”
그때였다.
이은지가 이에서 까득거리는 소리가 샐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
계집년 주제에, 제 오빠 아니면 말 한마디 못 하면서 까불기는.
“나도 시간 나면 갈 테니까.”
“꼭 와 주세요. 작곡가님이 자리에 계셔 주시면 정말 큰 힘이 될 것 같거든요.”
일부러 약 오르라고 비웃으며 말했더니, 이은호 저놈은 비위도 참 좋다.
“그래? 하하. 은호 씨가 그렇게까지 말해 주는데, 그럼 꼭 가 줘야지.”
“그럼, 저흰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래요. 조심히들 들어가요.”
은호와 은지가 스튜디오 밖으로 나간 그 순간.
페이옵은 가식적인 미소를 깨끗이 지워 내며 얼굴을 굳혔다.
‘독한 새끼.’
노래 한 마디도 똑바로 못해서 몇 번이나 다시 하는 연습생 주제에.
* * *
잊은 상처
“작곡가님이 자리에 계셔 주시면 정말 큰 힘이 될 것 같거든요.”
내가 입으로 뱉고 있는 건 더러운 똥이라 생각하며 겨우 말했다.
나도 솔직한 심정으로 휴일까지 이 인간을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소리를 한 이유는 하나였다.
꼴 보기 싫다는 마음보다 저 꽉 막힌 귓구멍을 우리 목소리로 뚫어 주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으니까.
속이 뒤틀렸다.
저놈의 귓구멍에, 네가 어떤 사람한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지 소리쳐주고 싶었다.
동시에, 당신과 같이 작업하지 않을 때의 우리가 어떻게 ‘노래’하는지도.
격해진 마음을 다스리며 푹 한숨을 내쉬자 이은지가 갸웃거리며 돌아봤다.
“왜?”
“긴장돼서.”
버스킹으로 ‘우리 이런 노래를 하는 사람입니다’라고 똑바로 알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그런데 너무 오랜만이라서 그러는 걸까.
무대를 생각할 때면, 정확히는 사람의 눈을 떠올릴 때면 가슴이 죄어 오고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든다.
‘괜찮겠지.’
데뷔 전 버스킹인 만큼 연습생들을 보러 오는 사람이 많을 리는 없을 테니까.
은호가 피어오르는 불안을 그렇게 겨우 잠재우던 그때였다.
그날 저녁 6시, NRY 엔터테인먼트는 기사와 함께 다양한 SNS를 통해 적극적인 홍보를 시작했다.
사실 NRY 엔터테인먼트는 소규모의 소속사인지라 홍보에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회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E-ung’과 ‘수원역’, ‘로데오 거리’가 각각 실시간 검색에 순위에 반짝 올랐다.
「피처링을 도와줬던 사랑하는 우리 은호의 ★E-ung★이 내일 수원역 로데오 거리에서 첫 공연을 한다고 합니다! 많은 관심 가져 주세요! 나도 내일 구경하러 갈게!」
지예찬, 그가 SNS에 올린 짧은 언급 하나로 일어난 결과였다.
그리고 다가온 토요일.
수원역 로데오 거리엔 이제 막 저녁 메뉴를 고르며 오가는 사람들로 거리가 북적였다.
그때였다.
“여기서 오늘 뭐 하는 거야?”
“지예찬 민스타에서 봤는데, 이응이라는 팀이 공연한다더라고.”
“이응이 누군데?”
“Co-sign 피처링한 신인이 소속된 팀이래.”
“오, 아이돌이야?”
“나도 몰라.”
먼저 도착한 스태프들은 사람들의 대화를 들으며 부지런히 무대 세팅에 들어갔다.
무대라고 하기엔, 현수막 아래 초라한 간이 의자 두 개와 스피커와 마이크뿐인 간단한 세팅 정도였지만…….
그동안 주위에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미리 공연 소식을 들은 사람, 그게 아니라면 지나가는 길에 멈춰 선 사람 등 사람이 모이면 더 많은 사람이 모인다는 공식처럼, 주변에는 적지 않은 인파가 벌떼처럼 모여들고 있었다.
* * *
“와.”
그동안 무대에서 멀지 않은 지하철 입구 인근에 검은 세단 한 대가 멈춰 섰다.
먼저 차에서 내린 웨이브 진 진한 검은 머리칼의 여자는 주변을 둘러보며 씩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흰 셔츠에 깔끔한 검은 슬랙스.
눈길을 끌 액세서리 하나조차 없는 깔끔한 차림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있어도 흐르는 진한 아우라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그녀를 주시했다.
“야, 길 막지 말고 비켜.”
“대충 내리면 되잖아.”
“아, 비켜!”
눈길을 끌던 그녀를 밀어내며 뒤따라 차에서 내린 남자.
그는 그녀와 거울처럼 닮은 외모에 똑같은 흰 셔츠와 깔끔한 검은 슬랙스를 입고 있었다.
조금 전의 여자가 사나운 느낌이라면, 그는 비슷한 인상에 조금 더 차갑다는 분위기가 강한 외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