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20화 (20/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0)

우리가 처음 사랑을 속삭인 Last Day

네 이불에 취해 속삭인 우리의 Last Day

분명 그 사람이다.

이은호.

그 시선을 잊지 못해서 수십, 수백 번 Co-sign을 반복하며 들었더니 귀에 익어 버린 그 목소리.

드라마는 그게 마지막 장면이었는지 다음 화 예고를 풀어 나갔다.

이미 우린, 서로의 섬에 갇혀 있어

숨 한 번 뱉기가 힘들어

알고 있잖아

Last Day

드라마에 대한 관심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대신 주연은 예고편의 대사 틈으로 흐르는 OST에만 귀를 기울이며 휴대폰의 검색창에 집중했다.

‘VOD가 나와 있는 거니까 음원은 당연히 나와 있겠지.’

이번엔 그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보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냈다.

「E-UNG ― Last Day(그는 1+1=1 OST)」

이응?

조금 특이한 이름 탓인지 처음엔 고개를 갸웃거렸다.

‘혼성 듀오인 건가…….’

혼성 듀오라고 갑자기 싫어지는 건 아니지만…….

왠지 아쉬운 기분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숨을 흘리던 그때.

주연은 문득 흘러가며 지나친 한 기사의 제목을 눈에 담았다.

「‘남매뮤지션’을 이은 남매 혼성 그룹 ‘E-UNG’」

주연의 손가락이 자연스레 기사로 뒤따랐다.

「‘E-UNG’의 수원역 로데오 거리에서의 공연 장면」

기사는 간략한 설명 위로 은호와 은지가 열창 중인 사진이 메인으로 걸려 있었다.

주연은 아래 기사를 읽어 내리던 그때.

한 문장에서 눈을 반짝이며 수줍게 입매를 끌어 올렸다.

「……최근 소속사 ‘NRY 엔터테인먼트’에서는 각종 SNS를 통해 매주 금요일 오후 6시에, 토요일에 있을 E-UNG의 특별 공연 장소를 공개하고 있다.」

* * *

불협화음

「“저도 녹음은 좀 했으면 좋겠다 싶긴 해요.”」

거기서부터 시작된 이야기였을까.

‘그는 1+1=1’ OST 녹음 이후 사옥으로 돌아가던 그때.

대표님은 운전하며 흘러가듯 의미심장한 질문을 하나 던졌다.

“너희는 한번 빡시게 일하고 쉬는 게 좋으냐, 아니면 차곡차곡 쌓아가는 게 좋으냐?”

이은지와 난 거기에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툭 이후에 벌어질 일은 상상조차 못 한 채, 무심하게 대답을 뱉었다.

“빡시게!”

“빡시게죠. 당연히.”

그리고 이건 그 결과였다.

우린 입 밖으로 올린 말 그대로.

정말 ‘빡시게’ 녹음에 들어갔다.

월, 화, 수, 목, 금…….

매일, 진―짜 매일!

머리 아파 흔들지 마 (네가)

녹음 부스 안에서 이은지의 가사 따라 머리가 진동하는 기분이다.

“은지 씨, ‘머리 아파 흔들지 마’, 딱딱딱딱, 딱딱딱딱. 다시 갈게요.”

“네.”

머리 아파 흔들지 마 (네가)

손 틈새로 빠져, 나간 (네가)

“은지 씨, 방금 부분 ‘손 틈새로, 빠‘쪄’’, 아니고 ‘빠‘져’나간’. 그리고 박자도 ‘머리 아파 흔들지 마’처럼 딱딱딱딱, 딱딱딱딱. 맞춰서 부탁해요.”

“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은지가 만들던 곡도 이 녹음 때문에 잠시 중단됐다.

이번 데뷔곡을 작곡가 페이옵이 함께하게 되면서였다.

그는 세심하다 못해 나노 단위의 디렉팅을 자랑하는 디렉터였다.

덕분에 오늘 오디오를 맡은 유종우 기사님은 나와 시선이 맞닿을 적마다 티 나지 않는 한숨을 푹푹 쉬어 댔다.

하긴, 스튜디오에 갇혀 있은 지 장장 20시간째.

인간인 이상 당연한 반응이었다.

머리 아파

“옳지. 그거예요.”

흔들지 마

“그대로 이어 가죠.”

손 틈새로

“좋아요.”

빠져, 나간

“그렇죠. 다음.”

너무 지―끈 지끈해

“너무 지―끈 지끈해. 아니고, 너무 지끈, 지끈, 해.”

“너무 지끈, 지끈, 해. 이렇게요?”

“그렇죠. 그대로 가요.”

난 이은지가 작곡할 때도 그러지만, 굳이 내가 손대지 않아도 되는 문제에 손을 뻗고 싶진 않다.

그만큼 작업자를 믿는 것도 있고, 그 사람의 방식을 존중하기 때문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 금기를 깨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름 아닌 저 나노 단위로 트랙을 멈추고 눌러 대는 토크 백 때문이었다.

이은지는 이미 표정에 불만이 가득했다.

‘딱 한 트랙만, 정말 딱! 한 트랙만 느낌대로 불러 보게 해 줬으면 좋겠는데.’

이야기를 안 해 본 건 아니었다.

“저, 작곡가님, 저희 한 트랙만 느낌대로 달려 보면 안 될까요?”

“신인들 주제에 욕심이 많네요.”

뒤따라 ‘하하, 조크, 조크.’라며 말을 덧붙이긴 했지만…….

멍청한 놈이 아니고서야 페이옵 작곡가가 우리에게 어떤 시선을 가졌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는 한마디였다.

그래서 더 이야기하지 않았다.

우리 목소리는 어차피 들리지도 않을 테니까.

너무 지끈지끈해

“좋아요.”

또는 미끈미끈해

“그렇지.”

다가와서 말해 줘

“그거야!”

거기선 들리지 않아

“그렇지.”

속삭여

“‘속삭여’는 바짝 붙여서.”

속삭여

“그렇지.”

페이옵의 곡이 그리 까다로운 곡은 아니었다.

물론 은지가 못 부르는 것도 아니었다.

‘OST 녹음 때처럼 차라리 한 트랙을 전부 달려야 하는 문제라면 훨씬 괜찮았을 건데…….’

페이옵 작곡가는 보컬 소스를 나노 단위로 잘라 붙이는 방식으로 작업을 하는 것 같았다.

그간 페이옵 작곡가와 함께 작업했던 다른 선선배님들은 어땠는지 모르겠다.

다만.

적어도 몰입을 해야 하는 은지와 나한텐 페이옵 작곡가의 방식은 최악이나 다름없었다.

‘이은지와 난 주로 첫 트랙을 느낌대로 달린 후 다듬거나 부족한 부분은 다시 찍는 방식이니까.’

그냥 딱 한 번만 어떤 곡이든 제대로 노래하고 싶었다.

하지만 장장 20시간 동안 페이옵은 본 실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그게 현재 일주일째 매일 지긋지긋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런 작업 방식이 싫다고 거절도 할 수 없다.

E-ung의 첫 타이틀곡으로 이은지가 만든 ‘듀오’가 아닌 이 페이옵 작곡가의 곡으로 결정됐기 때문이었다.

“고생했어요.”

녹음은 저녁 9시가 다 될 무렵.

아침 일찍 시작됐던 녹음이 드디어 끝이 났다.

“그러게요. 망할 버튼―.”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희는 이만 들어가 볼게요.”

난 고개를 숙이다 뒤늦게 본능에 충실한 이은지의 입을 황급히 틀어막으며 웃었다.

중얼거리듯 욕을 한 탓에 다행히 들리진 않은 듯.

페이옵은 여유롭게 웃으며 인사에 답을 얹었다.

“두 사람이 미숙해서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네요.”

‘미숙’이라…….

“예…… 선생님께 많이 배운 것 같습니다.”

“하하, 별말씀을.”

일부러 이렇게 대답하긴 했지만, 너무 뻔뻔한 페이옵의 반응에 애써 떨떠름한 기분까지 치워 내긴 힘들었다.

“잘들 들어가고. 다음 주에 또 봅시다.”

찝찝한 페이옵의 인사를 뒤로하며, 이은지와 난 약 20시간 만에 스튜디오 건물을 탈출할 수 있었다.

시원한 밤바람을 맞자 해방감이 몰려왔다.

‘다음 주에도 이 짓을 반복해야 하는구나…….’

해방감을 즐기기도 전에 정해진 미래를 떠올리자 트였던 가슴이 다시 갑갑해진다.

“기운 없다.”

“그러게.”

맞지 않는 옷 같은 나노 단위 녹음을 했기 때문일까.

평소였으면 녹음하고 난 뒤 노래를 불러 들뜨는, 그런 좋은 기분이 전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울적한 심정에 당장 집으로 가서 이불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참, 오늘 대표님은 따로 일정이 있다고 하셨지.’

그래서 오늘은 지하철을 타고 돌아가야 하는 날이었다.

“으, 춥다.”

골목 틈새로 불어오는 쌀쌀한 밤공기에 몸이 절로 떨렸다.

추위를 막아 보려고 대충 걸쳤던 항공 점퍼의 지퍼를 목까지 끌어 올렸지만 큰 도움은 되지 못했다.

푹 한숨을 내쉬자 지퍼 틈새로 입김이 새어 나왔다.

잠시 밤바람을 맞으며 감성에 취하려던 그때.

스튜디오 건물을 나온 뒤 약 10분간 걸었을 즈음.

“생각할수록 빡치네!!!”

“아, 깜짝이야. 왜 갑자기 X랄이야?”

어쩐지 오늘 잘 참았다 싶더니 결국 은지는 폭발했다.

“X바아아악!!!”

평소라면 시끄럽다며 말리곤 했었을 텐데.

솔직히 이번엔 같은 팀이기 때문일까.

난 이은지의 마음을 다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라며 그러려니 받아들이는 나와 달리.

이은지는 그 성질로, ‘일이니까 참아!’ 하는 이성과 폭발하는 본능 사이에서 근 일주일째 참고 있다.

하긴 저 성격에 아직 페이옵의 토크 백을 박살 내지 않은 것만으로도 나름 보기 힘든 기적이긴 했다.

“안 돼. 해야겠어.”

그때였다.

“뭘 해?”

“그거.”

갑자기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이은지는 골목 한편의 분리수거장으로 척척 걸어갔다.

“아, 그거. 되게 오랜만이네.”

“뭐!”

“아냐, 해. 난 저기서 기다릴게.”

난 근처에 앉을 곳이 있나 둘러보고 한 건물 입구 앞 계단에 자리를 잡았다.

이건 어린 시절에 만들어진 이은지만의 특이한 화풀이 방식이었다.

은지는 분리수거장 앞에서 중얼거리며 소매를 걷었다.

“더럽기는. 하긴, 이래야 할 맛 나지.”

* * *

우린 길바닥 출신이다.

그런 우리에게 접근하거나 친해진 사람 중 좋은 사람을 찾는 건 손에 꼽을 수준이었다.

이은지는 얼굴이 좀 괜찮다는 이유로 질이 나쁜 놈들의 접근이 잦았다.

‘특히 은지는 납치를 당하기도 했었으니까.’

그 때문일까.

이은지는 가시를 세운 고슴도치처럼 예민하고 불같은 면이 있었다.

문제는 안전한 생활을 시작한 이후에도 은지는 자신의 불같은 감정을 쉬이 조절하지 못했다.

처음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였지만, 시간이 흐르고 그게 버릇이자 성격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피를 많이 봤었지…….’

잦은 싸움에 누군가가 얻어터지거나 이은지가 얻어터져 오는 나날들.

‘이걸 다행이라고 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은지는 법적으로 당당하지 못한 놈들만 잘 골라서 쳤고, 덕분에 다행히 지금까진 큰 탈이 없었다.

신세를 지던 빵집 주인아저씨는 그런 은지의 성격을 못마땅해했다.

“그러다 너뿐만 아니라 은호가 다칠 수도 있어.”

주변이 다칠 수 있다는 경고이자 걱정이었다.

그래서 아저씨는 은지에게 화를 건강하게 푸는 한 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내 친구 놈이 이걸 재활용해서 이것저것 하는 사업을 시작하려고 하거든.”

“근데요?”

“너 화난다며.”

“화나는데 이딴 게 무슨 상관인데요.”

“이걸 밟으라고.”

“장난까요?”

“기왕이면 ‘장난쳐요?’라고, 말은 똑바로 하거라.”

“장난쳐요?”

“장난이냐고 묻기 전에 일단 밟고 말하고.”

“X발, 별 희한한 걸 다 시켜 대네.”

이은지는 항상 투덜거리면서도 아저씨의 말은 잘 들었다.

불쌍하다느니, 안쓰럽다느니 등 아저씨는 유일하게 이은지가 싫어하는 ‘그런’ 시선으로 보지 않는 어른이기 때문이었다.

“어때, 좀 후련하지?”

“……뭐, 좀. 괜찮긴 하네요.”

“어디서 하든지 꼭 투명한 것만 하고, 나온 쓰레기는 성질난다고 아무 데다 버리지 말고 잘 모아서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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