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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19화 (19/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9)

“노래할 땐 웬만한 베테랑 가수들 같더니, 그때가 특별한 거고 저 모습이 원래 성격인 모양입니다?”

“예……. 그렇지요.”

박 대표와 함께 자리에 앉은 민기호 팀장은 손주를 바라보는 다정한 눈길로 은호와 은지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었다.

민기호 팀장의 이야기에 박 대표도 뒤따라 잠시 은호와 은지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답했다.

두 사람 모두 남매 아니랄까 봐.

고귀한 선물이라도 받는 듯이 그릇에 스테이크를 받고 그걸 꿀이 뚝뚝 흐르는 눈으로 빤히 바라보고 있다.

꼭 보석이라도 박은 듯 반짝이는 눈빛이었다.

‘어지간히 좋은 모양이네.’

남매를 잘 아는 박 대표는 ‘으이그’라고 생각하면서도 입가에 띤 웃음을 거두진 못했다.

두 사람은 셰프의 공연을 더 보고 싶은지 철판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포크를 들고 진한 육즙이 흐르는 스테이크 한 점을 입에 가져간 그 순간.

“하하하하.”

민기호 팀장은 두 사람이 황홀해하는 모습에 소리 내 웃음을 터뜨리며 박 대표를 돌아봤다.

“아, 하하. 은지씨랑 은호씨한테는 참 다양한 매력이 있네요.”

박 대표는 민망함을 한숨에 흘려보내며 민기호 팀장을 따라 웃었다.

“좋게 봐주신다니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그나저나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땐 저도 솔직히 전 부팀장처럼 걱정하긴 했었던 입장이라 할 말이 없네요.”

민기호 팀장은 젓가락으로 퍼 담아 온 스파게티를 섞으며 말을 이었다.

민기호 팀장이 박 대표의 연락처를 찾아 전화했을 때.

그때 그가 처음 제안한 건 은호의 솔로곡이었었다.

하지만 그때.

박 대표는 남매 모두를 쓰지 않으면 차라리 거절하겠다며 강경한 모습을 취했었다.

“후회만 하지 않으신다면 다행이지요.”

“후회는, 무슨 그런 말씀을…….”

민기호는 그땐 못 이긴 척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결과적으로는 박 대표의 제안을 받아들이길 천만다행이었다.

그것도 아주 격하게.

은지의 첫 소절을 들은 순간은 특히나 더 그랬다.

다른 일이 밀려 있는 탓에 스튜디오에 오래 남아 있을 생각도 없었는데.

결국 남매의 노래를 듣고 싶다는 마음 하나 때문에 녹음이 끝날 때까지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후회는 절대 없습니다. 하하.”

* * *

“쭈!”

“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니, 그냥. 나 저번에 예찬 오빠 콘서, 아, 쇼케이스 갔다 왔었잖아…….”

“그랬지? 근데 그게 왜?”

주연이 빨대를 돌리자, 컵 속에서 얼음과 음료가 뒤섞이며 달그락거리는 듣기 좋은 소리가 났다.

주연은 쓸쓸한 시선으로 카페 테이블을 빤히 바라보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때 예찬 오빠 새 앨범 트랙 중에서 어떤 신인이랑 같이 부른 곡이 하나 있거든.”

“응. ‘시계가 시끄러워. 고개를 돌리지 마.’ 네가 나 집에 태워 주면서 무한 재생해서 이제 가사도 다 외운 그거.”

“하하, 응. 그거 제목 Co-Sign이야.”

“코사인이든, 코쟁이든. 무튼.”

주연의 친구는 손을 휘적이며 빨리 본론이나 이야기하라고 재촉했다.

“……그냥 그때 봤던 신인이 너무 좋아서.”

“어, 좋다는 건도 천 번은 들은 거 같다.”

“그래서 다른 노래도 듣고 싶어서 이래저래 많이 알아봤었거든.”

“너도 참…….”

“알잖아. 나 한 번 빠지면 끝판 찍는 거.”

“알죠. 알죠.”

“그래서 알아봤는데, 그 신인이 다른 곡 나온 것도 없고 자료도 하나도 없더라고.”

“그래? 의외네. 그건.”

“어지간했으면 내가 TaKa 엔터테인먼트에 전화까지 해 봤겠어.”

친구는 디저트 포크를 뻗어 케이크를 가르다가 황당한 눈으로 주연을 올려봤다.

“진짜 어지간했네…….”

“하하. 꼭 찾고 싶었거든.”

친구는 질린다는 듯 고개를 휘젓더니 무심하게 브라우니 케이크를 입으로 가져갔다.

“그건 됐고, 너 요즘 하는 ‘그는 1+1=1’ 드라마 보냐?”

시원한 아메리카노와 달짝지근한 케이크를 삼킨 후, 친구는 그 ‘신인’의 이야기는 그만 듣고 싶었는지 태연히 주제를 돌리며 물었다.

“나 드라마 잘 안 보는 거 알잖아.”

“그거 봐. 재밌어.”

“그래 봐야 뻔한 로맨스 드라마일 건데, 뭘.”

“야. 뻔하든 말든 말할 거면 보고 말해, 이것아.”

“알았어. 알았어. 소리 줄여! 사람들 쳐다보잖아. 무슨 내용인데 그래?”

친구는 씩씩거리다 케이크를 한 점 더 먹더니 단맛에 흥분했던 기분이 가라앉은 듯. 다시 우물거리며 차분히 이야기를 이어 갔다.

“이게 흔히 다중인격이라고 부르는 해리성 인격 장애가 있는 남주랑 평범한 회사원인 여주가 연애하는 이야기인데, 다른 거보다 OST가 소름 끼쳐. 쩔어.”

“오버는…….”

“지는 콘서트 가서 신인이랑 눈 마주쳤다고 몇 주째 오버하고 있으면서.”

“푸핫, 그건 그러네. 인정.”

“아무튼 꼭 봐.”

“알았어요. 알았어.”

주연은 마지막 남은 케이크 조각을 입에 넣으며 웃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늦은 저녁.

주연은 소파에서 뒹굴거리며 의미 없이 채널만 돌리던 그때.

문득 친구의 이야기가 떠오른 듯 리모컨을 만지며 ‘드라마’ 칸에서 ‘그는 1+1=1’을 찾았다.

―오예진 씨, 나랑 사귈래요?

드라마의 여주인공 오예진은 황당한 눈으로 회사 CEO인 최진을 바라봤다.

―나랑 사귄다고 하면, 이 건에서 오예진 씨는 확실하게 내가 구해 줄 수 있는데.

―대표님이 대체 저랑 왜…….

―왜긴, 오예진 씨가 마음에 드니까 그러지. 어때요? 나랑 사귀고 여기서 확실하게 살아남을래? 아니면, 그 사원증 여기 놓고 이대로 나갈래?

“저, 저 저, X친 새끼.”

뭐, 얼마나 재미있기에.

조금 비틀린 심정으로 드라마를 시청하기 시작한 주연은 1화 중반 정도부터 였을까.

그녀는 과하게 드라마에 몰입하며 입 밖으로 욕을 뱉었다.

하지만 여주인 오예진은 힘든 가정사 탓에 회사에서 잘리기 않기 위해 고민 끝에 최진의 그런 장난 같은 고백을 받아들였다.

“어머.”

시작은 별로였지만 예진의 연애는 고백할 때의 분위기와는 달랐다.

드라마에선 시작부터 해리성 인격 장애를 대놓고 보여 주진 않았다.

다만, 남자 주인공의 180도 달라진 모습과 어떤 상황을 같이 겪어 놓고도 기억하지 못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그때와 다른 사람 같다’는 인상을 충분히 비춰 주고 있었다.

「“이게 흔히 다중인격이라고 부르는 해리성 인격 장애가 있는 남주랑…….”」

주연은 친구가 전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깨달았다.

‘스포 당한 거였네.’

비록 스포일러를 당하긴 했지만 드라마의 재미가 완전히 떨어진 건 아닌지라, 주연은 마저 집중을 이어 갔다.

오예진은 당황스러운 고백을 받았던 그때와 마치 다른 사람처럼 진중하고 다정한 최진의 반전 분위기에 서서히 빠져들었다.

처음엔 남주인 최진을 욕하던 주연도 끝내 달달한 분위기와 풋풋한 감성에 혀를 내둘렀다.

그렇게 평화롭기만 하던 로맨스물이 갑자기 격렬해진 건 2화가 끝날 무렵.

최진이 샤워 후 거울을 마주한 그때였다.

차분했던 최진의 얼굴이 마치 다른 사람처럼 사납게 구겨졌다.

―쨍그랑!

그 순간, 최진은 갑자기 발작하며 곁에 놓여 있던 화장품을 던져 거울을 박살 냈다.

―내가 놀려고 사귀자고 한 건데, 왜 거슬리게 준이 네가 즐기고 있냐고!

주연은 어느새 소파 아래로 내려와 등을 기댄 채 편안한 자세로 몰입했다.

이어서 결제 창이 뜨자 주연은 번거로웠는지 단숨에 월정액을 결제하며 곧장 다음 화로 넘겼다.

게다가 어느새 주연의 옆에는 시원한 캔맥주와 달달한 땅콩 간식이 함께였다.

―예진 씨.

―네?

―……당신이 너무 좋아요.

―저도요. 저도 대표님이 너무 좋아요…….

2화의 마지막 수상한 장면과 다르게 3화는 2화와 비슷하게 다정하고 달달한 분위기의 장면으로 시작했다.

그것도 잠시.

최진은 예진의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으며 속삭였다.

그런 최진의 어리광을 예진은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그를 안았다.

‘세상에. 오우야, 이런 장면까지 나와도 되는 거야?’

비록 케이블 채널이긴 하지만 그래도 낯 뜨거울 정도로 야릇한 베드신에 땅콩을 집던 주연의 손이 허공에 어정쩡하게 멈췄다.

‘술은 좀 아깝다.’

드라마 속 두 주인공은 좋은 호텔에서 비싼 와인을 두고서 서로의 숨결에 취해 깊이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다.

주연은 잠시 맥주를 바라보다 다시 TV로 눈을 돌렸다.

야릇한 밤이 지나고 아침 짹짹.

날이 밝은 그때였다.

마치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라는 듯 수상하리만큼 잔잔하게 깔리던 BGM이 멈췄다.

예진은 잠에서 깨자마자 곁에 앉아 자신을 보고 있던 최진과 눈을 맞췄다.

보통 로맨스 드라마라면 달달한 분위기라고 느껴야 했을 장면이지만, 고요한 분위기 탓일까.

왠지 불안한 그런 평화였다.

두 사람을 활짝 웃으며 시선으로 서로에게 아침 인사를 건넸다.

적어도 예진은 그랬다고 생각했다.

최진의 입이 열리기 전까진.

―예진 씨, 우리 헤어지자.

예진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황당한 숨을 토해 냈다.

며칠 전만 해도 휴가 때 따뜻한 곳으로 여행이나 다녀오자며 그랬던 사람이.

어젯밤만 해도 사랑한다느니 그랬던 사람이.

―장난하지 말아요.

마치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는 그에게 예진이 차분히 말했다.

하지만 그에 최진은 보기 좋게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그녀를 향해 비웃음을 띄웠다.

―장난하는 거 같아?

그때.

우리가 서로의 것이라며 외치던 Last Day

흥미진진해진 분위기에 욕을 하면서도 맥주로 손을 뻗던 주연은 덜컥 움직임을 멈췄다.

어?

지금껏 고요했던 분위기 때문일까.

「“……거기다 다른 거보다 OST 나온 순간 소름 끼쳐.”」

친구가 했던 말 그대로. 순간 온몸에 저릿한 소름이 돋았다.

그동안 여주인공인 예진은 이내 무언가 체념한 듯 한숨을 흘리며 그에게 물었다.

―내가 지금 꿈을 꾸나 봐요. 그게 아니라면 대표님이 미치신 걸 테니까.

―내가 미쳤다고?

―네, 그것도 단단히.

오예진이 목소리에 힘을 실어 말하자, 최진의 인상이 구겨졌다.

그동안 예진은 신경질적으로 침대에서 일어나 제 옷을 주워 들며 답했다.

―그래요. 덕분에 퍽이나 좋은 경험 해 봤으니 쌤쌤이네. 그래. 헤어져요.

예진은 어디가 앞인지 뒤인지 구분할 정신도 없이 옷을 입었다.

그러곤 테이블에 놓인 제 가방을 잡아채듯 챙겨 들고선 호텔 문으로 향했다.

그동안 최진은 예진을 뒤따르며 원치 않는 배웅을 했다.

날 문지르는 다가오는 네 한 걸음에 나는 숨이 막혀 와

날 분지르는 떠나겠단 싫은 한마디

잔잔하게 흐르는 노래와 다르게 예진이 거칠게 신을 갈아신고 문을 열었다.

그때, 기다렸다는 듯 그 모습을 여유롭게 바라보던 최진은 천천히 말을 더했다.

―오예진 씨.

―아직도 할 말이 남으셨어요?

―네.

날 아프게 하지 말아

위한다면 움직이지 말아

―오늘부터 출근 안 해도 된다고요.

―뭐라고?

―당신, 오늘부로 해고니까.

그날을 기억해

드라마의 클라이맥스와 동시에 나온 남자 보컬의 목소리.

주연은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하마터면 반쯤 남은 맥주를 카펫에 쏟아 버릴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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