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8)
Last Day.
어제라는 뜻이 되기도 하지만, 영어에 미숙한 나이기 때문일까.
난 이 짧은 단어가 ‘마지막’ 날이라는 것에 더 마음이 갔다.
노래하며 ‘Last Day’를 뱉을 적마다 이은지를 떠올려서 그럴 수도 있다.
내가 가장 많이 괴로웠던 날이자, 온 마음을 다 쏟아 내듯 펑펑 울어 버렸던 그날.
“대표님, 저 미친 듯이 일만 하게 만들어 주세요.”
이은지가 세상을 떠나고 사흘 뒤였던가.
그로부터 대표님을 찾아뵌 날.
난 대표실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박으며 빌었다.
“안 된다. 몸 상해.”
대표님의 대답은 단호했다.
반대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미 사흘간 밤낮으로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 간 것만 여섯 차례.
심지어 병원에선 발작해 가며 다양한 방식으로 탈출하기도 빈번했었으니까.
그런 반응에 의사는 더더욱 내가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며 대표님에게 수십 번을 강조한 상황이었었다.
하지만 나는 안정을 원하지 않았다.
사흘.
짧은 날이었지만 나한테는 그 시간이 지옥과 다름없었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이은지를 떠나 보내던 마지막 순간.
차게 식은 몸에 그럴싸한 화장으로 생기 있어 보이는 듯했던 그 얼굴.
두려움도 두려움이었지만, 눈을 떠도 어렴풋한 그 모습이 눈에 보였다.
환각이었다.
알고는 있었다.
지금 난 미쳤다는 걸.
그래서였다.
“차라리 몸이 상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뭐?”
“저 이대로는 이 미친 눈알을 파 버리고 따라 뒤져 버릴 거 같아서…….”
“은호야, 너 어떻게 그딴 말을 그렇게 쉽게……!”
“저 이런 부탁 잘 안 하는 거 알잖아요.”
“안 된다!”
대표님은 그날.
우리 남매와 만난 이래 가장 크고 무섭게 화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무섭지 않았다.
“쉽게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건 대표님이 더 잘 알고 있잖아요!”
이미 난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 언제라도 내 같잖아진 이 목숨을 내어놓을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나는 아직 살고 싶었다.
아니, 살아야만 했다.
“그러니까 말하는 거예요.”
저 살고 싶어요, 대표님.
“대표님, 저 이런 잡생각에 지지 않게, 제발 차라리 일에 미치게 해 주세요.”
이젠 컨디션 나쁘다고 빠지지도 않을 테니까.
저 잘난 맛이 취해서 비뚤어지지도 않을 테니까.
“그냥 미친 듯이 노래만 하고 싶어요. 대표님은 저 그렇게 만들어 주실 수 있으시잖아요.”
곁에 있는 이은지의 환상이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게 환상이라는 걸 알기에, 이딴 가짜에게는 지고 싶지 않았다.
“……그럼 약속해라. 케어 받으면서 일하기로.”
“…….”
어려운 조건은 아니었다.
내가 이런 상태만 아니었다면.
대표님이 내건 조건에는 대답하지 못했다.
할 수 없었다.
나는 병원에 발을 들일 수 없으니까.
병원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입안이 바싹 메마르고, 누군가 내 목을 쥐고 죄여 드는 그런 기분이었다.
처음엔 그날 이은지 대신 방송을 택한 원망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에는 그게 죄책감의 형태라는 걸 깨달았다.
그 죄책감에 눌려 부서져 가는 그동안, 나는 기계적으로 노래에 몰두했다.
그건 책임감이었다.
결과적으론 그 시간이 결국 나를 살렸다.
그래서 미치도록 죽고 싶었지만 반쯤 미쳐 버린 그 상황에도 나는 죽지 못했다.
「앞으론 약속했으면 철저하게 지켜, 좀. 꼭.」
죽을 수 없었다.
이은지가.
망할 먼저 가 버린 내 동생이.
나를 세상에 묶었으니까.
대표님을 통해서 나는 매일 집에 돌아온 즉시 기절할 만큼 과한 스케줄을 잡았다.
그래서 이젠 이은지를 생각할 틈이라고는 하루에 차로 이동하는 잠깐밖에 없을 만큼.
정말 미친 듯이 바쁘게 살았다.
그렇게 반년쯤 지났을 때였을까.
현실을 악몽으로 만들었던 환영이 더는 눈앞에 보이지 않았다.
머리를 울리던 환청도 완전히 사라졌다.
이은지가 세상을 떠난 뒤의 나는 매일 그 순간이 나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나는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지금 마지막 날을 부르짖는 이 순간.
알고 있잖아
Last Day
잊지 말아
Last Day
한곳에서 나고 함께 자라 온 평생 친구인 내 동생.
우리 미운 호박 대가리 이은지가 여기서 나와 같이 노래하고 있다.
우리가 서로의 것이라며 외치던 Last Day
나는 여전히 매일 이 꿈 같은 일상에서 깨어날까 두려움에 떨며 눈을 뜬다.
그리고 이은지의 방 너머로 들려오는 익숙한 코골이가 들리면 괜스레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게 내 불안한 아침의 시작이었다.
언제 이 꿈이 깨어지는 건 아닐까.
너무 불안해서.
하지만 걱정도 잠시일 뿐.
나는 또 익숙한 이 멍청한 일상에 홀려 눈을 돌린다.
우리가 서로의 것이라며 외치던 그 Last Day
이게 그저 단순한 환상이라면.
거짓이라도 괜찮아.
난 이 환상 속 세계에 머물고 싶다.
그 Last Day
안 그러냐, 이은지.
우리의 Last Day
코러스를 쌓는 이은지를 돌아보자, 이은지는 웬일로 환하게 웃으며 호흡을 맞춰 갔다.
나는 여전히, 그때처럼 매일 이 순간이 나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노래한다.
* * *
“두 사람이 리허설 때 이미 80%는 완벽하게 해 버려서, 부족한 부분을 가다듬고 부족한 코러스랑 더블링 작업만 하도록 할게요.”
“네.”
본 녹음은 리허설 때의 여파 때문일까.
날 아프게 하지 말아
위한다면 움직이지 말아
스튜디오 안에선 더 이상 불만을 드러내는 사람이 없었다.
“아, 좋아요! 다음 넘어갈게요!”
“너무 좋아! 다음 훅 들어갈게요!”
디렉팅을 맡은 작곡가 또한 트랙에 한 마디 보컬을 찍어 낼 때마다 칭찬과 아주 사소한 디렉팅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쌓고 다시 부르고 또 쌓는 작업을 여러 차례 더 반복하고 나자, 작곡가 FL이 외쳤다.
“됐습니다!”
녹음이 끝났다는 말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은지와 난 귀를 누르던 헤드셋을 벗으며 외쳤다.
이은지는 헤드셋은 대충 악보 보면대에 걸어 두고 먼저 녹음 부스 밖으로 나섰다.
“정리 좀 하라니까.”
투덜거리면서도 손이 자동으로 먼저 뻗어졌다.
이미 들어 버린 거 그대로 놓아 두자니 그게 더 이상해 보일 것 같아서, 별수 없이 내 거와 같이 걸이에 두 헤드셋을 걸었다.
* * *
“그래서, 어떠셨어요?”
헤드셋을 정리하느라 이은지보다 조금 늦게 녹음 부스를 나왔을 때였다.
CK 스튜디오 사람들이 모여 있는 방 안에서 불안한 이은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 하는 거지?’
호기심과 불안함에 걸음이 빨라졌다.
겨우 인파를 비집고 안에 선 주인공들을 본 순간 난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흘렸다.
정홍준 부팀장과 그 앞엔 꼿꼿이 턱을 들고 있는 이은지가 있었다.
턱을 들고 있긴 했지만, 이은지는 정홍준을 올려다보고 있진 않았다.
이은지의 키부터가 워낙 170 중반에 가까운 보통보다는 큰 키였으니까.
“여전히 저희가 걱정스러운 ‘연습생’인가요?”
이은지는 친절한 듯했지만, 어딘가 비틀린 것 같은 미소를 띠며 정홍준에게 물었다.
클라이맥스 당시 나 또한 당신이 말했던 대로 깐 우리는 어떠냐는 심정으로 창을 쏘아보긴 했었다.
하지만 저렇게까지 직접적으로 말을 하는 건 뭐랄까.
‘그래도 우리가 ‘을’ 입장인데…….’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이은지에게 그런 상식이 통할 리가 없었다.
쟤는 어릴 때부터 할 말이 있으면 앞에서 해야 했으니까.
“크흠.”
정홍준은 헛기침하며 이은지를 흘겨봤다.
척 봐도 자리를 피하고 싶어 하는 것이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 인파의 벽은 스튜디오 사람들이 정홍준을 압박하는 벽이었는지 누구 하나 피해 줄 기색이 없었다.
중심에는 우리를 캐스팅했었던 민기호 팀장이 선두에 있었다.
곁에 있던 대표님은 오늘따라 별말 없이 흐뭇한 시선으로 이은지를 보며 웃고만 있을 뿐이었다.
‘평소라면 은지를 먼저 말렸을 대표님인데.’
상황을 가만히 바라보던 나는 괜스레 지끈거리는 머리를 쥐었다.
그래도 그 대상이 우리를 무시했던 정홍준이기 때문일까.
내심 후련한 기분도 없진 않았다.
“잘……, 예, 잘하네요. 내가 좀, 심하게 말했었네요. 예.”
정홍준은 피하기가 불가능하단 걸 알았는지 입술을 이리저리 뒤틀다 겨우 말을 뱉어 냈다.
정홍준의 이마가 붉어지다 못해 터질 거 같은 걸 보아하니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사과인 모양이다.
“픟.”
그때였다.
난 황급히 손등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고개를 돌렸다.
척.
정홍준 부팀장 뒤에서 이은지에게 빳빳한 엄지를 세운 민기호 팀장 때문이었다.
이은지는 여유롭게 민기호 팀장에게 싱긋 웃어 보이더니 태연하게 마저 말을 이었다.
“앞으론 기억해 주시고 저희 ‘E-ung’ 많이 불러 주세요.”
이은지는 마치 자기가 언제 정홍준을 날카롭게 쏘아붙였냐는 듯.
뻔뻔히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가식 가득한 목소리로 인사를 덧붙였다.
* * *
“늦긴 했지만, 저녁 겸 같이 식사라도 하고 가시죠.”
촉박했던 녹음과 불같던 시간이 모두 정리된 후, 민기호 팀장은 식사라도 하고 가라며 우리를 잡았다.
마음은 얼른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CK E&M의 사내 식당에 들어선 순간 마음이 바뀌었다.
“오빠, 오빠, 저기 스테이크 있어!”
“어디?”
“저기 풀떼기 코너 옆에.”
CK E&M 사내 식당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우와!”
“멋있다―!”
은지의 한마디에 어른스러움을 유지하려던 은호의 정신 줄도 결국에는 힘없이 툭 끊어졌다.
있어 보이는 척하기엔 그 고깃덩어리가 설렐 정도로 큰 탓이었다.
남매는 쉐프가 철판에서 펼치는 화려한 불 쇼를 보며 마술 쇼를 바라보는 어린아이들처럼 감탄을 흘려 댔다.
처음엔 은지와 은호처럼 CK E&M 직원들도 비슷한 반응이었었다.
다만, 그들에겐 이젠 일상이 된 탓에 사내에서는 쉐프의 쇼가 익숙해져 버렸다.
‘후후…….’
오랜만의 찬사에 쉐프는 길었던 매너리즘을 깨고 솟아오른 어깨를 하며 평소보다 화려한 쇼를 펼쳤다.
“와아아!”
은지와 은호가 손뼉까지 치며 감동한 그동안.
그 모습을 한 걸음 멀리서 지켜보던 박창석 대표는 민망함에 손바닥으로 제 눈을 가렸다.
“은지야, 은호야…….”
꽤 큰 목소리로 내지른 환호에 식당에 있던 다른 직원들이 하나둘씩 남매에게 눈길이 모였다.
“하하. 일부러 환호하라고 쉐프 분이 바깥에 계시는 거니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도 저렇게까지 큰 소리를 내는 건 민폐인 것 같아서 그러죠.”
“에이, 아니에요. 우리 회사 쇼를 저렇게 좋아해 주신다는 거니까. 여기 사람으로서 뿌듯하기만 한걸요.”
민기호 팀장은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식사하시라며 박 대표를 자리로 이끌었다.
“그나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