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4)
「“은호 씨가 잘 되면 내가 평생 은혜를 갚아야 할 분께 크게 도움이 돼.”」
난 선배의 이야기가 박 대표님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2000년대 초를 휩쓴 그룹 ‘톡신’.
톡신은 본래 TaKa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한 조직폭력배가 운영하는 질 나쁜 작은 기획사에서 시작된 그룹이었다.
그리고 박 대표님은 혼자서 톡신의 멤버들을 회사에서 빼냈고, 이후에는 그들을 TaKa 엔터테인먼트에 연결하기까지 했다.
그런 톡신 멤버들.
특히 리더였던 지예찬 선배에게 박 대표는 말 그대로 생명의 은인이었겠지.
“우리 안무. 내가 욕심 좀 많이 부려서, 일주일 안에 외우는 거 절대 쉬운 일은 아닐 거거든.”
경고인 것 같았지만, 걱정은 없었다.
뭐든 일단 해 봐야 아는 법이니까.
“열심히 하겠습니다.”
기대한다는 선배의 인사를 끝으로 통화는 끝마쳤다.
그리고 난 서랍장에 등을 기댔다.
다리가 풀릴 것 같았다.
[야, 나 선배님이 쇼케이스 때 같이 무대 하재.]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구별이 되지 않아서 이은지에게 까톡을 보냈다.
쾅!
얼마 뒤, 이은지의 방문이 부서질 듯 열린 소리가 들렸다.
얼마나 한 발에 힘을 실어 걷는 건지, 물소 떼가 지나가듯 집이 진동했다.
쾅!
곧 방문이 거칠게 열렸다.
“쇼케이스? 무슨 쇼케이스!”
“춤, 추래.”
“댄서로 간다는 말이야?”
“아니…….”
“빨리 좀 말해! 무슨 말인데!”
난 아직도 정신이 혼미했다.
이은지는 대답이 느린 게 답답했는지, 내 멱살을 잡아 쥐며 짤짤 흔들어 댔다.
난 이은지 손을 뿌리치며 다시 말을 이었다.
“지예찬 선배님 앨범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던 수록곡.”
“어, 그거 뭐.”
“그거 쇼케이스에서 발표할 건데, 무대 같이하자고 방금 전화 왔었어.”
“너한테 예찬 선배님 번호가 있었어?”
난 힐끔 휴대폰을 보다 고개를 들었다.
“이제 생겼네.”
이은지는 부러워 미칠 것 같은 표정이었다.
본인도 참여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러나 보였다.
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는 건, 이은지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었다.
‘하루에 적으면 두 곡, 많을 땐 네 곡까지.’
최근 이은지는 곡을 듣기만 하는 나보다 더 바쁜 매일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까지 이은지가 곡을 쏟아 내는 이유는 ‘경쟁’ 때문이었다.
작곡을 할 수 있는 멤버가 있어도 추가로 작곡가가 있는 경우는 꽤 흔한 편이다.
배진수 작곡가님처럼 선생님 같은 역할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오히려 경쟁자인 느낌이 훨씬 크다.
‘본인의 곡이 픽스되야 하니까.’
이은지도 마찬가지였다.
은지가 곡을 쓸 수 있다고는 하나, 그래도 대표님은 아는 작곡가분들께 연락을 돌렸다.
‘우리에게 더 좋은 곡을 주기 위해서.’
이은지도 처음엔 원망했지만, 뜻을 알고 있기에 탓을 하진 않았다.
반면.
이은지는 작곡가의 역할도 있지만, 보컬도 이은지에게는 중요한 역할이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못 잡겠으면, 하나는 놓아라.”」
작곡 때문에 이은지가 레슨을 두 번이나 빠트렸을 때, 대표님은 결국 초강수를 뒀다.
하지만 이은지는 자신이 만든 곡이 다른 곡들을 제치고 데뷔곡으로 뽑혔으면 했는지, 포기는 없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잠까지 줄이며 하루를 나노 단위로 보내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 제대로 해. 잘하고 와.”
이은지는 응원인지 협박인지 모를 말을 던지고 제 방으로 돌아갔다.
대표님께도 이야기를 전달했는데.
“잘하고 오도록 해.”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대표님은 짧은 응원으로 이야기를 끝냈다.
그리고 이틀 뒤.
선배의 일정에 맞추기 위해 난 미리 안무 영상을 전달받아서 어느 정도 눈에 익혔다.
“워킹이랑 포인트, 그리고 자리 배치만 잘 익히면 문제없겠어요.”
“그거, 전부를 말하는 거 아닌가요?”
“맞아요. 딱 100번 정도만 반복해 보면 감이 잡히겠죠?”
안무가 선생님이 싱긋 웃으시며 물었지만, 난 차마 따라 웃을 수 없었다.
이은지에 비해 여유롭던 내 일정은 끝이었다.
‘일주일.’
숨이 턱 막히는 짧은 시간이었다.
이은지를 따라, 나도 잠 시간을 줄이며 연습에 빠졌다.
그렇지 않고선 따라갈 수가 없을 만큼, 선배의 경고대로 안무의 난이도는 극악이었다.
* * *
그리고 오늘.
서울 XX 백화점 행사 홀.
“이번에 우리 예찬이 솔로곡 ‘LAM’을 들으면, 흔히 퇴폐미라고 하죠?”
―꺄아아악!
“그런 곡들로 잘 채워 놓았더라고요.”
―와아아!
“뭐, 제가 더 길게 말하는 것보다 여러분들이 보고 싶은 건 우리 예찬이잖아요?”
―맞아요!
“하하, 자 그럼, 오늘 주인공을 모시고 마저 이야기 나눠 볼까요?”
쇼케이스의 규모가 콘서트처럼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기자들과 업계 관계자는 이해가 된다지만, 고작 1시간 조금 넘는 쇼케이스에 소식을 들은 팬들이 빼곡히 자리를 잡고 있다.
―지예찬! 지예찬! 지예찬!
팬들의 목소리가 뭉쳐져 지예찬 선배의 이름이 넓은 홀을 울렸다.
선배의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는 큰 환호성이었다.
“예찬 씨가 1년 만에 솔로 ‘LAM’으로 돌아왔습니다! 여러분 함성으로 맞아 주세요!”
―꺄아아아아아악!
같은 톡신 멤버 오현 선배의 소개 이후.
비명인지 환호성인지 모를 소리에 무대 뒤에 얇은 벽으로 이뤄진 대기실이 진동했다.
안무팀과 함께 차례를 기다리던 난 흔들리는 벽을 따라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내가 한창 바쁘게 주가를 올릴 때도 난 이 정도 규모의 팬층은 없었으니까.
‘잘할 수 있다. 실수하지 말자.’
홀로 방방 뛰며 시끄러운 심장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하던 그때였다.
“오랜만이에요, 여러분.”
―꺄아아아악!!!
지예찬 선배의 인사에 안 그래도 컸던 함성이 더 크게 울렸다.
그리고 그때였다.
‘아.’
순간.
이 큰 함성이 날 향한 것이 아니라는 게 실감이 났다.
선배님의 목소리에 더 커진 함성 덕분에 현실감이 훅 몰아쳤다.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 잘하고 와.”」
여기서 이은지의 협박 같던 응원이 위로될 줄은 몰랐는데.
‘이 홀 안에서 날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그 사실은 날 좌절시키기보다, 오히려 불이 붙게 만들고 있었다.
혼자 이 팬분들을 다 가진 건 치사하니까.
어찌 보면 질투일 것이고, 욕심이었다.
하지만 난 오늘 무대를 통해 보란 듯 그 욕심을 드러낼 생각이었다.
* * *
“자, 이번엔 앨범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들으면서, 예찬 씨가 직접 곡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예찬의 타이틀곡 ‘LAM’의 무대가 끝난 뒤.
“1번 트랙, ‘LAM’은 방금 듣기도 했고 앞서 많이 이야기도 나눴으니까. 이제 2번 트랙부터 들어 보도록 할게요.”
오현의 진행에 따라 2번 트랙 곡의 하이라이트가 스피커를 타고 홀에 울렸다.
내 느낌이 경고해
그래
네가 말하려는 그거
은호의 목소리로 시작된 벌스 이후.
째깍, 짤깍.
총을 장전하는 소리에 이펙트를 걸어, 시계 소리로 표현한 의 후렴구가 이어졌다.
무슨 소리
이건 사인
내 마지막 사인
날 떠나지 말라는 기도
째깍, 짤깍.
시계가 시끄러워
고개를 돌리지 마
하이라이트가 끝나고 노래의 잔상도 흐려질 때쯤.
지예찬은 천천히 마이크를 들며 이야기를 이어 갔다.
“이번 곡의 주제는, 오늘이 이별할 날인 걸 알면서 그 자리에 온 마음을 표현했어요.”
“제가 듣기로 째깍거리는 소리가 시계가 아니라, 총을 장전하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맞는 건가요?”
“하하, 네. 맞아요. 좀 당장 이 이별을 맞아야 할 시간을 믿고 싶지 않아서.”
“집착인가요?”
“그렇죠. 감정에 사로잡혀 강제로라도 그 사람을 자리에 묶어 두고 싶은 비틀린 마음. 예.”
“그 마음을 장전하는 소리로 표현했다고 봐 줬으면 한다, 라는 거죠?”
“그렇죠.”
“2번 트랙에서 예찬 씨가 특별히 집중해 주셨으면 하는 부분이 있나요?”
지예찬은 오현과 눈빛을 맞추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들었다시피 벌스와 브리지 파트를 맡아 준 친구가 있어요. 은호라고…….”
“오, 조금 전에, ‘네가 말하려는 그거’ 이 부분 부른?”
“맞아요. 오현 씨가 부르니까 그 귀에 착하고 감기는 그 느낌이 안 살긴 하는데.”
“아, 난 그래서 센스 담당이라니까요.”
“하하.”
“자, 그럼 2번 트랙은 이렇게 넘어가도록 하고 다음 곡으로…….”
앨범 수록곡에 관한 긴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후로도 한참이나 토크 시간을 가진 후에서야, 은호가 대기실을 벗어날 마지막 무대 차례가 돌아왔다.
“자, 저는 이제 인사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지예찬의 솔로 앨범 ‘LAM’과 함께한 MC 오현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찬 씨의 Co-Sign.”
―꺄아아아악!
오현의 마무리 인사가 이어지는 그동안, 무대 뒤가 분주해졌다.
“……을 소개해 드리면서, 저는 이만 떠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현의 인사를 끝으로 모든 조명이 죽고 시선을 끄는 인트로 영상이 재생됐다.
톡신의 보라색 응원 봉이 흔들리던 그때, 무대에 빛이 들었다.
* * *
“은호 씨, 긴장하지 말고.”
“네, 선배님.”
지예찬 선배는 가볍게 말을 흘리며 먼저 무대로 나아갔다.
긴장은 하긴 했지만, 걱정은 없었다.
‘일주일간,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한 정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니까.’
인트로 간주에 맞춰 먼저 무대로 나선 선배가 부드러운 춤 선을 뽐내고 있는 그동안.
벌스의 시작을 알리는 색소폰이 울려 퍼졌다.
비록 내 무대는 아니지만, 돌아온 시간에서 다시 데뷔를 시작한 첫 무대였다.
내 느낌이 경고해
아직 네가 오기 전인데
테이블 위 한 송이
오늘따라 붉어 보여
은호가 목소리를 내며 무대에 오른 순간.
몇몇이었지만 흔들리던 톡신의 응원 봉이 움직임을 멈췄다.
신경 끄고 싶은데
웃고 떠들고 싶은데
내 숨이 틀어막혀
내 느낌이 경고해
목을 움켜쥐는 안무를 취하며, 은호는 날 세운 시선을 의도적으로 응원 봉의 움직임이 멈춘 곳을 주시했다.
조명에 팬들의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반짝이며 주시하는 그 눈동자는 아주 또렷하게 보였다.
그래서 붙잡고 늘어졌다.
나도 당신을 보고 있어.
그러니까.
선배가 아니라, 날 보라고.
그래
네가 말하려는 그거
벌스를 끝마칠 때쯤, 끝까지 시선을 다른 곳을 옮기지 않은 팬에게 감사의 표시로 미소로 인사를 대신했다.
응원 봉을 흔드는 일은 이미 잊은 듯.
시선을 맞췄던 지예찬의 팬은 입을 틀어막으며 끝까지 은호를 바라봤다.
“쟤 누구야?”
그때, 이은호를 주시하는 눈길은 그 팬 하나만 있지 않았다.
“아니, 누군지는 됐고, 당장 어디 소속인지 알아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