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13화 (13/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3)

“앞으로 사랑 노래도 괜찮을 거 같아요.”

“진심이야?”

“네.”

그날, 우리는 총 다섯 곡의 사랑 노래를 불렀다.

처음엔 힘들 것 같던 까지 진지한 마음으로 임하며 한 트랙을 달릴 수 있게 되었을 때.

이은지와 난 서로 무언의 긍정을 뜻하는 고갯짓을 서로에게 건네며 말없이 파도처럼 다가온 우리의 변화를 태연하게 받아들였다.

이런 변화에 가장 크게 경악한 건 대표님이었다.

“어떻게, 하루 만에…….”

대표님의 물음에 이은지와 난 슬쩍 눈을 맞추며 피식 샌 웃음을 지었다.

이걸 경쟁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그렇다고 몰입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곡에서의 나와, 현실에서의 나를 분리할 수 있게 되었다고 설명하면 될까.

“그냥, 됐어요.”

설명이 힘든 건 이은지도 마찬가지인 듯, 은지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그때였다.

이은지는 각 잡힌 자세로 말을 덧붙였다.

“대표님, 저 ‘듀오’를 새로 쓰고 싶어요.”

“어?”

안 그래도 복잡해 보이던 대표님의 표정에 근심 걱정이 물밀듯 몰려오는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지금보다 훨씬 더 좋게 찍어 낼 자신 있어요. 저한테도, 이은호한테도 어울리는 그런 곡으로요.”

무슨 의미인지, 이은지는 힐끔 나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생각에 잠긴 대표님은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침묵 속에서 대표님의 입이 다시 트인 건 적어도 10분 남짓한 시간이 흐른 후였다.

“엎는다면, 은지, 네 곡이 픽스되지 않을 수도 있어.”

“……괜찮아요.”

은지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그럼 한 번 다시 해 봐.”

“네!”

혹여나 대표님의 결정이 번복될까.

이은지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 * *

‘은호와 은지가 사랑 노래를 할 수 있게 됐다.’

‘은지가 고음을 할 수 있다.’

‘은호가 중저음 음역에서도 강해졌다.’

세 가지의 변화는 앞으로의 방향성에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박 대표는 이렇게 된 거, 일전에 사랑 이야기라는 주제 때문에 아깝게 놓쳤던 곡과 가사들도 다시 한 번 보고 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다.

하루가 멀다고 좁은 골목 안 사옥에 낯선 손님들이 자주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오늘도 또 모르는 차가 왔네.”

대표님은 마치 이날만을 기다렸다는 듯.

A&R로 활동하던 시기에 알고 지냈던 모든 작곡가에게, ‘이 아이들은 남매다.’라는 말을 덧붙여 가며 그날의 <술이야> 녹음본을 돌렸다.

와중에 이은지는 여러 작곡가에게 연락을 돌렸다는 말에 앨범에 제 곡을 싣고 말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며 하루 세 곡씩을 꾸준히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야말로 작곡에 미친 모습이었다.

“어때?”

난 이은지가 만든 곡에서 한 번.

“어떠냐?”

대표님이 전달하는 곡에서 또 한 번.

쏟아지는 곡에 파묻혀, 고르고 또 고르며 곡을 선별하는 매일을 이어 갔다.

* * *

쇼케이스

곡 선별에 정신없는 나날.

“안녕하세요!”

―와아아아!

“오늘 특별 일일 MC를 맡게 된 톡신의 센스 담당! 오현입니다!”

―꺄아아아악!

난 지금 왜 때문인지.

서울 유명 XX 백화점 홀에서 곧 있을, 예정에도 없던 다른 사람의 곡으로 이은지도 없이 데뷔 무대를 앞두고 있다.

예정에도 없던 무대의 시작은 지난주 일요일, 오랜만에 찾아온 쉬는 날이었다.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오, 은호 씨!”

“누구…….”

“하하, 갑자기 전화해서 놀랐구나. 나 예찬이에요.”

몇 주 내내 쉴 틈 없이 신곡을 들은 귀를 쉬게 할 겸, 오늘은 운동과 연습에만 빠져 있으려고 했는데…….

지예찬 선배님한테서 뜬금없이 전화가 걸려왔다.

“선배님……?”

“우리 후배님, 그동안 잘 지냈어요?”

“아, 예. 잘 지냈습니다.”

“그게 다름이 아니라, 은호 씨, 혹시 전에 은호 씨가 참여했던 내 곡 제목 기억해요?”

“네, 사인(Sign)이요.”

“오, 기억해 줬네?”

“곡이 좋아서, 기억에 남았습니다.”

“이야, 감동이네.”

그렇게 둘러대긴 했지만, 거짓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회귀 전엔 선배님의 타이틀곡보다도 더 취향에 더 맞아서 자주 들었던 곡이었으니까.

“그거 제목을 바꾸기로 했거든.”

가제였던 제목을 발표 전에 바꾸는 일이야 흔히 있는 일이었다.

그걸 굳이 피처링한 후배에게 전달하는 일도…….

흔하진 않았지만 그럴만한 이야기였다.

“코 사인(Co-Sign)으로.”

바뀐 제목을 듣기 전까진, 그렇게 생각했었다.

“코 사인…….”

당장 들었을 땐 별생각이 없었다.

아, 그렇구나.

딱 그 정도.

‘그런데 코 사인(Co-Sign)이 무슨 뜻이었지?’

공동 서명이라던가, 공동 참여를 뜻하는 단어를 혀에 굴려봤다.

그러다 생각났다.

회귀 전 한창 바쁘게 일하던 1년 때.

미국의 한창 뜨던 스타였던 아티스트와 함께 싱글 곡 작업을 짧게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는 ‘Co-Sign’을 받아 급성장하게 됐었고, 그때의 감정을 곡에 담고 싶다며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려줬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기에 자주 비유하진 않지만…….’

Co-Sign은 해외에서 특히 업계에서, 유명 아티스트가 자신의 음반에 의도적으로 밀어줄 아티스트를 넣어 홍보해 주는 일을 종종 그렇게 불렀다.

‘그 말은 즉…….’

이해됐을 땐, 놀라다 못해 휴대폰을 하마터면 떨어뜨릴 뻔했다.

방금까지 나른하게 퍼져 있던 몸에 순식간에 혈기가 도는 기분이었다.

“선배님, 제가 과의식, 아니. 자, 자의식 과잉처럼 보일 수 있다는 거 알지만 혹시 제목을 그렇게 바꾸신 의도가…….”

김칫국일 수도 있으니까.

사레가 걸리지 않기 위해, 확실하게 물었다.

“오. 의미를 알고 있는 줄은 몰랐는데…….”

지예찬 선배의 대답과 동시에 난 앞에 놓인 김칫국을 사발로 원샷을 때렸다.

첫사랑에 빠졌을 때도 이렇게 심장이 시끄럽게 뛴 적은 없었을 텐데, 가슴이 아릴 만큼 쿵쾅거려 댔다.

“자의식 과잉은 무슨, 은호 씨는 조금 더 당당해져도 돼. 내가 찍어 둔 후배 중에 사람들한테 인정 못 받은 녀석들은 단 한 명도 없거든.”

웃으며 자신하는 선배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이런 취급을 감히 내가 받아도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이 스쳤다.

솔직히, 난 그날 녹음실에서 지예찬 선배의 곡을 빼앗을 각오로 노래했었다.

‘그랬는데, 선배는 마치 아끼는 피규어를 달라며 생떼를 쓰는 사촌 동생에게 흔쾌히 그걸 선물한…….’

보살인가?

난 선배처럼 행동할 수 없는 사람이라서일까.

대놓고 물을 수밖에 없었다.

“왜죠?”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나는, 특히 우리 남매는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자본주의 세상의 가장 밑바닥에서 사람답게 살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노동을 치러야 하는지 직접 겪어 봤으니까.

대표님도 그랬었다.

우리 남매의 의식주와 교육을 대가로…….

‘NRY 엔터테인먼트 계약도 그에 합당하게 치렀어.’

그러니까, 이번 일 역시.

단순히 ‘선배의 마음에 들어서’라는 이유에는 너무 과한 선물이었다.

“선배님께서 절 도와주셔도 전 신인이라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없을 텐데요……?”

그저 ‘감사합니다!’라며 넙죽 받아먹어도 됐지만, 무언가가 분명 더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놓을 수 없었다.

게다가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 알고 치르고 싶다는 개인적인 생각에 난 결국 질문을 해 버렸다.

“하하하. 아, 은호 씨 대단하네.”

“버릇없어 보였다면 죄송합니다.”

“버릇없다라, 그러네. 어른이 준다고 하면 군말 없이 ‘네, 네.’ 하고 받을 것이지!”

“죄송합니다.”

장난기 섞인 목소리이긴 했지만, 차마 선배님께 장난치시는 거냐며, 거기까지는 물을 수는 없었다.

그때, 전화 너머의 선배는 가볍게 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이었다.

“방금은 장난이고, 다른 녀석들이라면 모르겠지만 난 은호 씨 같이 주고받는 게 확실한 사람 좋아해. 깡은 마음에 드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은호 씨 말대로 공짜는 아니야. 난 음악으로 사업을 하는 사람이지, 봉사 활동 하는 사람은 아니거든.”

“네. 저도 공짜를 좋아하지 않는 쪽이라…….”

공짜를 싫어한다.

이건 어릴 적 경험 탓이 컸다.

난 굶주림에 헐떡이는 이은지를 살리기 위해 빵 가게에서 도둑질을 했었다.

「“꼬마 도둑, 이 아저씨랑 이야기 좀 하자.”」

그때, 난 처음으로 우리를 사람답게 대해 준 사람을 만났다.

그 가게의 사장님이었다.

「“그거 몇 푼이나 한다고 김 사장은 이런 어린 애들을 부려 먹나?”」

나는 도둑질을 하다 걸린 일로 가게 사장님께 걸려서 거기서 일을 시작했다.

누구는 사장님을 손가락질했었지만, 정작 우리에게 그분은 세상을 가르쳐 주신 분이었다.

일을 하는 만큼 정직한 대가를 주셨고, 이은지와 난 사장님 덕분에 굶지 않았다.

그해 겨울에는 유독 추웠음에도 불구하고 얼어 죽지 않고 세상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랬던 사장님이 빵집 장사를 접으시고 떠나시기 전에 하셨던 말씀이 있었다.

「“은호야, 공짜를 좋아하지 말아라.”」

공짜를 밝히는 건 곧 남의 것을 밝히는 것과 같다며. 사장님을 어린 우리에게 냉정히 말을 이었다.

「“네가 대가 없이 받은 모든 것이 훗날에 네가 가진 것을 넘어서 너 자체를 집어삼킬 수도 있어.”」

이젠 얼굴조차 떠오르지 않을 만큼 흐린 기억이었다.

다만, 그때 사장님 말씀만큼은 또렷했다.

‘살면서 우리가 엇나가지 않을 수 있었던 가장 큰 기둥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기둥은 지금까지도, 시간을 한 번 되돌아온 지금도 여전히 굳건하다.

그러니, 난 선배의 선물을 마음 편하게 받을 수 없었다.

“제가 뭘 하면 되는 건가요?”

“이렇게 나온 거, 그래. 나도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휴대폰을 쥔 손이 긴장 때문인지 습해져 간다.

“일주일 뒤에 내 쇼케이스에 출연해 줘.”

“네?”

예상치 못한 제안에 예의가 아닌 걸 알면서도 크게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쇼케이스 날, 마지막에 Co-sign 무대를 하려고 하거든.”

“그게 보답이 될까요?”

“충분해.”

아무리 생각해도, 신인에게 무대에 설 기회를 준다는 건 큰 기회다.

어떻게 보자면, 이건 내가 선배에게 빚을 더 지는 느낌이기도 했다.

“은호 씨가 잘되면 내가 평생 은혜를 갚아야 할 분께 크게 도움이 돼.”

“아…….”

세상은 돌고 돈다.

보답도 그런 모양이었다.

“참, 은호 씨, 쇼케이스 쉽게 생각하진 마.”

무슨 의미지?

의문을 가질 때였다.

“난 보컬만 해 달라 한 적은 없다?”

장난기가 가득 섞인 선배의 말투에 살짝,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우리 안무. 내가 욕심 좀 많이 부려서, 일주일 안에 외우는 거 절대 쉬운 일은 아닐 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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