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12화 (12/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2)

‘은호와 은지는 세상 사람들과 그림체가 다르달까.’

방음 부스의 투명한 문이 액자 틀이라도 되는 듯, 이하늘은 그림 같은 남매를 보며 픽 웃음을 터뜨렸다.

은호와 은지는 첫 만남에는 조금 예쁘장한 아이들이었다.

다만.

길거리 생활을 오래 하며 상처를 많이 받았던 건지, 두 아이는 사람에 대한 불신이 정말 정말 깊었다.

하지만 결혼도 하지 않았으면서 아이들의 아빠 노릇을 시작한 박 대표로 인해 두 사람은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그렇게, 박 대표의 조금 철저하다 싶은 관리와 교육을 받으며,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이하늘은 수업을 위해 방문한 두 사람을 볼 때마다 종종 흠칫하곤 했다.

관리가 잘 된 은호와 은지는 아이돌보다는 배우상에 가까웠다.

남매라고 하지만, 오히려 성별이 다른 쌍둥이에 가까운 외모.

그런 와중에도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 두 사람의 분위기까지.

은지와 은호는 존재만으로 시너지가 뛰어났다.

세상에 아름다운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그런 두 사람이 접근하기 쉬운 사랑 노래를 부른다면?

‘상업적으로도, 예술적으로도.’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기회였다.

이 바닥에서 사랑이라는 주제는 흔한 소재지만, 한편으론 그만큼 무궁무진한 소재다.

흔하기에 더 쉽게 공감을 이끌어 올 수 있다는 장점까지.

그 장점을 버리고 간다는 건 상상 이상으로 큰 손해이긴 했다.

‘게다가 박 대표는 모든 책임을 져야 할 프로듀서니까, 더더욱 욕심을 포기하기가 힘들겠지.’

NRY 엔터는 아직 자리를 잡아 가는 중으로, 이하늘이 지금껏 다녔던 TaKa와 같이 대기업급 기획사처럼 각자의 일이나 부서가 크게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이하늘은 대표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두 사람을 설득 혹은 교육해야 하는 특별 임무를 해내야 하는 게, 바로 두 사람의 보컬 스승인 이하늘 자신이라는 걸 알기 전까진 그랬다.

‘이번 방법으로 제발. 두 사람의 사랑 노래 장벽을 조금이라도 허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하늘이 부스 안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그녀가 돌아온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두 사람은 학원에 도착할 때부터 쥐고 A4 용지 더미를 펄럭이며 열띤 대화를 이어 가고 있었다.

“이건 어때.”

“그건 너무 전원 버튼 같아서 별로.”

“그럼 이건?”

“음, 그건 그냥 별로.”

“아, 그럼 이은지 네가 직접 좀 고르던지!”

“그렇지만, 내가 고르자니 다 괜찮아 보이면서도, 뭐랄까. 마음에 쏙 들어오는 게 없는걸.”

“망할.”

이하늘은 티 테이블에 챙겨 온 텀블러를 놓으며 은호와 은지의 시선을 끌었다.

“얘들아.”

“아.”

“팀 로고는 집에 가서 마저 고르도록 하고, 다시 시작해야지?”

“네.”

은호는 재빠르게 서류 더미를 정리하며 이하늘에게 답했다.

은지는 빤히 보던 A4 용지를 휙 빼앗기자 사납게 눈꼬리를 올리며 은호를 쏘아봤다.

그것도 잠시.

은호 뒤로 선 이하늘과 눈이 맞았는지, 은지는 억지스러운 미소를 띠며 히죽 웃어 보였다.

이하늘은 그런 은지에게 웃음을 터뜨리며, 달달한 가사만 그득했던 용지들을 거둬 갔다.

그리고 새로 뽑아 온 가사를 두 사람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번엔 조금 전보다 덜 힘들 거야.”

사람은 종종 극단적으로 어려운 것에 시도하고 무너진다.

하지만 그렇게 무너져 가던 순간.

문득, ‘이 정도는 가능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 만큼 해 볼 만한 것을 마주했을 때.

멈칫하기보단 어려운 것에 부딪치며 배웠던 경험을 그것에서 꽃을 틔운다.

“가사도 전 곡과 다르게 이별에 가사인 데다, 둘이 시선도, 이번엔 힘들면 안 봐도 되니까.”

실제로 이 방법은 이하늘의 교육 방식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역체감 방법이었다.

댄스도 0.25배속으로 천천히 연습하다가 빨라지면 못 따라갈 것 같은 기분이지만, 반대로 2배속으로 연습하고 정상으로 돌아왔을 땐 오히려 느려진 느낌을 받는다.

‘휴,’

역체감은 여기서도 통했다.

고작 시선을 안 마주쳐도 된다는 말 하나에 은호는 한숨이 절로 터져 나왔다.

남매 아니랄까.

은지도 크게 한숨을 내쉬다 놀라며 은호를 돌아봤다.

* * *

솔직히 ‘달콤한’ 사랑 노래를 부르면서, 거기다 ‘몰입’까지 하며 서로의 얼굴을 진심으로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는 남매가, 과연 이 대한민국에 과연 몇이나 될까.

‘아니, 있기나 할까?’

만일 있다면, 그건 남매가 아니라 집안 말아먹을 금수가 아닐까.

적어도 난 이은지를 보면서 그럴 자신이 없었다.

이건 ‘안 한다’와 ‘못 한다’라는 영역으로 보면 ‘못 한다’의 영역이었다.

수차례 도전해 보면서 회귀 전, 당시 라디오에서 그렇게 프로답게 해낸 이은지가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거듭된 실패 때문일까.

‘이번엔, 이번만큼은.’

슬슬 승리욕과 함께 오기가 붙었다.

이번에 선생님이 나눠 주신 가사를 본 순간.

‘이건 할 수 있겠다!’

확신이 들었다.

이은지를 돌아보자, 이 생각 또한 마찬가지인 듯.

이은지도 씩 입꼬리를 끌어올려 보이고 있었다.

선생님이 곡을 재생시키자, 어쿠스틱한 피아노 선율 뒤로 짓궂은 와글 베이스 선율이 리드미컬한 음색을 더했다.

인트로의 끝을 알리는 하이햇 소리가 후, 3, 2, 1.

난 박자를 세며 멜로디에 맞춰 입을 열었다.

곁을 떠난 네가 미워서

흉을 보며 한 잔을 채웠어

술잔에 슬픔이 차올라

그때였다.

은호가 벌스에 들어선 순간.

은지는 조금 놀란 눈으로 은호를 돌아봤다.

‘이은호, 댐핑이 좀 강해진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지금까진 달달한 분위기와 최신곡인 만큼 싱잉 랩이나 밝은 음색의 곡이 잦았다.

그래서 이은호의 중저음 음색을 들어 볼 기회가 적어서 은지는 어렴풋이 그렇게만 생각했었다.

‘기분 탓이 아니었어.’

본격적으로 이별 이야기에 낮은 음색을 살리는 곡에 들어선 순간.

확신이 어렸다.

이은호의 장점은 고음 파트에서 빛을 발했다.

깔끔하게 진성으로 끌어올리는 고음은 언제나 가슴속에 시원함을 선사해 줬으니까.

하지만, 반대로 이은호의 단점은 저음이었다.

이은호는 댐핑감이 현저하게 모자랐던 보컬이었다.

스피커를 울릴 만큼 무겁지도 못했던 데다, 여운을 남기기에는 그만큼 강렬하지도 못했다.

그걸 알고 있었기에 난 지금껏 곡을 만들며 이은호의 가사를 대부분 고음에 배치해 둔 상황이었다.

반대로 난 오히려 중저음 음역대에서의 댐핑감이 강점인 만큼, 그 구간에 최대한 밀집해 뒀었다.

그랬는데…….

‘뭐야, 이 우럭 새끼…….’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배신감에 치를 떨어야 하는 걸까.

혼란스러웠다.

은지는 뒤통수가 너무 얼얼한 나머지, 실수로 훅으로 들어서는 박자도 절어 버렸다.

널 잃고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어

오늘도 한 잔

달밤에 잔을 맞추며 매일 밤 술이야

선생님의 경고 어린 눈빛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간주에서 흐르는 아름다운 선율은 들리지도 않았다.

무슨 정신으로 불렀는지, 그저 본능에 따라 차례가 되면 입을 열고 노래했다.

와중에도 귀는 이은호의 목소리에 온전히 고정한 채였다.

남인 것도 잊은 채 했던 얘기를 또 하고 또 하고

자꾸 네가 돌아오기만 기다려―

혹시나, 저음이 강해진 만큼 고음이 약해진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오히려 고음조차 깔끔해졌다.

이은호 특유의 과한 기교조차 이젠 치고 빠질 때를 안다는 듯.

이은호는 가사를 여유롭게 씹고 물고 늘어졌다가 깔끔하게 놓아 줬다.

‘소름 돋아.’

그리고, 짜증이 난다.

선생님이 나눠 준 종이에 표시는 이어지는 가사는 분명 이은호의 차례로 되어 있었다.

난 솔직히 고음이 무서웠다.

‘어차피 실패할 걸 알기에.’

‘내가 닿을 수 없는 음역이라는 걸 알기에.’

‘나한테 실패를 안겨 줄 확률이 높은 걸, 나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아니까.’

하지만 이번엔 이은호의 순서마저 빼앗으며 내질렀다.

힘을 빼고, 실패를 향한 두려움보다 큰.

이은호에게만큼은 지기 싫다는 자존심에 집중한 채.

이젠 정말 남인 거야

이것도 사랑 노래였다.

‘뭐야, 너 고음 할 수 있네.’

‘닥쳐, 이은호.’

하지만 우리는 눈을 맞춘 채였다.

비록 선생님이 요구했던 ‘다정한’ 마음을 담은 건 아니었지만.

저물어 가는 오늘

이어지는 가사는 오히려 은지의 차례였지만, 은호는 자연스럽게 차례를 받으며 노래를 이어 갔다.

원키보다 한 키 높인 은호의 목소리와 차분히 가라앉은 은지의 목소리.

두 사람의 목소리가 잘 섞은 칵테일처럼 섞여 들었다.

마지막 잔이야

이하늘이 쾌감에 잠시 할 말을 잊을 만큼.

두 사람은 완벽한 하모니를 선보이며 노래를 마쳤다.

* * *

짝, 짝, 짝.

늘어진 박자로 시작된 선생님의 찬사가 담긴 박수는 금세 제 박자를 찾아 이어졌다.

“할 수 있네.”

그러게요.

“못 할 줄 알았는데…….”

할 수 있었네요.

뒷말은 차마 입 밖으로 뱉지 못했다.

선생님은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정작 노래를 부른 우리는 당혹스러웠다.

서로에게 완전히 새로운 영역이나 다름없었다.

‘해냈네? 뭐지?’

이은지 역시 혼란스러운 듯 정신을 놓아 버린 공허한 얼굴이었다.

가사를 의식하지 않았지만, 몰입은 했다.

끝에서 호흡에 따라 다정하게 시선을 마주치기도 했다.

아니.

‘이것도 ‘다정’이라고 표현해야 하는 건가?’

이은지가 고음을 두려워한다는 건 예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이은지는 내가 고음을 잘하는 부분에 부러워했고, 난 이은지의 댐핑이 강한 중저음 음역대의 음색을 부러워했었으니까.

회귀 전, 나한텐 이은지가 내 열등감의 형상화된 모습이었다.

수십 번 좌절감을 준 것을 마주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도 오디션에서 줄줄이 떨어진 내 앞에서, 대표님은 이은지의 노래도 듣지 않은 채 캐스팅을 결정했었다.

아마, 그때부터였다.

‘나는 이은지보다 더 나은 존재라고, 더 잘할 수 있다고.’

증명하려고 했었다.

그땐 몰랐다.

날 뽐내려 한 모든 것이 그게 오히려 ‘과함’이 되어 나를 좀먹어 가고 있다는 걸.

「본인은 죽어도 몰라, 하지만 타인이 보았을 땐 그 사람에겐 재능이 있어.」

이은지가 세상을 떠나고, 일기장을 읽을 때였다.

너무 늦게 알아 버렸지만, 나는 그날부터 늦게나마 나를 좀먹던 더 잘하려는 노력을 관뒀다.

대신, 이젠 힘을 풀고 잘하기보단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달린 1년이었다.

‘해냈네, 이은지.’

비록 차례를 치고 들어오긴 했지만…….

이은지가 무슨 마음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은지가 스스로 두려움을 뚫고 소리를 냈다.

그게 대견했다.

그래서 바라봤다.

내 동생, 잘했다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