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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11화 (11/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1)

“열심히 하겠습니다!”

짜고 맞추기라도 했다는 듯.

내가 벌떡 일어나 소리치자 이은지도 동시에 외치고 있었다.

이은지가 곁에서 힐끔 쳐다보는 걸 느꼈지만, 난 박 대표님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래, 그렇게 대답해야지 내가 일할 맛 나지 않겠냐.”

대표님은 ‘허허’ 웃으며 손에 쥐고 있던 A4 용지를 내려 뒀다.

“자, 이건 너희 팀 로고 디자인을 몇 가지 뽑아 온 거니까,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 봐라.”

“팀 로고요?”

“활동할 때나 앨범에 들어갈 로고가 있어야 하니까.”

대표님이 쥐고 있던 A4 용지는 팀 로고를 프린트 한 자료인 모양이었다.

모양은 굉장히 다양했다.

다만, 이은지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E-ung? 뭔가, 철자가 이상해요.”

이은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그런 말을 할 줄 알고 있었다는 듯.

대표님은 태연한 얼굴로 종이에 [Samardzija]라는 글자를 써서 은지에게 건넸다.

“읽어 봐.”

“사마, 드, 지……자?”

“사마자다.”

“아니, 이게 어떻게……!”

“그렇게 읽어 달라는 대로 읽어 주면 돼. 그래서 ‘E-ung’로 했다.”

이은지는 황당했지만 반박할 말은 없는 듯, 이마에 손을 올린 채 소파에 등을 기댔다.

“철자는 됐고, 은지. 너도 얼른 은호처럼 로고나 어떤 게 좋을지나 골라 봐.”

난 이은지가 뻗어 있는 그동안, 대표님이 놓아 둔 A4 용지를 살피며 디자인을 구경하고 있었다.

“은호는 미리 이야기 안 해 줬다고 속상해할 줄 알았더니.”

“예? 아.”

부름에 고개를 들어 대표님을 보자, 그는 묘한 시선으로 날 보고 있었다.

“저야, 대표님 감을 믿으니까요.”

박 대표님이 이 바닥만 바라보며 살아온 기간은 내 나이와도 맞먹을 정도였다.

그런 경험에서 우러나온 감각은 내가 노래 좀 부른다고 해서 으스대며 무시할 수 없는 경력이었고 힘이었다.

‘다만, 예전엔 그걸 그땐 몰랐지.’

그래서 고집대로 밀어붙였다.

그리고 그렇게 말아먹은 싱글과 미니 앨범과 1집까지.

‘타이거 어쩌고 하던 팀명은 무시할 만했지만…….’

그것도 알고 보니 대표님이 A&R로 일한 경험 때문인지.

사람을 다루는 데 도가 튼 탓에, ‘일부러 최악을 제시해서 선택을 빨리하도록 만드는’ 그 나름의 기술이라는 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내 감을 믿는다라, 천하의 이은호가 웬일이래?”

대표님은 내 대답이 의외였는지 잠시 눈을 크게 뜨더니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시선은 그대로 이은지에게 이어졌다.

“은지는 곡 작업한다고 연습 게을리하지 말고.”

“열심히 하고 있어요.”

“무리는 하지 말고.”

“네.”

간단한 사설이 끝나고, 대표님은 건너 소파에 앉아 앞으로의 일정에 관해 이야기를 꺼냈다.

‘2월 8일.’

라면 하나 가지고 투덕거리던 그런 평온한 일상은 끝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중간에 무너지지 않도록 컨디션 관리 철저하게 하도록 해.”

“네!”

“녹음 일정은 은지가 만든 ‘듀오’ 먼저 들어가게 될 거야. 정확한 일정은 확실하게 결정 나면 통보하마.”

“네.”

“그리고 은호는…….”

“네?”

할 말이 있어 보이는 입 모양이었는데, 대표님은 어색하게 입을 벌린 채 말을 멈췄다.

그리고 굉장히 어색하게 고개를 저으며 이야기를 넘겼다.

“음, 아니다.”

묘한 이질감에 조금 찝찝했다.

하지만 중요한 일은 아닌 거겠지.

그렇게 잡생각을 털어 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그때, 대표님 자리에 놓인 휴대폰이 진동했다.

“일단 오늘 할 이야기는 이 정도고, 그건 가져가서 너희끼리 이야기해 보고 정해지면 가져오도록 해.”

“네.”

“나가 봐.”

이은지와 난 쌓여 있는 도안을 챙겨 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참.”

대표실을 떠나려 문틀을 넘어선 그때였다.

“오늘부터 월, 화는 둘이 같이 레슨 받을 거니까, 이따 아카데미에 같이 가도록 해.”

“예?”

이은지는 질색한 얼굴로 나를 봤다.

“예, NRY 박창석 대푭니다.”

같이 레슨이라니.

회귀 전에는 전혀 없던 일정이었다.

뒤를 돌아보자 뒤따라오던 이은지도 할 말이 많아 보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대표님에게 질문할 기회는 없었다.

“아, 예. 예예.”

문 앞에서 버티고 서 있었지만, 우린 곧 대표님의 얼른 나가라는 재촉하는 손짓에 완전히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 * *

내쫓기다시피 대표실에서 나온 뒤.

일단, 아카데미에 가기 전 세수라도 해야겠다 싶어 2층으로 향했다.

그나저나 오늘따라 이은지가 조용했다.

예전이었다면 호박이니 우럭 대가리니, 같이 하는 건 싫다며 대표님이 통화를 하든지 말든지 노발대발했을 이은지였을 텐데.

“이은지.”

“어.”

“웬일로 불만이 없냐?”

“뭐, 레슨?”

“어.”

“있는데?”

이은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미간을 구기더니, 이내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거리며 한숨을 쉬었다.

“근데, 완성도를 위해서일 테니까. 어쩔 수 없지.”

“웬일이래.”

이은지가 이런 대답을 한다니.

솔직히 당연히 있다며 투덜거릴 거라 예상한 난, 오히려 이은지가 너무 태연해서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학원에 도착한 직후.

“싫어요!”

기숙사에서만 해도 어른스럽던 이은지가 폭발했다.

선생님만의 방식인 건지, 그룹인 만큼 호흡이 중요해지면서 우리의 수업 방식이 바뀌었다.

문제는 그 곡이.

우리가 극도로 혐오하는 사랑 노래라는 게 문제였다.

‘그것도 완전 달달한.’

2014년 히트곡 중 하나였던 .

나한테는 몇 년은 족히 흘러 버린 추억의 곡이었지만, 이걸 ‘최신’곡으로 다시 마주하게 되다니.

내가 시간을 되돌아오긴 했구나.

새삼 실감이 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내가 잠시 혼자만의 감상에 빠져 있던 그때였다.

이은지의 곧은 검지 끝이 눈앞에 뻗어 왔다.

“이걸, 저 우, 오빠를 보고 꼭 보고 부르라니요!”

저놈, 저거.

분명 또 우럭 대가리라고 하려고 했다.

은지의 질문에 선생님은 웃음기 하나 없는 무감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불러야지. 앞으로 무대에서도 그럼 서로 눈도 안 마주치고 노래하려고?”

“하지만, 저희 사랑 노래는 안 할 건데……!”

이은지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시선은 본인이 아닌 나한테 마저 따갑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래, 안 하는 건 안 하는 거여야지. ‘못’ 하는 거면 안 되잖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은지는 심술 가득한 입술을 비죽여 댔다.

“아니, 이 우럭 대가리를 보면서 제가 어떻게……!”

“이야, 호박이 말 잘하네.”

태연하게 대꾸한 대답에 이은지가 버럭 소리를 치려다 입을 닫았다.

둘 다 그만하라는 경고가 진하게 어린 선생님의 섬뜩한 눈빛 때문이었다.

“은지야, 일단 해 보는 것도 중요한 거야.”

“그건, 알지만…….”

“해 보고 안 되면 그때 가서 거절하는 건 상관없어. 하지만 해 보기도 전에 ‘난 못 해요’ 하고 때려치우는 건 용납 못 해. 그건 안 해 본 거잖아.”

이은지는 고집이 한풀 꺾인 듯 푹 한숨을 내쉬었다.

“야, 이은호!”

“또, 또 맞먹으려고 한다. 또.”

“아, 됐고! 넌 나랑 이 노래 부를 수 있어? 선생님 말씀대로 뻘쭘하게 눈까지 마주치고?”

“나라고 하고 싶겠냐? 머가리에 총 맞은 것도 아니고.”

“머가리?”

“대가리요. 대가리. 그냥 불러. 넌 프로니까, 어차피 부르면 또 제대로 할 거잖아.”

“……뭐라고?”

그때였다.

이은지는 마치 못 들을 말을 들었다는 듯 주춤거리며 되물었다.

난 이은지의 예민한 부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건 모두 이은지가 남겼던 그 일기장 덕분이었다.

“너 아마추어로 남긴 싫잖아.”

2014년.

‘썸’의 시대. 당시 1월 초에는 1위를 다투는 두 곡의 제목에 똑같은 .

라디오 방송이거나 예능이거나, 좀 엮는다 싶은 곳이면 죄다 이나 ‘썸’ 타는 이야기인 <한가을 밤의 꿀>을 부르던 그때.

그래서였을까.

회귀 전, 난 이미 이은지와 이 곡을 부른 적 있었다.

심지어 라디오에서.

라이브로.

‘그땐 진절머리 치는 나보다 잘 몰입해 놓고…….’

라디오 방송 당시 이은지와 내 반응은 딱 정반대였었다.

나는 지금의 이은지보다 더 심할 정도로 질겁했고, 이은지는 그냥 좀 하면 어떠냐며 타박하던 그런 포지션이었다.

「“프로답게 좀 행동해!”」

그날, 이은지가 그렇게 말했었다.

심지어 이은지의 일기장에도 그날의 일이 고스란히 쓰여 있었고, ‘프로’를 향한 갈망을 크게 드러내고 있었다.

“할게요. 해 볼게요.”

‘프로’가 마법의 단어라도 되는 양.

이은지는 마음을 고쳐먹은 듯 차분히 답하며 마이크 앞에 바로 섰다.

“그래. 그럼 은호 먼저 들어가도록 하자.”

이은지가 흥분을 가라앉히며 깊은 한숨을 흘리던 그동안.

선생님의 손길에 MR 반주가 시작됐다.

난 인트로의 네 박자를 가르는 드럼 사운드를 들으며 가볍게 입을 열었다.

그럴 땐 나도 가끔 짜증이 나

마음은 변하지 않았는데

곁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최대한 노래와 가사에만 집중하려 애썼다.

노래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선생님의 요구는 노래 그 이상이었고, 용납은 없었다.

“고개 들고, 서로 다정한 느낌으로 바라봐야지.”

“텅 빈, 푸크극…….”

최선을 다했다.

이은지도 억누르려고 진심으로 노력하는 게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색으로도 충분히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선생님의 요구에 우린 눈을 마주쳤고, 그 순간.

서로의 침을 뿜었다.

“푸핰!”

암만 침착하려고 노력했지만, 웃음이 터진 건 참을 수 없었다.

어림잡아도 10분이 넘는 긴 시간이었다.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는 오열에 가까운 웃음이 겨우 잠잠해지는 시간이 말이다.

이후로도 여러 차례 더 시도했다.

하지만 대부분 벌스조차 못 넘어가고 우리는 무너졌다.

특히 간질간질한 사랑 노래에서 더 쉽고 빠르게 실패를 찍었다.

이후에는 이를 악물고라도 한 트랙을 달려 봤지만, 감정적으로 몰입하지 못한 곡은 그냥 ‘부르기’만 할 뿐. 감상을 할 만큼 가치가 있는 곡이 되진 못했다.

“잠깐 쉬고 있어.”

이하늘은 퍼져 버린 은호와 은지를 뒤로하며 부스를 나왔다.

이미 나와 있는 곡을 불러도 이 정도인데.

본인들이 감정을 담아 불러야 하는 곡이라면 더 처참할 것이 이하늘의 눈엔 뻔히 보였다.

이하늘은 태연하게 정수기로 다가가 텀블러에 물을 담다,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흘렸다.

‘중간에 껴서,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사랑 노래는 힘든 남매 가수와 그리고 꼭 넣고야 말겠다는 대표.

그 사이에서 등 터지는 새우가 된 이하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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