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0)
이러다 노트북까지 날아오겠다 싶을 때쯤, 난 이은지를 달래며 말했다.
“진짜 좋아. 마음에 들어. 좀 오버하긴 했는데, 거짓말은 아니야.”
이은지는 여전히 탐탁지 않은 얼굴이긴 했지만, 칭찬은 마음에 들었는지 그제야 입꼬리가 씩 말려 올라갔다.
괜히 헤벌쭉 웃는 걸 보니까, 왜일까.
‘사실 구라야.’라면서 놀리고 싶은 마음이 울컥했다.
하지만 곡이 진심으로 마음에 들기도 한 데다, 그랬다간 이은지한테서 뭐든 묵직한 게 날아올 것 같아서 참았다.
“대표님은 들으셨어?”
“응. 완성하자마자 먼저 드렸지.”
“대표님도 마음에 들었나 보네.”
“그럼, 당연하지. 누가 만든 곡인데.”
“그래, 너 잘났다.”
경험에 비춰 보면, 이은지가 만든 곡은 박 대표님의 취향을 항상 저격했다.
이은지가 회귀 전 발매한 앨범 중, 박 대표님이 프로듀싱한 곡들은 대부분이 이번 곡과 비슷한 농염한 R&B 느낌의 곡이 많았다.
그래서였을까.
대표님의 반응은 빤히 눈에 보이듯 예상할 수 있었다.
“히히. 싱글로 충분히 가능할 거 같다고, 주말 지나고 녹음 날짜 말해 주신다고 하셨어.”
그럼 그렇지.
예상대로였다.
“가사는 누가 쓴 거야?”
“머리 쪼개져 가면서 써서 전달했더니, 선생님이 아시는 작사가분들한테 의뢰해 주셨어.”
“이거 말고도 다른 가사도 있었어?”
“응, 한 여섯? 그 정도 있었어. 근데 다 사랑 타령으로 해석해서, 내 기준에는 이게 제일 괜찮더라고. 그래서 이 가사로 픽스했지.”
사랑 이야기를 하는 가사에 치를 떨었을 이은지의 모습이 상상됐다.
하긴, 이별이라는 주제는 특히나 사랑 노래의 단골 중에서도 사골이니, 당연히 많을 수밖에.
“가사 잘했네. 좋다. 녹음은 언젠데?”
“생각보다 난리 안 치네?”
툭 치고 들어온 이은지의 한마디에 잠깐 얼었다.
하긴, 예전이었다면 내 곡이라는 말에 온갖 발광은 다 떨어 댔을 텐데.
난 괜히 어깨를 들썩이며 별일 아니라는 듯 이은지의 물음에 답을 피했다.
이은지는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다시 모니터로 눈길을 돌리며 이야기를 이어 갔다.
“그, 전에 들었던 곡은 어떻게 하기로 했어? 그것도 좋았는데.”
“고양이 발걸음?”
“어.”
이번 곡과는 다른 느낌이긴 했지만, 그것도 나름 마음에 들었던지라 속으로 아쉬워하며 물었다.
“그건 나중에 미니 앨범을 작업하게 되면 그때 수록곡으로 들어가거나, 나중에 수정해서 작업할 것 같던데.”
“떨어졌나 보네.”
“어쩔 수 없지.”
“아쉽지 않냐? 잘 빠졌었는데.”
“별로, 더 좋은 곡이 나왔으니까 신경 안 써.”
이은지는 아쉬움 따위는 정말 전혀 없다는 듯 어깨를 가볍게 으쓱거렸다.
그 모습이 왠지 프로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괜스레 난 내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난 이은지처럼 작곡하는 능력이 없으니까.’
내 무기는 미래에서 가져온, 바쁘게 살며 갈고닦아 왔던 경험과 이 목이 내는 소리가 끝이었다.
‘컨디션 관리 잘해야겠다.’
바로 어저께 오랜만에 목놓아 제대로 노래를 불러 본 덕분일까.
좋은 곡과 건강한 몸 그리고 경험으로 다져진 감각까지.
적어도 노래하는 것만큼은 이보다 최상일 수가 없을 정도로 최고의 컨디션이었다.
그래도 경험으로 인해 잘 벼려져 있는 무기 덕분에 이번엔 이은지의 재능에 열등감을 느끼며 무너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 * *
지이잉, 지이잉.
주말 아침.
진동하는 휴대폰에 박 대표는 프로틴 셰이크를 흔들던 손을 멈추며 눈길을 옮겼다.
“어, 여보세요.”
반가운 연락인지 박 대표는 웃음을 띠며 전화를 받았다.
그는 어깨에 휴대폰을 낀 채 셰이크를 마저 섞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셰이크를 흔들던 손은 우뚝 멈췄다.
“그게 무슨 말이야?”
박 대표는 기쁜 듯하면서도, 어딘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식탁 의자에 앉았다.
“그건…… 우리야 좋지. 하지만 네가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 그래서 하는 말이지.”
박 대표가 머리를 짚으며 한숨을 뱉어 냈다.
전화 너머로 박 대표를 설득하는 목소리는 밝았다.
반면, 박 대표는 희미한 웃음을 띠며 한숨을 터뜨리고 있었다.
“알긴 하지만…… 예찬아. 그래도 네 솔로곡인데.”
통화 상대는 어제 밤새 함께 술잔을 기울였던 지예찬이었다.
“제가 지금까지 노래하면서 이렇게 살 수 있는 건 다 박 팀장님 덕분인데, 그때 일을 어떻게 잊겠어요.”
“그때 일을 지금까지 생각해 주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라도 고맙다. 하지만…….”
“팀장님, 제 성격 아시잖아요? 이렇게라도 보답할 기회가 생겼는데, 보답해야죠.”
“네가 쥐 잡아 오는 고양이도 아닌데 보답은 무슨.”
“짐승도 보답하는데, 사람은 더 해야죠. 그리고 박 팀장님, 저 아시잖아요?”
태연한 지예찬의 한마디에 박 대표는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저었다.
“또, 또 일 다 벌여 놓고 연락했구먼?”
박 대표가 한숨을 뱉자, 전화 너머로 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TaKa 엔터테인먼트에서 매니저 승진 이후, 크리에이티브 팀에서 A&R로 일하던 당시.
기자들의 비틀린 관심과 집착에, 회사는 불편하고 신인들은 지레 겁을 먹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몸을 사리는 신인들과 달리 지예찬은 오히려 기자들에게 먼저 접근해, 그들을 제 입맛대로 다뤄 댔다.
내 편일 땐 최고의 아군이지만. 적이 되면 이보다 무서울 게 없는 그런 녀석.
“인제 와서 반대하셔도 소용없어요.”
그럼 그렇지.
벌써 잘 맞는 기자들에게 보란 듯 떡밥을 던져 놓고서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었다.
“어쩐지, 어젯밤에 술 마시는 중에 전화가 자꾸 온다 싶더니…….”
“하하. 박 팀장님 설득하려면 불도저처럼 다 밀어 놓고 말씀드려야 통하잖아요.”
설마 이렇게 행동이 빠른 줄은 몰랐는데.
아니, 애초에 먼저 부탁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신인을 밀어줄 거라고 어떻게 예상이나 했을까.
‘하긴, 예찬이 넌 평범한 놈이 아니었지.’
박 대표는 헛헛한 웃음을 터뜨리며 셰이크를 가볍게 한 모금 들이켰다.
지예찬은 높은 인지도를 가진 유명 아티스트다.
그리고 NRY 엔터테인먼트는 아직 경력에 비해 사람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회사다.
그런 회사에, 유명 아티스트가.
심지어 지략가인 지예찬이 본격적으로 푸시하는 신인 아티스트에게 관심이 쏟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잘했어. 내가 상상하지도 못했을 만큼.’
박 대표는 녹음실에서의 이은호를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대체 그런 녀석이 어딜 봐서 신인일까 싶을 정도로, 은호는 내가 키운 녀석인데도 이해되지 않는 성장세를 보여 준 녀석이었다.
지예찬이 벌일 일은 은호에게는 그야말로 하늘이 준 기회나 다름없었다.
‘좋아하겠네.’
은호의 반응이 눈에 그려지자, 피식 절로 웃음이 터져 나온다.
“은호 씨한테는 믹싱 끝나면 제가 직접 전할게요.”
“그래.”
“대신, 아시죠? 박 팀장님은 비밀 잘 지켜 주셔야 합니다?
“알았어. 알았어.”
통화는 간단한 인사로 마무리됐다.
박 대표는 한참 섞었던 셰이크를 단숨에 들이켠 후, 시원한 숨을 뱉으며 베란다 창가로 향했다.
‘예찬이의 보답이라…….’
그 녀석의 파급력은 분명 ‘보답’의 한도를 뛰어넘겠지.
‘그만큼 좋지 않은 것들도 뒤따르기야 하겠지만…….’
은호에게는 은지가 있다.
혼자가 아니니까 괜찮겠지.
게다가 은지가 만든 이번 곡과 앞으로 줄줄이 발표될 곡까지.
‘얼른 무대에 세우고 싶다.’
성적에는 딱히 욕심이 없었는데, 이건 다 지예찬 때문이다.
박 대표는 강한 콧김을 뿜어내며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TaKa 엔터테인먼트의 전 A&R로서.
이번엔 NRY 엔터테인먼트의 프로듀서로서.
“오랜만에 실력 발휘 좀 해 보자고.”
* * *
[둘 다 잠깐 내려오너라.]
이은지의 신곡을 들은 주말이 지난 월요일.
주차장에 검은 세단 한 대와 동시에 출근하신 대표님의 소집 명령이 떨어졌다.
이은지와 난 잠에서 깨자마자 눈곱을 떼는 것도 잊은 채 후다닥 1층으로 달렸다.
“부르셨어요?”
“주말 잘 보내셨어요?”
대표실에 들어서자, 주말 사이 날이 추워졌기 때문일까.
못 보던 작은 난로 하나가 나와 있었다.
“둘 다 거기 앉아 봐.”
“네.”
대표님은 장난스러울 땐 한없이 가깝다가도 일에 있어선 절대 대충인 법이 없는 그런 분이었다.
특히, 오늘처럼 무거운 분위기에선 더더욱.
‘뭐 때문인지 알아?’
‘내가 어떻게 알아.’
‘우리 뭐 또 사고 친 거 있었나?’
‘토요일에 라면 먹은 거 말고 없을 텐데…….’
‘라면 가지고 뭐라 하실 분……이긴 한데, 라면 때문일까? 진짜?’
이은지와 난 소파에 앉으며 눈짓으로 대화를 나눴다.
곧 데뷔라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부터는 관리에 열을 올려야 했다.
이 기간에는 라면 같은 즉석 식품은 철저히 금지되어 있다.
특히 건강을 끔찍하게 챙기는 대표님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 관리가 엄했다.
주말 동안 찔리는 짓을 한 우린.
다른 생각은 영락없이 차단된 채 오롯이 ‘라면 때문에 이 자리에 불려 왔다’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왜 그렇게 굳어 있어?”
대표님의 시선이 서류에서 우리에게 옮겨 왔다.
화라거나 실망감이라고는 전혀 담겨 있지 않은 시선이었다.
「“주말 지나면 녹음 날짜 정해 오겠다고 하시더라.”」
평소와 다름없는 대표님의 얼굴을 보자, 그제야 토요일에 이은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하긴, 생각해 보면 주말 동안 먹은 라면을 방금 출근하신 대표님이 아실 리가 없는데.
‘녹음 언제인지 말씀하시려는 거겠지.’
들키지 않았다는 걸 깨닫자, 긴장했던 몸을 풀고 대표님의 이어질 이야기를 기다렸다.
“너희 데뷔 날짜를 정했다.”
“네?”
당황했다.
녹음이 아니라 데뷔라니?
아직 뭐 하나 만들어진 게 없는데…….
“내년 2월 8일.”
4개월.
넉넉하다면 넉넉한 시간이었다.
우리가 하기 나름이라는 말이기도 했다.
“싱글인가요?”
“시작은.”
내 물음에 대표님은 간단히 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작은이라니.’
애매한 대답에 갸웃거리다, 난 내밀어진 대표님의 손을 바라봤다.
대표님의 손엔 그림이 그려진 A4 용지가 여러 장 쥐어져 있었다.
“작곡가, 작사가는 구해 뒀고 작업도 들어갔어. 4개월이면 충분히 한 곡은 나오겠지. 녹음은 물론, 재킷 촬영에 뮤직비디오까지 싹 다.”
이은지와 난 너무 놀란 나머지 대답하는 것도 잊은 채 굳어 있었다.
“잘 따라와.”
“네…….”
그때였다.
겨우 흘린 작은 대답이 퍽 마음에 들지 않는지, 대표님의 미간이 비틀렸다.
“대답은 어떻게 하랬지?”
“크게입니다!”
“잘 따라와.”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