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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9화 (9/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9)

사랑 노래

[AM 6:52]

번쩍 눈이 뜨여서 휴대폰을 확인하니 7시도 안 된 아침이었다.

“아, 윽.”

평소 주말이라면 적어도 10시는 지나야 깼을 텐데…….

숙취에 뒤집힌 속 때문에 차마 더 잘 수가 없었다.

꾸역꾸역 조금이라도 더 뒹굴어 보겠다고 누워 있었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분명히 이맘때 이렇게까지 술을 못 먹진 않았던 것 같은데…….

진심으로 이러다 위장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그런 걱정이 들 지경이 되어서야 난 드디어 화장실과 멀어질 수 있었다.

이런 와중에도 꿈나라에 있는지 이은지의 방문은 열릴 기색이 없었다.

‘그게 있을 텐데…….’

착한 오빠 코스프레를 한다며 꼬박꼬박 장을 봐 올 때, 혹시 몰라 쟁여 뒀던 그것.

바스락거리는 봉지 소리와 함께 찬장 구석에서 반가운 라면 한 뭉치가 손에 덥석 쥐어졌다.

‘나이스!’

트로피라도 되는 양, 난 라면을 천장으로 치켜든 채 소리 없는 환호를 했다.

해장이 필요한 타이밍에 이만한 게 또 없지.

의학적으로는 더 나쁘다느니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긴 하지만, 내 본능이 얼큰한 라면을 원한다.

‘콩나물이 있으면 좋겠는데…….’

냉장고를 연 순간 허탈한 한숨이 절로 흘렀다.

그런 신선 식품이 있을 리가 없었다.

평소에는 주로 밖에서 김밥 한두 줄로 식사를 때우는데, 그러다 보니 장을 본 지가 언제인지.

애초에 먹을 만한 것이 없는 냉장고였다.

‘계란은 있네.’

감지덕지한 마음으로 계란을 꺼내고 냉장고를 닫았다.

문 너머로 그런 흉측한 것이 보일 줄은 상상도 못하고 한 행동이었다.

“아오, X발.”

“히히.”

하마터면 들고 있던 계란을 던질 뻔했다.

솔직히 손에 있는 게 귀중한 계란이 아니라 냄비였으면 이미 진작에 던졌다.

“뭐 해 먹게?”

난 욱하는 마음에 대답 대신, 히죽거리는 이은지 얼굴을 우악스럽게 밀어내며 허리를 세웠다.

“라면 끓이려고?”

“어.”

“음, 맛있게 드셔.”

맛있게 드시라니…….

왠지 싸한 느낌에 1인분을 끓이기엔 조금 큰 냄비와 라면 두 봉지를 들었다.

그동안 이은지는 잠결에 얼굴이 밀쳐진 건 이미 잊은 듯. 귀신보다 무서운 몰골로 흐느적거리며 화장실로 향했다.

“으흐…….”

터벅 걸음 위로 흐느적거리는 양팔.

움직임을 따라 흔들리는 검고 긴 머리칼.

진심으로, 다른 의미이긴 하지만,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라는 말이 새삼 이해가 가는 그런 몰골이었다.

라면에 계란을 깨트릴 때쯤.

이은지는 그제야 화장실을 빠져나오며 좀 사람다운 몰골로 제 방으로 향했다.

‘흠흠―.’

흥얼거림이 절로 나오는 향기에 난 긴 숨을 들이켜며 밥상 위로 냄비를 옮겼다.

냄비 째로 대충 먹어도 됐지만, 작전을 위해 앞 접시를 챙겼다.

난 이은지의 방을 힐끔 쳐다보고 앞 접시에 라면을 덜어 노르스름한 면발을 입으로 옮겨 갔다.

후르릅.

딱 한 젓가락이었다.

동시에 예지하는 능력이라도 있는 듯 미래가 빤히 보였다.

회귀 전과 후를 포함해서 수십 번은 족히 속은 레퍼토리였으니까.

“맛있냐?”

아니나 다를까.

이은지가 방문 밖으로 빼꼼 머리를 내밀었다.

“오라버니―.”

“닥쳐.”

“아, 나 진짜 딱 한입만!”

“한입 같은 소리 한다. 한 젓가락으로 냄비 째 들이켤 거면서.”

“아니거든!”

버럭 소리치는 이은지를 게슴츠레 쳐다보며, 은근슬쩍 말을 흘렸다.

“먹고 싶냐?”

“응.”

“그릇, 따로 가져와서 먹어.”

“꺄하, 역시! 우리 오라버니가 최고십니다!”

히죽거리며 웃던 이은지는 기다렸다는 듯 젓가락을 챙겨 와 자리를 잡았다.

이은지의 젓가락이 라면 국물에 살짝 담긴 그 순간.

난 이번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한마디를 던졌다.

“대신 설거지해라.”

“아, 씨.”

탁.

이은지는 젓가락을 다시 밥상에 놓았다.

“치사하게!”

“싫으면 먹지 말든지!”

난 아쉬울 게 없는 처지인지라.

이은지에게 뻔뻔히 대꾸하며 빼앗길 양을 대비해서 앞 접시에 크게 덜어냈다.

“해! 한다고! 하면 되잖아!”

자기가 먹을 게 줄어드는 게 눈에 보이는지, 이은지는 다시 급하게 젓가락을 들며 소리쳤다.

난 마지막 한 젓가락을 흡입하며 밥상에서 일어났다.

그동안, 면을 어느 정도 덜어 낸 이은지는 냄비 속을 이리저리 저으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동생아.”

“왜. 뭔데.”

언짢은 기분을 느낀 건지 이은지는 한쪽 눈썹을 크게 들썩이며 나를 쏘아봤다.

싱긋.

“난 라면이라고 했지, 계란은 조건에 없었단다?”

나름 치명적인 척을 더해 웃어 주며 말을 보태자, 이은지는 진심으로 밥상을 엎을 기세였다.

하지만 이미 다 먹은 내 앞에서 엎어봐야 본인만 손해지.

“아, 이은호 X나 짜증 나!”

이은지가 우렁차게 성질을 쏟아 냈다.

해장과 계란 두 개 독식에 설거지까지!

얻은 게 많은 덕분에 이은지의 포효는 가볍게 무시할 수 있었다.

“다 먹었냐?”

“어!”

잠시 후, 이은지는 투덜거리면서 다 먹은 냄비를 들고 일어났다.

미루는 건 싫었는지, 이은지는 곧장 설거지를 시작했다.

부른 배와 편안한 몸.

창문으로 쏟아지는 따뜻한 햇볕.

‘주말이라…….’

잠깐 눈을 감았다가 뜬 것 같았는데.

눈을 떴을 땐 설거지가 이미 끝났는지 거실에는 소리 하나 없이 고요했다.

“왜 여기서 뻗어 있어?”

“……뭐가?”

“뭐긴 뭐야. 목은 다 잠겨서. 잠 안 깼냐?”

이은지가 앞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민망한 기분에, 걸걸해진 목소리는 헛기침으로 가다듬고, 축축한 느낌이 드는 입가는 대충 소매로 닦아 내면서 자세를 바로잡았다.

“더 잘 거?”

“어…… 아냐.”

“잔다는 거야, 만다는 거야?”

“만다고.”

막상 잠에서 깨어나니 더 자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이게 원하는 대답이기라도 했던 걸까.

이은지가 씩 입꼬리를 늘이며 불렀다.

“이은호.”

“어.”

“할 일 없지?”

곡이 나온 것도 아니고, 연습 시간도 멀었다.

솔직히, 이은지는 작곡과 연습까지, 인정하긴 싫지만 나보다 능력이 많은 만큼 훨씬 더 바쁜 몸이었다.

“……어, 없지.”

놀리는 건가 싶어서 울컥 올라온 반항심에 시비를 걸려다, 겨우 이성을 붙잡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럼 내 방으로 잠깐만 와 봐.”

“왜?”

“얼른, 와 봐.”

“아악.”

후드 티 모자가 목줄이라도 되는 양, 이은지에게 모자를 잡힌 채 방으로 끌려갔다.

“놔, 봐, 좀!”

모자를 손에서 빼내며 주변을 둘러보자, 방 안은 깔끔……은 개뿔.

이은지의 방은 구석구석이 폭탄이라도 터진 듯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좁은 방구석을 가득 메운 88 건반 전자피아노와 옷이 걸려 있지 않은 휑한 2층 행거.

“야, 넌 나보다 서랍장도 하나 더 있는데 적어도 속옷은 좀 넣어 놓고 살아라…….”

“내 방은 내가 알아서 살 테니까, 신경 쓰지 말고 거기 앉기나 해.”

“이야, 방 안이 이 꼬락서니인데 벌레는 없냐?”

“아! 씨.”

이은지가 이를 갈며 살벌한 시선으로 쏘아봤다.

솔직히 잠깐 쫄아서 움찔했다.

“잔소리할 거면 나가!”

“지가 들어오라고 했으면서.”

“새로운 곡 가이드 완성해서 들려주려고 기껏 불렀더니.”

본능적으로 난 시비를 걸던 입을 멈췄다.

우리 팀 천재 작곡가에게 나쁘게 보여서 뭘 하겠나.

난 언제 잔소리를 퍼부었냐는 듯 얼굴에 철판을 깔며 히죽거렸다.

“아유, 진작 그거부터 말씀하셨어야지요, 선생님.”

이은지는 그런 내 모습이 황당한지 어이가 없단 웃음을 터뜨렸다.

“대충 자리 만들어서 앉아 봐.”

자리라고 해 봐야 이은지의 이부자리 반대편 벽이 고작이긴 했지만.

이곳이 바로 콘서트 첫 줄이라는 양 냉큼 빈 곳에 앉아 눈을 빛냈다.

이은지는 그동안 노트북 화면을 열고 뭔가를 만져 댔다.

잠시 그러고 있는가 싶더니, 좁은 방구석에서 작은 공연이 시작됐다.

맑은 물이 담긴 유리병을 두드리는 듯한 통통 튀는 멜로디가 가장 먼저 귀를 사로잡았다.

160정도 되는 빠른 BPM의 장난기 가득한 트랩 비트였다.

둔한 나조차 리듬을 타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대기 시작했다.

짝을 잃은 신발은 나가질 못해

적을 잃은 날 끝은 스치질 못해

노래가 시작되고 뒤바뀐 멜로디는 R&B와 힙합 사이의 싱잉 랩 같았다.

몽환적인 분위기의 로즈 피아노의 선율을 따라 익숙한 이은지의 목소리가 얹어졌다.

여기까지 왔어도 도망가

유리 깔린 이 길을 벗어나

녹음된 이은지의 낮게 깔린 목소리는 잔 비브라토를 품고 있었다.

훅으로 들어서자 비트는 또 한 번 분위기를 바꿨다.

트랩 비트가 주가 되면서도, 마이너 코드의 감각적인 느낌이 돋보이는 진행이었다.

거기에 우울하게 느껴질 법한 가사였지만, 곡의 분위기는 농염한 분위기가 월등히 강렬하게 다가왔다.

비슷하지만 달라

가까운 사이니까

가벼운 거리니까

가사는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따라 부를 순 없었지만.

후렴구의 중독성 있는 멜로디는 나도 모르게 흥얼거릴 정도로 찰떡같이 입에 붙는 멜로디였다.

게다가 후렴 가사를 들은 순간 이 곡은 내가 전에 스쳐 가며 흘린 ‘이별’에 초점을 맞췄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거기 그대로 막연하게

여기 그대로 망연하게

이은지는 무리가 오는 높은 음 부분에서는 기계의 힘을 빌려 가며 겨우 가이드를 완성한 것 같았다.

거기에 픽 웃음을 터뜨리자, 이은지는 민망했는지 노트북 뒤에 숨어 내 시선을 피했다.

“제목은 ‘듀오(DUO)’야. 어때?”

“듀오…….”

이은지는 노트북으로 얼굴을 가린 채 물어 왔다.

평소와 다르게 떨리는 목소리를 보아하니 꽤 긴장한 모양이었다.

이번 곡은, 고양이 발걸음인지 산신의 산책인지 모를 묵직한 베이스가 주가 됐던 그때의 곡과는 전혀 달랐다.

이은지의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이 느껴질 정도의 차이였다.

다만, 그런 넓은 범위에도 불구하고 이은지는 확실한 제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

“어떠냐니까?”

대답이 없는 게 마음에 걸렸던 걸까.

이은지는 노트북에서 얼굴을 떼며 다시 한 번 공격적으로 물었다.

“좋아.”

아직 곡의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탓일까.

난 홀린 듯 덤덤하게 대답했다.

“끝이야?”

좋다니까.

대체 뭘 더 어쩌라는 건지…….

이은지는 그런 무덤덤한 반응이 서운한 듯. 입을 삐죽이며 불만을 표현했다.

“와! 미쳤다! X 쩔어! 넌 역시 천재다. 이은지가 와! 차트 다 찢겠다!”

“아! 장난하지 말고!”

물개 박수까지 쳐 가며 과하게 환호하자, 이은지는 와락 인상을 구기며 포효했다.

“조금 더 섬세하게 표현해 주면 안 돼?”

“좋다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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