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8)
차라리 거짓말이라고 해 줘
우리 아직 여전하잖아
열창 중인 은호의 목소리를 뒤로 하며 박 대표는 지예찬을 돌아봤다.
지예찬의 비틀린 입꼬리는 흥미롭다는 기분을 내비쳤다.
“아까, ‘이응’의 같은 팀이라던 그 남매? 다른 애는 곡도 쓸 줄 알아요?”
“사실 내가 쟤보다 더 집중한 건 그쪽이었어.”
“허…….”
장난 가득한 미소를 띠며 지예찬이 박 대표를 봤다.
“저런 실력을 갑자기라니.”
“뭐.”
“팀장님, 내가 감 한 박스 선물로 드릴까?”
“웬 감?”
“감 좀 다시 잡으시라고.”
박 대표는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리며 창 너머 열창 중인 은호를 바라봤다.
시간은 당장 치료제가 되지 못해
네가 아니면 치료제가 되지 못해
노래의 클라이맥스인 만큼 은호는 한껏 기교를 부리며 마지막 훅으로 가기 전 진한 여운을 새기고 있었다.
바닥이 무너져
세상이 흔들려
그때, 지예찬은 노래를 중단시키려는지 토크 백에 손을 슬쩍 올렸다.
‘여기서 조금만 더 끌어가면 딱…….’
자칫 과해질 법도 하건만.
지예찬이 여기까지만 했으면 좋겠다 생각할 무렵, 은호는 기가 막히게 비브라토를 끊어 냈다.
덕분에 브리지가 끝날 때까지 그 토크 백을 누르는 일은 없었다.
‘오케이!’
이보다 나은 곡 해석은 없겠구나 싶은, 그런 완벽한 결과였다.
“박 팀장님.”
“왜.”
“쟤 데뷔 언제 해요?”
지예찬은 짙게 팬 보조개를 띠며 박 대표를 돌아봤다.
“조만간, 왜?”
“왜긴, 당연히 내가 1호 팬 하려고 그러는 거지.”
“오버는.”
“입꼬리나 끌어 내리고 말해요.”
혀를 차던 박 대표는 입꼬리가 더 올라갈 곳도 없을 만큼 치켜져 있었다.
지예찬은 그 모습에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몇 년 전에도 같은 소리 한 거 같은데, 이런 건 오버 좀 해 줘도 돼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몰라요?”
“안 돼. 애 버릇 나빠져.”
“저런 실력이 있으면 버릇 좀 나빠지면 어때서요. 박 팀장님이랑 이 실장님은 항상 칭찬을 뒤에서만 속닥거리는 게 문제예요.”
“일만 잘하면 되지.”
“그게 문제라는 거예요.”
지예찬은 녹음한 브리지를 확인하고 있는 은호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은호, 쟤는 자기가 잘하는 줄도 모를걸요.”
“알 거야.”
“알긴 무슨. 알면 내가 박 팀장님 퇴사하고 나서야, ‘아, 나 잘하는 거였구나.’ 했겠어요?”
“됐어. 애 보잖아.”
“애는 무슨, 결혼이나 하고 애 타령 해요.”
박 대표는 반박을 위해 입을 열었지만, 지예찬이 보란 듯 웃으며 토크 백을 누른 통에 말을 이어 갈 수 없었다.
* * *
녹음 파트는 다 끝났는데, 더 해야 하는 건가?
어정쩡하게 창 너머를 보자, 지예찬 선배와 대표님이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았다.
“은호 씨, 나와요.”
“끝났습니까?”
“뭐, 싫으면 한 번 더 찍을까?”
“아, 네!”
브리지를 부르면서 처음 불렀던 벌스 1―A 파트 부분을 다시 부르고 싶었는데, 마침 딱 반가운 제안이었다.
“그래요.”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선배님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잠시 기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녹음실 안으로 들어오는 목소리는 지예찬 선배가 토크 백을 누를 때뿐.
난 바깥에서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도 모른 채 그저 노래만 불렀다.
잠깐 이야기를 하고 나서야, 지예찬 선배는 토크 백을 누르며 말을 이었다.
“은호 씨.”
“네!”
“이번엔 한 트랙 이어서 쭉 가 볼 거예요. 힘들면 언제든 말하고.”
“네!”
“코러스 쌓는 거 할 줄 알아요?”
“해 보겠습니다.”
“그래요. 이번엔 느낌대로 쭉 뽑아 봐요. 은호 씨, 내가 본 후배 중에 최고로 잘하는 사람이니까. 믿고 맡길게.”
“가, 감사합니다.”
지예찬 선배의 후배들이라면 내로라하는 실력자들도 많았을 텐데.
이렇게 칭찬을 받아 본 건 처음이라, 부끄럽지만, 또 기쁘기도 한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한 기분에 어정쩡하게 감사 인사만 하며 고개를 숙였다.
“은호 씨 느낌만 믿고 불러요.”
“네…….”
느낌.
인트로가 재생되기 전.
선배님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정말 느낌대로 한 트랙을 달렸다.
이 녹음실을 떠나는 순간.
아쉬운 마음은 절대 남기지 않을 것처럼 온 감정을 쏟아 냈다.
무턱대고 기교와 감정을 쏟아 내는 게 꼭 좋은 곡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걸 예전의 나는 몰랐지만, 회귀 후인 지금의 나는 알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은 온 감정을 쏟아 내되, 경험으로 쌓아 온 완급 조절은 잊지 않는다.
내 느낌이 경고해
아직 네가 오기 전인데
테이블 위 한 송이
오늘따라 붉어 보여
이 ‘사인’이라는 곡은 지예찬 선배님의 곡이다.
이 노래를 듣는 사람들은 누구 하나 내 노래를 기대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난 지예찬 선배님을 돋보이게만 하고 싶지 않았다.
욕심일 수도 있다.
아직 연습생이니 예의가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난 이 곡을 감상할 관객들의 귓가에 내 목소리를 남길 중요한 기회인 지금을 그냥 보낼 생각은 없었다.
내 목소리를 똑똑히 기억해 두라고.
다시 부르기 시작한 이번 한 트랙 동안, 난 곡을 집어삼킬 각오로 노래를 했다.
아웃트로의 늘어진 사운드를 끝으로.
노래가 끝났을 때, 나도 모르는 새에 어지간히 체력을 쏟았는지 등이 축축해져 있을 지경이었다.
“후…….”
끝났다는 안도 섞인 긴 한숨을 뱉으며, 난 뒤늦게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박 대표님, 지예찬 선배님, 기사님, 안내해 준 험악한 형님까지.
창 너머의 네 사람이 동그랗게 뜬 눈을 끔뻑이며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너무, 과했나요?”
얼떨떨한 반응에 걱정스럽게 묻자, 지예찬 선배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잘했어! 너무 좋다! 은호야!”
뭐라고 소리치시는 것 같긴 한데, 토크 백을 안 누르신 탓에 내 이름이 들린 이후로는 아무 이야기도 알아듣지 못했다.
반응을 보아하니 어렴풋이 ‘칭찬을 하고 계시는구나.’ 하고 느낌으로만 알아들을 뿐이었다.
* * *
온 기력을 쏟아 내며 한 트랙을 몽땅 달린 이후.
지예찬 선배의 녹음 현장을 잠시 구경하기도 하고, 중간중간 코러스도 넣으며 노래를 풍성하게 채워 갔다.
“배고프지, 은호 씨.”
“전 괜찮습니다!”
만화 같은 데서 보면 이런 상황에 꼭 ‘꼬르륵’ 소리가 울리던데, 그게 완전히 허구는 아닌 듯.
꾸르륵.
타이밍 좋게 민망한 소리가 스튜디오를 채웠다.
“후배님께서 녹음도 온 힘을 다해서 도와줬겠다. 오늘은 제가 쏩니다. 가시죠. 영희야, 너도 가자.”
“예!”
영희.
오래된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그 이름 뒤로 듬직하고 굵직한 대답이 이어졌다.
‘잘못 들은 건가?’
피곤한 것도 잠시 잊을 정도로 놀랐다.
뒤를 돌아보자,그 이름이 본인의 것이라는 것을 인증이라도 하듯.
지금껏 험악해 보였던 덩치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다 같이 지예찬 선배가 자주 방문한다던 갈빗집에 자리를 잡은 지 시간이 꽤 흘렀을 무렵이었다.
“하하, 우리 영희가 좀 막, ‘으아!’ 할 거 같아도, 반전 매력 넘치는 녀석이에요.”
“행님 말씀대로 저 꽤나 섬세한 놈입니다? 꽃꽂이도 배우고 있다고요.”
하하하하.
예상치 못한 꽃꽂이 이야기에 갈빗집에 한바탕 웃음이 쏟아졌다.
“저, 같은 클래스인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꽤 잘하는 편입니다?”
“하하하. 잘하긴 하네.”
“은호 씨도 봐요. 이쁘지 않습니까?”
처음에 무섭게만 보였던 매니저는 같이 웃으며 실제로 본인이 했다던 꽃꽂이 사진을 보여 주며 자랑을 이어 갔다.
맑은 술잔이 오가며 내 정신과 함께 ‘철수와 영희’라는 교과서 속 캐릭터도 차츰 흐릿해져 갔다.
* * *
“은호야.”
“네?”
“다 왔다. 기숙사 가서 자.”
가벼운 분위기에 부어라 마셔라 하며 취기가 오른 탓일까.
눈을 뜨니 어느새 대표님의 차 안이었다.
‘잠깐, 여기 차 안이면 설마 음주 운전…….’
은지의 교통사고로 인한 PTSD일까.
흠칫한 기분에 운전석을 돌쳐다보니 다행히 대리 기사님으로 보이는 낯선 사람이 앉아 있었다.
‘휴.’
가슴을 쓸어내리며 차에서 내리자 찬 바람에 몸이 떨린다.
주변에 다니는 사람 하나 없는 한밤중이었다.
“바로 들어가고, 오늘 고생 많았다.”
“이런 기회 만들어 주셔서 저야 감사하죠. 그럼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래. 은지랑 싸우지 말고.”
“하하. 노력해 보겠습니다.”
“잘 자고, 주말 지나고 보자.”
“네!”
조수석에 앉은 대표님과 짧은 인사를 끝으로, 떠나는 차량에 꾸벅 고개를 숙였다.
조금 먼 곳에 내린 터라 기숙사로 가기 위해선 약 10분은 걸어야 할 것 같았다.
“어? 이은호?”
술기운이나 깰 겸, 천천히 걸음 하던 그때였다.
등 뒤로 들린 익숙한 목소리.
“이은지?”
무거운 머리를 돌리자 이제 들어오는지, 몇 걸음 떨어진 거리에 은지가 있었다.
“너 왜 이렇게 늦게 다녀?”
“너야말로…… 뭐야, 술 마셨어?”
가까이 다가온 이은지는 엄지와 검지로 코를 쥐며 미간을 구겼다.
“지예찬 선배님이 갈비 사 주셔서.”
“와, 너 혼자만 처먹냐.”
“그럼, 당연히 나 혼자만 처먹어야지.”
“허, 그래라.”
평소라면 2절 3절까지 투덕거릴 만한 대화였지만, 늦은 밤에 지친 몸 때문일까.
차마 2절까지 이어 갈 기운이 없었다.
그건 은지도 마찬가지인지 어이가 없다는 양 헛웃음을 터뜨리며 입을 닫았다.
그렇게 침묵이 내려앉은 지 1분쯤 지났을까.
“이은호.”
“…….”
“야, 이은호.”
“아, 왜.”
은지는 조용한 건 싫었는지, 언제 삐쳤냐는 듯 다시 뻔뻔히 말을 이었다.
“지예찬 선배님 어땠어?”
“뭐가?”
“잘생겼어?”
“어.”
“좀 길게 표현해 줘!”
“귀찮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머릿속으로는 선배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뭔가…….”
“뭔가?”
“곱게 자란 도련님 같은 느낌?”
“오…….”
표현이 마음에 들었는지, 은지가 감탄과 동시에 눈을 휘며 활짝 웃었다.
“아, 나도 연예인 보고 싶다!”
“데뷔하면 지겹게 보게 될 텐데 뭘.”
“헤헤. 그랬으면 좋겠다.”
인사차 방문했던 대기실에 새로운 손님이 계속 몰려오는 걸 직접 경험했던 난 가만히 입을 닫았다.
아이돌들은 물론. 개인적으로 은지의 팬이었던 선배 가수들까지.
회귀 전, 이은지의 대기실엔 그야말로 인사가 끊이질 않는 수준이었으니까.
“녹음은, 잘했어?”
“당연한 소리를, 넌 뭐 하다 왔냐.”
이은지는 턱을 들며 콧대로 하늘을 찔렀다.
“우리 곡 만들다 왔지!”
“오…….”
“기대하라고.”
기대라…….
“네가 만드는 곡인데, 당연히 기대는 항상 하고 있지.”
술기운 때문일까.
평소라면 하지 않을 말이 입 밖으로 슬슬 흘렀다.
“아우! 웬 지랄이야!”
은지는 치를 떨면서도 칭찬은 좋은지, 입꼬리를 씰룩이며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