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7)
지예찬 선배님의 스튜디오로 가기 전.
아침 일찍 나는 대표님과 함께 보컬 트레이너 선생님께 먼저 들렀다.
“기본적인 건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 같네.”
“그런가요?”
“응. 딱 교과서적으로 깔끔해. 그러니까 녹음 때에는 처음엔 느낌대로 가되, 이후에는 디렉팅에 맞춰 가도록 해.”
선생님께 간단한 조언을 받은 후, 도착한 지예찬 선배님의 개인 스튜디오 앞.
긴장한 채 발을 떼지 못하자, 대표가 강제로 등을 떠밀며 건물 안으로 들어서게 했다.
“어떻게 오셨어요?”
직원으로 보기엔 다소 험악해 보이는 30대 남성이 소파에서 일어나, 문 앞을 막아서며 물었다.
“피처링할 친구를 데려왔는데.”
“피처링?”
대표님은 그를 상대하며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반면, 이야기를 들은 낯선 남자는 사납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험악한 외모의 그가 턱짓으로 소파를 가리킨 후 묵직한 걸음으로 어느 방 안으로 향했다.
“행님, 이번 곡 피처링하기로 했다고 손님이 오셨는데요.”
“아, 왔대?”
그때, 열린 문틈으로 방송으로만 종종 들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개인적으로 꽤 관심이 있었던 그룹인지라, 애써 떨리는 마음을 감추며 지예찬이 나오길 기다렸다.
“넌 왜 조폭처럼 인상을 그렇게 구기고 있어?”
“안 구겼는데요.”
“웃어. 나까지 무섭다.”
“네…….”
곧 마흔을 앞둔 나이에 여전히 새하얀 미소년에 가까운 방부제 외모의 지예찬이 복도 끝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험악한 남자는 지예찬의 명령에 어정쩡한 미소를 띠며 함께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소파에서 몸을 일으킨 대표님을 따라 곁에 섰다.
“예찬아.”
“오, 박 팀장님!”
“이젠 박 대표다, 예찬아.”
“하하, TaKa 퇴사하실 땐 팀장이셨으니까, 영원히 팀장입니다. 그나저나 옆에 있는 애가 이번에 그 애?”
“어. 곧 데뷔할 우리 회사 신인이다.”
“오…….”
지예찬 선배가 훑어 내리는 시선에 바짝 긴장한 채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앞으로 ‘이응’으로 데뷔할 이은호라고 합니다!”
“이응?”
이응이라는 팀명을 막상 처음 입에 올리자 어색한 기분이 컸다.
“잘 부탁드립니다!”
“팀명 귀엽네. 나한테 부탁할 게 뭐 있어. 고개 들어요, 후배님.”
회귀 전, 처음 인사를 건넸을 때도 그랬지만, 지예찬 선배는 후배들에게 상당히 다정한 분이셨다.
단, 한 가지. 중요한 조건이 지켜졌을 때만.
“오, 얼굴은 잘생겼네. 아이돌이에요?”
지예찬이 박 대표를 돌아보며 물었다.
“아이돌처럼 키우긴 했었지.”
“아이돌처럼? 그럼 솔로예요?”
“아니.”
그럼 뭔데요?
지예찬이 갸웃거리며 눈짓했다.
“남매 혼성 듀오로 나갈 애야.”
“오……? 요즘 남매뮤지션인가 걔들처럼?”
“응.”
“실험적이시네요.”
“그렇지.”
슬쩍 고개를 들었을 때 지예찬 선배는 입만 웃고 있었다.
눈은 섬뜩하리만큼 감정이 없어 보였다.
‘실험적이다.’
맞는 말이었다.
남매라는 타이틀을 제외했을 때, 현재 시장에서 혼성 듀오는 과거의 영광이 있는 그룹이 아니고서야 환영받기 힘든 조합이니까.
사실 이건 ‘남매’로서도 마찬가지였다.
뻔히 보이는 후발 주자에다, 남매뮤지션 같은 경우에는 대형 기획사와 그만한 실력 및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한 단단한 팬층이 형성된 경우였었으니까.
“얼굴 잘생긴 건 알겠고, 노래도 잘해요?”
“이 실장이 보장했으니까 그렇지 않을까 싶은데.”
박 대표는 일부러 어깨를 으쓱이더니 자기는 잘 모르겠다며 말을 얼버무렸다.
조금 전 아카데미에서 부르는 걸 들었을 땐, 잘하긴 했지만…….
굳이 말하자면 너무 정석적인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기본은 하나 보네요.”
지예찬도 보컬 트레이너 이하늘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지 입술을 비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연습생.”
연습생.
지예찬 선배는 날 싸늘한 시선으로 가볍게 훑으며 녹음실로 몸을 돌렸다.
“네!”
씩씩하게 대답하긴 했지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겠다는 게 빤히 느껴졌다.
하지만 괜찮다.
이건 기회니까.
이 노래를 듣는, 단 0.1%의 관객들의 귀에라도 내 목소리, 내 이름을 남길 수 있다면 충분하다.
“이쪽은 오태진 기사님.”
“이은호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일단 들어가서 먼저 들어 보자.”
“네!”
친절하게 고개를 끄덕이시는 기사님께 한 번 더 꾸벅 고개를 숙이고 나는 좁은 녹음실 부스 안으로 들어섰다.
주변을 둘러싼 울퉁불퉁한 검은 흡음재들.
‘오랜만이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이은지를 보낸 뒤. 집보다도 오래 있었던 녹음실.
미친 척 일에 파묻혀 살았던 1년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그래서였을까.
익숙한 풍경에 친근한 느낌을 느끼며 긴장에 굳어졌던 어깨를 털어 냈다.
“아아아.”
으르르륵.
익숙하게 목을 풀며 마이크 앞에 섰을 땐, 그간 트레이닝 받을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었다.
“준비됐어요?”
헤드셋을 착용하자, 짤깍이는 토크 백을 누르는 소리 뒤로 이어지는 지예찬 선배님의 무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그래요.”
지예찬의 대답이 사라진 순간.
츠르르르륵.
스네어가 얕게 튀는 소리를 시작으로 밤새 들었던 익숙한 가이드곡이 흘러나왔다.
인트로가 끝나 갈 즘, 나는 설레는 마음을 잔잔하게 가라앉히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첫 번째 벌스의 A 파트를 알리는 색소폰 연주와 함께 나는 입을 열었다.
이제 진짜 노래할 시간이었다.
* * *
내 느낌이 경고해
아직 네가 오기 전인데
지예찬은 눈을 감은 채 인트로를 감상하다, 비트가 얹어지며 벌스로 넘어가던 순간.
색소폰과 동시에 들린 은호의 목소리에 번쩍 눈을 떴다.
“신인이라며, 뭐야.”
지예찬은 신경질적으로 박 대표를 돌아봤다.
하지만 막상 박 대표를 돌아보자 지예찬은 황당한 얼굴로 헛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뭐야, 박 팀장님 자기 가수 역량도 몰랐어요?”
“아니, 알고는 있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
끊어진 뒷이야기는 박 대표의 표정이 마저 말하고 있었다.
‘분명 학원에서 부를 때만 해도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트레이너 앞에서 은호는 문제인 부분을 다듬는 느낌에 집중하느라 ‘정직하게’ 부르는 것에 몰두했었다.
예상치 못한 반전 덕분에 박 대표는 현재 지예찬보다도 기함할 지경이었다.
테이블 위 한 송이
오늘따라 붉어 보여
A 파트가 끝날 무렵.
지예찬은 시원하게 앞머리를 훑어 넘기며 박 대표를 돌아보며 물었다.
“밴딩 치고 빠지는 것만 봐도 족히 몇 년은 굴러 본 놈인데?”
“하…… 하하.”
어이가 없다는 듯 지예찬이 태클을 걸어왔지만, 박 대표는 할 말이 없었다.
은호는 발음을 매력적으로 씹을 줄 아는 놈이었다.
다만, 그게 매력이라는 걸 아는 만큼 너무 남발하는 게 문제였었다.
하지만 지금 은호는 지예찬의 말대로 어디서 어떻게 부르고, 떨고, 씹어야 하는지를 마치 곡 주인보다도 잘 알고 있는 느낌이었다.
‘분명 몇 주 전만 해도 애송이 같던 녀석이, 대체 어떻게…….’
지예찬의 시선에서 이은호는 곡 해석력을 타고난, 적어도 정규 2집 이상은 내 본 베테랑 가수를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은호를 지켜봐 왔던, 은호의 실력을 알고 있던 박 대표의 입장에선 은호가 하루아침에 새로운 생물로 진화라도 한 듯, 갑자기 없던 재능을 만들어 낸 것처럼 보였다.
벌스 1―A 파트가 끝나고 B로 연결되는 그동안.
은호는 중간에 끊고 넘어갈 줄 알았는지 감은 눈을 끔뻑거리며 창 너머를 빤히 바라봤다.
하지만 대답 없이 노래가 이어지자, 그대로 가는 거라고 판단한 듯 다시 눈을 감고 박자에 집중했다.
‘녹음실은 낯설기만 할 텐데…….’
박 대표에게는 이 또한 놀랍긴 마찬가지였다.
은지처럼 곡을 만드는 것도 아니었던 데다, 은호는 트레이닝을 받을 때 외에는 녹음실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당연한 반응이었다.
“팀장님이 한번 써 보라길래 썼더니, 나 곡 빼앗기게 생겼는데요?”
“네가 더 잘하면 되겠네.”
“와…… 너무하네.”
바깥의 상황은 보이지도 않는지 지예찬과 박 대표가 투덕거리는 와중에 멈추지 않고 흐르던 노래는 후렴구를 지나 두 번째 벌스에 도달했다.
은호는 여유롭게 두 번째 벌스 1―A를 이어 갔다.
테이블이 공허해
왜 왔는데 말이 없어
내가 신경 쓸 가치
번져 가는 불안같―
그때였다.
“잠시만요, 은호 씨.”
음악을 끄자, 창 너머의 은호는 곧장 노래를 멈추며 지예찬의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아까, ‘오늘따라’ 부분.”
“벌스 1―A요?”
“어. 거기, 거기처럼 ‘내가 신경 쓸 가치’, ‘번져 가는 불안같이’에서도 똑같이 밴딩 줄 수 있어요?”
“밴…… 아, 네! 할 수 있습니다!”
“오케이, 그럼 벌스 2부터 다시 갈게요.”
지예찬이 신호하자, 기사님의 손끝에서 다시 두 번째 벌스의 멜로디가 이어졌다.
은호는 여유롭게 리듬을 타며 고개를 까딱이다, 지예찬이 부탁했던 구간에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 노래를 이어 갔다.
내가 신경 쓸 가치
번져 가는 불안같이
마치 붙여 넣기를 하듯 지예찬의 요구 그대로였다.
지예찬은 아주 만족스러운 듯 주먹까지 쥐고 흔들 정도로 흥분하고 있었다.
“잘했어! 이어서 바로 브리지로 넘어가자.”
“네!”
B 파트로 넘어가기 전.
지예찬은 토크 백을 누르며 은호를 칭찬했다.
“지금처럼만, 은호 씨.”
“네, 선배님!”
음정을 못 잡을까.
기사님의 배려인지 곡은 후렴 중간에서부터 이어졌다.
은호가 리듬을 타며 파트를 기다리는 동안, 지예찬은 조용해진 박 대표를 힐끔 쳐다봤다.
“왜.”
박 대표는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모른 척 눈길을 피하다 한숨을 뱉으며 물었다.
“아니, 일부러 그랬죠.”
“뭘.”
“나 얼마 만에 내는 솔로곡인데, 이런 애를 피처링에 쓰라고 데려와요?”
박 대표는 할 말이 없었다.
이렇게 잘할 줄 몰랐다는 말은 무능한 것과 약 올리는 것밖에 안 될 것 같았으니까.
“그럼 지금이라도 뺄래?”
“아니, 저렇게 기가 막히게 자기 곡으로 만들어 버렸는데 어떻게 빼요?”
“빼면 되지.”
“내가 마음에 들어서 싫어요.”
“어쩌라는 건지…….”
박 대표는 투덜거리면서도 지예찬의 시선에 흐뭇함을 느꼈다.
지예찬은 후배들에게 다정하다.
단, 실력이 확실한 후배들 한정.
노력이든 재능이든. 좋은 노래를 들려 주는 후배를 어떻게 안 좋아하겠냐는 ‘그’만의 철학이 있는 사람이었다.
“쟤 데뷔곡 나왔어요?”
“왜, 네가 써 주게?”
“못 해 줄 건 없죠.”
어지간히 은호가 마음에 든 것 같았지만, 박 대표는 아쉽지만 고개를 저었다.
“그럼 정규 때나 줘.”
“와, 누가 곡 주길래 내 곡을 거절해요?”
“누구긴.”
지예찬의 장난 섞인 질문에, 박 대표는 막 브리지에 들어서기 시작한 은호를 고갯짓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쟤 멤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