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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6화 (6/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6)

“아, 이은호! 노래 어땠는데!”

“아까도 말했잖아. 좋다고!”

“진짜 그거뿐이야?”

“좋으면 끝이지, 뭐!”

바쁘게 뒤따라 오르는 이은지의 발소리가 갑자기 우뚝 멈춰 섰다.

“끝까지 모른 척하냐, X나 나쁜 새끼.”

“야, 오빠한테 X나라니.”

“뭐, X나! X같은! X새끼야!”

바락바락 소리 지르는 이은지.

이럴 땐 경험상 무시가 답이라 난 먼저 2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달렸다.

물론.

그냥은 아니었다.

“밤에 쌍욕 하면 귀신 나온다?”

그렇게 말을 툭 던지고 후다닥 2층으로 향하다, 절반쯤 올랐을 때.

뒤를 돌아보자 얼굴이 하얗게 질린 이은지가 고작 두 칸 정도의 짧은 거리를 유지하며 조용히 뒤따라오고 있었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귀신을 무서워하는 건 여전한 모양이다.

‘저러다 밤새우겠네.’

밤새우면 곡이 더 늦어지니까.

“구라야, 멍청아.”

“아…….”

이은지는 알면서도 속은 게 분한지 이를 갈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2층에 오르는 내내 삐친 걸 티 내듯 은지는 한 걸음 남짓한 거리만 둔 채 조용하게 뒤따라왔다.

그러다 문득 등 뒤로 싸늘한 바람이 들었을 때.

난 뒤를 돌아봤다.

“뭐 하냐?”

은지는 좁은 옥상 마당에 우두커니 선 채 컴컴해진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냥, 우리 데뷔곡 주제를 어떤 걸로 할까 싶어서.”

“갑자기?”

시비라고 느낀 건지, 은지가 사납게 노려보다 휙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에 놀라게 한 것도 그렇고…….

괜히 저렇게 삐져 있으니 그건 또 그거대로 마음에 걸렸다.

“이은지.”

“뭐, 신경 쓰지 말고 들어가.”

투덜거리는 걸 보니, 제대로 삐친 모양이다.

“주제, 생각하고 만든 거 아니었어?”

“흥.”

대답 안 할 것처럼 고개는 돌렸지만, 우물거리는 입 모양을 보아하니 할 말은 있는 것 같았다.

“야, 미안해~. 대신 너도 한 대 칠래?”

진지하게 사과하자니 그건 싫고, 어물쩍 장난처럼 사과를 던졌다.

이은지는 입술을 비죽거리다 한 대 치라는 건 마음에 들었는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가까이 다가왔다.

“자, 쳐.”

팔 한쪽을 내주자 이은지는 이젠 감출 생각도 없는지, 이미 웃고 있었다.

짜악!

시원한 소리가 골목을 울린 순간, 문득 밤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속에서 온갖 쌍욕이 들끓었다.

하지만 내가 먼저 치라고 했으니, 부처의 마음으로.

주걱에 붙은 밥알이라도 얻어먹자고 위해 맞기를 자청했던 흥부의 마음으로 겨우 화를 삼키며 물었다.

“그래서, 데뷔곡 주제 뭐 때문에 고민한 건데.”

“아, 그거, 그냥. 아까 너 우는 거 보니까 바꾸고 싶어져서.”

“안 울었어!”

“아무튼! 바꾸고 싶어졌어!”

“바꾸고 싶어진 거면 바꿀 걸 정해 뒀다는 말이잖아.”

“정해 둔 게 마음에 안 들어.”

“뭔데.”

“네가 말한 거, 고양이 발걸음.”

곡 느낌이 다르길래 콘셉트도 달라진 건가 싶었는데, 예상과 다르게 콘셉트는 같은 모양이다.

“그때도 말해 준 콘셉트가 괜찮았잖아.”

“그래서 한 번 더 달라고?”

“엉! 이 동생님을 위해서.”

이은지가 양손을 모아 제 턱에 갖다 댔다.

아직 욱신거리는 팔 때문에 주먹이 울었다.

“와, 이은호, 그렇게 똥 묻은 개처럼 보는 건 동생인데 너무 한 거 아니냐?”

“동생이면 호칭이나 똑바로 붙이고 말하든지. 넌 내가 똑같이 굴면 어떻게 볼 건데?”

“우욱.”

“그거 봐. 네가 날 봤을 때 역겨운 건 너도 하지 말라는 말이야.”

“알았어…….”

회귀 전이었으면 일단 주먹부터 올라갔을 텐데, 그래도 흐른 시간 덕분에 차분하게 설득을 먼저 했다.

‘그나저나 시간이라…….’

시간.

이은지가 물은 주제로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이은지를 뒤따라 하늘을 바라보자 가로등이 고장 나서 그런가.

‘뭔가 많이 빛나네.’

그게 별인지 인공위성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야, 주제 있잖아.”

“뭐 떠올랐어?”

“어. 이별은 어때.”

이별이란 단어에 이은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드러냈다.

“사랑 노래는 싫어.”

“멍청아, 이별 종류가 남녀의 사랑만 있냐?”

“그러면?”

“그런 거 있잖아.”

이 시간으로 돌아온 지 꽤 흘렀지만, 예시라도 이은지가 죽었을 때라는 말은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아무리 미운 놈이라도 세상에 하나뿐인 내 가족이니까.

혹여나 또 홀로 남는 그런 일이 일어날까.

솔직히, 무섭다.

“넌 내가 갑자기 사라지면 어떨 거 같냐?”

“이은호가 사라졌을 때라…….”

“어.”

“오, X나 후련할 거 같은데?”

“하하.”

가족은 가족인지, 방금 이은지의 대답은 은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 내 반응과 거울처럼 똑같은 답이었다.

하지만 웃음이 멎자 공허한 한숨이 자리를 잡았다.

‘생각해 보면…….’

우리에겐 어릴 적부터 죽음이 가까이에 있었다.

굶어 죽을 뻔한 적도 빈번했던 데다, 납치를 당한 적도 있다.

위험한 순간은 박 대표님을 만나기 전까지 항상 함께였다.

다만, 생사를 오갈 때마다 우린 서로를 살렸다.

내가 굶어 죽어 갈 땐 이은지는 엉엉 울면서 돼지국밥집에서 부속 고기를 받아 왔고.

이은지가 죽을 뻔했을 땐 난 나쁜 짓인 건 알지만 살기 위해 이은지에게 먹일 빵 하나를 시장에서 훔친 적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이은지가 그렇게 됐을 땐, 마치 평생을 함께했던 동료를 잃은 기분이었다.

나는, 은지가 사라지고 나서야 그 빈자리를 알았다.

하지만 굳이 이 복잡한 감정을 말로 설명하고 싶진 않았다.

‘무슨 놀림을 더 받으려고.’

그래서 괜히 이은지 뒤통수나 한 대 치고 등을 돌렸다.

“왜 때려!”

“호박 잘 익었나 두드려 봤지.”

“X같은 소리 마세요. 덜 익은 호박 같은 새끼가!”

어떻게든 복수하겠다고 달려드는 이은지를 피해, 난 도망치듯 방으로 튀어 들어갔다.

후다닥 문을 잠그자, 부술 듯이 문을 쾅쾅거리는 것도 잠시.

“아 이은호 짜증 나!!!”

비명에 가까운 이은지 목소리가 좁은 집을 울렸다.

22살, 20살 성인들의 일상이었다.

* * *

그리고 며칠 뒤.

긴 머리를 바짝 올려 묶은 포니테일.

메이크업은 일절 하지 않았음에도 진한 아이라인이 눈에 띄는 사나운 눈매.

이은지가 스튜디오 한편에 박혀 무언가를 골똘히 고민하고 있었다.

“은지야?”

“네?”

“뭘 그렇게 고민하느라 부르는 소리도 못 들어?”

은지에게 말을 건넨 남자의 이름은 배진수.

은지의 첫 작곡에 큰 도움을 주고 있는 선생이자 베테랑 작곡가였다.

“앨범 콘셉트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어요.”

“앨범 콘셉트라면, 고양이 발걸음이라고 정해진 거 아니었어?”

“정해졌었는데, 구체적인…… 뭐랄까. 그런 거 있잖아요.”

배진수는 은지의 화법이 익숙한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은지를 피아노 앞으로 끌고 와, 건반에 팔을 뻗도록 만들었다.

‘신기한 녀석이란 말이야.’

은지가 찍어 내는 음악은 본능에 가까웠다.

기분과 생각, 감정 등 은지는 말로는 잘 표현하지 못하지만, 손에 악기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무엇이든 쥐여 주는 순간 기가 차게 그것들을 표현해 낸다.

‘천재.’

노력으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본능적인 영역.

“표현해 봐.”

배진수가 말하자, 은지는 잠시 당황하는 듯하더니 활짝 웃으며 건반 위로 손을 올렸다.

‘아이들?’

시작은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두 어린아이의 발걸음이었다.

그러다, 같은 코드였지만 멜로디가 묵직하게 바뀌었다.

‘아이들이 성장한 건가?’

배진수는 은지가 만들어 내는 곡의 흐름에 따라 상상을 맡겼다.

건반을 내려찍는 갈라지는 음은 성인이 된 아이들의 싸움처럼 느껴졌다.

은지는 한 손을 이용하여 의도적으로 피아노의 검은 건반만 내려찍었다.

‘불협화음…….’

분명 불협화음이 돼야 했었을 텐데.

검은 건반은 이상하게도 조화로운 하모니를 이뤘다.

아이들의 싸움이 은지에게는 그런 의미인 것 같았다.

배진수는 입가에 웃음기를 머금은 채 은지의 연주를 감상했다.

하지만 그때부터였다.

절대 갈라질 것 같지 않던 듣기 좋은 멜로디가 한순간 무너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코드도 메이저에서 마이너로 뒤바뀌더니, 이어서 디미니시 코드를 오가며 음침하고 우울한 리듬을 자아냈다.

감정이 가득했던 처음의 멜로디가 그대로 이어졌지만 음침한 음색 때문일까.

더 이상 처음의 활기찬 분위기는 없었다.

뒤따라오던 리듬이 사라진 탓도 있었다.

홀로 남은 멜로디는 무감정하고, 싸늘하게 굳은 분위기가 강했다.

연주를 마친 은지의 손은 힘없이 건반을 떠났다.

“오빠가요…….”

“응.”

배진수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의자를 하나 가져와 앉으며 답했다.

“이거 곡 처음 쓸 때, 오빠가 ‘고양이 발걸음’ 같다고 힌트를 줬었거든요. 아시죠?”

그럼, 알고말고.

배진수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박 대표에게 전달받은 곡을 재생했을 때.

‘고양이 발걸음.’

그 짧은 단어에서 어떻게 이런 곡을 뽑은 건지, ‘재능’이라는 영역을 마주했을 때의 감정은 박탈감과 동시에 희열감을 들끓게 했다.

“오빠가 이번에 이별에 대해서 이야기했거든요. 처음에는 별생각 없었는데…….”

“이별? 사랑 노래는 싫다고 하지 않았어?”

“헤헤. 선생님도 똑같은 말씀 하시네요.”

“응? 아.”

배진수는 뒤늦게 은지가 연주한 곡을 떠올리며 깨달았다.

“저도 처음엔 뭐, 애인끼리 헤어진다거나 그런 건 줄 알았는데, 오빠가 갑자기 자기가 사라지면 어떨 거 같냐고 물어봤어요.”

“넌 뭐라고 대답했는데?”

“당연히 그 우럭 새끼가 사라지면 후련할 거 같다고 했죠.”

“우럭…….”

비유에 피식하긴 했지만, 진심이 아니라는 건 은지의 울먹거리는 목소리만으로도 알 것 같았다.

“지금은?”

“지금은…….”

은지는 입을 닫았다.

하지만 배진수는 은지가 연주한 곡으로 충분히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았다.

뒤따르는 멜로디가 사라졌을 때, 무덤덤하고 무감정한 배경 속에서 멈추지 않고 걷는 걸음.

은지는 속이 갑갑해진 듯 오른손을 들어 느리게 건반을 두드려 댔다.

처음에 통통 튀는 것 같던 그 멜로디가 이젠 질척거리는 늪에서 겨우겨우 한 걸음을 떼고 있었다.

“앨범 주제를 그래서 ‘이별’로 하고 싶다는 이야기야?”

“음…… 느낌은 좋은데, 하고는 싶은데, 뭐랄까. 그, 좀 더 밝은 느낌으로 하고 싶어서요.”

“슬픈 이야기를 밝은 느낌으로 내는 곡들 옛날에 많았잖아.”

“그랬어요?”

배진수는 예시를 보여 주기 위해 모니터 앞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노래를 감상하는 은지는 새로운 영역을 발견한 듯 눈을 빛내고 있었다.

‘과연, 이번엔 어떤 곡이 나오게 될까.’

배진수는 은지에게 새로운 정보를 알려 줄 때마다, 은지의 손에서 탄생할 곡이 기대됐다.

그리고 이런 소녀의 뮤즈나 다름없는 이은호와의 만남 또한 기대되기는 마찬가지였다.

‘표현에 미숙한 신인이, 과연 이런 감정적인 곡을 감당할 수 있을까.’

배진수가 은호에 대해 가진 ‘기대’는 절대 좋은 쪽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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