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5)
통화가 끝난 뒤, 박창석 대표는 손끝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려 대며 생각에 잠겼다.
12년 전부터 함께 수많은 아이를 길러 내 왔던 보컬 트레이너, 이하늘.
그녀는 칭찬에 인색한 데다 ‘성장’이라는 단어를 쉽게 입에 담는 사람이 아니다.
「“못 본 새에 은호의 기본기가 갑자기 완성형에 가까울 정도로 급격하게 성장했던데, 알고 계셨어요?”」
은지조차 이 실장에게는 턱없이 기본기가 모자란다며 구박을 받는 실정에.
은지의 활동에 유독 집중을 쏟았던 그로선 충격으로 다가온 이야기였다.
“은호가 완성형이라니…….”
박창석 대표.
그는 이 회사를 설립하기 이전에 TaKa 엔터테인먼트에서부터 수많은 실력파 아이돌 그룹과 솔로 가수들을 관리해 온 사람이었다.
이 바닥에서 10년 이상 굴러 본 그에게 이은호는 조금 걸음마를 일찍 한 갓난아기 정도일 뿐.
웬만한 연습생들을 잘 연습시키면 나올 법한, 딱 평균 정도.
박 대표가 은호에게 내렸던 평가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 정도가 고작이었다.
콘텐츠로 ‘사업’을 해야 하는 박창석으로선 냉정하게 말해서, 은호는 성장의 끝이 보이는 그런 친구였다.
그래서일까. 은호에게는 그간 별다른 기대를 걸지 않았다.
‘솔직히.’
R&B에 최적화된 매력적인 중저음을 타고난 데다, 끼가 넘치다 못해서 줄줄 흐르는 은지가 곁에 없었다면 평가가 조금 바뀌지 않았을까.
‘가족이라…….’
이은호, 이은지 남매는 겉으로는 사이가 나쁘다.
다만, 박 대표가 개인적으로 본 두 사람은 실상 서로에게 최상이라 부를 수 있는 시너지를 내고 있었다.
은지는 노력하는 은호에게 크게 자극받고, 은호는 그런 은지에게 밀리지 않고 그 평범함을 개성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예민하게 갈고닦으니까.
‘그런 두 사람을 그룹으로 엮어 아이돌화를 시킨다면 어떨까.’
처음 두 사람에게 혼성 듀오를 제안한 건 그런 실험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이유였다.
보통 혼성 그룹은 연애 문제나 이미지라든가 다양한 곳에 신경을 쏟아야 하는 만큼 관리가 번거롭다.
게다가 한 성별의 팬덤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게 힘들다는 점도 문제가 됐다.
하지만 최근 차트를 휩쓸고 있는 남매뮤지션을 본 순간, 박 대표는 이은호와 이은지 남매에게서 새로운 가능성을 꿈꿨다.
「“대표님! 요즘 이은호가 이상해요.”」
며칠 전.
은지가 스쳐 가며 그런 소리를 한 적 있다.
평소와 다름없이 남매끼리의 투덕거림이라고 생각하며 넘겼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남매 데뷔를 제안한 그날 저녁에도 은호는 평소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사랑 노래만 아니면? 노래는 네가 만들면 되잖아.”」
평소의 은호였다면 은지가 역겹다고 하는 순간 따라서 욱하며 소리쳤을 텐데.
‘하지만 은호는 은지를 설득했지.’
음악이 어떻게 나올지는 두고 봐야 할 테지만, 감이 좋은 은지의 곡이기 때문에 큰 걱정은 없다.
은지는 대중에 가까운 귀를 가지고 있다.
그걸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할 줄 아는 녀석인 데다, 그녀와 함께 작업하게 된 프로 작곡가도 있기에 걱정은 하지 않는다.
박 대표는 책상에 놓인 자신의 패드로 눈길을 돌렸다.
패드 속에는 흐린 화질이긴 했지만 은호가 입을 벌린 채 멈춰 있는 한 영상이 있었다.
이 실장의 판단은 항상 옳았다.
그런 이 실장이 은호가 달라졌다 했으니, 이젠 자신이 프로듀서로서 일할 시간이었다.
* * *
작업
이후 한 달가량 시간이 흐른 어느 날이었다.
“너희 팀명을 어떻게 할까 고민했는데.”
“팀명이요?”
“그래. 타이거 브라더나 시스터 같은 걸로 생각해 봤는데, 어때?”
이은지를 곁눈질로 보자, 거울처럼 똑 닮은 질겁한 얼굴이 나를 보고 있었다.
딱히 생각나는 게 없는데, 그렇다고 타이거 브라더나 시스터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다.
뭔가, 조금 더 단순하게…….
“저는…….”
그때, 별생각 없는 나와 달리, 이은지는 떠오른 이름이 있는지 머뭇거리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응’ 같은 게 어떨까 싶은데.”
앞으로 우리가 활동할 이름이기 때문일까.
이은지는 대표님이 아니라 나를 보며 물었다.
“이―응? 왜?”
“이은, 호. 이은, 지.”
이은지는 검지로 나를 가리키고 자신을 가리키며 설명이 뭐가 더 필요하냐는 반응을 보였다.
“그럼 ‘이은’도 있잖아.”
“이은보다는 이응이 귀엽잖아.”
“니가 안 귀여운데 이름이 귀여워서 뭐 해.”
“닥쳐.”
이응.
이은.
“투 실버 같은 건 어때.”
대표님의 제안은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우리는 각자 생각에 잠겼다.
결론은 ‘타이거 브라더’, ‘타이거 시스터’, ‘투 실버’보다야 ‘이응’이 더 캐릭터도 있고 괜찮았다.
“은호, 너도 이응이 더 마음에 드냐?”
“네, 괜찮네요. 이응.”
처음엔 어색하지만, 입에 굴려 보니 꽤 우리 남매와 이미지도 잘 맞는 것 같기도 하고 타이거 어쩌고보다는 무조건 훨씬 나은 것 같아서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타이거 이―.”
“으, 싫어요.”
“그건 싫습니다.”
왜 이렇게 호랭이를 못 놓으시는 건지.
대표님은 장난처럼 시작했지만 은지의 ‘으’라는 반응을 보고 마음에 상처를 입은 듯 시무룩한 얼굴이었다.
“팀명은 그럼 ‘이응’으로 하고, 데뷔 전에 피처링 작업을 먼저 하게 될 건데.”
“피처링이요?”
“그래.”
“가수는 누구예요?”
상기된 목소리로 이은지가 물었다.
나 또한 옆에서 놀라고 있기는 매한가지였다.
“음. 일단 곡부터 들어 봐라.”
대표님은 테이블에 놓여 있는 패드 속 컴컴한 동영상을 재생시켰다.
스네어가 장난스럽게 튀는 소리로 시작된 인트로.
‘어? 이거……!’
반복적으로 때리는 베이스 드럼이 더해지면서 익숙한 비트가 들렸다.
‘여기에 그 악기가 등장하면 이건 내가 아는 그 곡이 맞다.’
특색 없는 비트에 기대감이 한결 죽을 무렵.
벌스로 돌입하는 구간에 뜬금없이 목관악기의 쨍한 소리가 특색 없던 비트에 숨결을 불어 넣었다.
예상했던 그 곡이 맞았다.
‘사인(sign)’.
평범한 비트에 유연하게 자유로이 날뛰는 색소폰은 그 자체로 충분히 매력적인 재즈 한 곡을 완성시켰다.
하지만 이에 멈추지 않고, 라운지에서 흘러나올 법한, 고급스러운 멜로디 속에서 퇴폐적인 가사를 속삭이는 낯선 목소리.
가이드가 끝날 무렵, 박 대표가 입을 열었다.
“같이 작업할 가수는 지예찬이다.”
“지, 지예찬이요?”
이은지가 환하게 웃으며 대표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지예찬.’
2000년대 시작부터 2010년 초 대중 음악계를 휩쓸었던 TaKa 엔터테인먼트를 세운 아이돌 그룹.
‘톡신(Toxin)’.
지예찬은 그룹 톡신에서 메인 보컬을 담당하던 리더였다.
지예찬이 발표한 솔로 앨범의 수록곡 ‘사인’은 발표와 동시에 단숨에 스트리밍 차트 탑텐에 자리했었다.
“피처링은 은호 네가 하기로 했다.”
“여기에요? 제가요?”
“자신 없어?”
대표가 허리를 빼며 묻자, 본능적으로 입이 움직였다.
“아뇨!”
솔직히, 진심으로 당황스러웠다.
회귀 전이었다면 이런 곡들은 무조건 이은지한테 갔었으니까.
‘지예찬 선배님 솔로곡에 피처링이라니…….’
지예찬 선배와는 한창 활동하던 때, 대표님의 소개로 인사차 방문한 대기실에서 짧은 인사를 나눈 게 고작이었다.
“네가 참여할 부분은 벌스 1-A, 벌스 2-A, 브리지까지다.”
테이블 위의 가사지에서 대표님이 말씀하신 부분에 간단히 별을 치며 표시했다.
“녹음 일정은 내일이고, 이동은 나랑 같이할 거니까.”
“네?”
“컨디션만 잘 챙겨.”
컨디션이야 당연한 말이지만…….
녹음이 내일이라니?
“잘할 수 있지?”
“예…….”
입을 뻐끔거리다가도 막상 꺼낼 말이 없었다.
1년 내내 녹음실에 박혀 있었던 시절을 생각하면, 그다지 특별한 일도 아니었으니까.
‘하면 되지, 뭐.’
기회를 버리고 싶진 않으니까.
그동안 박 대표의 시선은 은지에게 옮겨 갔다.
“은지는…….”
박 대표의 부름에 이은지의 눈이 반짝였다.
누가 봐도 피처링에 관심이 쏠려 있는 것 같은데, 이어지는 대표님의 이야기는 이은지의 기대를 빗나갔다.
“작업, 얼마나 진행됐어?”
“어떤, 아, 곡이요?”
“그래, 메일로 파일 받은 거 있지?”
“네, 있어요.”
“들어 보자.”
이은지는 조금 실망한 기색을 비치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곡을 찾은 듯 이은지가 휴대폰을 테이블에 놓아 두자, 쿵, 쿵, 내려찍는 느낌의 묵직한 808 베이스를 시작으로 음악이 시작됐다.
“허…….”
난 무의식적으로 숨을 뱉었다.
처음 내가 던진 힌트는 고양이가 리드미컬한 걸음을 내딛는 그런 느낌을 생각하고 꺼낸 이야기였다.
회귀 전 이은지가 만들었던 곡이 딱 그랬으니까.
하지만 이번에 이은지가 내놓은 곡은 그때 그 곡과는 차원이 달랐다.
일단 더 이상 고양이는 없었다.
비교하자면 고양이가 아니라 산신이라 불리는 호랑이의 발걸음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묵직한 비트의 향연이었다.
타이거 브라더든 시스터든 구린 건 여전하지만 왜 대표님이 그렇게 호랑이 타령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직 가사는 완성하지 못했는지, 중간중간 이은지가 임의로 붙인 외계어 멜로디가 이어졌다.
나는 어느새 이은지의 곡을 따라 흥얼거리고 있었다.
‘어?’
머리는 아직 떠올리지 못했지만, 입이 기억하고 있는 리듬이었다.
이은지가 회귀 전 만들었던 곡과는 전혀 달랐지만, 이건 분명 내가 아는 곡이었다.
‘설마?’
이은지를 돌아보자, 마치 자랑이라도 하는 듯 이은지가 활짝 웃어 보였다.
이 익숙한 리듬을 어디서 들어 봤는지, 기억이 났다.
어린 시절 우리만의 콘서트.
아무렇게나 가사를 붙이고, 아무렇게나 두드려 가며 듣기 좋은 리듬을 찾았던 그때 그 노래.
이걸 어떻게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걸까.
「같이 했으면 오빠도 같이 여기서 엄청 뛰어놀았을 텐데 아쉽다.」
장례식 날 받은 이은지의 일기장에 쓰여 있었던 그 이야기가 생각나, 뜨거워지는 눈시울에 황급히 고개를 쳐들었다.
노래 때문이었다.
그렇게 돌아오길 바랐던 시간을 지금 겪고 있다는 게 갑자기 실감 나면서, 그때의 울컥거림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좋네.”
이은지는 왜 그러냐는 시선으로 나를 봤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기분이라 그냥 눈을 피해 버리며 답했다.
* * *
“시간도 늦었으니, 회의는 이만하고 일어나자. 은호는 내일 점심쯤엔 출발해야 하니까 일찍 자고.”
“네.”
늦은 시간에 시작된 회의는 저녁 10시가 다다르고서야 끝이 났다.
1층 로비(거실)을 지나 현관 밖으로 나왔을 때.
어깨를 톡톡 두드리는 손길에 고개를 돌리자, 이은지가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왜.”
“이은호, 내가 만든 노래가 그렇게 울 정도로 좋아?”
이럴 줄 알았다.
“아, 왜 밀고 X랄이야!”
훅 가까이 들어온 호박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밀어내며 나는 먼저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