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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4화 (4/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4)

이어폰을 끼고 있었던 터라 이은지가 방 안에 들어온 것도 방금까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은호! 너 뭐야?”

“뭐가?”

갑자기 왜 방까지 찾아와서 시비를 거는 걸까.

“너 왜 영어로 랩 할 수 있어?”

“뭔…….”

처음엔 무슨 헛소리인가 했다.

‘아, 참, 여기 2014년……!’

당시의 난 진지하게 이 길을 걱정했을 정도로 영어를 심각하게 못 했다.

“아, 그거, 하도 못 알아듣겠어서 빡시게 공부했다, 왜.”

말도 안 되는 핑계인 걸 알면서도 방법이 없어서 대충, 급하게 핑계를 둘러댔다.

하지만 쉬이 넘어가지 않을 생각인 듯. 이은지는 실눈을 한 채 나를 노려봤다.

‘못 믿을 만도 하지.’

하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은지다.

이은지는 내 돌머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녀석이니까.

열심히 공부한 건 사실이었지만, 내 머리로는 랩은 무슨.

영어 단어에 한국어를 대입하는, 나는 그 단순한 ‘변환’이 안 돼서 팝송을 그럴싸하게 알아들으면서 따라 부르는 것까지는 족히 몇 년이나 걸렸다.

지금도 노래가 익숙해서 잘 부를 수 있었던 거지.

‘실질적으로 보면 또 그렇게 잘하게 된 건 아니라서…….’

내가 이렇게까지 당황할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

뒤늦게서야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그때였다.

“진짜 재수 없어!”

이은지의 목소리가 묵직한 벼락처럼 귀에 내리꽂혔다.

우렁찬 목소리가 옥탑방을 뒤흔들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옥탑방 지붕이 흔들거릴 정도로, ‘크다’라는 표현을 넘어선 소리였다.

“넌 무슨 목청으로 집을 때려 부수― 어억!”

숨이 턱 멎는 기분이었다.

내려찍은 이은지의 주먹이 허벅지 근육을 제대로 뒤틀었다.

“이게 미쳤나!”

겨우 숨을 틔우며 소리쳤지만, 이은지는 이미 후다닥 방을 뛰쳐나간 지 오래였다.

“갑자기 왜 저러는 거야?”

도저히 내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 * *

곧 수업이 있는지라, 목이 늘어난 티를 벗고 깔끔한 흰 티로 갈아입으며 거실로 나왔다.

‘뭐야, 이건.’

윗옷에서 목을 빼내며 눈을 떴는데, 대뜸 눈앞에 들이밀어 곧게 선 중지.

그 너머로 보이는 흡족하게 말려 올라간 이은지의 입꼬리.

다른 것보다, 반쯤 이은지 특유의 흐리멍덩하게 뜬 눈에 약이 올랐다.

“아아아악!”

이은지를 따라 씨익 웃다가, 나는 이은지가 방심한 틈을 타 송곳니를 세워서 이은지의 중지를 물었다.

“야이, 씨! 미X놈아! 놔! 놓으라고!”

이은지는 악력만으로 내 턱을 부술 듯 열어 버리더니, 제 중지를 빼내며 나를 사납게 돌아봤다.

“미X, 진짜 송곳니로 물었어! 아프잖아!”

“누가 그렇게 맛있는 엿을 내밀라디?”

“짜증 나, 이은호!”

“어이구, 그런 극찬을! 감사합니다!”

일부러 활짝 웃어 주며 과장하자, 놀리는 걸 알긴 아는지 이은지는 더 씩씩거리는 숨을 뱉으며 제 방으로 튀어 들어갔다.

쾅!

방문을 얼마나 힘껏 닫았는지. 집 안에는 문소리로 인한 파장이 진하게 남아 있을 정도였다.

나는 어깨를 들썩이다 거실에 놓인 인생 최대의 난제에 집중했다.

2014년도에 사용하던 개인 사물함.

거기 걸린 자물쇠의 비밀번호.

‘2014, 0830, 3080…… 생년월일도 아니고…….’

약 10분이 흘렀을 즈음.

아직도 난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을 때.

이은지는 내내 방 안에서 틀어박혀 작업하더니, 가이드 파일로 보이는 USB를 주머니에 챙겨 넣으며 방을 나섰다.

“오빠, 사물함 앞에서 뭐 해?”

“어, 아니. 야, 너 혹시 내 사물함 비밀번호 아냐?”

“1111 아니야?”

0000도 있는데, 굳이 1111?

“왜?”

“내 생일이니까.”

“오케이. 그건 절대 아니겠네. 거른다.”

이은지의 대답에 잠시 인상을 구기다 헛소리로 치부하며 넘겼다.

이런 반응을 예상하긴 했는지, 이은지는 신발장을 뒤적이며 깔깔거렸다.

“근데, 너 어디 가냐?”

“작곡가님이랑 기사님 뵈러 일산 스튜디오 다녀와야 돼.”

“일산이면 좀 걸리겠네.”

“그래서 차에서 한숨 자려고.”

“불편해도 안전벨트 잘 매고.”

“내가 애냐? 길 가다 뒈지든 말든 신경 꺼.”

나는, 이 시간으로 돌아온 이후로 예전과 달리 쉽게 ‘뒈진다’, ‘죽는다’ 같은 단어들을 말할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은지의 대답이 아픈 곳을 건드렸다.

“그런 말 하지 말고 조심하기나 해.”

“징그럽게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남이야 죽든 말든.”

반복해서 죽음이 언급되자, 그때의 세상이 무너진 기분이 떠올라 울컥 화가 솟았다.

이은지의 사고는 상대방의 음주 운전으로 인한 것이었지만, 사망에 이바지한 문제는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이은지가 갑갑하다며 안전벨트의 가슴을 고정하는 부분을 멋대로 뒤로 넘긴 것.

작은 차이였지만, 똑바로 안전벨트를 착용했던 매니저는 적어도 살아는 있었다.

“장난치지 말고.”

“어차피 맬 거였어!”

“답답하다고 풀거나 넘기지도 말고.”

“어, 어떻게 알았어?”

“대답이나 해.”

“아, 알았어. 잘 맬게. 귀찮게, 진짜.”

장난이 아니라는 걸 느낀 듯 이은지가 투덜거리며 대답했다.

“매니저 형님한테 물어봤을 때 너 안전벨트 풀고 탔거나 넘겼다는 이야기 들리면, 나 또 그저께처럼 행동한다.”

“아, 제발.”

그저께.

나는 ‘이번엔 좋은 오빠 노릇 좀 해 보자.’라는 생각에 며칠 동안 친절하게 이은지를 대했었다.

내 나름, 잘 해냈다고 생각할 정도로 착한 오빠 프로젝트는 솔직히 완벽했다.

그랬는데.

착한 오빠 프로젝트 이틀 차.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왜 그러느냐, 동생아. 무엇이 너를 그토록 화가 나게 했어?”」

「“너요. 너 새끼요! 이은호 X자식아! 불만이 있으면 차라리 대놓고 욕을 해! 이딴 X 같은 수작질 부려서 사람 기분 잡치게 만들지 말고!”」

이은지는 대뜸, 정성스럽게 아침 식사를 준비한 내 멱살을 붙들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기껏 착한 오빠 노릇 좀 해 줄까 했더니만, ‘X’이라는 욕부터 수작질이라느니, 잡친다느니…….

이은지는 랩으로도 몇 곡 성공했을 때부터 알아봤지만, 욕을 아주 그냥 야무지게, 내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냅다 내리꽂았다.

「“상대가 원하지 않는 친절은 민폐라고!”」

꽤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 난리를 치른 이후―이걸 ‘덕분’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어쨌거나 나는 ‘이은지도 이게 편한 거구나’를 깨닫고, 나 또한 편안한 ‘진짜’ 일상을 되찾을 수 있었다.

“제발, 아직도 오빠가 앞치마 입은 악몽 꾼다고. 안전벨트 잘 차고 갈 테니까 제발 그러지 마.”

반면, 이은지한테는 그 이틀이 어지간히 큰 트라우마가 된 듯. 큰 한숨을 내쉬며 양손을 바삐 비벼 댔다.

적어도 자기 입으로 한 약속은 지키는 애니까.

난 한결 안심하면서 이은지를 보냈다.

그렇게 이은지가 2층을 떠나고.

‘설마 0000-9999 라인은 아니겠지 싶어서 안 했는데…….’

나는 조금 더 자물쇠를 만지다가 설마 하는 생각에 비밀번호를 1111로 맞췄다.

달칵.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자물쇠가 손쉽게 풀어졌다.

왠지 진 기분이 들어, 괜히 혀를 차며 사물함 속에 놓인 안경집을 집어 들었다.

최근까지는 눈앞이 흐려도 큰 문제가 없었지만, 수업을 들을 땐 종종 칠판을 봐야 하기에 필수인 안경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마지막 준비물도 챙겼겠다, 대표님도 다른 볼일로 회사를 비운 터라 인사를 받을 사람도 없지만 신경 쓰지 않은 채 씩씩하게 빈집에 인사를 건넸다.

가벼운 걸음으로 오랜만인 보컬 트레이닝 학원으로 곧장 향했다.

* * *

“선생님!”

“오~, 오랜만이다, 은호. 오늘 인사 씩씩하네. 그동안 꾸준히 연습은 했지?”

“아유, 당연하죠!”

“그만큼 스트레칭도 잘했고?”

“당연하죠! 스승님 말씀이신데!”

“하하. 얘가 몇 주 못 본 사이에 왜 이렇게 능글맞아졌대?”

트레이너 선생님의 해외 출장으로, 약 3주 만의 재회였다.

내 시간에서는 사실상 적어도 4년 만인가?

오랜만에 뵙는 얼굴인지라, 오늘은 나도 꽤 들뜬 기분으로 인사를 건넸다.

“일단 수업 들어가기 전에 물 한 잔 마시고 목부터 풀자.”

“예!”

20분가량 몸으로 하는 스트레칭을 마친 후.

소리도 스트레칭이 필요한지라, 한창 자연스레 목을 풀고 있던 그때였다.

“아아.”

“어머, 은호야.”

“아―아?”

“평소엔 쓸데없는 곳에 힘이 들어가서 굳은 소리가 먼저 났던 애가!”

“그, 그랬나요?”

“‘그랬나요’라니, 매일 똑같이 잡아 줘도 감도 못 잡았잖아? 어떻게 그 고질병을 며칠 사이에 이렇게 깔끔하게 고쳤대?”

“아, 하하…….”

가슴에 보이지 않는 비수가 날아든 기분이었다.

‘고질병이라니.’

데뷔 이후로도 한동안 고쳐지지 않았던 내 최악의 나쁜 버릇.

하지만 데뷔 이후―정확히는 두 번째 미니 앨범을 녹음하던 중이었던가― 뜬금없긴 하지만 저음으로 이어지는 느린 파트를 끌고 가던 중에 무심코 목에 힘을 풀었다.

그때, 난 선생님이 오랜 기간 지적하셨던 ‘고질병’ 부분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데뷔 이후 족히 1년은 걸린 깨달음이었다.

하지만 방금까지 다른 무슨 노래를 한 것도 아니고,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목을 풀기 위한 준비였을 뿐이었다.

“이은호? 무슨 일 있었어?”

멍청해 보일 얼굴로 어정쩡하게 입을 벌린 채 굳었다.

선생님은 그 짧은 사이에 거기까지 파악했다.

괜히 회귀라든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간 미친X 취급을 받을 게 눈에 빤히 보였다.

“아니면, 나 말고 누구한테 배우기라도 했나?”

“누구한테 배우긴요. 그냥 연습을 뼈 빠지게 한 게, 도움이 됐나봐요. 하하.”

능청스럽게 웃으며 일단 어떻게든 주제를 넘겼다.

데뷔 이후에도 내 ‘보컬 스승님’은 이 분이 유일했다.

“이야, 노력한 보람이 있네. 잘했어. 정말 잘했다.”

그 칭찬에 인색하시던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다 하시다니. 예전과 비교해 차이가 크긴 큰 모양이다.

“데뷔할 때도 그 고질병 달고 갈까 봐 걱정 많았는데, 한시름 덜었다, 얘.”

“하하…….”

퍽!

그녀가 호탕하게 웃으며 내려친 등짝이 얼얼했다.

* * *

“네. NRY 엔터 박창석 대표입니다.”

―대표님, 저 하늘이에요.

“아, 이 실장님. 지금 한창 수업 중인 시간 아닌가요?”

―맞아요. 급하게 대표님께 여쭤볼 게 있어서 시간 좀 냈어요.“

“은호가 무슨 실수라도 했습니까?”

―어머, 아뇨, 아뇨. 그쪽이 아니라 좋은 소식으로 연락드린 거예요.”

“좋은 소식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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