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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3화 (3/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3)

재능

“절대 싫어요! 토 쏠리게 역겨워요!”

이은지는 그때처럼 여전히 발광했지만, 나는 당시처럼 ‘나야말로 싫다’는 말이 쉬이 나오질 않았다.

내가 대답을 하지 않아서였을까.

“야, 이은호. 너도 말 좀 해봐! 너도 나랑 사랑 노래 하라고 하면 못 하잖아! 역겹잖아! 안 그래?”

이은지가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사랑 노래만 아니면?”

여전히 정신은 못 차리고 있었지만,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몇 번이고 다시 떠올려 보고 대답해 봤었다.

컨디션이 나쁠 때면 자주 꾸던 반가운 악몽이었으니까.

그래서 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노래는 니가 만들면 되잖아.”

“뭔, 개소―.”

“재미있을 거 같지 않아? 어릴 때처럼.”

이은지가 일기장에 써 둔 그대로.

이은지는 반박하려는지 입을 열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다시 닫았다.

“어때요, 대표님.”

돌아보며 묻자, 이렇게 긍정적으로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한 듯.

대표님의 당황한 시선이 나와 이은지를 반복적으로 오갔다.

“어? 뭘?”

“은지 말대로 사랑 노래는 저도 싫은데, 기왕이면 은지가 만든 곡으로 데뷔하는 게 더 특색 있지 않을까요.”

“으음…….”

이은지가 곡을 만들 수 있다는 건 물론 대표도 알고 있었다.

3년이나 아버지처럼 우릴 정말로 키워 주셨던 분이니까.

다만, 이은지는 계이름이나 코드조차 모른 채 오직 감으로만 곡을 만들어왔다.

‘그래서 대답을 못 하시는 것 같은데.’

대표가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

이은지는 코드를 모르지만 쓸 줄은 안다.

내가 가장 부러워했던 이은지의 능력.

‘절대음감.’

이은지는 본인이 좋은 느낌을 받는 음과 길거리를 오가다 들어 본 유명한 노래들에서 사용되는 음을 모아 자주 노래를 만들었다.

그게 나중에 알고 보니 메이저 코드, 마이너 코드, 어그먼트 코드(augmented Chord), 디미니시 코드(diminish Chord) 등등 이름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오로지 연습으로 익혔지만, 이은지는 ‘어? 이거!’라며 그냥 익혀 버린 것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은호 네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뭔가 있는 거겠지.”

“그럼요.”

“그래. 그럼 은지야, 작업 인원 모아 줄 테니까 곡을 일단 만들어 와 봐라.”

“정말요?”

대표님은 그저 남매 데뷔 제안이 받아들여진 것만으로도 이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게 꿈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그때랑 상황이 완전히 달라지긴 했다.

대표님의 결정에 고개를 끄덕이다, 나는 이은지를 돌아봤다.

이은지는 ‘갑자기 왜 이래’라는 시선으로 나를 훑고 있었다.

새삼 이은지답다는 생각에 씩 웃음이 났다.

“우욱.”

이은지는 내 미소가 역했는지 진심으로 토악질을 할 것 같은 소리를 내며 인상을 구겼다.

‘그래. 이래야 내 동생이지.’

만족스러운 반응이었다.

* * *

그날 이후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자고 일어나면 깨 버리는 꿈처럼 없던 일이 될까.

그런 의심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사흘이 지나고 나흘째.

난 천천히 이 시간에 적응했다.

한편.

“흐므, 우우음. 으아아. 이거 아닌드에이으아악!”

오늘도 또 시작이다.

이은지가 작곡을 위해 1층에 있던 전자피아노를 제 방에 가지고 간 뒤.

이은지는 매일 방 안에서 알아듣기 힘든 허밍을 흥얼거리다, 피아노를 두드리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성질을 부린다.

그걸 잘 시간이 될 때까지 계속 반복한다.

진짜 계―속.

‘피아노를 치는 걸 봐선 코드는 어느 정도 정한 것 같은데…….’

마음에 드는 멜로디가 잘 안 나오는 걸까.

평소라면, 또는 예전의 나였다면 그러려니 했던 일상이었다.

‘하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스트레스로 1년 사이에 머리카락 절반을 잃었던 우리 NRY의 박 대표님.

이러다 이은지도 데뷔 시작부터 가발 쓰고 활동해야 하는 건 아닐까.

1년 동안 사람의 머리카락이 그만큼 빠질 수 있다는 걸 직접 봐 버려서 그런지 진심으로 걱정됐다.

그러던 어느 날.

‘이건 좀 반칙 같아서 따로 이야기는 안 하려고 했는데…….’

화장실 하수구를 꽉꽉 틀어막은 이은지 머리카락으로 추정되는 한 거대한 뭉텅이.

그걸 본 순간 결심이 섰다.

난 진심으로 동생의 탈모가 걱정돼서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야, 이은지.”

“왜!”

방문을 열고 이은지를 부르자, 으르렁거리는 꼴이 딱,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사냥개다.

응, 그냥 개 같다는 말이다.

“잠깐 이야기 좀.”

“바쁘니까 문 닫아.”

“곡 이야기야.”

“네가?”

이은지의 표정이 의외라는 듯 비틀렸다.

난 예전부터 이은지가 만드는 곡에 한 번도 제안이라든가 터치를 한 적이 없었다.

제일 큰 이유는 내가 그쪽에는 이은지보다 월등히 재능이 없어서였다.

지금도 난 여전히 ‘재능’은 없다.

다만, 배운 것과 이렇게 돌아오기 전까지 활동했던 경험.

미친 듯이 달려 본 1년이라는 시간이 가르쳐 준 것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아까, 네가 흥얼거리던 멜로디―.”

잠시 입을 닫았다.

대놓고 그때 이은지가 만들었던 곡을 그대로 읊을까.

아니면, 그냥 힌트만 줄까.

어떻게 이 생각을 전해야 할지, 그걸 결정하느라 잠시 고민했다.

“아, 멜로디 뭐! 왜 말을 하다가 말아.”

“그, 뭐랄까.”

“뭐, 뭐!”

“아까 네가 흥얼거리던 멜로디가 뭔가, 고양이 발걸음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이었거든.”

난 이은지의 직감을 믿기로 했다.

“고양이 발걸음이라니, 갑자기 무슨 헛…….”

투덜거리던 이은지의 눈빛이 한순간 바뀌었다.

‘오셨네, 그분이.’

그동안 잡히지 않던 무언가가 잡힌 것 같은 눈빛이었다.

이은지는 의자를 돌려 전자피아노 앞에 다시 앉았다.

지금까지 자신 없고 흐릿했던 허밍이 섬세한 부분과 함께 또렷한 형태를 드러냈다.

아마, 지금부터는 전체적인 느낌을 잡는 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겠지.

내가 아는 이은지라면 말이지.

‘고양이 발걸음.’

고상하면서도 리드미컬하게 느껴지는 사뿐한 걸음.

그러다 목표물을 발견하면 발걸음 소리를 죽인다.

이때다 싶은 순간.

뛰어오르며 늘어졌다가 놓친 목표물을 쫓기 위해 다급해진다.

끝엔 여유롭게 사냥을 마치며, 통통 튀는 사뿐한 걸음으로 자신의 안식처로 향한다.

이은지의 데뷔곡이 딱 이런 느낌이었다.

심지어 이런 스토리텔링을 한 곡 안의 멜로디와 코드 전부에 모두 담았다.

‘심심해질 법한 부분에는 비닐 소리 같은 일상적인 소음을 왜곡시켜 악기처럼 다뤘지.’

어린 시절 그 ‘콘서트 놀이’를 하며 찾은 소리가, 은지에게는 활동하는 내내 하나의 무기가 됐다.

그땐 이은지가 만든 곡은 이은지의 것이었다.

이젠 그 이은지가 ‘우리’의 곡을 만든다.

「“재미있을 거 같지 않아? 어릴 때처럼.”」

그 말을 할 땐 솔직히 이은지가 일기장에 써 둔 그대로 읊은 느낌이었다.

그랬는데, 확실히.

기대된다.

* * *

‘고양이 발걸음!’

오늘은 회의차 스튜디오에 다녀와야 하는 만큼, 초조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마음에 드는 것을 앞에 두고 안대를 쓴 것처럼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힌 기분이었다.

‘이은호한테 힌트를 받은 건 조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지만…….’

벽은 이은호가 던진 힌트로 인해 부서졌다.

솔직히, 이은호의 힌트가 아니었다면 난 한참을 더듬거리다 바라던 느낌에 도달했을 것이다.

감이 잡힌 이후로는 그야말로 막힘이 없었다.

나 혼자였다면 절대 도전하지 못했을 리듬을 찍어 내며 신나게 작업에 몰두했다.

이은호는 싫지만, 이은호의 목소리와 노래는 굳이 말하자면 좋아한다.

정말 많이.

오빠는 나한텐 어린 시절부터 뮤즈였으니까.

Hey baby …… I hate ya!

옥탑의 좁은 거실에서 이은호가 여성 솔로의 유명 팝송을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방문 틈으로 흘러들어 왔다.

‘음감이 좋으면 뭐 해.’

나는 고음에 약하다.

정확히는 여성 평균이라 불리는 3옥타브 도가 겨우 걸치는 정도.

그만큼 저음이 강점이긴 하지만, K-POP 장르에서 내가 노래할 수 있는 부분은 지극히 한정적이다.

반면 이은호는?

……i’ve got!

저거 봐.

무슨 여가수 팝송을 원키로 저렇게 편안하게 부르냐…….

‘게다가 왠지…….’

고작 일주일 사이에 호흡이나 발성이 월등하게 좋아진 것 같은데.

‘뭐지?’

이어지는 속삭이는 후렴구 구간은 본인이 낼 수 있는 옥타브의 매력을 살려 다정하게 속삭인다.

가족이라 싫은 쪽이든, 노래가 좋아서 좋은 쪽이든.

어느 쪽이든 소름이 돋기는 매한가지였다.

‘확실히, 잘해.’

이은호는 곡 해석력이 굉장히 뛰어나다.

본인이 할 수 있는 부분, 살릴 수 있는 부분을 실험적으로 도전하니까.

적절한 옥타브와 안정적으로 바뀐 비브라토.

그게 곡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정말 짜릿했다.

작곡할 땐 정말 좋지만, 반면.

“재수가 없어, 재수가.”

같은 가수로서, 라이벌로서 생각하면 이은호는 제 장점을 평범하게 생각한다.

능력은 보통인데 미친 듯이 하나만 보고 달릴 수 있는 ‘노력’도 어떻게 보자면 재능의 영역이 아닐까.

때론 그걸 장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은호가 재수 없었다.

‘3년간 연습에 미친 저 인간한테 안 지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이은호는 그 와중에도 파트를 깔끔하게 마치며 노래를 이어 갔다.

Understand my……

그 순간.

은지는 전자피아노를 바쁘게 두드리던 손을 멈췄다.

‘잠깐만.’

섬뜩한 기분 탓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뭐야?’

이은호가 래퍼가 피처링한 벌스를 여유롭게 제 스타일로 바꿔 부르는 것에는 당연히 놀랐다.

하지만 놀란 이유는 음악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어떻게 벌써 영어를 잘하지?’

별거 아니라며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은호가 아니라면 말이다.

‘apple’도 못 쓸 정도로 영어를 포기한 놈.

그게 이은호였다.

심지어는 며칠 전만 해도 보컬 트레이너 선생님이 종종 영어를 섞어 설명하실 때면 얼빠진 얼굴에 물음표만 잔뜩 띄웠을 정도였으니까.

근데, 그랬던 놈이 고작 며칠 지났다고 팝송을, 심지어 랩까지 여유롭게 따라 부른다고?

은지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방을 나섰다.

“야, 이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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