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
“아, 뭐 해. 야, 눈 떠. 눈 뜨라고!”
“은호야.”
너, 너 이렇게 죽을 년 아니잖아.
심장이 뛰고 있음을 알리는 선이 서서히 직선에 가까워져 간다.
매니저 형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의사들이 바쁘게 처치를 해 봤지만, 은지의 심장은 끝내 멈췄다.
“뭐 해요. 왜 멈춰! 이은지 얘 몸살 나도 밥 한 번 먹으면 부활하던 그런 애예요!!!”
그런 애가, 이렇게 쉽게.
아닐 거라고, 아니라고, 그럴 리가 없다고.
속으로 수십 수천 번.
부정하고 또 부정했다.
“일어나라고! 이은지! 야!!!”
“은호야!”
갈라지는 목소리로 몇 번이고 부르면서, 막는 매니저 형 손을 뿌리치며 은지를 흔들었다.
“일어나라고!!! 야!!!”
매니저 형과 의사들이 말리는 것도 못 느낀 채, 목이 쉴 때까지 몇 번이고 소리쳤다.
하지만 끝은 끝이었다.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바뀌는 건 없었다.
* * *
이은지 때문에, 갑갑해서 입기 싫어하던 검은 정장을 걸치고 꼬박 하루 내내 조문객분들께 인사를 드리다 잠시 쉬던 그때.
매니저 형에게 두꺼운 커버로 싸인 검은 노트를 건네받았다.
“은지 일기장이래.”
“안 어울리게, 이런 건 언제 또 쓰고 있었대.”
매니저 형은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말을 아끼며 자리를 피해 줬다.
검은 커버 아래.
화이트로 깨알같이 그려 놓은 새하얀 ‘凸’.
‘이은지 거 맞네.’
공허한 헛웃음을 터뜨리며 두꺼운 커버를 넘겼다.
「후회된다.
대표님이 제안해 줬을 땐 좀 역겨워서 짜증이 먼저 났다.
근데 생각해 보니까 우리가 같이했으면 어릴 때랑 똑같았을 것 같더라.
딱 그 모습으로 활동하는 거잖아. 다시 생각하니까 좀 아쉽다.」
종이를 쥔 손끝이 덜덜 떨렸다.
매일 꼬박꼬박 쓴 일기는 아니었다.
다른 페이지는 대부분 얼마나 연습했는지나 기억에 남은 일을 써 둔 것이 고작이었다.
「데뷔곡 발표까지 1분 전. 아~~~ 떨려!」
뒷장을 넘기자 대박을 터뜨렸던 데뷔곡 성적을 확인한 듯, 한 페이지 전체가 ‘헐’이라는 한 글자로 꽉 차 있다.
이은지의 데뷔곡은 작사, 작곡이 본인인 것 외에도 다양한 코드를 귀에 착착 감기도록 기막히게 사용했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이거 원래 오빠 부르라고 만들었던 곡인데, 내 거 됐네. 아까운 줄 아셈! 이은호 ㅋㅋ~」
다음 페이지로 눈을 옮기자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또 터졌다.
「노래 부르고 사람들 관심 받고 싶어 했던 건 오빤데, 좀 미안하다.」
나한테 미안할 게 뭐 있냐.
그 재능에 노력까지 더한 당연한 결과인데.
‘질투.’
나도 사람인지라 망할 재능 차이는 질투가 났다.
숨 쉬듯 끼가 뿜어져 나오는 이은지랑 음악을 타려고 ‘노력’하는 나.
차이가 나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게다가, 이은지는 재능 있는 놈이 노력까지 하는 경우였다.
가수에 관심이 없다고는 했지만 이은지는 무엇이든 대충 하는 법은 없었다.
항상 열심히.
그 ‘열심히’가 내가 이 악물고 하는 노력에 맞먹는 수준이었다.
그러니 어쩌겠나.
나도 결국에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오늘 무대 되게 신났었는데….
우리 어릴 때 했던 콘서트 놀이 생각났다.
같이 했으면 오빠도 같이 여기서 엄청 뛰어놀았을 텐데 아쉽다.」
아무것도 없는 공터에서.
이은지는 녹슨 드럼통과 주운 페트병에 공터의 모래를 채워 마라카스 역할을 하는 악기를 만들고.
그 조악한 악기들을 이용해서 길가다 흘려들은 노래와 흡사한 박자를 만들면.
나는 가시가 가득한 낡은 나무판자 위에 올라가서, 이은지가 만든 박자에 내 멋대로 가사를 붙이며 노래를 불렀다.
우리 남매만의 ‘콘서트 놀이’였다.
‘X발.’
어린 시절 그때가 떠오른 순간.
머리를 쥐어뜯어 가면서까지 참으려고 했는데 결국 터져 버렸다.
나는 장례식장 한편에서 흐느끼며 울었다.
아직 남은 조문객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일부러 나를 못 본 척해 주는 것 같았다.
근데, 왠지 그게 더 서러워서.
유일한 가족이 떠났다는 게 이제야 실감이 나서.
난 결국 오열하며 쏟아 냈다.
* * *
“잘 자라, 이은지.”
이은지는 나무 주변에 뿌리는 수목장으로 보내 줬다.
묘비만 세우거나 항아리에 담기엔 내 동생은 그렇게 작지도 않았고, 어디 얌전히 들어가 있는 성격도 아니었으니까
……라고 핑계를 댔지만.
사실 가둬 두기는 싫고, 눈에 보이는 무언가라도 남아 있기를 바란 내 욕심 때문에 결정했다.
나는 이은지의 빈자리를 이겨 내며 계속 활동을 이어 갔다.
인터넷에는 위로의 선플도 있었지만, 내가 이은지를 죽였다느니 등등 말도 안 되는 악플 또한 적지 않았다.
「동생 목숨값, 앨범비까지 꿀꺽? 듣보잡 새끼 동생 뒤지고 인생 폈네.」
은지는 가해자의 음주 운전으로 사고를 당했다.
그 악플러의 말대로 이은지의 목숨값과 우리 앨범에서 나온 수익은 상당히 두둑했다.
그놈의 돈, 돈.
목숨값으로 받은 돈이 그렇게 부러웠을까.
‘부럽긴 하겠네.’
못 먹고 살던 우리는 어린 시절에 길가에서 주운 100원짜리 동전 하나에 희비를 오갔다.
좋은 집에서 학교에 다니는 또래 애들이 부럽기도 했었고, 가난을 놀리는 놈들한테 괜한 화풀이를 한 적도 있긴 했다.
‘그때 생각하면.’
‘돈, 돈’거리는 몇몇 악플러들의 비틀린 마음이 이해는 됐다.
그런데 난 이 돈을 애초에 쓸 수도 없었고, 쓸 생각도 없었다
보험료, 앨범 스트리밍 수익 등.
이은지의 이름으로 나온 모든 수익은 모두 한 통장에 쌓여 가고 있었다.
‘그냥 숫자일 뿐인데…….’
알고는 있지만. 나는 그게 이은지 영혼이라도 되는 양 절대 쉬운 마음에 쉽게 써 버릴 수 없었다.
악플은 처음에는 한 줄 한 줄 신경도 쓰였고 지치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신경 쓰지 않는다.
그 어떤 악플도 이은지가 떠나던 그 순간만큼의 충격을 주진 못했다.
게다가 악플러들은 실제로 얼굴을 마주하면 대부분 용서를 구하기 바빴다.
딱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괜찮았다.
신경이 쓰여도, 안 쓰인 척.
무시로 일관하며 내 일인 음악에만 몰두했다.
그렇게 나온 결과물로 나는 그 해에 EP와 싱글로만 7곡을 발표했다.
대표의 잠깐이라도 쉬라는 조언도 무시하고 계속 일했다.
새해를 맞이하던 달에는 ‘나는 아직 살아가고 있다’라는 주제로, ‘인사’, ‘한 그루’, ‘호흡’, ‘악몽’, ‘살아가’ 등 총 10곡이 수록된 정규 앨범을 발표했다.
정말 미친 듯이 달렸다.
이은지처럼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은 스타는 아니었지만, 차츰 쌓인 팬층과 꾸준한 노력으로 실력파 가수라는 타이틀은 얻을 수 있었다.
“형, 나 오늘 일정 있어요?”
“편하게 다녀오라고 싹 비워 뒀어.”
“대표님은 뭐라고 안 그러셨어요?”
“어떻게 뭐라 그러냐, 오히려 니가 너무 안 쉬어서 걱정하다가 머리까지 다 빠지신 분인데.”
일에 미쳐 보내니 1년은 정말 순식간에 흘러갔다.
매니저 형 말대로, 고작 1년 사이에 절반이 훌렁 날아가 버린 대표님의 머리를 생각하자 좀, 미안한 마음이 컸다.
바쁜 매일을 보내다, 오랜만에 스스로 쉬는 날.
오늘은 이은지가 세상을 떠난 그날이었다.
“이야! 잘 크고 있네, 이은지.”
이은지를 보러 도착한 추모 공원.
그사이 조금 더 자란 추모목을 보자 새삼 시간이 벌써 이렇게 흘렀다는 실감이 났다.
“잘 지냈냐, 이은지.”
나무가 대답이라도 하는 듯 바람 따라 흔들리며 벚꽃잎을 화려하게 털어 냈다.
인사를 위해 챙겨 온 술 한 병과 내가 마시기 위해 챙겨 온 한 병.
털썩.
간단히 절을 올리고 흙바닥에 그냥 주저앉았다.
“야, 은지야.”
병이 깨끗하게 비워질 무렵.
문득, 이은지를 내가 죽인 게 아니냐는 한 악플이 떠올랐다.
“우리가 남매가 아니었으면, 넌 네가 좋아하는 음악 하면서 더 오래 살았을까?”
그때, 마치 헛소리 말라는 듯 벚꽃잎 하나가 떨어지다 바람을 타고 내 뺨을 쳤다.
술기운 탓인지 마치 이은지가 친 것 같아서 순간 오른 취기에 웃음이 터졌다.
“아니면, 네 말대로 우리가 그냥 남매로 데뷔했으면…….”
추모 공원 뒤편에서 불어오는 듯, 숲 냄새를 진하게 품은 바람이 스쳐 갔다.
나무로 가득한 공원이라 그런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마치 어릴 때 이은지가 만들어서 흔들던 조잡한 마라카스 소리와 비슷했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눈을 감은 채 소리를 들었다.
대표님이 제안했던 남매 데뷔.
그걸 받아들였다면, 좀 다르지 않았을까.
이은지, 네가 살아 있지 않았을까.
추모 공원의 평일은 조용했다.
다시는 들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진 그랬다.
* * *
“오빠!”
처음엔 나 같은 방문객인가 했는데.
“야, 이은호!”
이은지랑 목소리가 비슷한 팬인가?
아무리 팬이라도 반말은 좀 아닌데.
누군지 얼굴이나 보자, 생각하면서 눈을 뜬 그 순간.
탁 트인 추모 공원이 아니라 촌스러운 꽃무늬 벽지들로 둘러싸인 좁은 방.
익숙한 풍경이 눈에 담기자 모든 사고가 정지해 버렸다.
“뭐야.”
“뭐냐니, 낮술이라도 했어?”
“너, 네가 왜 여기 있어?”
“기껏 깨워 줬더니 아침부터 왜 X랄이야.”
성질낼 때 특유의 사납게 갈라지는 목소리.
뭐야, 진짜 이은지다.
“일어나기나 해! 대표님이 내려오래.”
“어?”
“‘어?’는 무슨. 얼빠진 소리 하지 말고, 빨리 정신 차리고 나오기나 해!”
쾅!
이은지가 거칠게 방문을 닫자, 그제야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꿈을 꾸나?’
몇 년 전 이은지의 성장 이후 새로 지은 신사옥이 아닌, 대표님이 그럴싸하게 평범한 낡은 가정집을 페인트칠해서 사용하던 그 구사옥.
그곳의 2층에 딸린 이은지와 내가 살던 기숙사.
말이 기숙사지, 그냥 옥탑 안에 있는 작은 방이었다.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건 여전했지만, 대표님이 부른다고 하니 본능적으로 몸이 움직였다.
1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며 잠깐 아래를 보자 이은지가 딱 봐도 화난 얼굴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난 괜히 뺨을 한번 꼬집어 봤다.
아프다.
아픈 걸 보니까 꿈은 아닌 거 같은데…….
“뭐 해! 빨리 와!”
“어…….”
“나사라도 빠졌나, 오늘 진짜 왜 이래?”
이은지는 투덜거리며 먼저 1층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진짜 무슨 시간이라도 되돌아온 건가?’
여전히 의심을 품은 채 대표실에 들어선 그 순간.
상황을 실감하게 된 건 마주한 박창석 대표의 머리칼 덕분이었다.
절반이 훌렁 날아가 버렸던, 내가 알던 대표의 머리가 아니다.
‘아직, 풍성해…….’
진지하게, 진심으로 충격이었다.
그때였다.
“급하게 내려오라고 한 이유는 내가 중요한 제안 하나 할 게 있어서.”
“뭔데요?”
어? 이거, 설마.
“니들도 이번 곡 둘이 같이 남매 2인조로 데뷔하는 건 어떻냐?”
가장 아쉬웠던 그때가, 그 시간이 다시 반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