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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플레이어-237화 (237/239)

< 218화 유년기의 끝 >

“자, 다들 들었지? 밀레스 쪽에서 쿠데타가 일었다. 아서인가 아저씨인가 하는 놈이 마족들 등에 업고 왕을 구금했댄다. 당연히 우리 영지를 또 먹으려고 말이지! 나 여기에 투자 많이 했어, 절대 못 뺏기지. 암! 그런 놈 두고 오늘 잠 못자. 그래서 또 사람들 모으려고 해. 당연히 공짜는 아니고, 참전하면 50만, 이기면 50만이야. 이건 오늘 전투에서도 똑같았지? 근데 오늘은 누구 데려와서 같이 참전하면 특히 50만원 더 줘. 그러니까 잠자고 있는 불러서 데려와! 50만원이 뉘집 개이름도 아니고 그거 공짜로 벌 수 있는데, 거절할 사람 없겠지? 그게 끝도 아니야. 이번에도 성과급 있다! 놈들 수도로 처들어갈건데, 거기서 1킬당 30만씩 쏜다. 나 오늘 작정했으니까 말리지마. 오늘 일자리 창출효과 제대로다 진짜!”

“와아아아아!”

우리들은 곧바로 행동에 착수했다.

회장님은 다시 광장에서 단상을 만들곤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했다.

돈을 뿌린다는 말은 언제나 옳았고, 사람들은 열광하면서 참전했다.

아마도 회장님의 도움 덕분에 유저들은 많이 참전할 것 같았다.

“저는 잠시 자리를 비우겠습니다.”

한편 시화는 군신길드를 다시 재집결시키기 위해 클라드 마을로 향해야했다.

쿠샬 사냥을 같이 갔던 다른 군신 길드원들도 시화를 따라 텔레포트했다.

그러자 남은 이들은 블루스 노인과 지혜, 골렘, 나와 미나가 있었다.

마장기를 만들기로 했으니 우리들이 가야할 곳은 상단사무소였는데, 당연히 마장기의 부재료라고 할 수 있는 철괴와 보석들 때문이었다.

필요한 재료는 마법석 1,000개, 미스릴 250개, 다이아몬드 500개, 루비 500개, 사파이어 500개, 황금 500개, 은 500개, 철괴 2,000개였다.

당연히 내 인벤토리에는 이만한 물량이 없었다.

“살 수 있겠습니까? 돈은 충분합니다.”

“노슬론 마을을 비롯해서 각 광물의 생산지를 돌아다니면 금방 사 모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서둘러 주세요. 곧바로 마장기의 제작에 들어가야 하니까요.”

“즉시 착수하겠습니다!”

상단사무소의 상인은 엄청난 규모의 거래에다가 영지의 사활이 걸린 일이란 점에 사명감이라도 가진 듯이 움직였다.

잠시 그가 재료를 가져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저기, 오빠.”

“응? 왜 그래, 지혜야.”

“단 둘이······ 할 말이 있어요.”

“단 둘이서? 무슨 말인데?”

그때 지혜가 내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단 둘이서 해야할 말이라니, 뭘까?

어쩐지 미나의 눈치를 보는 것 같은데 말이다.

“미나양, 그리고 골렘군. 잠시 우리는 자리를 비켜주도록 하지.”

“네, 어르신.”

“상황파악 완료.”

그리고 블루스 노인이 일부러 다른 이들과 함께 자리를 비켜주었다.

상단사무소 바깥의 공터에 나와 지혜가 단 둘이 서 있게 되었다.

어쩐지 분위기가 어수선한데······.

“오빠.”

“응?”

“미나 언니랑 사귀죠?”

“어? 어엇! 어떻게 알았니?”

“산에서 떠드는 거, 다 들렸는걸요. 저 말고도 다들 아실걸요?”

“아하하······ 역시 그렇구나.”

다들 모른 척하길래 못 들은 줄 알았더니, 모른 척 해준 거구나.

배려가 고마우면서도 어쩐지 아픈걸······.

“축하해요.”

“고마워, 음······ 이런 건 어쩐지 어색해서 좀 그러네.”

“애인, 처음 사귀는 거예요?”

“그건 아냐. 대학교때, 군대가기 전에 잠깐······ 뭐라고 해야하나······ 그걸 뭐라고 하지?”

“썸이요?”

“아, 그래. 썸탄 적은 있어. 헤어졌지만.”

“왜 헤어졌는데요?”

“뭐, 군대 다녀올 때까지 기다리게 하는 것도 도리가 아닌 것 같았고, 고심해보니까 난 진지하게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애초에 썸만 탔지 사귀는 것도 아니었지만.”

“흐음, 그래서 그렇게 둔한 거예요?”

“어? 그건 무슨 말이야?”

지혜의 마지막 말에 나는 조금 의아해서 되물었다.

그러자 지혜는 미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웃는 것인지, 아니면 찡그리는 것인지 모를 표정이다.

“저, 오빠 좋아했어요.”

“······.”

“조금은 눈치 챘죠? 아무리 둔해도······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호의를 괜히 보일 리가 없잖아요.”

“지혜야. 나는······.”

지혜의 말이 맞았다.

나는 조금은 지혜의 호감을 눈치 챘다.

확신 같은 것은 아니었고, 회장님에게도 그런 사이가 아니라고 한사코 말했지만 말이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호감을 일부러 무시한 것은 그녀에게 상처가 되는 일이었을까?

어른의 입장에서 당연히 거절해야하는 것임에도, 나는 적절하게 그것을 완곡히 거절하지 못한 게 아닐까?

책임감이 들었다.

그래서 뭐라고 말하려 했는데, 지혜가 먼저 말했다.

“알아요. 제가 느끼는 감정, 다소 무리라는 거요. 애초에 황당한 거기도 하죠. 만난지 얼마 된 것도 아니고······ 조금 좋은 계기를 가졌을 뿐인데, 그저 오빠의······ 상냥한 점에 끌렸다는 거요. 사랑이란 것은 원래 이렇게 이유 없는 걸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때도 있어. 애초에 그건 아무도 제대로 정의 내리지 못한 거거든.”

“그렇죠······ 오빠에 대한 감정도 그저 오빠가 절 도와준 것에 대한 감사함이나, 동경심 같은 걸지도 몰라요.”

지혜는 매우 어른스럽게 말했다.

내가 지혜에게 도와준거라고 하면, 장래희망을 두고 아버지와 가졌던 갈등을 중재한 것 정도였는데. 그게 사랑이나 호감이라는 감정으로 발전한 모양이다.

근데 그게 그렇게 커질만한 감정이었을까? 그건 나도 모른다.

애초에 사랑이란 것에 대해 잘아는 사람들이 드물다. 아니, 없다고 해야할지도 모른다.

지혜의 말대로 그저 감사함이나 어른에 대한 동경심을 착각한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믿는 편이 편하고 말이다.

“그래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호감을 가져 본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학교의 이성친구들 중에 나만큼 잘 생긴 사람이 없었던 거야?”

“푸훕, 그거 농담이에요?”

“하하하······ 뭐 반쯤은 진담인데. 나같이 10살이나 차이나는 사람보다 동년배의 이성에게 더 관심이 가는 나이 아니야?”

“그거, 편견인거 알아요? 좀 나이 차이 나면 어때요, 연예인들 좋아하는 거랑 차이 없는데.”

“어, 그건 말이야······ 나이가 많은 쪽은 여러모로 곤란할 것 같아. 법적인 문제라든지······.”

“저 2년만 기다리면 합법인데요?”

“그때 내 나이는 30세란다.”

“푸훕, 아저씨.”

“지금도 아저씨지.”

음, 나와 동갑인 28살들은 아저씨라고 불리는 걸 싫어한다는데, 나는 아무래도 좀 정신연령이 늙은 사람인 것 같다.

여하튼 나는 지혜와 그런 농담 비슷한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니까, 저는 차인 거네요.”

“차인다는 표현은 좀 그렇구나, 사귄 건 아니지 않니. 만약 사귄거면 난 회장님에게 일단 죽고 다음엔 쇠고랑을 차.”

“치이, 농담이에요.”

“무서운 농담이구나.”

“더 무서운 농담해줘요? 제가 아빠한테 부탁해서 오빠랑 결혼하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아이고 아가씨 제발 그것만은 봐주십시오. 저 죽고 싶지 않습니다.”

잠깐이지만 그런 상상을 해봤다.

회장님이 날 죽이려 드는 건 당연할 것이다.

근데 더 심각한 건, 회장님은 전형적인 딸 바보라 지혜의 부탁을 무조건 들어주려고 할 것이다.

미나와 연인이 되었는데, 강제로 지혜와 결혼당할지도 모른다.

힘있는 사람들이라 그게 실현될 것 같아 소름끼치는 일일 뿐이다.

물론 지혜는 농담이었다.

지혜는 내가 굽실거리는 말을 하자, 깔깔 웃었다.

“정말이지······ 그러니가 괜히 심술나잖아요. 하지만 걱정 마요. 저 그렇게 나쁜 애 아니니까요. 정말로 축하해요. 미나 언니, 슬프게 만들면 제가 용서 안할 거예요?”

“응, 최선을 다 할 거야. 그건 약속할 게.”

그리고 지혜는 나와 미나를 축복해주었다.

“아, 후련하다. 다 말하고 나니까 이렇게 좋네요. 근데 오빠, 여전히 우린 친구죠?”

“응. 지혜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럼 계속 친구로는 남아 있기에요? 이것도 약속해줄 수 있어요?”

“물론이야.”

나는 웃으며 말했고, 지혜도 미소 지었다.

곧 그녀와 나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피식 웃었다.

“다들 기다리니까 돌아가죠.”

“그래.”

블루스 노인과 미나, 골렘이 기다리므로 그들에게로 돌아갔다.

돌아가자 블루스 노인이 말했다.

“허험, 심각한 이야기는 잘 나눴나?”

“어, 그게 어르신······.”

“나한텐 굳이 말할 건 없네. 나는 그저 젊은이들의 일을 지켜보는 게 재밌을 뿐이지. 손녀나 자네를 응원하기도 하고, 미나양과 자네를 응원하기도 하고. 나한텐 둘 다 즐거운 일일세.”

“······감사합니다 어르신.”

블루스 노인은 ‘나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모양이었다.

그 선택이 어느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나는 손녀와 잠시 산책 좀 하지. 미나양과 이야기 나누게나.”

그리고 블루스 노인은 곧 지혜와 잠시 자리를 떴다.

나와 미나, 골렘이 그 자리에 남게 되었다.

“잘······ 해결 됐어요?”

골렘이 있긴 했지만 미나가 그 이야기를 꺼냈다.

더 이상 남에게 숨길 이유가 없는 듯했다.

골렘은 인공지능이라 그런 말을 들어도 사실 그렇게 신경쓰지 않겠지만 말이다.

“응, 지혜는 착한 애니까.”

“글쎄요······ 괜찮은 척하는 걸지도 모르죠.”

“그렇게 보였어?”

“모를 일이에요. 여자의 마음은 여자도 이해하기 힘들다고요.”

“······.”

미나의 말에 나는 조금 고민이 되었다.

정말로 상처를 준 거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이 든 것이다.

아직 예민할 나이의 소녀인데 말이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지혜는 착한 아이이기도 하지만 강한 아이라고요? 잘사는 집 아이답지 않게 야무져요. 오빠가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을 거예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나와 미나는 그런 대화를 나눈 뒤, 잠시 손을 잡고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뭔가 대화를 나누지 않는데도 대화는 나누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다.

가슴은 두근거리고, 얼굴은 화끈거리는 열병에 걸린 것 같았다.

“저, 크흠, 이, 이제 마지막 싸움인 것 같네요. 사실상 여기서 이기면 이제 영지를 위협할 세력은 존재하지 않아요.”

먼저 미나가 말했다.

“마지막 싸움이라. 꼭 뭔가 소설이나 영화의 피날레 같은데.”

“이런 것도 피날레 같아요?”

“어?”

미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기습적으로 내게 얼굴이 가까이했다.

그리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입을 맞췄다.

가볍게 입술만 대는 키스지만, 굉장히 단 사탕을 먹은 기분이었다.

“어때요? 주인공이 된 기분인가요?”

“······.”

“오빠?”

“으응? 아. 응. 그런 것 같아.”

나는 정신이 멍해져서 얼떨떨한 기분으로 대답했다.

미나는 자신도 부끄러운이 얼굴을 붉혔다.

“주인님, 연애행위 중에 죄송합니다만.”

“아, 무, 무슨 일이야 골렘아?”

그때 골렘이 말했고, 우리들은 황급히 손을 놓았다.

그리고 골렘이 계속 말했다.

“마장기를 만드실 생각이시라면 마법공학 골렘핵은 제 것을 이용하시는 걸 추천해드립니다.”

아, 잊고 있었다.

마장기를 만드는 재료 중에는 ‘골렘핵’도 든다는 것을 말이다.

< 218화 유년기의 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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