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6화 창조주의 무덤 >
우리들은 골렘을 따라서 좀 더 산을 등산하게 되었다.
쿠샬이 지키고 있던 지역에 무덤이 있다고 한 골렘이었다.
시화는 던전 같은 곳에 마련되어 있냐고 골렘에게 묻기도 했는데, 골렘은 아니라고 답했다.
“창조주님의 무덤은 소박하게 마련되어 있습니다. 자격을 갖추지 않은 자는 그것이 무덤인지 알아 볼 수 없습니다.”
다행히 시화가 걱정하는 것처럼 던전 같은 곳에 마련되어 있어서 또 전투를 할 필요는 없는 듯했다.
우리들은 설산을 오르면서도 비교적 편하게 갈 수 있었는데, 쿠샬이 죽으면서 눈보라가 진정되어서 미끄럽다는 것만 제외하면 시원한 등산을 할 수 있어서였다.
얼마지 않아서 우리들은 정상은 아니나, 조금 평평한 지대에 이를 수 있었다.
“이곳입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저것이 무덤입니다.”
별다른 특징을 찾지 못한 나에게 골렘이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지적하기 전에는 알아채기 힘들었던 바위 하나가 보였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았던 평범해 보이는 바위.
그걸 무덤으로 생각하는 것은 무리였다.
“주인님, 저 바위에 손을 대시면 무덤의 봉인이 사라지고 무덤이 나타날 겁니다.”
“좋아, 그럼 바로 해볼게.”
나는 골렘의 말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으면서 바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 바위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바위는 갑자기 빛을 내기 시작했는데, 텔레포트 할때처럼 바위가 빛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 빛이 사라지자, 바위는 모습이 바뀌어 있었다.
가톨릭식 무덤의 묘비로 말이다.
[장기래, 그 누구도 미워하지 않으며 이곳에 잠들다.]
이름이 적혀 있었다.
장기래, 처음 듣는 이름이었지만 앞의 성씨가 누군가와 똑같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이건······ 오빠의······?”
장미나, 그녀가 그것을 보고 묘비에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연결고리가 완성된 듯했다.
골렘이 말한 창조주와 죽은 프로그래머라는 그녀의 오빠는 같은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왔구나, 미나야.
미나가 떨리는 손으로 묘비에 다가와 그것에 손을 대었을 때,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깜짝 놀랐는데, 소리가 난 곳은 묘비 쪽이었다.
어느새 그곳에는 홀로그램 같은 것이 나타나 있었다.
어느 한 남자의 모습으로 말이다.
“오빠······.”
-오랜만이다, 미나야. 물론 이건 내가 남긴 홀로그램 AI에 불과하지만.
"다시 보고 싶었어요, 오빠.“
미나는 홀로그램에게 포옹이라도 하고 싶은 모습이었지만, 당연히 그건 불가능했다.
그저 눈물을 흘리면서 그에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마 행복하게 지내라고 너에게 유언을 남겼을 것 같은데. 행복하게 살고 있니?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어.”
-보아하니······ 많은 사람들과 친해진 모양이구나.
그 남자의 홀로그램은 나를 비롯한 일행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모두 숙연한 분위기로 그와 미나를 지켜보았다.
누구도 남매의 재회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곧 홀로그램의 남자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 이름은 공진인 모양이군요.
“제 이름을 어떻게······ 아니, 아마 데이터로 아시는 모양이군요.
-맞아요, 저는 장기래. 장미나의 오빠입니다. 그리고 골렘이 당신에게 창조주라 말했던 사람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악수라도 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군요.”
-마음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저도 인공지능으로 밖에 만나지 못해 아쉽군요.
어쩐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가상현실이 이루어졌고, 하나하나가 AI인 NPC들과 교우하는 세상이지만 죽은 사람의 AI와 만나는 건, 마치 죽은 사람과 직접 만나는 기분인 것이다.
-골렘의 기억을 살펴보니 우리 미나가 신세를 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신세를 지고 있다라고 할 만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친구일 뿐이죠.
-우리 미나가 연예인이 꿈이었는데, 보아하니 당신 덕을 많이 본 것 같은데요?
“그녀 자신의 재능이 꽃을 핀 것뿐입니다. 더욱이 제가 그녀에게 도움을 준 것도 전적으로 당신이 남겨놓은 유산 덕분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보단 당신이 여동생을 돌본 셈이죠.”
내가 공손히 대답하자,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글쎄요, 제가 남긴 것을 이상적으로 활용한 사람은 당신입니다. 얼마든지 악용될 수 있었고, 무시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과욕을 부리지도 않았으며, 악용하지도 않았고, 더불어서 제 여동생도 도와주었군요. 특히 마지막엔 감사할 따름입니다.
“너무 저에게 금칠을 해주시는군요. 하지만 그렇게 말씀하시니 조금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어째서 이런 히든 피스를 남기신 겁니까?”
나는 계속 가지고 있었던 의문을 물어보았다.
왜 그는 이런 것을 남겨뒀는가? 골렘을 통해 간접적으로 듣긴 했지만, 본인에게 직접 들어보고 싶었다.
-골렘이 당신에게 말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이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들이 좀 더 많은 즐거움을 여유롭게 즐기길 바랄 뿐이었습니다. 베타테스트 때만해도 저의 의도와는 다르게 사람들은 일부 컨텐츠인 사냥와 전투에만 집중하더군요. 이 모든 아름다운 것을 즐길 줄 몰랐습니다. 저는 가상현실이 진정으로 현실의 대리만족이 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생활 스킬을 장려하도록 만든 것이군요.”
-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능성으로써 히든 피스를 남겼을 뿐입니다. 그 가능성을 가지고 지금까지 발전시킨 것은 순전히 공진씨 당신의 공입니다.
궁금증은 해결되었다.
홀로그램의 남성, 장기래씨는 그렇게 말하곤 다시 그의 여동생인 미나를 바라보았다.
미나는 울음을 그쳤으나 여전히 훌쩍이는 모습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친구······라고 말씀하셨지만 아마도 그 이상인 것도 같은데. 앞으로 제 여동생을 잘 부탁드립니다.
“오, 오빠!”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 장기래씨였고, 미나는 얼굴이 빨개지면서 그를 한 대 때리려고 했다.
당연히 홀로그램이라 헛손질만 될 뿐이었지만 말이다.
-힘든 부탁입니까?
“아, 아닙니다. 미나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행입니다. 저는 이제 남을 수 없으니까요.
“그게 무슨 말이야 오빠?”
장기래씨의 마지막 말에 미나가 물었다.
장기래씨는 무덤덤히 다음 말을 이었다.
-미나야, 나는 이곳에서 유지를 전한 다음엔 사라지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어.
“어, 어째서!”
-죽은 사람은 사라져야해. 그리고 산 사람의 의지가 되어서 살아가야만 하지. 홀로그램으로 남아 있는 것은 무의미한 미련만 남게 만들어. 산 사람을 나아가게 만들려면 죽은 사람은 넋으로만 남아야 해.
그렇게 말하며 장기래씨는 미나의 뺨을 어루만졌다.
물론 홀로그램에 불과해서 온기도, 촉감도 느끼지 못 하겠지만, 그의 상냥함은 전해지는 듯했다.
-미나야, 언제까지고 행복하게 지내렴. 네가 행복하길 바라면 세상도 행복해질 거야.
“오빠······.”
-잘 있거라······.
장기래씨는 그렇게 말하면서 점차 희미해지고 있었다.
마치 소멸되는 듯한 모습.
그런 모습을 보고 미나는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점점 사라지는 장기래씨가 나를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아마도 당신에게 있어서 마지막 고비가 될 일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창조주의 유산 - 경험’을 획득했습니다.]
어떤 아이템이 내 인벤토리에 들어온 듯했다.
그게 뭔지 궁금했지만 지금은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그의 모습이 이제 거의 다 사라졌다.
-미나를 잘 부탁합니다······.
그는 다시 한 번 나에게 그 말을 하면서 마지막 모습을 감췄다.
남은 것이 이제 정말로 그의 무덤뿐이었다.
“흑흑흑······ 오빠······.”
“미나야. 괜찮아. 괜찮아······ 울고 싶을 때까지 계속 울어.”
나는 미나를 살짝 안아주면서 그녀가 마음 편히 울수 있도록 해주었다.
내가 그녀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친구로써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남들의 눈이 있어도 신경쓰지 않고 포옹한 것이다.
다른 이들이 보였으나 다들 숙연한 모습이었다.
그 중에서 지혜나 힐러 메이벨씨는 펑펑 울진 않아도 눈매가 촉촉한 모습이 보였다.
“죽은 사람은 넋으로 기려져야 한다. 홀로그램으로 자신을 남기지 않다니, 의지와 철학이 있는 남자였군.”
블루스 노인이 그런 말을 하면서 숙연히 고개를 숙였다.
늙은 그에겐 죽은 이의 유지가 남다르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나는 미나가 진정 될 때까지 계속 포옹해주었고, 미나는 얼마 후 진정된 듯했다.
“고, 고마워요. 오빠.”
“응. 도움이 되었다니 나도 다행이야.”
나는 얕게 미소지으면서 말했고, 미나는 어쩐지 부끄러워하는 모습이었다.
하긴, 위로의 목적이긴 해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포옹을 했으니까 그럴만도 하겠다.
다 큰 처자가 남자와 안겨있었으니, 연인처럼 보였을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그만 돌아갈까요?”
그때 시화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미나의 눈치를 보면서 말이다.
이곳은 무덤이고, 유족인 미나가 좀 더 오래있고 싶다고 하면 남아 있는 것이 옳을 것이었다.
하지만 미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려가죠. 이제 오빠는 떠났으니까요.”
“이제 괜찮은 거야?”
“네, 오빠도 앞으로 나아가라고 했으니까요. 그······ 행복하라고요.”
“그래, 미나가 행복한 게 중요한 거야.”
“······.”
나는 미나의 말에 동의하면서 빙그레 웃을 수 있었다.
그녀가 기분이 나아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들은 곧바로 하산을 하게 되었다.
“저기, 손잡고 가죠.”
그런데 내려가는 길에 미나가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오빠, 천천히 가요.”
그렇게도 말했다.
나는 천천히 걸어, 일행의 뒤편을 따라갔다.
그러는 중에 지혜가 날 바라보긴 했지만, 부끄럽진 않았다.
여, 연인 같아 보인다고 오해할 것 같지만, 어디까지나 친구일 뿐이니까.
“오빠, 우리 사귀죠.”
“응······ 어? 어? 뭐라고?”
나는 미나의 말에 자연스레 대답했다가 정신을 차리고 되물었다.
“사귀자고요. 아직까지 정식으로 사귀자고는 안했잖아요. 확실히 해야죠.”
“저, 저기 미나야······.”
“싫어요?”
미나는 당당하게 물었다.
그러자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싫지 않다, 오히려······.
‘미나를 잘 부탁합니다.’
장기래씨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까, 오히려 책임의식이 서버렸다.
그리고 미나는 충분히 매력적인, 아니 충분한 수준이 아니라 나한텐 과분할 정도로 아름다운 사람이니까.
“시, 싫지 않아.”
나는 그렇게 대답해야만 했다.
“그럼 사겨요. 오늘부터 1일이에요?”
“그, 그런데 너무 성급하게 정하는거 아니니······.”
“오빠, 연애 한 번도 안해봤죠?”
‘으응······.“
“저도 그래요. 오빠가 처음이라고요. 아니······.”
미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 뺨에 뽀뽀를 했다.
“단 둘이 있을땐 자기라고 부를게요.”
“······.”
“자, 자기. 그럼 잘 부탁해요.”
미나는 장난스럽게 말하곤 먼저 앞으로 가버렸다.
나는 그녀의 입술이 닿은 뺨을 멍하니 만질 뿐이었다.
졸지에 애인이 생겨버렸다.
세상일은 참 모를 일이다.
< 216화 창조주의 무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