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5화 드래곤 슬라이 >
시화의 작전대로 탱커인 베어로드와 산일이 용에게 먼저 돌격했다.
날개를 퍼덕이면서 낮은 고도를 활강 중인 용은 차가운 숨결이 느껴지는 브레스로 그 두 사람을 공격했다.
보통은 피해야할 것 같은 공격이었으나, 우루사이의 파워아머를 입은 베어로드는 그걸 그냥 받아내었다.
반면에 산일은 가볍게 회피하여 수호자 버프를 계속 유지해주었다.
“영웅의 용맹! 불굴의 함성!”
[영웅의 용맹함에 고무됩니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불굴의 함성을 들었습니다.]
[불굴의 용기를 얻어 체력이 50만큼 상승합니다.]
수호자와 두석린갑을 입은 산일은 탱커이지만, 버퍼의 역할도 하는 듯했다.
그는 함성 같은 것으로 버프를 걸어주었는데, 효과가 대단한 것 같았다.
수호자의 효과는 주변의 아군 인원수에 따라서 체력을 올려주는 것이었으니, 그는 존재만으로도 아군의 체력을 뻥튀기 해주는 셈인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공격에는 무능한 것도 아니었다.
능수능란하게 환도 ‘수호자’를 휘둘러 용에게 피해는 주는가하면, 두석린갑의 효과인 암흑오라를 이용해 꾸준히 용에게 피해를 주고 있었다.
크롸롸롸!
물론 용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마구 날뛰며 주변에 브레스를 뿜고, 꼬리를 휘두르고 풍압을 만들어내 혼란스럽게 하려고 했다.
“열 받는 도발! 방어구 가르기! 약점 드러내기!”
하지만 그런 용을 상대로 한발자국도 물러나지 않는 베어로드였다.
커다란 방패와 망치를 들고서 우루사이의 파워아머까지 껴입은 그는 살아 있는 성채나 다름 없었고, 용이 그에게 아무리 단단하고 날카로운 앞발톱과 이빨로 공격해도 소용없었다.
그러는 중에 베어로드는 용의 어그로를 잡는 스킬과 방어력 등을 하강시키는 스킬을 사용하는 듯했다.
그야말로 ‘메인 탱커’인 셈이다.
“어그로 충분히 쌓았습니다! 공격하십쇼!”
베어로드가 소리쳤다.
이제 딜러들이 공격해도 된다는 신호다.
그러자 가장 먼저 달려든 사람은 틈을 노리고 있던 시화였다.
그의 검 아론다이트가 섬광처럼 용의 날개를 공격했다.
날개도 강철처럼 튼튼한 용이었으나, 시화의 검은 그 날개도 충분히 베었다.
물론 살짝 깊은 상처를 낸 수준에 불과하지만, 여러 번 베어버리면 용을 못 날개 하는 것도 가능할 듯싶었다.
“날개는 튼튼해서 아론다이트로 밖에 공격하지 못한다! 호림, 자네와 나는 꼬리, 머리를 노리세!”
블루스 노인이 그렇게 외치면서 멋지게 용의 공격을 회피하곤 그의 옆구리를 베었다.
용이 고통스러워하며 하며 뒹굴었는데, 그때를 호림은 놓치지 않았다.
할버드 ‘대적자’를 든 그는 곧바로 용의 머리 쪽으로 다가갔다.
그가 노리는 것은 분명히 ‘대적자’의 특수 능력인 ‘뚜껑 따기’였다.
3초 정도 기운을 모으는 시간을 가지다가 어마어마한 힘으로 그것을 휘둘렀다.
그리고 정확히 용의 머리에 꽂혔다.
파캉!
크롸라아아아아아!
시화의 견제에 의해 땅에 내려와서 공격 중이었던 용은 그 ‘뚜껑 따기’ 일격을 맞고 무척 고통스러워했다.
정신이 혼미한지 옆으로 쓰러져서 바둥거렸는데, 여지없이 공격할 찬스인 것이 분명하였고, 블루스 노인과 군신 길드 일동은 일제히 공격을 시작했다.
타다당 타당
나와 지혜, 미나, 회장님도 열심히 총을 쏴서 지원했다.
용이 워낙 거대해서 아군사격의 염려는 없었다.
일은 그렇게 순조로워 보였는데, 하지만 사고는 항상 방심했을 때 일어나는 법이었다.
크오오오오!
용이 곧 정신을 차렸고, 그는 두 말할 것도 없이 분노했다.
군신 길드 일동이 열심히 때리는 것도 무색하게 그는 몸을 일으키더니, 어마어마한 힘으로 베어로드를 쳤다.
그러자 강력하고 육중한 파워아머를 입었는데도 베어로드는 상당한 거리를 튕겨 날아가야만 했다.
그러자 문제가 생겼다.
“어그로 공백이다!”
메인탱커가 그런 상태가 되면 어그로가 튀게 된다.
그렇게 되면 다음 어그로 대상을 공격할 수도 있긴 하지만, 경우에 따라선 어그로를 무시하고 제일 취약한 대상을 공격하기도 한다.
그리고 지금은 최악으로, 힐러인 메이벨을 노리기 시작했다.
“저한테 어그로 튀었어요!”
물론 군신 길드원인 메이벨은 프로이기 때문에 조금도 당혹한 기색이 없었다.
침착하게 주변의 도움을 요청하면서 여차하면 자신이 직접 공격을 회피할 준비를 하는 듯했다.
곧 용이 그녀에게 돌격했는데, 가장 먼저 그녀를 도운 사람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은 아니었다.
“방어 프로토콜 가동.”
“쉴드를 걸어주겠어요, 골렘.”
“감사합니다, 레이디 메이벨.”
바로 골렘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아 용의 일격을 몸으로 받아낸 것이다.
온 몸이 갑옷인 그에겐 방패가 따로 필요 없었다.
거기에 메이벨이 방어막 마법도 걸어주어서 훌륭하게 용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골렘의 그런 움직임은 시화의 작전에 들어맞는 것이었다.
메인 탱커인 베어로드, 부탱커이자 버퍼인 산일, 그리고 골렘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예비 탱커였다.
그리고 골렘은 그 역할을 훌륭히 해낸 것이다.
골렘은 내가 쥐어줬던 톱날검으로 적당히 용을 공격해 베어로드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버텼다.
“다시 갑니다! 필살기 다 쓸 테니까 극딜하세요! 우루사이의 결의, 우루사이의 돌격! 우루사이의 영혼!”
다시 복귀한 베어로드는 필살기라고 언급하면서 우루사이의 파워아머에 부여된 특수능력들을 모두 사용했다.
우루사이의 결의로 자신이 받는 피해를 70%나 감소시키고 체력을 점진적으로 회복시켰으며, 우루사이의 돌격으로 강력하게 용을 들이받았다.
순식간에 어그로가 다시 베어로드에게 넘어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루사이의 영혼이 전장에 나타났다.
-나의 친우를 돕기 위해, 정령계에서 내가 돌아왔다!
근엄한 목소리의 곰 영혼이 나타나면서 베어로드와 함께 용을 공격했다.
내가 알기로는 24시간에 한 번 밖에 사용할 수 없는, 분명히 필살기라고 할 법한 스킬이었다.
그렇게 다시 위기를 넘겼고, 모두 안전하게 용을 공격했다.
용의 모습이 눈에 띄게 지쳤고, 너덜너덜해졌다.
그러자 시화도 마지막 일격을 준비하는 듯했다.
“아수라 베기!”
그의 검 아론다이트에 작열하는 불꽃이 서렸다.
그리고 그는 화려한 검무를 보이며 용을 난도질했다.
지쳐있던 용은 그 난도질을 받고 피를 흘리고 다리까지 절고 있었다.
하지만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고 했던가?
크롸라라라라!
용은 마지막 포효를 하면서 나와 후방인원들이 있는 곳으로 최후의 돌격을 감행해버렸다.
베어로드와 우루사이의 영혼이 막아섰는데도, 용은 마지막 힘을 쥐어짰는지 그 둘을 뿌리쳤다.
그리고 골렘은 이번엔 늦을 듯싶었다.
“지혜야, 위험해!”
“지혜야!”
나는 그 돌격에 가장 먼저 노출된 사람이 지혜인 걸 알아차리고 곧바로 외쳤다.
회장님도 알아차리면서 그 누구보다 먼저 지혜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때 회장님은 어디선가 샀을 아주 비싸고 대단해 보이는 방패가 들려져 있었다.
분명히 돈으로 칠했을 것 같은 방패 덕분에 돌격한 용의 물기 공격을 방어해냈다.
그렇게 공격은 방어했는데, 그의 마지막 숨통을 끊지 못하면 회장님과 지혜는 또 공격당해 위험해질 것 같았다.
그러나 공격조가 도착하기엔 거리가 좀 있었고, 총으로는 숨통을 끊기 힘들 듯싶었다.
그래서 나는 로렌의 창을 꺼내들었다.
“이야아아아아압!”
나의 필살기라고 할 수 있는 일반 공격을 시도했다.
생활의 달인 효과로 인해 공격력만큼은 죽창 같은 것을 믿었다.
사냥이나 싸움은 잘 하지 않았기에 용이 내 공격을 막아내면 어쩌나 싶었지만, 그건 운에 맡겼다.
회장님과 지혜가 위험한데 그냥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운이 잘 따뤄주었다.
로렌의 창은 정확히 용의 너덜해진 가슴에 꽂힌 것이다.
크어어억······ 크어어······.
내 마지막 일격을 받은 빙룡 쿠샬은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실 끊어진 인형처럼 그 거대한 몸이 늘어졌다.
그리고 주변엔 정적이 흘렀다.
그가 나타나면서 어쩐지 강해진 눈보라도 진정된 듯했다.
“끝났군. 멋진 일격이었네.”
블루스 노인이 다가와 말했다.
“운이 좋았습니다. 그보다 회장님, 괜찮습니까?”
“괜찮네, 자네 덕분에 지혜도 무사하군.”
블루스 노인의 말에 대답하면서 나는 회장님과 지혜를 살폈다.
다행히 둘 모두 괜찮은 모양이었다.
시화와 군신 길드원들이 다가왔는데, 그들은 사냥을 성공한 것에 매우 흡족한 모습이었다.
“베타테스트에 못 잡은 설욕을 여기서 갚게 되었군요. 공진씨에게 많은 덕을 보았습니다.”
“모두가 힘을 합친 덕분이죠. 그리고 시화씨와 군신 길드원이 잘 싸워서 이룬 결과 아닙니까?”
“그래도 공진씨가 만들어준 무기들이 아니었으면 이번처럼 쉽게 사냥할 수 없었을 겁니다. 오늘 치룬 전쟁에도 마찬가지였고요. 항상 드리는 말씀이지만, 정말 고맙습니다.”
시화는 공손히 말했다.
늘 느끼지만, 시화는 얼굴도 잘생겼으면서도 성격도 좋아서 인기가 높을만했다.
남자로써 여러모로 질투도 느껴지는구만.
“곧바로 전리품을 획득하죠. 공진씨에게 드래곤하트를 드릴 생각이지만, 막타를 넣었으니 아이템이나 다른 것도······.”
“드래곤하트 하나면 충분합니다.”
시화는 전리품 분배를 말하면서 내게 많은 걸 양보하려는 듯했는데, 나는 필요한 것만 요구했다.
“하지만, 분명히 드롭템이 좋은 것들이 나올텐데요.”
“저는 뭐, 직접 만들면 그만이기도 하고, 돈도 지금 버는 걸로 충분합니다. 제가 용에게 필요한 건 마장기의 재료인 드래곤하트 뿐이니 그것만 받으면 그만입니다. 나머지는 군신 길드 쪽에서 유용하게 써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시화는 내 뜻이 확고하다는 것을 알고선 뜻을 거부하지 않았다.
곧 용의 시체에서 여러 전리품을 획득했고, 그 중 하나를 내가 얻었다.
[드래곤하트를 획득했습니다.]
마장기의 재료 중 하나.
이제 보석이나 자잘한 금속들을 제외하면 중요한 재료는 ‘축성 받은 마일스톤’만 남았다.
마장기를 만들 재료를 거의 모은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장기를 만들어도 쓸 곳이 있을지 의문이었다.
오늘은 전쟁을 이겼고, 그렇다면 앞으로 전세는 군신 길드에게 유리하지 않을까?
굳이 그런 물건을 만들지 않아도 이길 것이다.
애초에 마장기 재료를 모으는 것도 우연으로 성배를 얻어서 재미삼아 모으는 거지만 말이다.
“빙룡 쿠샬을 처치했으므로 이제 창조주의 무덤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골렘이 다가와 말했다.
이번 등산의 본래 목적은 용을 잡는 게 아니라 골렘이 말하는 창조주의 무덤에 가는 것이었다.
골렘이 본래 목적을 상기시키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골렘에게 길 안내를 부탁했다.
이제 창조주의 정체를 알아낼 때가 된 것이다.
< 215화 드래곤 슬라이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