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3화 승전 후 >
데이지의 극적이고 전율적인 활약 덕분에 승리한 후, 마을은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음료와 음식을 유저들과 병사 NPC에게 대접하면서 마을이 통째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승전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나는 운 좋게 5명이나 잡았지. 150만골 추가로 받음.”
“나도 3명 잡음. 개꿀임.”
“훗, 고작 그 정도로 경쟁하기는. 나는 총사서 7명이나 잡았다.”
“우와! 총 개쩔어.”
무엇보다 마을에서 회장님과 계약하여 싸운 이들은 참전, 승리, 그리고 성과급까지 받아서 싱글벙글한 모습이었다.
특히 성과급에 대해서 서로 자랑하기 바빴는데, 포션이나 총을 투자하듯 사서 써먹은 이들은 유달리 자부심을 가지고 자랑했다.
그런 이들은 다른 이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적들을 잡아서 투자한 만큼 더 많은 돈을 타갈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러지 않은 이들의 부러움을 살 수 밖에 없었다.
“부끄럽게도 마을이 공격받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병력을 뺄 수 없었습니다. 블루스 어르신이 그러지 말라고 한 것도 있긴 하지만요. 죄송합니다, 저희가 부족했습니다.”
시화는 자신들의 힘으로 마을까지 방어해주지 못한 것을 자책하기도 했다.
“블루스 어르신이나 회장님의 도움 덕분에 잘 되지 않았습니까? 막을 만하다고 여겨서 그런 겁니다. 자책할 필요 없어요. 게다가 결과적으로 잘 됐지 않았습니까?”
사실 살짝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데이지의 커다란 활약 덕분에 수월히 막았다.
그 천운이 따르지 않았다면 시화가 이겼어도 마을에 피해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런 것까지 따지면서 생색내고 싶지 않았다.
시화도 최선을 다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에게 다 잊고 오늘의 승리를 축하하며 마시자고 했다.
시화도 동의하면서 위스키를 마셨다.
“으하하, 어떠냐, 지혜야. 아빠가 좀 멋있었지?”
“네······ 꼭 장군 같았어요.”
“맞다. 내가 비록 면제긴 했지만 리더십 만큼은 실제 장군들 못지 않단다. 으하하!”
한편 회장님은 딸 앞에서 자랑을 늘어놓기 바빴다.
그 모습이 꼭 어머니 앞에서 칭찬을 바라는 꼬마아이의 모습 같아서 묘했다.
조금 주책처럼 보여서 지혜도 부끄러운 모양이지만,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아버지에게 환한 미소를 보여주고 있었다.
“꺄하핫, 데이지야. 화관 씌워주니까 기분 좋아?”
캬오오오!
한편 미나는 마을의 꽃파는 소녀에게 꽃을 사서 데이지에게 씌워줄 커다란 화관을 만들었다.
그리곤 용감하게 데이지의 몸을 기어올라서 머리에 화관을 씌워주었다.
데이지는 전율스런 모습을 보여준 것과는 달리 전투가 끝나자 몹시 얌전한 모습이었다.
다만 미나의 그런 물음에 대답은 역시 ‘캬오오’ 하는 포효여서 위엄이 넘쳤다.
그렇지만 꽃을 좋아하는 모습에서 갭이 느껴지는 귀여움이 있는지 사람들은 연신 그것을 촬영했다.
확실히 그 주변으로 동물과 정령들이 따라다니고 늘어서 있으니, 이색적인 분위기가 났다.
“허허······ 이기고 나니 정말 좋군. 그렇지 않나?”
“예, 어르신. 하지만 아직 완전히 승리를 거둔 것은 아닙니다. 밀레스 쪽이 이번 패배로 포기할지, 아니면 대비책을 가지고 또 다시 덤빌지 알 수가 없습니다.”
“대비책이라면 저 공룡에 대한 대비책이겠지?”
“예.”
“마땅한 대비책이 있는가? 대포로 쏴도 안 죽을 것 같은 위용인데.”
“그렇습니다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습니다.”
“그건 맞는 말이지.”
블루스 노인은 시화와 앞으로의 일에 대해 말을 나누었다.
오늘 대승을 거두긴 했지만, 적들이 그대로 포기할지는 미지수인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데이지가 있으니 걱정할 것이 있나, 싶었지만 시화의 말대로 방심은 금물일지도 모른다.
“주인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응? 뭐야 골렘아?”
한적하게 술이나 홀짝이고 있을 때, 골렘이 내게 다가왔다.
어쩐지 지금의 골렘은 매우 진지한 모습이다.
“레거시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이제 주인님은 그 보상인 창조주의 유산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아, 그것도 보상목록에 있었지. 하지만 바로 주는 건 아니었나봐?”
“예, 저에게 창조주님의 무덤이 있는 좌표가 있고, 그곳에 가시면 유언과 함께 받으실 수 있습니다.”
“유언······.”
어쩐지 무거운 말처럼 들렸다.
골렘이 창조주라고 부르는 그 사람은 아마 개발자인 것 같은데, 역시 죽은 걸까? 유산이나 유언,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면 그런 느낌이 강했다.
그런데 그러고 보니 미나의 말도 떠올랐다.
미나의 오빠도 우연찮게 이 게임의 개발자였고 고인이 되었다고 했지.
흠······ 괜한 생각이지만 설마 그 창조주가 미나의 오빠인 걸까?
하지만 확실한 일이 아니라서 단정해 말하기가 뭣했다.
“일단 그 무덤이 있는 곳은 어디야?”
“해금된 데이터에 의하면 노슬론 마을이 있는 북부의 빙룡산맥입니다.”
“엄청 추운 곳에 있단 말처럼 들리는데.”
“그곳의 정상에 숨겨져 있습니다. 하지만 추운 것보다 더 큰 장애물이 있습니다.”
“그게 뭐야?”
“빙룡 쿠샬입니다. 드래곤이 길목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
빙룡 쿠샬도 일전에 들어 본 것이었다.
시화도 잡는데 실패한 몬스터.
분명히 노슬론 마을에 갔을 때 말했던 것이다.
그리고 드래곤하트를 얻으려면 잡아야 한다는 녀석이라고 블루스 노인이 말하기도 했었다.
아무래도 이 일도 나혼자 하기엔 좀 힘든 일 같다.
게다가······ 어쩐지 찝찝한 느낌이 들어서 미나하고도 상담해야할 것 같았다.
나는 다들 불러 모아서 이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오호, 창조주의 무덤이라. 대체 어떤 사람이 그런 장난을 해놓았는지 궁금하긴 하군.”
모두를 불러 골렘의 말을 전하자, 우선 블루스 노인이 호기심을 보였다.
호기심 때문이긴 하지만 블루스 노인은 도와줄 생각이 있으신 모양이었다.
“가는 길을 빙룡 쿠샬이 막는다면 이번에야말로 빙룡 쿠샬을 잡을 기회군요. 한 번 도전해봅시다.”
시화는 프로게이머답게 빙룡 쿠샬을 잡는데 관심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에겐 아마 피끓는 도전처럼 느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저기요, 오빠. 그냥 추측이긴 하지만요. 혹시 창조주란 사람이요. 혹시하는 거지만······.”
미나는 조심스럽게 추측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아, 혹시 그 사람, 미나의 오빠가 아닌지 나도 의심이 들어.”
“······.”
“한 번······ 확인하러 가볼래?”
“네.”
미나는 약간 숙연한 모습으로 말했다.
만약 그 창조주라는 사람이 미나의 오빠라면, 그의 유언은 곧 미나의 오빠가 남긴 다른 형태의 유언일 것이다.
유족인 미나에겐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것이겠지.
그럴지도 모르니까 이번 일은 반드시 해야할 것 같은 느낌이다.
“나, 나는 괜히 위험한 곳에 가고 싶지는 않긴 한데······.”
“그럼 아빠는 안 갈래요?”
“어? 지혜는 가려고?”
“네, 저도 그 창조주란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요.”
“그럼 아빠도 같이 가자!”
지혜도 참가하고 싶어했고, 자연히 회장님도 따라오시려는 모양이다.
물론 회장님도 그냥 따라오시기만 할 뿐, 대부분의 전투는 시화와 블루스 노인이 맡을 것 같지만 말이다.
“주인님, 빙룡 쿠샬은 굉장히 위험한 몬스터입니다. 생명력을 잃어도 잠시 정령계로 돌아갈 뿐인 정령들은 괜찮지만 동물들은 동반하는 것을 추천해드리지 않습니다. 그들을 영원히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실버랑 애들은 놔두고 가야겠네. 그런데 데이지도 두고 가야할까?”
“데이지는 냉혈동물이기 때문에 극지환경은 치명적입니다. 데려가지 않으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골렘의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실버에게 명령을 내려 동물 친구들은 모두 농장으로 돌아가도록 했다.
경비견인 실버는 가축들까지 포함해서 그들을 농장으로 데려갈 수 있었다.
잠시 헤어지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골드도 있으니 농장에 있을 실버도 외롭지 않을 것이다.
“쿠샬을 사냥하려면 제대로 된 파티가 필요합니다. 빙룡산맥의 길은 험해서 많은 인원이 갈 순 없지만, 정예를 꾸려 가도록 하죠. 제 길드원들을 몇 데리고 오겠습니다.”
시화도 의견을 냈다.
사냥을 확실히 하기 위한 전문가의 의견이므로 당연히 받아들여야 했다.
곧 얼마지 않아서 시화가 그의 동료들을 데려왔다.
두 사람은 낯이 익은 사람이었다.
“또 뵙는군요. 저 기억하시죠? 만들어주신 수호자는 잘 쓰고 있습니다.”
“저도 대적자를 잘 쓰고 있습니다, 공진씨.”
두석린갑을 입고 내가 만든 환도였던 ‘수호자’를 들고 있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내가 만들었던 할버드인 대적자를 든 사람이었다.
한때 선술집을 방문해서 얼굴을 익혔던 사람들이었다.
각각의 닉네임은 ‘산일’과 ‘호림’이라고 했다.
시화처럼 어쩐지 무협지에 나올 것 같은 이름이다.
“안녕하십니까, 베어로드라고 합니다.”
그리고 처음 보는 사람들도 당연히 있었다.
그 중 한 명은 파워아머를 입어서 덩치가 커 보이는 베어로드란 사람이었다.
그가 입고 있는 파워아머는 분명히 내가 우루사이의 정수를 이용해 만든 파워아머였다.
그 파워아머는 유달리 강력한 특수 옵션이 붙었으니 굉장히 강할 거라 생각됐다.
“힐러 메이벨이에요. 같이 가게 되어서 영광이에요.”
나머지 한 명은 메이벨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여성 유저였다.
흰색 신관복이나 십자가로 만들어진 지팡이를 보아하니 전형적인 힐러 유저 같았다.
“전투의 주력은 저와 블루스 어르신, 그리고 길드원들이 할 겁니다. 여러분들은 후방에서 지원해주시거나 아니면 저희들 중 한 명이 전투불능에 빠져서 후퇴해야할 때 도와주십시오.”
“그러죠. 그럼 바로 출발할까요?”
아직 축제의 여운이 남아 있지만, 모두들 창조주의 정체가 궁금해서든 빙룡 쿠샬과 싸우는 것이 기대되어서든 얼른 출발하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우리들은 곧바로 마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는 예술가들의 축하 공연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진풍경이어서 스쳐지나가며 보았다.
얼마지 않아 마탑에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영주님. 승전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직접 전투에 참전하기도 했던 마법사 아가씨가 나를 보자마자 오늘의 승전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나는 고맙다고 인사하면서 텔레포트 서비스를 받고 싶다고 했다.
“노슬론 마을로요? 오늘은 인원이 더 많네요. 무슨 일로 가시는 거죠?”
“등산을 좀 할까 해서요.”
“등산이요? 그 추운 곳을요? 준비는 단단히 하셨나요?”
“방한대책이나 이것저것 먹을 것은 가져갑니다.”
불돌이가 있으니 방한대책도 어려울 것 없고, 뜨거운 음료나 음식도 가열기를 이용해 만들 수 있었다.
아마 등산은 문제없을 것이다.
눈이 덮힌 산일 테니 미끄러지는 것이나 조심하면 될 일이었다.
곧 우리들은 마법사 아가씨의 안내를 받아, 노슬론 마을로 텔레포트하게 되었다.
텔레포트가 끝나자, 오랜만에 노슬론 마을의 추위가 느껴졌다.
< 213화 승전 후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