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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플레이어-231화 (231/239)

< 212화 데이지 >

레거시 퀘스트가 완료되었다.

어제 마지막으로 본 것이 95% 완료된 모습이었으니까, 아마도 그 5%가 조금씩 차올라 지금 완료된 모양이다.

영지가 함락되기 직전인 지금 완료된 것은 정말로 천운이었다.

“업적 상점!”

나는 뭘 해야 할지 확고하게 알고선 업적 상점을 열었다.

업적 상점에서 큰 힘이 되어줄 존재를 불러야 한다.

나는 실버와 골드를 샀을 때처럼 동물이나 환수들이 있는 카탈로그를 띄웠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전에 눈여겨보았던 걸 찾았다.

[전율의 티라노사우루스 100,000,000QP, 전율적인 크기와 위력을 가진 공룡]

간략하지만 설명부터 남달랐던 것.

예전에는 절대 살 수 없을 쇼윈도 상품으로 생각했던 거다.

하지만 레거시 퀘스트를 깨고 얻은 1억 업적 점수로 이제 살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구매 버튼을 눌렀다.

쿵······.

그러자 가장 먼저 들린 것은 지축을 울릴 듯한 소리였다.

뭔가 거대한 존재가 땅을 찧은 듯한, 이질적이고 큰 소리였기에 아군적군 가리지 않고 전장에서의 많은 이들이 의아해하며 소리의 정체를 파악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이 알 수 있었던 것은 갑자기 생겨난 거대한 빛덩어리였다.

“저, 저건 뭐야? 언제 생긴 거지?”

“빛? 텔레포트한 것 같은 모습인데.”

“뭔가 나타나려고 하는 것 같아.”

싸우는 것도 잠시 잊고서 그 수상한 빛의 정체를 의아해하는 사람들이었으나, 곧 빛이 서서히 사라지고 그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전율 그자체였다.

캬오오오오!

우리가 익히 공상영화에서 보아 알고 있는 모습.

포식자의 얼굴을 하고서 커다랗고 날카로운 아가리를 쩍쩍 벌리는 그 모습은 전율스러운 공룡의 모습, 그것도 최강이라는 인식이 강한 티라노사우루스의 모습이었다.

“고, 공룡이다!”

“아니 이게 뭐야?”

“갑자기 분위기 공룡이네.”

“이 게임 공룡 갓겜이었어?”

열심히 싸우던 사람들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포식자를 보고 제각각의 반응을 보였다.

그렇게 놀라는 사람들 중에는 지혜와 미나, 회장님, 블루스 노인도 있었다.

캬오오오! 캬오!

티라노사우루스가 포효를 하자, 아군적군 할 것 없이 전장의 모든 이들이 얼어붙었다.

마치 뱀 앞의 쥐처럼 말이다.

좀 전에 떠들던 사람들도 그 포효를 듣자, 소름돋을 정도로 조용해질 따름이었다.

[티라노사우루스가 주인에게 적대적인 이들을 감지합니다.]

[분노에 휩싸이며 곧 공격할 준비를 합니다.]

한편 나에겐 그런 메시지들이 보였다.

티라노사우루스는 일단 적아를 구분하는 듯하고, 나에게 적대적인 이들을 적으로 판단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저 커다란 덩치가 여기서 난동을 피우면 어떻게 될까? 분명히 아군 피해도 늘어날 것이다.

그 전에 뭔가 수를 써야 한다!

“회, 회장님!”

“뭐, 뭔가?”

“빨리 사람들에게 대피하라고 이르세요. 저거, 저거 아군입니다! 제가 부른 거예요! 성벽이랑 성문에서 물러나도록 해야해요!”

“뭐라고? 아니, 알겠네! 모두 성벽에서 떨어져! 아버지! 성문에서도 후퇴하세요!”

회장님은 잠깐 머뭇거리다가도 금방 사태파악을 완료하시고 확성기를 꺼내 지휘를 했다.

티라노사우루스가 무시무시한 돌격을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회장님이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성벽에서 떨어지려고 했다.

천운이 따른 것처럼, 티라노사우르스의 돌격로에 있던 성벽엔 아군이 남아 있지 않았다.

콰앙!

단 한방에 티라노사우루스와 부딪힌 성벽이 파괴되었다.

그 위에 도망칠 방향이 없어서 우왕좌왕하던 적들이 날아가고, 찢기고, 죽은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었다.

캬오오오!

콰앙!

다시 한 번 돌격하는 티라노사우루스, 이번엔 성문이 한번에 무너져 내렸다.

그곳에 밀집해 있던 적들은 순식간에 깔려 죽거나 무기도 뭐고 다 내팽겨치고 가까스로 살아남기만 했다.

티라노사우루스는 계속해서 포효하면서 적들을 공격했다.

돌격하고, 커다란 아가리로 직접 삼켜버리는가 하면 꼬리로 치거나 다리로 짓밟아버리기도 했다.

적들은 그것에 대항할 수단이 전혀 없었다.

“후퇴! 후퇴하라!”

진작에 전의를 상실했지만, 적들은 아마도 후퇴를 외칠 틈도 없이 도망다녔을 것이다.

그러다가 지휘관으로 보이는 이가 겨우 후퇴 명령을 내렸고, 혼비백산하기만 하던 적들은 그나마 정신을 차리고 자신들의 진영 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 하하하하······.”

“와 이건 찍어둬야 된다.”

“공룡이 왜 갑자기 나타난거지?”

“나 저거 아는 거 같아. 업적 상점에 있던 건데······ 1억 업적 점수 짜리인 걸로 기억하는데······.”

겨우 공룡의 재난에서 벗어난 아군 유저들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공룡을 보면서 각자의 말을 했다.

몇몇 이들은 공룡의 시원시원한 공격에 환호하기도 하고, 몇몇 이들은 계속해서 아연실색하기도 하며, 드물게 침착한 이들은 사진을 찍거나 업적 상점에 있던 공룡이란 것을 알아내기도 했다.

“자네, 레거시 퀘스트를 완료한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어르신. 그 보상으로 얻은 업적점수로 소환한 겁니다.”

“대단하군, 그냥 쇼윈도 상품으로 실제로는 구현 안 된 거 아닐까 생각했던 건데······ 개발자도 어지간한 인간들이군. 저런 걸 만들다니.”

블루스 노인이 다가와서 그런 말을 했다.

십분 동감이 되는 말이었다.

1억 업적 점수이긴 해도, 저런 굉장한 걸 만들어 놓다니.

개발자가 대단한 것인지, 괴짜인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적대적인 이들이 물러나, 티라노사우루스가 당신에게 돌아옵니다.]

쿵, 쿵, 쿵.

적들이 전부 썰물처럼 후퇴해버리자, 티라노사우루스는 그 쿵쿵 거리는 발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건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런 것이 무색하게도, 티라노사우루스는 좀 전의 난폭한 움직임과는 달리 아주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얼굴을 내게 가까이했다.

[티라노사우루스가 주인인 당신에게 칭찬을 받고 싶어합니다.]

“어? 어······ 잘했다?”

나는 얼굴이 가까워진 티라노사우루스에게 그렇게 말하며,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티라노사우루스의 머리 부분을 쓰다듬었다.

머리라기 보단 코에 가깝나? 어쨌든 티라노사우루스는 어쩐지 만족스런 모습이었다.

[티라노사우루스와의 친밀도가 개선됩니다.]

[티라노사우루스가 이름을 가지길 원합니다.]

“아, 이름······.”

실버나 골드처럼 티라노사우루스도 이름을 원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압도적인 위용 때문에 이름으로 적당한 것이 생각나지 않았다.

“주인님, 이름을 지어줄 생각이십니까?”

“응, 골렘아. 근데 적당한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네.”

“이름을 짓는데 필요한 힌트를 드리자면, 우선 이 티라노사우루스는 암컷입니다.”

“아, 그럼 여성적인 이름이 좋겠구나.”

“그리고 꽃을 좋아합니다.”

“뭐라고?”

“꽃을 좋아합니다.”

“······.”

골렘의 마지막 말에 나도, 미나도, 지혜도, 블루스 노인도, 회장님도, 듣고 있던 주변의 사람들도 모두 황당한 모습이 되었다.

이 전율적인 모습의 티라노사우루스가 꽃을 좋아한다니, 엄청난 모순이 아닐 수 없었다.

“그, 그럼 이름은······ 데이지로 하자.”

여성적인 이름에 꽃과 연관된 이름. 데이지.

아마 적당한 이름일 것이다.

그 이름의 주인이 티라노사우루스만 아니었다면 말이지.

[데이지가 자신의 이름에 매우 만족합니다.]

어쩐지 데이지의 눈꼬리가 올라간 듯 하고, 덩실덩실 춤을 추는 듯했다.

이름이 정말로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사람들은 황당한 눈초리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일단 이게······ 자네 명령을 따르는 건 확실한 것 같군. 우리들에게도 적대적이지 않고.”

“네, 저에게 적대적인 사람들만 공격하는 것 같습니다. 제 명령에도 따를 듯하고요.”

“그럼 어서 반격하는게 어떻겠나? 군신 길드를 믿긴 하지만, 이 기회에 우리가 아예 반격하세.”

회장님은 반격을 주장했다.

당연히 데이지를 선두에 두고 말이다.

나는 싸움을 즐기진 않지만,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상식적으로 이제 시화씨를 지원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옳은 것이다.

“피아식별 문제는 걱정 말게, 시화군이 어련히 알아서 하겠찌만 내가 귓속말로 상황을 알릴 테니.”

“알겠습니다, 어르신.”

“그럼 반격하러 가는 걸세! 이보게들! 이 기회에 돈을 더 벌고 싶지 않나! 든든한 아군도 생겼으니 다같이 가서 침략자들을 죽이세!”

회장님은 다시 확성기를 꺼내서 사람들을 부추겼다.

그러자 사람들은 이제 티라노사우루스, 그러니까 데이지가 아군이란 것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에 사기가 치솟았다.

이대로 처들어가면 자신들이 압승할 것이고, 덩달아 회장님이 내건 성과급을 얻을 기회가 생겼다.

“어서 갑시다!”

“돈 벌어야 돼요! 공룡이랑 빨리가죠!”

“공룡 싸우는거 또 보고 싶다!”

사람들은 오히려 부추기는 수준이었고, 나는 얼른 준비를 해야했다.

수성전에선 비효율적이라 그냥 안전한 곳에 두었던 정령과 동물 친구들을 불렀다.

그 아이들은 데이지를 보고도 겁 먹지 않고 새로운 가족을 대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멍멍멍!

왈왈왈!

월월월!

특히 친근함이 가장 많은 불돌이, 실버, 골드는 데이지의 주변을 열심히 맴돌았고, 데이지도 싱글벙글한 모습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데이지를 따라갈 기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옥스의 등에 타선 데이지에게 명령했다.

“데이지야, 저기 여길 침략해온 사람들이 있어. 저 사람들을 혼내주러 가야하는데, 도와줄래?”

캬오오오!

[데이지가 기꺼이 주인의 명령에 따릅니다.]

내 말에 데이지는 포효로 답하면서도 메시지창으로 말했다.

곧 용기가 충만해진 모든 사람들과 함께 우리들은 적진을 향해 돌격하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군신 길드 쪽 군대와 싸우는 밀레스의 침략자들이 있었다.

“돌겨어어어어어억!”

우오오오오!

회장님이 달리면서도 확성기로 외쳤고 사람들은 함성을 질렀다.

하지만 그런 함성보다 큰 것은 당연하게도 데이지의 포효였다.

캬오오오오!

쿵, 쿵, 쿵!

선두에 서서 달려가는 데이지.

적들은 우왕좌왕하고 혼비백산하면서도 지휘관에 의해 창을 들고 방진을 만들어 보았지만, 모두 소용없는 짓이었다.

창대는 부러졌고, 그나마 몇몇 용맹히 돌격하던 기사들은 데이지에 씹어먹히거나 랜스가 가죽을 뚫지 못하고 부러져서 아연실색하다가 도망치고 말았다.

적의 보병진을 완벽하게 휩쓸면서 데이지는 마구 난동을 피웠다.

그 사이에 군신 길드와 아군 병력들은 적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블루스 노인의 말대로 귓속말로 상황이 전파된 모양인지 당황한 기색은 생각보다 적었다.

이윽고 적들의 전면적인 후퇴가 벌어졌다.

이긴 것이다.

내 영지를 지킬 수 있었다.

캬오오오오!

그 승리의 주역인 데이지가 도망치는 적들을 두고 다시금 포효했다.

실로 전율스럽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 212화 데이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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