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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플레이어-230화 (230/239)

< 211화 절체절명의 순간 >

얼마지 않아 적들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북문 방향 성문 앞은 북새통을 이루었다.

단순히 회장님에 의해서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조금 전 전투를 돕기로 한 NPC들이 자신들의 방식으로 전투를 지원하기 시작하여서였다.

“다들 먹고 힘내서 싸우라고, 빵을 나눠드려요! 줄서서 한 분씩 받아가세요!”

제과점의 점원 소녀가 활기차게 말하고 있었다.

전투에 앞서 음식 버프를 사람들에게 부여하기 위해서 제과점의 빵을 뿌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산더미처럼 쌓인 빵(인벤토리가 있기 때문에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옆에 줄을 서서 하나씩 받아가기 시작했다.

전사들에겐 힘과 민첩이 오르는 빵을, 마법사 계열에겐 지능과 정신력이 오르는 빵을 나눠줘서 다들 좋아했다.

“공짜로 먹고 싸운다니, 적어도 죽으면 떼깔은 곱겠군.”

“난 돈이 없어서 만날 보리빵만 먹었는데 이게 웬 횡재? 근데 죽든 살든 이기기만 하면 100만골드 들어오는 거 맞나?”

“퀘스트 형식으로 부여받았으니까 무조건 들어옴. 거기에 성과급으로 적 모가지 하나당 30만. 역시 S그룹 회장님다운 씀씀이야.”

“와······ 겁나 열심히 싸워야겠다.”

사람들은 빵을 먹으면서 수다를 떨었다.

다들 이겨서 반드시 상금을 타먹겠다는 의지가 분명해보였다.

나는 다른 곳으로도 시선을 돌렸다.

“무기가 부실한 사람들은 이곳으로 오시오. 헐값에 보급형 무기로 교체해주겠소. 무기가 괜찮은 사람들도 30%까진 할인해주겠소.”

“할아버지, 저는 노송나무 가지인데 어디까지 할인 되나요?”

“이 롱소드를 5,000 골드에 팔지.”

“헐 그렇게나 싸게?”

무기상점의 해밀튼 노인은 아들 스미스와 함께 무기를 떨이처분했다.

물론 무작정 헐값에 파는게 아니라, 특별히 무기가 부실한 자들에게 무기를 보급해주기 위해서 가지고 있는 무기 상태를 보고 적당히 할인을 해주는 것이다.

초보자들은 좋은 보급형 무기를 받을 수 있었고, 고레벨들도 괜찮은 무기를 이번 기회에 마련할 수 있었다.

또한 무기만이 아니라 갑옷도 똑같이 판매해줬다.

“마법사용 드레스와 로브 팝니다. 반값 세일해요! 지금 특별히 싸게 파는 거니까 어서들 오세요!”

“지능이 이렇게 붙었잖아? 특수 능력도 완전 좋아! 이거 살래요!”

“이 가죽코트를 입고 싸우면 엄청 멋지겠군.”

의류점의 노라도 한 몫 거들었다.

그녀는 갑옷이 아닌 ‘옷’ 종류라서 도적 계열이나 마법사 계열의 유저들에게만 판매할 수 있었지만, 50% 세일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손님들을 모으고 있었다.

유저들은 오늘이 날이라고 생각하면서 마구 사들였다.

“자, 모두 여길 보시오! 전투용 버프를 주는 조각상이오!”

조각상점의 소니키는 북문에 위풍당당한 장군 동상을 순식간에 조각하여 세웠다.

사람들은 그 조각상을 보고 버프를 받았는데, 나도 그 버프를 한 번 받아보았다.

[조각상을 감상했습니다.]

[장군의 용맹함에 매료되어 힘이 40, 민첩이 40만큼 오릅니다.]

[장군의 지략에 감탄하면서 지능이 40, 정신력이 40만큼 오릅니다.]

[전투시 투지가 쉽게 꺾이지 않습니다.]

소니키가 장군의 용맹함과 지적인 면을 둘 다 잘 표현해서인지 전사계열과 마법사계열 둘 다 만족시킬 수 있는 버프를 받을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이라면 특수능력이 그저 투지가 꺾이지 않는다는 것에 그친다는 점인데, 전쟁에선 아마 그것도 중요할 것이다.

저 장군상을 그대로 둔다면 돈 없는 사람들은 두고두고 잘 활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각종 장신구들을 팝니다! 마진이 얼마 없어 20%밖에 할인 못하지만, 둘도 없는 기회요!”

보석상점을 겸하는 소니키는 보석 장신구도 팔았다.

비록 보석은 비싸기 때문에 할인율이 다른 곳보다 좋진 않았지만, 돈 있는 사람들에겐 구매할 기회였다.

“각종 포션합니다. 체력회복 포션, 마나회복 포션, 각종 능력치가 오르는 비약, 적을 엿먹일 수 있는 폭발 포션이나 독 포션도 있소.”

마탑의 계열사(?)라고 할 수 있는 연금술 상점에선 포션들을 팔았다.

그들도 포션을 할인했고, 사람들은 이 기회 또한 놓치지 않고 몰려들었다.

전쟁인데다가 써서 적 한명이라도 죽이면 이득이라는 계산 때문에 폭발 포션이나 독 포션도 불티나게 팔렸다.

“마탑에서 신 무기를 팝니다! 마력격발 총! 안전하고 강력하게 적들을 무찌르고 싶습니까? 그럼 당장 지르세요! 총탄과 화약은 별도 구매입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마탑에서 군납하고 남은 마력격발 총을 팔았다.

평소 로비 데스크를 지키던 마법사 아가씨가 열렬하게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마탑의 솜씨 좋은 마법사들은 이미 군신 길드의 전선으로 향했기 때문에 그녀와 하급 마법사들은 전투에 앞서 마력격발 총을 사람들에게 팔아 전력을 보충시키려 한 것이다.

“오 이 총은 넷튜브 제작 영상에서 봤어! 나도 하나 갖고 싶었는데!”

“지금 사면 20% 할인이라······ 만드는 건 나한테 어려운 것도 같고······ 지금 사야겠다.”

“나, 나는 초보자라서 솔직히 근접전은 자신 없어. 하지만 군대에서 총은 쏴봤으니까 이걸로 해야지.”

유저들은 넷튜브에서 내 제작 영상을 보았거나, 총이라는 무기 자체에 흥미를 가지면서 구매를 했다.

특히 초보자들은 사실상 적을 죽이긴 힘들 거란 걸 알기 때문에 적을 죽일 수 있는 수단인 총을 구매하는 걸 심각하게 고려했다.

마력격발 총이 다소 비싸긴 했지만, 돈을 털어서 구매한 후 안전한 곳에서 한 명이라도 쏴죽이면 이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설령 못죽인다고 해도 참전만으로 50만 골드, 전쟁에서 승리하면 100만 골드니 밑져야 본전인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이 무장과 준비를 마치는 시점에서 회장님이 성벽에 올라 다시 확성기를 꺼내셨다.

“자자, 다들 준비 마쳤으면 내 말 들으라고. 우리 임무는 두 말할 것도 없이 이 마을, 이 성벽을 지키는 거야! 내가 대충 수를 세봤는데, 우리들도 얼추 1,000명은 되더라고, 다만 질적으로 우린 초보자들이 많아. 하지만 성벽을 끼고 싸우니까 할만해! 다만 지휘관인 내 명령을 잘 따르고 싸워야해! 알지? 명령체계가 없는 군대는 오합지졸이란거? 자, 그럼 여기서부터 왼쪽 차례대로 전사, 도적, 원거리, 마법사로 정렬해서 집합해서! 어허! 돈 벌기 싫어?”

회장님은 카리스마와 입담을 자랑하면서 사람들을 통솔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떤 식으로 싸울까, 생각하다가 일단은 로드릭 경의 갑옷을 입고 총을 들었다.

여차하면 마법공학 톱날검을 꺼내 싸울 수 있도록 준비하면서 말이다.

“저희도 총으로 지원사격을 할게요.”

지혜와 미나도 총으로 싸우기로 했다.

나는 그녀들에게 원하지 않으면 굳이 싸울 필요는 없다고 했지만, 그녀들은 고개를 저었다.

“나쁜 놈들이 쳐들어오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어요?”

“제 제과점을 노리는 사람들은 용서 못해요.”

미나나 지혜 둘 다 씩씩하게 대답했다.

특히 지혜는 어쩐지 회장님처럼 ‘자기것을 빼앗으려고 하는 자들’을 용서하지 못하는 듯했다.

이러나저러나 회장님의 따님인가······.

“준비가 된듯하군.”

“예, 어르신. 그런데 같이 계신 분들은······?”

“모두 자네의 선술집이 있는 호수에서 전직한 호수의 기사들이라네. 지금 있는 병력 중에선 최정예지. 성문이 뚫리면 투입할 생각이라네.”

“그렇군요.”

블루스 노인은 가장 중요한 성문을 마크할 병력을 미리 쟁여 놓은 듯했다.

그 호수의 기사들은 겉보기에도 모두 백전노장처럼 보였다.

곧 회장님의 일사불란한 지휘로 사람들을 각각 포인트에 배치했다.

물론 게임 지식은 블루스 노인이 더 많았기에 그의 조언을 들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전투 준비가 완료되었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적들도 성벽으로부터 100m 내외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충차와 사다리를 들고 북문을 노리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다.

얼마지 않아 활과 총의 유효 사정거리에 그들이 들었다.

“사겨어어어억!”

회장님이 확성기를 들고 목청이 터져라 외쳤다.

곧 총성과 화살이 날아가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적들은 중보병으로 이루어진 군대, 화살에는 대미지는 입어도 쉽게 쓰러지지 않았다.

반면에 총에는 큰 대미지를 입거나 쓰러지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소수의 적 사제들이 그들을 치유해서 일으키곤 했다.

“의무병을 쏘는 건 제네바 협약 위반이지만······ 게임에서 그딴 건 없지!”

타앙!

그걸 확인한 나는 우선적으로 사제를 쏴버렸다.

중상자를 치료하던 사제가 총에 맞고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말 그대로 게임이라 상관없는데도 조금 마음이 쓰렸다. 하지만 어쩌랴? 전쟁인걸.

하지만 100미터 가량에서 광적으로 돌격하는 적들은 금방 성벽 아래에 도달했고, 들고 온 사다리를 성벽에 걸쳤다.

“아까 산 폭발 포션이다!”

“난 독 포션이다!”

“에헤헤헤헤헤헤! 난 둘 다!”

몇몇 유저들이 연금술 상점에서 산 공격용 포션을 던져대며 사다리를 기어오르는 적들을 공격했다.

흡사 실제 중세의 공성전에서 적에게 끓는 기름을 붓는 것 같은 모습이다.

상당히 효과적으로 적들을 저지하고는 있지만, 1,000명의 적들을 그렇게 쉽게 물리칠 순 없었다.

걸쳐진 사다리로 결국 적들이 성벽에 올라왔고, 동시에 충차가 성문을 때리기 시작했다.

성벽에 오른 적 중보병들은 유저들을 가차없이 공격했는데, 사격을 하던 원거리와 마법사 유저들이 기겁을 하고 피하거나 혹은 피하지 못하고 죽임을 당했다.

황급히 그 뒤에 있던 전사와 도적들이 근접전에 들어갔지만, 성벽에서 적들을 밀어내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회장님이 말한 대로 우리 편에는 초보자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위이이이잉!

나는 톱날검을 들고 적들에게 저항했다.

그리고 내 등은 로렌의 창을 든 골렘이 맡고 있었다.

싸우는 도중에 미나와 지혜가 무사한지 확인하고 싶어서 둘러봤는데, 미나는 검과 방패로 바꿔들어 적들에 맞서는 한편, 그 뒤에서 지혜가 총으로 지원하고 있었다.

내가 굳이 지켜주지 않아도 저 애들은 스스로 싸울 줄 알았다.

쾅!

하지만 상황은 계속해서 나빠졌다.

성문이 파괴된 것이다.

파괴된 성문으로 적 중보병들이 쏟아져 들어오려 했다.

“호수 기사단! 돌격!”

“우오오오!”

블루스 노인이 호수의 기사들을 이끌고 그들에게 맞섰다.

그들은 일당백의 기세로 적들에게 맞섰다.

하지만 20명이 채 되지 않는 숫자로 성문에 쏟아져 들어오는 적들을 무한정 막고 있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 뒤에는 사실상 시간 끌기 용으로 밖에 되지 않는, 농기구나 든 마을 주민들이 벌벌 떨면서 서 있었다.

나는 이 싸움이 점점 어려워진다는 것을 느꼈다.

아니, 사실상 지고 있다.

‘진다고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지키고 싶어.’

순간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내 소중한 농장하며, NPC지만 친절하고 유쾌한 영지의 주민들, 미나와 지혜, 블루스 노인과 회장님, 시화씨, 골렘, 그리고 동물과 정령 친구들.

만약 여기서 패배해 영지를 뺏기고 농장도 뺏긴다면, 나의 추억이 더럽혀진다는 기분이 들었다.

게임 플레이가 끝나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이전처럼 즐겁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지키고 싶었다.

지킬 수 있는 힘이 있길 희망했다.

[레거시 퀘스트 완료]

[100,000,000 업적 점수 획득]

그리고 희망이 찾아왔다.

< 211화 절체절명의 순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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