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플레이어-228화 (228/239)

< 209화 16일차 로그인 >

오늘은 좀처럼 일에 집중하지 못 했다.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도, 가상현실의 농장이나 영지가 걱정되는 것이다.

이제 내 재산 같이 된 것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시화씨가 분명히 잘해주고 있을 거라고 믿었고, 설령 잘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일을 하고 있으니, 어느덧 퇴근시간이 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언제나 그렇듯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에 집에 도착했다.

조바심을 갖지 않으려고 우선 샤워부터 했고, 간단하게 요기한 후 캡슐로 향했다.

[사용자 신원 ‘사공진’ 확인.

<마일스톤>에 접속하시겠습니까?]

“접속.”

오늘만큼은 잔뜩 긴장을 하고서 로그인을 했다.

어쩌면 벌써 전쟁이 일어나 농장이 초토화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아직 시화가 말한 공격 시간이 되지 않은 건진 몰라도 농장은 고요했다.

다만 평소와 다른 고요함이었다.

주변의 농가로부터 가축이 우는 소리나 음악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모두 피난하여서 조용하단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주인님, 오셨습니까?”

멍멍멍!

월월월!

그런 나를 마중 나오는 이는 골렘과 실버, 그리고 골드였다.

조금 늦게 옥스와 호크도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미나와 지혜는 농장에 없는 듯했다.

“골렘아, 오늘은 말이야. 농장에서 피난해야 해.”

“전쟁 때문입니까?”

“그래.”

“하지만 농장을 지키지 않으면 약탈에 노출됩니다. 제가 홀로 남아 지키겠습니다.”

“안 돼. 너도 같이 피난해야해. 농장은 다소 약탈당하거나 무너져도 다시 지으면 그만이지만 너나, 동물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어. 그러니 마을로 피난하자.”

“······.”

나의 말에 골렘은 드물게 생각에 빠진 듯 했다.

아마도 농장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와 내 말을 따르는 것 중에 갈등을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골렘은 인공지능답게 고민을 그리 오래하진 않았다.

“알겠습니다, 주인님. 마을로 피난하여 동물과 가축들을 돌보겠습니다.”

“좋아, 그거면 됐어.”

오늘은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었다.

주변은 고요하지만, 그 고요함 자체가 전쟁이라는 불길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어서 서둘러 피난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골렘과 실버, 골드, 호크, 옥스, 그리고 나머지 가축들도 데리고 농장을 빠져나왔다.

하는 김에 정령 친구들도 소환했다.

왈왈왈

냐아옹

삐이익

브어엉

불돌이, 물방울, 바람이, 태산이가 모습을 드러내 울음소리로 내게 인사했다.

그 아이들을 살짝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

“얘들아 오늘은 동물 친구들을 데리고 마을로 피난해야해. 너희들이 좀 동물친구들을 이끌어줄래?”

브어어엉

내 부탁에 태산이가 대표로 대답하는 듯했다.

곧바로 바람이가 동물들의 주변을 날아 그들을 통제하는 한편, 불돌이는 그들을 몰아서 나를 따라오게 했다.

태산이도 불돌이를 보조하고 있었고······ 물방울은 그냥 호크의 등 위에 타서 캣 엠퍼러 타임을 하고 있었다.

음, 물방울은 언제나 마이페이스구나.

그렇게 하펜 마을로 계속 향했다.

시골길을 따라 하펜 마을의 입구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웅장한 성벽이었다.

하루 사이에 어제 건설을 시작했던 성벽이 완성된 것이다.

상당히 견고해보여서 누군가가 공성을 하려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마을 경비병에 의해 엄중히 지켜지고 있는 성문으로 향했다.

“피난민인가? 멈춰라! 대피허가 시간은 끝났다!”

경비병은 군기가 바짝 들어선 그런 말을 했다.

나는 그에게 좀 더 가까이 가서 말했다.

“접니다, 좀 늦었지만 길을 비켜주십시오.”

“누구······ 앗! 영주님! 충! 결례를 범했습니다!”

“괜찮습니다. 군기가 든 모습이 보기 좋군요. 제가 좀 늦어서 그런데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경비병은 즉시 비켜 문을 열어주었다.

문 너머로부터 사람들이 엄청 바글거리고 있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농장에서 피난한 사람들이 많은지 그들도 온갖 가축들을 데리고 있었다.

“과연 군신길드가 이길까?”

“길드 랭크에서 군신 길드를 제외하곤 모두 군신 길드의 적이잖아? 다들 똘똘 뭉쳤던데.”

“수적으로는 군신 길드가 불리한 것 같아.”

“만약에 지면······ 으아아 내 농장은 어떻게 되는 거지?”

사람들의 불안한 기색이 담긴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시화에게 귓속말을 해서 사정을 들어볼까, 하면서도 광장 쪽으로 걸어갔다.

“오빠! 오빠! 여기에요!”

그때,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서 그쪽 방향을 돌아보았다.

미나가 사람들 사이에서 힘껏 나를 부르고 있던 것이다.

“미나야!”

나도 그녀를 부르면서 그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지혜와 블루스 노인, 회장님도 있었다.

“기다렸어요, 오빠. 피난령이 떨어져서 농장에선 기다리지 못 했어요.”

“자네 왔군. 자네가 없는 동안 적들이 처들어와서 마을 회관의 사무원들이 임의로 피난령을 내렸네.”

미나와 블루스 어르신이 말했다.

“별 문제는 없었습니까?”

“없었네, 보다시피 마을이 북적해진 것 정도 외에는. 아, 약간의 사재기나 늦기 전에 마을의 편의시설을 이용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많더군. 군신 길드가 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뒤늦게 꿀을 빨려는 거지. 사기꾼들이 기승을 부리긴 했는데, 경찰들이 모두 정리했다네.”

“다행이군요. 그럼 시화씨는 이미 전쟁터에 간 겁니까?”

“그렇지. 전장에서 적들과 대치 중이라네. 아직 싸움이 시작되진 않았지만. 우린 자네 오는 걸 기다려서 전장의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네.”

“이길 수 있을까요?”

“군신 길드의 힘을 무시하지 말게나. 그들은 프로일세. 어중이떠중이들 잔뜩 뭉친 것보다 훨씬 강하지.”

블루스 노인이 그렇게 평가하니, 뭔가 믿음이 가는 기분이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계속 말을 이었다.

“예전의 길드전과는 달리 이젠 마을의 동산에서 지켜볼 순 없을 것 같은데요.”

“성벽은 장식으로 있나? 거기서 보면 되지.”

아참, 나는 영주라서 성벽에 올라가도 상관없다는 것을 잠시 잊었다.

블루스 노인의 말을 따라서 우리들은 곧바로 전장이 보이는 성벽 쪽으로 향했다.

성벽에 사람들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막던 경비병도 나를 알아보곤 길을 비켜주었다.

데리고 온 농장의 가축들은 골렘에게 맡겨두었다.

곧 성벽 위에서 전장을 바라보게 되었다.

“저쪽이 군신 길드고, 저쪽이 적들일세. 잘 보게. 저기 시화군이 보이는군.”

“그렇군요. 양쪽의 수가 대체 얼마나 될까요?”

“우리는 군신 길드와 메이거스의 군대, 용병 등을 합쳐서 7,000명 정도지. 적들은 밀레스 군대와 길드연합, 그리고 용병 따윌 합쳐서 10,000명 정도로 추산된다네.”

“3,000명 정도가 적군요.”

“그 정도면 해볼 만한 전력 차이지.”

블루스 노인과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저 멀리서 보이던 시화가 아론다이트를 들고서 위풍당당하게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하는 듯했다.

여기선 당연히 그 연설이 들리지 않았지만, 아마도 웅장한 연설을 하면서 사람들의 사기를 올리고 있을 것이다.

곧 아군이 와아아아! 하고 함성을 질렀다.

그리고 반대쪽에서도 누군가가 나왔는데, 낯이 익은 이였다.

바로 일전에도 영지전에서 시화와 대적했던 사람이었다.

이름이 헥토르였던가? 그도 마찬가지로 연설을 했고, 적들도 함성을 질렀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두 진영 간에 날카로운 분위기가 흐르는 듯 했다.

흔히 말하는 ‘전운’이었다.

“시작하려는 모양이군.”

내 예상이 맞았는지, 블루스 노인이 그리 말했다.

곧 아군과 적들이 진형을 짠 채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모루라고 할 수 있는 보병진이 대형을 유지하면서 천천히 걸어가고 있으면 양측의 기병들이 움직였다.

적들의 기병은 평범하게 말을 탄 기사들이었다.

한편 아군의 기병들은 말을 타고 총을 든 사격기병과 황소를 탄 군신 길드원들이었다.

클라드 마을에서 소를 이용해 기병대를 만들어보겠다고 했던 시화의 말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그걸 잘 해낸 모양이었다.

“첫 싸움은 기병대 척후 싸움이겠지.”

블루스 노인이 전세 읽으면서 말했다.

그의 말대로 기선을 제압하려는 기병대들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우리들, 그러니까 메이거스 군의 드라군들이 말을 타고 노련하게 머스킷을 다루면서 밀레스 측의 척후 기병들을 농락했다.

“밀레스 쪽은 중기병은 강하지만 사격 기병은 궁기병이 최고 테크지. 척후 싸움은 압도적이군.”

블루스 노인도 그렇게 평했고, 실제로 드라군들의 사격 앞에 적 궁기병들은 픽픽 쓰러지거나 도망쳐야만 했다.

그런 사이에 황소 기병대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 듯했다.

“하지만 우리 중기병대는 급조된 편이야. 밀레스의 강력한 기사기병대와 정면 승부는 무리지.”

“드라군들도 사격을 하면 되지 않을까요?”

“적들도 바보가 아닐세.”

전략게임을 하는 느낌으로 의견을 말해보았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른지 블루스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드라군이 더 접근해서 사격하려고 하면 적 궁병대와 대포가 움직일 거야. 유용한 전력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으면 조심해야지. 시화군도 그걸 알고 있군.”

블루스 노인의 말대로 아군 드라군들은 더 이상 전진하지 않았다.

아마도 시화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모양이다.

그 후 양측의 보병들이 서로 더 가까이 다가갔다.

“사격전이 시작되겠군.”

블루스 노인이 예측하듯 말했다.

그의 말대로 양측에 사격이 시작되었다.

활, 총, 대포, 마법 마치 불꽃놀이의 폭죽소리처럼 화약의 소음이 들리고 화살과 마법이 서로에게 날아들었다.

총기와 대포 사격은 우리가 더 유리해 보였다.

하지만 보병들끼리 부딪혔을 때, 눈에 띄게 우리들이 밀리는 기색을 보였다.

이유는 자명해 보였는데, 우선 수적으로 불리했다.

그리고 보병의 무장 상태가 적이 더 뛰어났다.

우리들은 체인 메일과 아밍소드로 무장한 경보병들과 퓨질리어(전열보병)들이 위주인데, 적들은 풀 플레이트 아머와 그레이트 소드로 무장한 중보병이 중심이었던 것이다.

서로 근접으로 맞붙게 되면 적들이 더 우세한게 당연했다.

“보병 싸움이 좀 밀리는 것 같군요.”

“그렇군. 하지만 시화군도 생각이 있을 걸세. 자 보게. 군신 길드원들이 약한 곳에 투입되어 빈틈을 메우는 한 편, 황소 기병대가 벌써 우회했다네.”

보병대의 싸움을 지켜보느라 놓쳤던 것이 있었다.

아군 드라군들이 적의 궁병과 총사대를 습격하는가 하면, 황소 기병대가 후방으로 우회하여 적 보병대의 뒤를 친 것이다.

교과서에 나올 것 같은 완벽한 망치와 모루 전술이었다.

“그럼 적 기사들은 어디에······.”

“저기 있군. 테르시오 전술로 그들의 발을 묶은 모양일세.”

“오오······.”

그러는가 하편 강력한 적의 기병은 창병과 총사를 앞세워 대응하는 테르시오 전술로 우회를 차단하는데 성공한 듯 했다.

< 209화 16일차 로그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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