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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플레이어-227화 (227/239)

< 208화 15일차 로그아웃 >

“그럼 당장 쳐들어오는 겁니까?‘

나는 다소 위기감을 느껴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시화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건 아닙니다. 신사협정에 의해서 침략하기로 한 날짜와 시간에 공격이 시작될 겁니다.”

“신사협정이요?”

“네, 국가간 전쟁의 경우 대규모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 시스템적으로 강제하는 신사협정입니다. 미리 공격하기로 한 시간이 되어야 공격이 가능하죠. 대신 방어측도 그 전에 요격하기 위해 공격하거나 할 순 없습니다.”

“그렇군요. 언제 공격이 예정되었습니까?”

“내일 자정쯤······ 그러니까 평소에 오시던 시간쯤이겠군요.”

당장 쳐들어오는 것은 아니란 말에 나는 안도감을 느끼면서도 여전히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라, 게임에서의 전쟁일 뿐이라도 거부감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냥 평화롭게 게임을 하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지만 PVP도 게임의 컨텐츠로 전쟁은 그것의 확장인 셈이다.

거기다가 금전적인 이윤을 두고 경쟁하고 갈등하는 거라면 별 수 없었다.

예컨대 나의 영지, 나의 땅이 금싸라기고 적은 그걸 탐하는 것이다.

평화주의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그걸 눈 뜨고 빼앗길 순 없다.

“뭔가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없겠습니까?”

“대부분의 일은 저희가 맡을 거니,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첩보에 따르면 이번에 오는 적은 선발대 정도의 규모와 질이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만만치 않을 거지만, 저희 길드원들을 소집하고, 메이거스 쪽에서도 지원군이 도착하면 해볼 만할 겁니다.”

시화는 거기까지 말하고 잠시 고민하다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공진씨가 도와주신다면 한결 수월해 지긴 할 겁니다.”

“어떤 것을 도울 수 있을까요?”

“우선 마탑에 가서 마탑의 마법지원과 마법사 지원을 요청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자세한 건 거기 가서 듣도록 하죠. 다른 건 없습니까?”

“제가 길드원들을 소집하는 동안 용병 길드에서 최대한 많은 용병들을 고용해주시겠습니까? 고용비는 저에게 달아놓으시면 됩니다.”

“아닙니다, 제 영지인데 제가 내야죠. 물론 지휘권은 시화님께 양도할 테니 부디 잘 써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빨리 길드원들을 소집하러 가야하기 때문에 먼저 가보겠습니다.”

시화와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났다.

그가 선술집을 떠났고, 나도 이렇게 노닥거릴 시간이 없다고 느꼈다.

마침 평소에 선술집을 닫을 시간이고 해서 선술집도 마감했다.

원래라면 이제 아이템을 만들 시간인데, 오늘은 시화에게 재료도 받지 않았고 그런거나 만들고 있을 틈이 없었다.

마을에 가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마을로 가는데 미나와 지혜, 그리고 블루스 노인과 회장님도 따라오기로 했다.

“전쟁이라······ 감히 내 돈을 노리는 놈들이 있단 말이지?”

회장님은 자신에게 돈이 들어오는 것을 빼앗으려는 이들이 있단 걸 괘씸하게 여기는 모양이셨다.

미나와 지혜는 평소보다 심각한 나를 걱정하는 눈치였고, 그래서 여유가 있는 이는 블루스 노인 뿐이었다.

사실 주변엔 여유가 넘쳤다.

선전포고가 들어왔어도 그 소식이 널리 퍼지진 않았는지 주변 농장에선 아직 여유로운 음악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저들에게도 뭔가 경고를 해주어야 하지 않나? 내일 침략이 행해질 것이고, 저들의 농가가 약탈 당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건 내 농장도 마찬가지였다.

나야 약탈을 좀 당한다 해도 다시 지으면 그만이긴 하지만, 저들은 그러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럼 선전포고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게 우선 아닐까요? 유저들뿐만 아니라 NPC들에게도 주의하도록 해야 할 것 같은데요.”

“나도 미나양의 말에 동의한다네. 영주로써 포고령을 내리는 것이 어떤가?”

미나가 그렇게 말했고, 블루스 노인이 거들었다.

그리고 블루스 노인은 보충 설명을 했다.

“포고령은 마을 회관에 가면 할 수 있을 걸세.”

“그럼 그곳부터 가도록 하죠.”

그들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우리들은 곧바로 마을 회관으로 향했는데, 정말로 아직 사람들은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거리의 사람들은 지인들과 수다를 떨고, 예술가 길드의 가수나 댄서, 음악가들에게 열광하고 있었다.

나는 만감이 교차하는 기분으로 그들을 보면서 마을 회관에 도착했다.

“영주님! 큰일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선전포고가 들어온 것이죠?”

들어서자마자 사무원이 잿빛이 된 얼굴로 말했고,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는 진땀을 흘리는 채 고개를 끄덕였다.

“포고령을 내리고 싶습니다. 사람들에게 위기를 알리도록 말이에요.”

“좋은 생각이십니다만, 혼란을 감수하셔야 할 겁니다.”

“당연히 감수해야하는 겁니다. 혼란이 두려워서 위기를 경고하지 않을 이유가 하등 없습니다. 포고령은 즉시 내릴 수 있습니까?”

“네, 메시지를 말씀해주시면 즉시 사람들의 눈앞에 메시지가 뜰 겁니다.”

게임 시스템을 이용하는 것인 모양이다.

“그럼 정확히 몇 시에 적들의 공격이 시작되는지 포고를 내리세요.”

“알겠습니다, 영주님! 곧 메시지가 뜰 겁니다.”

사무원은 그 자리에서 즉시 빛나는 종이에 글을 써내려갔다.

곧 그 종이가 빛나면서 사라지더니, 내 눈 앞에 메시지가 떴다.

[95시간 45분 49초 후 밀레스 왕국의 공격이 시작됩니다. 이방인 및 주민들은 전쟁에 대비해 피신을 준비해주십시오.]

심플하면서도 필수적인 말이 담긴 메시지였다.

이정도면 되었다고 생각한 나는 사무원에게 수고하라는 말을 남기고 마을 회관을 떠났다.

그리고 바깥을 나오자, 거리의 분위기는 바뀌어 있었다.

“방금 봤어? 전쟁이래!”

“선전포고가 들어온 모양이야! 망했다! 내 농장은 어쩌지?”

“우선 중요 물품 중에 챙길 수 있는 건 다 인벤토리에 넣어놔야지!”

“아놔 누가 대체 전쟁을 거는 거야?”

사람들은 방금 뜬 포고문을 보고 삼삼오오 모여 그 일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있었던 여유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초보자들은 초보자들대로 영지가 적에게 빼앗기면 영지에 있던 각종 편의 시설들이 사라질까봐 겁을 냈고, 고수들은 여유가 있으면서도 자신의 농장의 약탈을 걱정하는 듯 했다.

나는 그들을 뒤로하고 계속 움직여야만 했다.

다음은 마탑이나 용병 길드에 가야하는데, 거리상으로 용병 길드가 가까웠다.

그래서 용병 길드부터 방문했다.

“밀레스에서 선전포고라······.”

“우리들은 이 영지에 있으니 그래도 여길 위해 싸워야 하나?”

“우린 용병이야. 계약 전에는 누굴 위해서도 싸우지 않아.”

“아무래도 이 영지는 생활 스킬에만 집중하는 것 같아서 불안하군. 뭐 그래서 풍족하긴 하지만 말이야.”

용병 길드에 들어서면, 그곳에서도 전쟁에 관해 논의하는 용병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용병들은 다양했다, 검사로 보이는 용병, 마법사로 보이는 이들, 드물게 사제 같은 NPC들······ 그런 이들이 선술집을 겸하는 용병길드의 테이블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다 합치면 200에서 300명쯤은 될까? 적은 수는 아니지만 전쟁에서도 유효한 숫자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일단 용병 길드의 카운터로 걸어갔다.

“안녕하세요 영주님.”

“안녕하십니까.”

카운터의 직원은 나를 알아보고 인사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아니, 이런 질문은 바보 같은 것 같네요. 용병을 구하러 오셨죠? 전쟁이 일어났으니까요.”

“맞습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전쟁 중엔 몸값이 올라요. 적어도 한 명당 10만 골드······.”

“전부.”

“네?”

“전부 다 고용하겠습니다. 얼마입니까?”

“저, 전부 다요? 그럼 돈이 너무 들 텐데······.”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얼마입니까?”

“잠깐만 기다리세요!”

그는 곧바로 계산을 시작했다.

셈이 빠른지 계산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354명이니까 두당 10만 골드씩 골드를 지급하면 3540만 골드에요. 저, 정말로 다 고용하실 생각이신가요?”

“예술가 길드를 고용할 때보다 싸군요. 만약에 3억이 든 다해도 고용할 생각이었습니다. 전부 다 고용하겠습니다. 단, 고용주는 저여도 지휘권은 군신 길드의 시화에게 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죠?”

“물론이죠. 그렇게 조치하겠습니다, 영주님.”

“생색내는 건 아니지만, 모두들 실력은 출중합니까?”

“밥값은 할 겁니다. 하지만 용병은 돈과 계약으로 움직여도 웬만해선 목숨까지 걸진 않죠. 만약 더 열정적으로 싸워주길 원하시면 성과급을 거시는 것이 좋습니다.”

“성과급은 어떤 식으로 지불합니까?”

“예컨대 적을 실제로 죽인 이들에게 더 많이 지불하는 거죠. 병사당 얼마, 지휘관에 얼마······ 이런 식으로요. 후불로 지불해도 좋지만 선불로 지불해도 좋습니다.”

“그럼 7000만 골드를 성과급으로 더 걸죠. 여기서 끝이 아니라 이 성과급이 다 떨어지면 후불로 성과급을 더 지불하겠습니다. 이 정도면 다들 목숨을 걸까요?”

나의 마지막 물음에 용병 길드의 직원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다들 돈에 환장했으니, 적들이 움직이는 돈으로 보일 겁니다.”

“좋습니다. 그 정도면 됐습니다.”

직원과의 이야기는 거기까지 하고, 용병 길드를 나섰다.

나오는 길에 용병들이 대거 고용되었다는 것과 엄청난 성과급이 걸렸다는 것에 용병길드가 왁자지껄해졌지만, 그리 신경 쓰진 않았다.

다음 목적지는 마탑이었다.

마탑의 분위기는 어수선했는데, 그들도 선전포고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감히 우리 영지를 탐하다니, 본 떼를 보여주죠!”

그리고 로비 데스크의 마법사 아가씨는 의욕에 불타고 있었다.

나와 인사를 하자마자, 의욕을 불태우면서 그렇게 말하고 있던 것이다.

나는 시화에게 요청받은 마탑의 마법 지원과 마법사들의 지원을 말했다.

“당연히 응할 거예요. 우리 소중한 영지를 적에게 빼앗겨서 착취당할 순 없어요!”

아무래도 마탑에 관해선 걱정할 것이 없는 모양이었다.

자신에게 맡겨달라는 그녀를 믿고서 마탑을 나서게 되었다.

“이제 뭘하죠?”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오늘은 더 이상 게임을 하기엔 어수선하니까 그만 로그아웃할까 해.”

미나의 물음에 나는 그렇게 답했다.

미나나 지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하는 모양이었다.

전쟁이 코앞인데 농장에서 맘놓고 노닥거리긴 힘든 것이다.

“너무 걱정 말게. 시화군은 믿을 만한 사람이고······ 나나 용재도 도울 거니까. 출근이나 해서 마음이나 추스르게나.”

“알겠습니다, 어르신.”

“그럼 용재야, 가자꾸나. 우리도 할 일을 마련해보자. 지혜야, 넌 슬슬 학교 갈 준비하거라.”

“네, 할아버지.”

그렇게 지혜는 로그아웃했고, 블루스 어르신과 회장님은 어딘가로 가셨다.

“너무 걱정마세요. 저도 응원할 테니까요.”

“응, 너도 너무 신경 쓰지 마.”

미나도 로그아웃했다.

그렇게 마을에서 정령과 동물 친구들과 남은 나는 로그아웃은 농장에서 할까, 생각하면서 걸어갔다.

그런데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레거시 퀘스트······.”

그것이 얼마나 진척되었는지 궁금해진 것이다.

나는 곧바로 그 퀘스트 창을 띄웠다.

[퀘스트, 창조주의 유언

당신은 창조주가 남긴 유산을 가질 자격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얻는 길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창조주가 당신에게 원하는 것은 이 세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창조주가 남긴 유산을 쫓고자 한다면 이 세상을 더욱 풍요롭게 바꾸십시오. 만약 원하지 않는다면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해도 상관없습니다.

클리어 조건 : 퀘스트를 받은 시점에서 게임 내 50%의 유저들이 생활 스킬을 가지도록 유도.

클리어 보상 : 100,000,000 업적점수, 창조주의 유산

클리어까지 진척률 : 95/100%]

5%가 부족했다.

만약 이게 완료되었다면 1억 업적 점수로 뭔가 도움을 바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게 내일 접속할 때까지 완료될지 의문이었다.

뭐,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니 이걸로 막을 수 없다면 천운이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나는 농장에 도착하자마자 일단 복잡한 생각은 지우면서 로그아웃했다.

< 208화 15일차 로그아웃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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