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플레이어-221화 (221/239)

< 202화 아카데미 방문 >

나는 시스 양의 아이디어를 채택하기로 했다.

그럼 문제는 얼마나 고용할 것인지와 고용한 사람에게 얼마나 줄 것인지가 문제였다.

우선 사람 수는 가능한 많은 것이 좋다.

당장 내일이라도 쳐들어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공사는 가능한 빨리 끝내는 것이 좋으니 말이다.

그럼 남은 문제는 고용비에 관한 것뿐이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시스 양에게 말했다.

“일당으로 30만 골드를 걸도록 하죠. 시스 양이 퀘스트를 발주해서 정령술사들을 모아주세요.”

“30만 골드나요? 괜찮은 건가요?”

“네, 돈은 충분히 많으니까요. 공사 진행에 문제가 없었으면 해서 그렇습니다. 돈은 계약서를 이용해서 저에게 청구되도록 하세요.”

“알겠어요. 어렵지 않죠.”

시스 양은 일단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납득하지 못한 사람은 다른 곳에 있었다.

“자네, 일당 30만원이라니 임금이 너무 세지 않나?”

경영인인 회장님은 당연히 납득하지 못하신 듯했다.

“아, 특별한 경우니까요. 회장님. 저는 성벽이 오늘 안에 만들어지길 원해서요.”

“하지만 최저임금 정도만 해줘도 많이 모일 텐데?”

“글쎄요, 게임시간으로 30시간을 사고 싶다면 최저임금인 1만골드로 계산해서 30만 골드를 줘야합니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센 임금도 아니죠.”

“이 사람아, 임금을 계산할 땐 우리에게 유리하게 현실시간으로 해야지.”

게임에서의 30시간은 현실 시간으로는 약 7시간쯤이다. 그걸 최저시급 1만원으로 계산하면 7만원이 된다.

하지만 가상현실 시간의 30시간을 고작 7만원, 그러니까 7만 골드에 살 순 없다.

아무도 그런 조건으로 그 30시간을 일하려고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물론 회장님의 입장도 이해가 안되는 바는 아니었다.

경영인이라면 누구든 비용을 절약하고 싶어할 테니 말이다.

내가 그런 분에게 피고용자들의 임금은 곧 구매자의 구매력으로 돌아오게 될 거라는 설명을 하면서 설득할 순 없었다.

그건 한국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대신 다른 방식으로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

“회장님, 저희 그룹이 푼돈 아껴야 할 정도로 궁핍한 그룹은 아니지 않습니까. 향후 그룹차원에서 가상현실 사업에 뛰어든다면, 통이 큰 편이 좋습니다. 언젠가 저희 그룹이 일선에 뛰어든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미담 하나 쯤 있어도 좋지 않겠습니까?”

“끄응······ 나는 어쩐지 퍼주는 기분이 들지만······ 자네 뜻대로 하게. 하지만 자넬 부장으로 만들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회계사를 붙이는 일이겠구만.”

“아, 괜찮은 생각 같습니다, 회장님.”

여전히 불만이 없으신 건 아닌 것 같지만 회장님도 일단은 납득하신 듯했다.

그런 다음엔 우리들은 정령술사 길드를 나섰다.

자연히 다음으로 가야할 곳이 정해졌다.

바로 건설회사인 것이다.

그곳에 가서 일을 조율해 정령술사 길드에서 고용한 정령술사들을 이용해 성벽을 짓도록 해야하니 말이다.

“누구세······ 앗, 영주님! 안녕하십니까!”

건설회사에 들어서니, 그곳에는 인부로 보이는 이들이 사무소에 모여서 쉬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방문하자, 일제히 일어나 나에게 인사했다.

“바쁜데 수고가 많으십니다.”

“아, 아닙니다. 영주님! 지금은 잠시 쉬는 중이었습니다.”

인부들 중에 대장으로 보이는 이가 다가와 말했다.

근육질이 옷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어서 척봐도 망치질 많이 하게 생겼다.

“대규모 공사 하나를 맡기려고 합니다.”

“어떤 겁니까요?”

“마을의 목책을 석재 성벽으로 바꾸려고 합니다.”

“아하······ 확실히 대규모가 되겠군요. 그런 우선 충분한 석재를 구하려면······.”

“석재는 굳이 직접 캘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에게 정령술사를 대거 고용해서 석재를 확보하도록 했다는 것을 설명했다.

“정령술사 길드에 공사 위치를 알려서 사람들을 보내도록 하세요. 그 사람들을 이용해서 석재나 시멘트를 얻으면 될 겁니다.”

“아하, 덕분에 아주 일이 편해졌군요.”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요?”

“글쎄요······ 석재를 옮겨올 필요가 없어졌으니······ 30시간이나 40시간이면 될 듯 합니다요.”

“30시간 내에 해줬으면 합니다. 뭐 좀 오버되도 상관없고요. 시간 내에 해주시면 평소 임금의 50%를 추가로 드리죠.”

“알겠습니다. 헌데······ 갑자기 성벽을 올린다는 것은 역시······.”

“그래요. 최근 밀레스 쪽에서 낌새가 수상합니다. 대비를 좀 해야해서 말이죠.”

“큰일이군요. 저흰 영주님이 무사하셨으면 합니다. 어쨌든 곧바로 일에 착수하겠습니다!”

그 후 간단하게 임금 관련한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이걸로 성벽 공사는 이들 손에 달렸다.

그들을 믿기로 하고서 건설회사를 나섰다.

일행은 내가 건설회사에서 일을 보는 동안 바깥을 구경 하면서 있었는데, 곧 회장님이 내게 말씀하셨다.

“이보게. 지나가는 사람들이 말하는 걸 들어보니, 아카데미란 곳이 요즘 인기라는군.”

“아카데미라면 제가 지은 곳인데요.”

“그래, 미나양과 지혜에게 들으니 자네가 지었다는군. 한 번 구경을 가보고 싶은데, 어떤가?”

“좋죠. 당장 가볼까요?”

“그러세.”

아카데미는 한 번쯤 방문해서 어떤 분위기로 돌아가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런데 이방인, 그러니까 유저들에게도 인기가 있다니, 조금 기대가 되었다.

우리들은 한달음에 아카데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 가까이 가니, 사람들이 제법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어전의 칼 팝니다! 어전의 칼 팔아요!”

“초특급 세일가에 풀 플레이트 아머 팜.”

“포션 팝니다. 직접 만들어서 좀 쌉니다. 개당 1만 골드.”

······사람들이 좌판을 깔고 장사를 하는 모습이었다.

사람들이 더 많은 광장에서도 이런 모습은 없었는데, 어째서 여기엔 이렇게 몰렸는지 알 수 없었다.

“벌써 이런 잡상인들이 생겼군요.”

“이상하네요, 좌판이나 노점상이면 더 유동인구가 많은 광장에 생겨야 하지 않나요? 왜 여기에 이렇게 생긴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저 잡상인들······ 뭐, 다른 건 아니지만요. 어쨌든 잡상인들의 대부분은 사기이기 때문입니다.”

“네? 사기요?”

사기라는 말에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시화는 덤덤하게 말했다.

“사기라고 하기 보단 후려치는 거라고 해야 하나······ 사실 그게 그거겠지만요. 저기서 팔고 있는 것들은 태반이 중고품인데, 대부분 여기서 살 필요도 없고, 더 질좋은 아이템을 공진씨가 만든 무기상점이나 편의시설 등을 이용해 만들 수 있습니다.”

“음, 자세히 보니 그런 것도 같군요. 그럼 아무도 안살 텐데, 왜 여기서 저러는 거죠?”

“그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속아서 살 수도 있으니까요. 왜 광장이 아니라 이곳에 북적이냐고 물으셨죠? 그야 그건 이곳이 초보자들의 눈에 더 띄는 아카데미 앞이기 때문입니다.”

“설마······ 초보자들에게······?”

마지막 반문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시화였다.

“이 불법 노점상들을 당장 치워버리는 게 좋을까요?”

조금 화가 난 나는 아예 불법 노점상으로 규정하고 말했다.

아무도 그것에 반대하지 않는 눈치였으나, 시화가 말했다.

“공진씨의 선택에 달린 일이지만, 저는 긁어 부스럼일 수도 있단 생각이 듭니다. 사기라곤 하지만 엄밀히 말해 법에 저촉되는 일은 아닙니다. 현실에서도 싸구려 저질 물품을 지하철에서 팔았다고 그 사람을 사기죄로는 잡아넣지 못하잖아요? 물론 지하철에선 물품 판매 행위 자체가 불법이지만요. 괜히 건드려서 인망만 깎느니, 그냥 초보자들이 알아서 조심하도록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으으음······ 그 말도 조금은 일리가 있는 것 같긴 하군요.”

온라인 게임상에서의 거래는 상호간이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판매자든 구매자든 서로에게 속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걸 제도적으로 뭔가 해보는 것은 아직까지 좋은 해법이 없다.

물론 내가 저들을 진짜 불법 노점상으로 규정하고 강제 철거 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랬다간 반발도 어지간히 있을 거다.

괜히 적을 만드는 짓일 수도 있는데······.

“흠, 생각해보니 경찰서라는 건물을 지을 수도 있었죠.”

“경찰서요?”

그럼에도 나는 방법이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시화가 말했다.

“베타테스트 때 지으려다가 말았던 건물이라 기억이 납니다. 자경단들을 치안단원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건물입니다. 그곳에선 약식재판도 가능해서 유저간의 불화를 고소를 통해 해결할 수 있죠. 기본적인 정보는 그렇습니다.”

“그런 건물이 있다면 저 노점상의 사기꾼들이 만드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겠네요!”

“네, 물론 저는 만들어본 적이 없어서 확언해드릴 순 업지만요.”

“조만간 만들어봐야겠습니다.”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인 건 아니지만, 이건 내 이윤을 좀 먹는 행위이기도 했다.

초보자를 등쳐먹어 그 사람의 구매력을 탕진 시키면, 그 사람은 게임을 접어버릴 수 있다.

그렇다면 나도 손해고, 게임사도 손해다.

전원강제철거 같은 방식은 아니면서도 그들을 단속할 방법은 필요했다.

여하튼 아카데미를 우선 방문하기로 하곤 그쪽으로 향했다.

“멈춰라! 잡상인은 출입금지······ 앗, 영주님이시군요!”

아카데미에 들어서려고 하니, 경비병으로 보이는 이가 막아섰다.

하지만 그는 곧 나를 알아보곤 군례를 취했다.

“죄송합니다, 영주님! 최근 아카데미 내부까지 잡상인들이 출입하려는 일이 잦아서······.”

“신경쓰지 않으니까, 걱정마세요. 그리고 이렇게 열심히 일해준다니, 든든하기 짝이 없습니다. 계속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경비병은 군례를 했고, 나는 따라서 군례를 하고는 아카데미 부지로 들어섰다.

“우리 학교 같네요.”

“너희 학교가 이런 식이야?”

“네, 외국 고등학교를 흉내낸다고 이런 식이에요. 조금······ 쪽팔려요, 가끔.”

지혜의 감상이었다.

아카데미의 겉모습은 마치 외국의 명문 고등학교란 것처럼 전원 붉은 색 벽돌에 휘양찬란한 양식의 장식들이 있었다.

꼭 순정만화나 판타지 등에 나오는 과장된 수준의 사립학교들처럼 말이다.

“영주님! 영주님! 오셨습니까!”

그때, 어떻게 우리가 온 걸 알았는지는 몰라도 이제는 교장이 된 초보자 수련소의 교관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더 이상 후줄근한 갑옷과 검 차림은 아니었다.

말쑥한 차림의 평상복이었고, 교장다운 근엄함이 보였다.

“잘하고 계신 듯하군요.”

“다 영주님 덕분입니다요.”

“모습이 많이 바뀌어서 몰라뵐 뻔 했습니다.”

“부끄럽게도 이제 제가 직접 사람들을 가르칠 일은 없어져버렸으니까요. 대신 서류와 씨름하고 있습니다. 가끔은 예전이 정말 그립습니다, 하하! 자, 우선 응접실로 모시겠습니다.”

교장은 곧 나와 일행을 전부 학교의 응접실로 데려왔다.

< 202화 아카데미 방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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