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플레이어-218화 (218/239)

< 199화 장어구이 파티 >

회장님은 더 이상 헬름으로 얼굴을 가리지 않으셨다.

그리고 지혜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산책을 하셨다.

그냥 둘이서 산책하는 것은 심심했는지 옥스를 데리고 등을 쓰다듬으며 걸어가는 모습이 멀리서 보면 재벌 부녀 같지 않다.

시골에서 소박하게 사는 평범한 가정집 부녀 같다고나 할까?

웃는 지혜도 보기 좋지만, 욕심 많고 고집스러운 모습만 보여주셨던 회장님이 저렇게 온화하게 웃는 모습은 처음이다.

비단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회장님의 모습뿐만 아니라, 매스컴에 노출된 회장님의 모습에도 저렇게 행복해 보이는 모습은 없었을 것이다.

“이것 참 용재와 지혜가 화해하는데 자네 덕을 많이 봤구먼.”

“화해라고 할 것이나 있었겠습니까? 그저 대화가 좀 부족했던 것뿐이죠.”

지금 나는 블루스 노인과 바다낚시를 하면서 장어를 낚고 있었다.

오늘은 특식으로 장어구이를 해먹어 볼 생각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장어는 뱀장어를 주로 생각하다보니 민물과 바다 둘 다 오가는 물고기로 자주 오해하곤 하는데, 뱀장어속을 제외한 모든 장어들은 사실 바다에서만 살 수 있다.

그래서 바다에서 장어가 낚이는 것은 전혀 이상한 게 아니다.

낚시는 한 종류의 물고기만 낚는 건 아니지만, 장어가 먹고 싶다는 블루스 노인의 말에 다른 물고기는 방류해주면서 장어만 골라 담고 있었다.

물방울이 냐옹 거리면서 장어를 유인해주기에 그렇게 힘들진 않았다.

“그래도 자네가 아니었으면 지혜도 요즘처럼 웃지 않았을 테고, 용재도 과오를 깨닫지 못 했을 거야. 지혜에게 해준 친절이나, 사원의 신분으로도 용재에게 간언을 해준 것이나 크게 감사 받아 마땅한 일이지.”

“보답이라면 이미 저는 충분히 받았습니다. 어르신께서 사주신 아이템들만 몇 개인데요. 저 이제 남부럽지 않게 돈도 많습니다.”

“허허허허, 그건 그렇지. 하지만 그래도 용재가 뭔가 보답하고 싶다고 한다면 거절하진 말게.”

블루스 노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낚시대를 들어올렸다.

실하게 큰 장어가 또 낚였다.

흠, 장어를 보니 옛날 중세 서양 사람들은 이 맛있는 고기를 보고 장어젤리나 만들어 먹었다는 말이 생각난다.

장어젤리란 걸 먹어보진 않아서 궁금하긴 하지만 이름만 들어도 그건 맛은 없을 것 같다.

역시 장어는 장어구이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조리 스킬의 제작 카탈로그를 검색해서 장어구이 레시피를 찾아보았다.

[조리, 장어구이

소금, 간장, 고추장으로 소금구이나 양념구이로 만들어 먹는 장어 요리. 고단백의 스태미너식이다. 장어는 한 때 흉물로 여겨져 예전에는 기피되었으나 현재에는 없어서 못 먹는 물고기가 되었다. 장어구이는 그 중에서 특히 인기가 있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고 싶다면 소금구이를, 양념의 풍부한 맛을 느껴보고 싶다면 양념구이를 택하자.

필요한 재료 : 장어, 소금 혹은 간장 혹은 고추장 중 택1, 적당한 식용 기름

추가 재료 : 생강, 부추, 술, 물엿, 설탕

필요한 도구 : 조리도구, 조리 스킬 Lv5, 조합 스킬]

미리보기에서 보여지는 세 가지 종류의 장어구이가 입맛을 다시게 만들었다.

소금구이, 간장 양념, 고추장 양념, 모두 맛있어 보였다.

나는 곧 바로 블루스 노인에게 물어보았다.

“어르신, 소금구이가 좋습니까, 양념이 좋습니까?”

“장어 말인가? 흠, 나는 양념 쪽이 좀 끌리는군. 소금은 좀 심심하잖나?”

“그럼 양념으로 하겠습니다.”

장어도 충분히 낚았으니 지체할 것 없이 요리하기로 했다.

석쇠를 꺼내고, 조리대를 만들어 숯을 이용해 구울 생각이었다.

가열기를 이용해서도 구울 순 있지만, 최근 생각해본 것인데 숯을 이용해 고기를 구우면 더 맛있을 거란 걸 자주 간과한 것 같다.

게임에선 그냥 가열기로 구워도 충분히 맛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나는 조리대에서 장어들을 올려놓으며 본격적으로 조리를 시작했다.

나는 곧 엄청나게 현란한 솜씨로 장어를 해제하기 시작했다······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냥 조합 스킬이 알아서 장어를 해체해주었다.

내가 일류 요리사 같은 칼질을 해낼 수 있을 리가 없잖는가?

여하튼 조합 스킬이 있어서 편했다.

“고추장으로 양념해야겠다.”

간장보단 고추장으로 매콤하게 만드는 것이 좋을 거라 생각하면서 고추장을 푼 다음, 주재료인 식용 기름으로 송로버섯 기름을 사용했다.

충분히 장어에 송로버섯 기름과 고추장을 이용한 양념을 발라준 다음, 석쇠에 매달아서 구워주는 것이다.

여기서 양념에 생강이나 부추를 넣으면 풍미가 더 해질 것 같지만, 애석하게도 그 두 향신료가 없다.

생각난 김에 트로페 마을에서 향신료 종류의 농산품이나 사갈까? 오렌지와 커피를 살 때 잊지 않고 사야겠다.

술은 여러 개를 가져와서 뭘 넣을지 고민해봤는데, 게임에선 뭘 넣어도 상관없는 듯 했지만 아마 현실에선 소주 종류를 쓸 것이다.

지금 가지고 있는 술 중에서 소주를 대신 할만한 것은 보드카였기에 보드카를 살짝 섞었다.

근데 이거, 음식에 넣는 술은 문제가 되지 않겠지? 지혜도 먹을 건데 말이다.

상식적으로는 알코올은 다 날아갈 테니 의미는 없을 것이다.

가열하는 음식에 넣는 술은 그저 잡내를 없애려는 용도니 말이다.

“음, 맛있는 냄새. 장어구이네요, 오빠?”

“먹어 볼래, 미나야?”

“그래도 되요?”

시화에게 모래찜질을 도와주던 미나가 내게 다가와서 말했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시화를 봤는데, 아까부터 신경 썼지만 시화는 그 검은 갑옷을 입은 채로 모래찜질을 하고 있다.

그거, 모래찜질하는 의미가 있나?

여하튼 장어구이를 미나에게 먼저 시식하게 하려고 했고, 미나는 동의를 구하는 듯 연장자인 블루스 노인의 눈치를 살짝 봤다.

블루스 노인은 슬쩍 웃으며 먼저 먹어보라고 말할 뿐이었다.

“그럼 제가 한 입 먼저 먹어볼게요. 음! 맛있어요!”

“그치? 맛있지?”

“네, 매콤하고 달달하고······ 부드러워서 입안에서 살살 녹네요. 가끔 장어 먹을 때 걸리던 잔가시도 전혀 없어요.”

미나는 환하고 행복하게 웃으면서 장어구이를 먹었다.

음, 예쁜 모습을 하면서도 그렇게 복스럽게 먹다니, 연예인 기질이 다분하다.

인터넷 방송으로 먹방해도 될 것 같다.

어쨌든 미나가 맛을 본 다음엔 기묘한 모래찜질을 하면서 쉬고 있는 시화도 부르고, 여전히 지혜와 산책을 하고 계시는 회장님과 지혜도 불렀다.

그렇게 다들 모여서 즉석 장어구이 바비큐 파티를 했다.

지혜에겐 콜라를 줬지만, 다른 이들에겐 칵테일이나 술을 돌리면서 장어 바비큐를 즐겼다.

“흠, 바다내음 맡으면서 구워먹는 장어라······ 부산에서 오래전에 비슷하게 먹은 기억이 나는구먼.”

블루스 노인은 향수에 젖은 듯이 말했다.

부산이라, 그곳이라면 그런 풍경이 다소 상상이 되었다.

물론 이렇게 해변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우리나라엔 프라이빗 비치가 있기도 힘들고, 공용 해변에서 조리는 금지니까 말이다.

아마도 부둣가의 노상 식당에서 먹은 추억일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현실에서도 꽤나 운치 있는 풍경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가상현실에선 훨씬 더 멋진 풍경에서 먹으니 맛이 더 좋은 것 같다.

“식사를 한 다음엔 수해동굴에 가볼까요?”

“그러죠, 시화씨. 수해동굴부터 간 다음에 마을에 볼 일을 좀 보죠.”

“수해동굴은 아마 유저들이 좀 있을 겁니다. 노슬론 마을의 광산처럼 버려진 곳은 아니니까요. 1층은 중견 레벨의 사냥터고, 2층은 고레벨 사냥터입니다.”

“무슨 몬스터들이 나오죠?”

“1층에선 딥 맨들이 나오고, 2층에선 쇼게스들이 나오죠. 좀 징그러운 외향이긴 하지만 제가 있으니 무서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

딥 맨? 쇼게스? 어쩐지 크툴루 신화에 비슷한 이름의 녀석들이 나온 것 같은데······ 녀석들을 패러디하거나 오마쥬한 몬스터들인가? 그럼 안 무서워할 수가 없잖습니까, 시화씨······.

뭔가 소름이 쫙 돋는 느낌이지만 그건 거기 가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괜히 바비큐하는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시화와의 대화는 거기까지였고, 나는 지혜를 바라보았다.

지혜는 장어구이를 호호 불어가면서 먹고 있었다.

미나처럼 복스럽게 먹진 않지만, 한 창 자랄 나이에 잘 먹는 모습이 보기 좋다.

아니, 근데 가상현실에서 먹는 모습은 그다지 그런 감상과는 어울리지 않으려나?

“자네!”

“앗, 네. 회장님.”

“크흠, 그간 말이야, 자네에게 고맙다고 말은 했었지만 제대로 보답을 한 적은 없던 것 같군.”

“아닙니다, 회장님.”

“허허, 아니긴 뭐가 아닌가? 전에도 뭔가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하라고 했는데, 특별히 요구 받은 건 없는 것 같군.”

“이런 일에 어떻게 보답 같은 걸 바라겠습니까?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여기서 제가 주제에도 안 맞는 보답을 받으면 저는 오히려 나쁜 놈이 됩니다.”

“허허······.”

일전에 백지수표를 건넸던 일을 넌지시 언급하며 말했다.

그때 백지수표를 물리면서 한 말은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조금도 말이다.

나는 지혜같은 어린 소녀를 이용해서 이득을 취하는 파렴치한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 선택은 잘한 거라 생각했다.

“그럼 보답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자네를 승진시켜서 마구 부려먹는 건 받아주겠나?”

“스, 승진 말입니까?”

“그래, 부장은 어떤가?”

“하지만 연공서열도 있고······.”

“그건 말이야, 아예 부를 새로 신설하는 걸세. 가상현실 사업부! 지금 자네가 하는 일과도 잘 어울리지 않나? 향후 더 늘어날지도 모르는 가상현실 사업을 위해 아예 부를 신설하는 거지. 어떤가?”

회장님의 말에 나는 조금 흔들리긴 했다.

부장이라, 만약 내가 지금 당장 부장이 되면 이례 없는 파격 승진이다.

아마 회사에서 굉장히 주목 받겠지.

그게 부담스럽기도 하면서도 뭔가 야욕같은 것도 느껴졌다.

현실에선 꼭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가상에선 조금 있었다.

“회장님, 제안은 감사합니다만, 아직 부를 신설하는 것은 이를 것 같습니다.”

“왜 그런가? 경험이 부족한 거나 주변 잡음이 신경 쓰이는 거라면 내가 커버 치겠네.”

“그런 게 아닙니다, 회장님. 일단 지금 벌인 일부터 안정화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시화씨의 말에 따르면 밀레스와의 전쟁이 코앞이라 제 영지나 부동산이 안전할지 알 수 없습니다. 그 안전히 완전히 해결되어서 기반이 다져진 다음에 추진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흠······ 그 말도 맞군. 알겠네, 자네 뜻대로 하지.”

회장님은 그렇게 말하면서 장어구이를 먹고는 이미 장어구이를 하나 먹은 지혜에게 또 장어구이 하나를 쥐어주었다.

지혜는 배가 부른 모양이지만, 아버지의 친절을 거절하기 힘든지 꾸역꾸역 먹고 있었다.

그렇게 화목하게 바비큐 파티도 지나가고 있었다.

< 199화 장어구이 파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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