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화 가정의 화목 >
현실 시간으로는 하루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하펜 마을은 더욱 북적였다.
이제 마을의 규모를 더 키워야 하지 않나 싶을 정도였다.
마탑으로 향하는 중의 광장이 미어터질 듯 했으니 말이다.
안그래도 일행이 많은데, 동물과 정령 친구들까지 데리고 다니니 보행이 어려운 수준이 되었다.
“저 닭 같은······ 건 뭐지?”
“엄청 큰 닭?”
행인 중에는 치킨그리폰이 된 호크를 신기하게 보는 이들도 있었다.
물론 그들 중에 치킨그리폰에 대해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진화할 때까지 닭을 사육하고 레벨업 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에 대해 홍보하지도 않았고 말이다.
“유저들이 정말 많네요.”
“유입유동인구가 고랩 존의 마을보다 더 많아진 느낌이군요. 아마도 마을의 편의시설 때문에 그렇겠죠.”
미나의 말에 시화가 대답했다.
그의 말대로 무기점이나 의류점은 손님으로 미어터지는 중이었고, 공용조리소나 공용대장간도 많은 이들이 이용하고 있었다.
시화가 그런 것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현재 이곳만큼 발전된 유저의 영지는 없을 겁니다. 무엇보다 생활 스킬 부흥이 크죠. 생활스킬을 배우기도 쉽지만, 생활 스킬을 배우지 않아도 무기점이나 의류점을 통해서 제작의뢰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으니까요. 단연 더 고랩존의 유저들이 거점으로 삼을 만합니다.”
“허허, 베타테스트 때 길드들이 취한 영지경영 전략과는 딴판인데, 이렇게 흥할 줄은 예상 밖이군.”
시화와 마찬가지로 베타테스터였던 블루스 노인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후 광장을 벗어나도 예술가들의 음악과 노래, 공연, 미술 등이 보여서 눈이 즐거웠다.
여하튼 우리들은 마을의 풍요로운 모습을 보면서 마탑에 도착했다.
“어머, 오늘도 안녕하세요 영주님!”
로비데스크의 마법사 아가씨가 오늘도 반갑게 맞이했다.
“오늘도 일행분들이 많네요. 또 어디 가시나요?”
“네, 트로페 마을에 좀 가려고 합니다.”
“해수욕이라도 하러 가시나 보네요!”
“그런 것도 있고요. 그런데 뭐 특별한 일은 없습니까?”
“물론 있죠! 지난 번에 말씀하셨던 마력격발총 말이에요. 제대로 만들 수 있었어요. 대장간에서 총기가 보내졌고, 아카데미와 용병길드에서 하급 마법사들을 양성하거나 고용할 수 있었거든요.”
“잘됐군요. 특히 아카데미 일 말인데, 벌써 그곳이 활성화되었나요?”
“네, 이미 마법 선생은 파견했죠. 물론 제 관할은 아니라서 저도 자세한 건 모르지만, 이방인 분들도 많이 입학하셨다고 하더라고요.”
“흠, 그럼 한 번 가봐야겠군요.”
만들어놨으니 잘 돌아가는지는 직접 확인해봐야 한다.
그러니 오늘 한 번 들러 봐야할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트로페 마을에 가는 것이 우선이니 곧바로 텔레포트 서비스를 받았다.
곧 우리들은 트로페 마을의 해변으로 텔레포트했다.
그림처럼 멋진 곳이지만, 몬스터가 없는 곳이라 여전히 사람들의 자취는 적은 곳이었다.
그래서 한적하게 놀기엔 더 좋은 곳이다.
멍멍멍!
월월월!
왈왈왈!
해변으로 텔레포트 하자마자 실버, 골드, 불돌이는 모래사장으로 치는 파도를 맹렬히 쫓아가다가 파도가 다가오면 도망치는 것을 반복했다.
개들은 어딜 데려다놔도 정말이지 잘 노는 것 같다.
우리들은 활발하게 노는 그 애들을 보면서 느긋하게 해변을 구경하고 있었다.
“제법 괜찮은 곳이구먼. 하와이가 생각나는 곳이야.”
블루스 노인도 만족한 모습이었다.
아직 정체를 들키고 싶지 않아서 말을 아끼는 회장님도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공진군, 배드민턴 용품을 만들었다고 하니, 한 번 해보세.”
“예, 어르신.”
블루스 노인의 말에 나는 동의하면서 곧바로 배드민턴 도구들을 꺼냈다.
모두에게 배드민턴 채를 나눠주는가 하면, 만들어온 나무 폴대를 세우고, 네트를 쳤다.
직접 만든 것들이지만, 제법 구색이 잘 갖춰진 것이다.
“진짜 나무로 된 배드민턴 채는 처음 보네요.”
“그렇지? 합성소재는 없어서 나무로 만든 거야.”
“골동품 같은 멋이 있는 것 같아요.”
미나가 배드민턴 채를 받곤 그렇게 말했다.
한편, 블루스 노인은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나와 시화군은 따로 배드민턴을 할 테니, 남은 인원끼리 복식이라도 하는 것이 어떤가? 옳거니, 공진군과 미나양이 편을 짜고 지혜와 이 사람이 편 먹으면 되겠구먼.”
“네? 하지만······.”
지혜는 블루스 노인의 말에 회장님, 그러니까 드래곤씨의 눈치를 보았다.
그가 누구인지 모르는 지혜는 회장님이 조금 불편한 모양이다.
당연한 것이기도 한 것이, 항상 헬름을 쓰고 말 없는 중년이니 말이다.
어쩌면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오해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
“아, 저기······ 싫은 건 아니에요······.”
회장님이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시무룩한 모습으로 지혜 앞에 서 있으니, 지혜가 어쩐지 실례했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허둥지둥 말했다.
회장님의 정체를 알고 있는 나로선 조금 웃기면서도 슬픈 모습이지만, 어쨌든 블루스 노인의 권유대로 2:2 복식을 하게 되었다.
“호호······ 봐주지 않을 거야, 지혜야!”
미나는 채를 붕붕 휘두르면서 말했다.
흠······ 사실 이 배드민턴은 회장님과 지혜를 위한 이벤트인 셈인데, 두 사람을 위해서라면 이기게 만드는 편이 좋은 걸까?
그런 생각이 들긴 했지만, 나는 이내 마음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승패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
두 사람 조금이라도 친해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저······ 열심히 해봐요.”
“······.”
지혜가 회장님에게 말했고, 회장님은 고개를 끄덕여 대답을 대신했다.
나와 미나는 상대편에 최연장자와 최연소자가 있단 점을 고려해 첫 서브권을 넘겨주었다.
“오빠, 그쪽으로 가요!”
“알았어!”
배드민턴을 마지막으로 해본 적이 언제였을까?
생활 운동이라고 할 만큼 흔한 운동인데, 꽤나 오래전에 하고 해본 적이 없었다.
아마 고등학교 때가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하긴, 배드민턴은 이렇게 누군가와 함께 해야 할 수 있는 운동이니 함께 할 사람이 없으면 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그럼에도 오래전에 했던 감각이 아주 없어지진 않았다.
첫 서브를 제법 괜찮게 받아친 것이다.
“우오오옷!”
다음으로 받아쳐야 하는 사람은 회장님이셨는데, 괴성을 지르면서 받아치셨다.
나와 미나, 지혜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그런 괴성으로는 회장님의 정체가 아직 들키진 않은 모양이다.
“얍!”
미나는 나보다 훨씬 손쉽게 셔틀콕을 쳐냈다.
나이도 나보다 젊어서 활기찬 것도 있겠지만, 연예인 지망생의 운동량은 대단한 것이다.
한편 지혜도 만만치 않았다.
미나가 돌려보낸 셔틀콕을 깔끔하게 친 것이다.
얌전한 성격이라 운동은 잘 못할 줄 알았는데, 현역 여고생의 저력을 얕보면 안 되는 듯했다.
툭
“악!”
“에이! 오빠 둔해요!”
“하하하, 미안!”
나는 지혜의 공격을 받아치지 못 했다.
미나의 악의 없는 핀잔에 나는 하하 웃었고, 모두가 웃으면서 계속 배드민턴을 쳤다.
다음 라운드에선 회장님이 공을 놓쳐 버렸고, 대부분의 게임에서 나나 회장님의 실책으로 서로에게 점수가 났다.
경기의 주역은 미나와 지혜였고, 둘의 대결인 셈이었다.
“오빠, 15점 내기죠!”
“어, 그런 룰은 안정했는데, 보통은 15점이던가?”
“1점 남았어요! 힘내요!”
······그런데 경쟁심이 좀 넘치는 느낌이다.
미나가 그런 말을 하고 있는 한편, 지혜 쪽도 만만치 않았다.
“동점이에요, 우리 힘내요!”
“······.”
회장님은 지친 듯이 숨을 몰아쉬는 듯 했지만, 지혜는 회장님을 격려하면서 계속 경기를 이끌었다.
뭐 걸린 것도 없는데, 두 사람 다 이기려고 애쓰는 것이 특이하다.
흠, 그런데 나도 괜시리 이기고 싶다는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언제 내가 회장님을 상대로 배드민턴을 하고, 또 거기서 이겨보기도 하겠는가?
접대가 아니라 순수한 승부로 말이다.
그러니 괜히 이기고 싶어졌다.
“우오오옷!”
그래서 나도 회장님처럼 괴성을 지르면서 힘을 내었다.
미나가 빵터졌지만 나도 웃으면서 셔틀콕을 반대로 쳐냈다.
그러다보니 마지막 경기가 굉장히 길어졌다.
지혜가 몇 번이고 강한 스파이크를 넣었는데, 운 좋게 전부 쳐낼 수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운이 좋지 않았다.
투욱
“아, 놓쳤다!”
“에이 아까워요!”
지혜는 강하게 치는 척하다가 네트를 살짝 넘기는 변칙 공격을 했고, 그것에 속아버려서 셔틀콕을 놓친 것이다.
최선을 다 했는데도 회장님의 노련함과 지혜의 젊음에 져버리고 말았다.
아아, 28살의 저무는 청춘으로는 이기기가 힘들구나.
“으라차! 어떠냐! 나 아직 녹슬지 않았다 이거야! 어딜 감히 날 이기려고 으하하!”
내가 그렇게 속으로 한탄하고 있을 무렵, 회장님이 들떠서 그렇게 외치고 계셨다.
미나는 지금껏 말이 없던 회장님이 갑자기 그렇게 말하자 놀란 눈치다.
물론 더 놀란 사람은 따로 있었다.
“아, 아빠?”
“헙!”
······회장님의 목소리를 듣고 지혜가 알아본 것이다.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회장님이시지만, 때는 이미 늦고 말았다.
“아빠······ 맞아요?”
“지, 지혜야······ 이건 그러니까······.”
회장님이 당황하면서 우물쭈물하셨다.
나는 지혜의 공을 받아치려고 슬라이딩을 해서 넘어진 몸을 일으키면서 두 사람을 느긋이 지켜보았다.
여기서 내가 개입해서 뭐라하는 것은 좋지 않다.
두 사람이 잘 풀어가도록 하는 게 좋은 것이다.
“아빠가 왜 여기에······.”
“그게 말이다 지혜야······ 크흠, 아빠도 이 게임에 흥미가 생겨서 말이다. 너랑 같이 하고 싶었는데······ 그게······ 조금 부끄러웠구나.”
회장님은 헬름을 벗으면서 말씀하셨다.
평소엔 욕심 많고 뭔가 고집스런 모습이셨는데, 지금은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모습일 뿐이었다.
“그리고 같이 하자고 하면 네가 싫어할 까봐, 정체를 좀 숨겼단다.”
“······.”
“지혜야, 내가 그동안 무심해서 많이 서운했지? 일이다 뭐다 해서 너한테 신경써주지 못해서 정말로 미안하단다. 혼자서 많이 힘들었을 텐데······ 하지만 나에게도 기회를 다오. 너는 내가 네 어머니를 잊고 살았다고 생각하겠지만, 난 네 어머니를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단다. 그리고 너도 항상 사랑했다. 정말로 지금처럼 잘 자라줘서 고맙구나.”
“······.”
“이런······ 내가 대체 무슨 주책인지······ 괜히 내가 번거롭게 한 거라면······.”
거기까지 듣고 있던 지혜는 회장님의 두 손을 잡았다.
그리곤 조금 미소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지혜의 눈에는 약간 물기가 있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아빠.”
“······.”
지혜는 그런 수준으로 침착했는데, 회장님은 감동의 도가니에 빠진 것처럼 눈물을 주륵 흘리고 계셨다.
어쩐지 나도 한 가족의 화목한 모습에 찔끔 눈물이 났다.
미나도 감동스런 모습으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허허허, 누구 아들인지는 몰라도 참 바보 같은 녀석이로군.”
멀리서 블루스 노인과 시화도 박수를 쳤다.
음, 역시 가정의 화목만큼 좋은 것은 없다.
< 198화 가정의 화목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