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화 15일차 로그인 >
오늘도 열심히 회사에서 일한 후, 퇴근을 했다.
돌이켜보면 내가 가상현실 게임을 한지 2주 째인 날이다.
꽤나 오래한 것 같은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은 것 같다.
물론 그런 착각은 가상현실 속에서의 시간이 더 빠르게 흐르기 때문일 것이다.
게임 판타지 소설에서야 주인공의 시점에서 전개를 진행하다보니 스토리가 진행된 날짜는 얼마 안 되는, 그런 일이 생기겠지만, 현실은 그런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런 생각을 하니, 가상현실이 실현된 지금이 꼭 웹소설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하하, 그럴 리가 없는데도 말이다.
[사용자 신원 ‘사공진’ 확인.
<마일스톤>에 접속하시겠습니까?]
집으로 돌아온 나는 샤워를 한 후, 약간 요기를 하고 캔맥주 한 캔을 마셔서 피로를 회복한 뒤 마일스톤에 접속했다.
언제나 그랬듯 주변의 풍경이 바뀌면서 절로 마음이 느긋해지는 시골 풍경의 농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젠 마음의 고향 같은 나의 농장이다.
“주인님, 오셨습니까.”
“안녕 골렘아!”
농장에 아직 미나와 지혜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들이라고 해서 항상 농장에 있으란 법도 없으니 당연한 것이다.
나를 반긴 것은 농장이 비어 있을 때도 가축들을 돌보고 농장일을 하는 골렘이었다.
월월!
멍멍!
물론 실버와 골드도 빼놓을 수 없다.
녀석들은 내가 오자마자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달려와선 앞발을 들어 내게 매달렸다.
나는 열심히 녀석들의 머리와 배를 쓰다듬어 주었다.
내 얼굴을 녀석들이 핥아서 침범벅이 된 것은 별로 중요한 건 아니었다.
꼬꼬꼭
“호크도 잘 있었어?”
꼬옥꼭
치킨그리폰이 되어서 풍채가 있는 호크도 다가왔다.
나는 말의 갈기를 쓰다듬어 주듯이 호크의 목을 쓰다듬어 주었다.
골렘의 말에 따르면 호크는 이제 지능이 향상되었다고 하는데······ 표정은 여전히 닭 특유의 모습이라 애매하다.
음머어어어
“옥스야, 여물 많이 먹었니?”
음머어어
옥스도 설렁설렁 내게 다가와 얼굴을 비볐다.
소라는 생물은 현실에선 고기를 위해 희생되는 불쌍한 생물이지만, 가상현실의 옥스나 암소는 그렇지 않다.
그렇다 보니 무척이나 교감이 된다.
소를 안 먹는다는 인도 사람의 사고방식까진 아니지만, 가상현실에서만이라도 이런 자연교감적인 감상을 가지는 건 나쁘지 않는 것 같다.
물론 현실에서 동물애호가 되는 것은 말로 하는 것처럼 쉽지 않지만 말이다.
어쨌든 네 마리의 동물 친구들을 데리고 노니까 마음의 힐링이 되었다.
그럼 이제 정령 친구들도 부를 때다.
[불돌이를 소환했습니다.]
[물방울을 소환했습니다.]
[태산이를 소환했습니다.]
[바람이를 소환했습니다.]
왈왈왈!
냐아오옹
브어어엉
삐이익!
이제 상급정령이 되어서 러시안 블루 같은 고양이인 물방울만 제외하면 다들 크기가 좀 되는 정령 친구들이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귀여운 녀석들이었고, 소환되자마자 각자의 울음소리를 내면서 나를 반겼다.
물론 물방울은 호크를 보자마자 호크의 등으로 잽싸게 올라가 버렸지만 말이다.
바람이도 옥스의 등에서 내게 경례하듯 날개를 올려보이고 말이다.
불돌이는 실버랑 골드와 어울리면서 내게 응석을 부리고 태산이는 늘 그렇지 게으르게 졸았다.
흠, 모르던 사실인데 현실의 육지거북은 의외로 활발하다는데······ 뭐 태산이는 하급 정령일때부터 졸음이 많아서 그런가보다.
여하튼 그렇게 동물과 정령 친구들과 인사를 나눴는데······ 미나와 지혜가 오기 전에 해둘만한 일을 하기로 했다.
“오늘은 회장님과 블루스 어르신, 그리고 시화씨도 같이 가기로 했으니까······ 해변에서 놀만한 것을 만들어야지.”
해변에서 놀만한 것이라면 이미 비치발리볼이 있긴 하지만 좀 더 마음을 맞출 수 있는 놀이를 생각해왔다.
문제는 그것이 생각한대로 구현되어 있냐는 것이다.
우선 조합 스킬의 제작 카탈로그에서 검색해보았다.
[조합, 네트
폴대에 매달아서 여러 가지 운동종목을 할 때 쓰는 물건이다. 단어 그대로 그물이다. 종목에 따라 그물의 촘촘한 정도의 차이가 있다. 작은 공을 쓰는 종목일 땐 좀 더 촘촘한 네트를 사용하도록 하자.
필요한 재료 : 적당한 재질의 섬유 20개
필요한 도구 : 조합 스킬, 재봉 스킬 Lv5]
[조합, 배드민턴 채
배드민턴을 할 때 쓰는 채. 가볍고 촘촘하게 만들어진 채를 이용해 셔틀콕을 때려 네트를 넘기는 용도로 사용한다. 채의 소재는 탄력이 있고 내구성이 좋은 소재가 좋지만, 현실의 합성소재 대신 천연소재를 사용해도 되도록 구현되어 있다.
필요한 재료 : 적당한 재질의 섬유 5개, 목재 2개
필요한 도구 : 조합 스킬]
[조합, 셔틀콕
배드민턴을 할 때 사용하는 공. 가볍고 잘 튕기지만, 후면의 깃털로 적당히 공기저항을 받도록 만든 공이다. 만드는데 동물의 깃털이 필요하다. 구조적으로 내구성이 약하기 때문에 여러 개의 공을 만드는 것을 추천한다.
필요한 재료 : 동물의 깃털 2개, 약간의 목재
필요한 도구 : 조합 스킬]
필요한 것들은 전부 구현되어 있었다.
내가 생각한 해변에서 즐겨볼 놀이는 배드민턴이었다.
비치발리볼도 좋지만, 이쪽이 좀 더 즐기기 쉬울 것이다.
배구의 일종인 비치발리볼은 이래저래 기술이 필요하니 말이다.
물론 배드민턴도 나름의 기술이 필요하긴 하지만, 초보 수준에서 더 재밌게 즐기기엔 이쪽이 더 나을 거란 내 생각이다.
어쨌든 나는 제작을 시작했다.
“우선 네트와 채의 섬유는 목화를 이용해서 만들어야겠네. 내구성이 좀 문제가 되겠지만······ 현실의 합성소재를 구할 순 없으니까.”
적당한 재질의 섬유는 목화로 정했다.
석유화학이 없고, 당연히 플라스틱도 없는 가상현실에선 어쩔 수가 없었다.
네트의 그물은 그렇게 목화를 이용한 면 그물을 만들었다.
셔틀콕이 빠져나갈 수 없을 정도로 촘촘한 그물이 만들어졌는데, 물고기 잡는 그물과의 차이점은 폴대에 연결에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구조다.
당연하지만 이걸로 물고기를 잡는 것은 쉽지 않을 거다.
“다음은 배드민턴 채······ 현실이라면 이것도 플라스틱으로 만들었겠지만, 태 부분은 목재로 만들고 채는 역시 목화로 만들어야지.”
그런 것을 여섯 개 만들어야한다.
만들고 보니 현실의 것과 비교해서 제법 나쁘지 않았다.
물론 플라스틱 재질에 비해 내구성이 의심되긴 하지만, 목재와 천연 면 소재를 써서 만드니 뭔가 고풍스런 느낌이 들었다.
사실 플라스틱이 발명되기 전에 테니스 같은 것도 이런 식의 천연 재료를 썼을 것이다.
그러니 멋들어지는 건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다음은 공을 만들었다.
“칠면조 깃털을 어디다 쓰나 했더니 여기다 쓰게 되네.”
깃털이 필요했는데, 그 문제는 어렵지 않았다.
칠면조를 사냥해 도축할 때 얻는 부산물 중 하나가 칠면조 깃털이었기 때문이었다.
현실에서도 도움의 깃털을 이용해 만드는 셔틀콕인데, 물론 플라스틱 재질로 만드는 것도 있다.
그런데 현실에선 어떤 동물의 깃털을 사용하는 걸까?
“경기용 셔틀콕의 경우 거위의 깃털을 사용하지만 일반 보급용의 경우 오리나 닭의 깃털을 사용합니다.”
“그래? 특별히 거위의 깃털을 사용하는 이유라도 있어?”
“바람의 저항을 덜 받기 때문입니다.”
“흠, 셔틀콕은 어느 정도 바람의 저항을 받는 용도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본래는 닭의 깃털을 사용했습니다. 셔틀콕의 콕(cock)도 닭의 깃털을 사용한다는 것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아, 그러네.”
“본래는 순간가속이 시속 300km의 공 속도를 억제하기 위해 깃털이 쓰이는 것이지만, 닭의 깃털의 경우 저항이 너무 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거위 깃털을 이용한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그렇군.”
약간의 상식을 알게 되었다.
일단 닭이나 거위 깃털은 아니지만 게임에선 칠면조 깃털을 써도 문제는 없는 듯했다.
보통은 하얀색인 셔틀콕의 깃털이 검은색 칠면조의 색깔이라 이색적이긴 하지만 문제는 없는 듯했다.
그렇게 셔틀콕도 여러 개 만들어두었다.
셔틀콕은 목재를 아주 조금만 깎아서 만드는데, 당연히 이것도 몇 번 치면 부러질 것처럼 생겨서 여러개를 만들어야만 했다.
“주인님, 손님들이 왔습니다.”
그때쯤에 다른 이들이 찾아왔다.
지혜와 미나, 블루스 노인과 회장님, 그리고 시화다.
“안녕하세요, 오빠.”
“안녕!”
미나가 가장 먼저 내게 다가오면서 인사했다.
나는 반갑게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 지혜야.”
“안녕하세요.”
지혜는 미나 옆에서 힐끔힐끔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내가 먼저 인사를 했다.
두 사람이 오자마자 불돌이, 실버, 골드는 신이 나서 달려가 그녀들 주변을 맴돌았다.
어지간히 그녀들과 친해진 모양이다.
“허허허, 뭔가 만들고 있었나?”
“예, 어르신. 배드민턴 용품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배드민턴?”
“트로페 마을에 가서 해변에서 다같이 배드민턴이라도 하면 어떤가 해서 말입니다.”
“허허허, 나쁘지 않겠구먼.”
블루스 어르신은 아직 헬름을 써서 얼굴을 가리고 있는 회장님, 그러니까 드래곤씨를 흘낏 보면서 말했다.
어제 회장님과 이미 이야기가 오간 모양인지, 회장님은 침묵을 지키면서도 안절부절 못하시는 것이 기대가 되는 모습이시다.
한편 시화는 조금 심각한 모습이었다.
“뭔가 일이라도 있나요, 시화씨?”
“아, 오늘 같은 날에 이런 말을 해도 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무슨 일이죠?”
“아무래도 전쟁이 머지않은 것 같습니다. 밀레스 쪽에서 불온한 움직임이 보인다는군요.”
“그런······ 괜찮은 건가요?”
“그 일 때문에 오늘은 하루 종일 전략회의를 했습니다. 물론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흰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할 거니까요.”
“시화님만 믿죠. 제가 뭐 달리 할 수 있는 거라도 있으면 말씀해주십시오.”
“네, 필요한 일이 생기면 말씀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쟁이 다가온 만큼 저희들도 이미 준비한 게 많거든요.”
“그렇다면야 시화씨도 걱정은 잠시 접고 휴양이라도 가죠. 물론 사이버 휴양이긴 하지만, 트로페 마을의 해변에서 시름은 잠시 잊읍시다.”
시화는 마지막 말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녀오십시오, 주인님.”
골렘을 농장을 지키기로 하고, 우리들은 트로페 마을에 놀러가러 농장을 떠났다.
가는 김에 오렌지도 사고, 커피도 사고······ 또 뭔가 좋은 게 있으면 사야겠다.
특히 오렌지는 칵테일을 만드는데 반드시 필요하다.
리큐르를 만드는 재료기 때문이다.
음, 어제 사과 칵테일을 마셔서 그런지 오렌지로 만든 술도 기대가 된다.
벌써 군침이 도는 것을 겨우 참으면서 나는 모두와 함께 하펜 마을로 향했다.
가는 길에는 더욱 풍성해지는 주변 농가들의 모습과 그곳에서 들려오는 악기 소리를 보고 들으며 즐겼다.
점점 이 게임에서 나처럼 슬로 라이프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서, 조금 흐뭇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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