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화 가족의 사랑과 저주받은 마검 >
“지혜에게 들키고 싶지 않다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회장님? 아, 확실히 항상 헬름을 쓰고 계셔서 지혜도 모르긴 하겠군요.”
나는 목소리를 낮춘 상태로 말했다.
회장님은 대장간 바깥을 기웃거리면서 지혜가 근처에 있는지 없는지 잘 살피곤 내게 다시 말했다.
“휴, 지혜는 그 거대 닭이랑 노느라 정신이 없군.”
“그렇습니까······.”
나는 대체 왜 지혜에게도 정체를 숨기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굳이 물어보려고 하진 않았다.
회장님의 프라이버시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가정사에 관련된 것이라면 더더욱 민감할 테니 물어보기가 더욱 뭣했다.
“왜 내가 정체를 숨기는지 궁금하겠지.”
“아, 네······.”
“그 이유를 말해주겠네.”
“아니, 굳이 그러지 않으셔도······.”
“조용하고 듣게나!”
“예, 회장님.”
하지만 아무래도 회장님은 자신의 사정을 누군가가 들어주길 바라시는 듯했다.
나는 잠자코 회장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
“자네도 지혜에게 들은 듯하지만 지혜는 어릴 적에 어머니를 잃었네.”
“예, 회장님,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혜는 어머니를 그리워했고, 어머니와 함께 했던 제과를 하고 싶어 했지.
그런데 회장님과 잘 소통이 되지 못한 듯 했고, 나한테 제과점을 맡겨 달라고도 했었다.
조금 숙연하다면 숙연하고, 대단치 않다고 하면 대단치 않은 계기로 지혜와 친해졌다.
어쨌든 그게 지금 중요한 건 아닌 듯하다.
회장님은 계속 말을 이었다.
“나는 일에 파묻혀 까맣게 몰랐지만, 나는 그 후로 지혜와 제대로 소통하고 있지 않았네. 지혜가 뭘 원하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 했지. 파티시에가 되고 싶다고 했는데, 식품계열사를 주겠다고 동문서답도 했으니 말이야.”
“회장님의 사정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자식과 소통이 잘 되지 않는 것은 어느 집안에든 있는 일입니다.”
“그런가? 그렇게 말해주니 조금은 위로가 되네만, 남도 그런다고 해서 내가 어리석은 게 무마되는 건 아니지.”
회장님은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도 지혜가 소통이 잘 되고 있진 않다네. 성묘를 가자고 했고, 다녀오기도 했지만 지혜는 여전히 나와 조금······ 그러니까 뭐라고 해야 하나······.”
“거리감이 있다는 겁니까?”
“그래, 거리감이 있다네, 그 말이 적당하겠군.”
“지혜는 착한 아이입니다. 먼저 다가가 주신다면 얼마든지 마음을 열겁니다.”
“그게 생각보다 말처럼 쉽지 않다네. 지금껏 지혜에게 그토록 무심했는데······ 갑자기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건 생각보다 어렵고 무서운 일이군. 나는 지혜를 믿지만, 행여나 지혜가 나를 여전히 미워한다면 어떡하는가?”
“······.”
나는 그 물음에는 뭐라고 대답할 순 없었다.
입에 발린 말을 할 순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확신도 없는 조언을 감히 내가 할 수 있을까?
이건 분명히 남의 가정사에 연관된 일이기도 하고 말이다.
회장님은 또 다시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알고 있네. 이건 자네에게 넋두리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 하지만 인정하기 싫어도 나보다 자네가 지혜와 더 친근한 것 같아서 조언이나 도움은 구하고 싶다네. 뭔가 좋은 방법이 없겠나?”
회장님은 나름대로 고충이 심한 듯했다.
나는 여전히 회장님과 지혜의 일에 끼어드는 것이 거북하긴 하지만, 회장님의 사정도 딱하고, 아버지와 화목하지 못한 지혜도 불쌍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라도 없나, 생각해보았다.
“회장님과 지혜가 함께 여행이라도 간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만······.”
“이미 말했었네. 그런데 지혜가 학교를 쉬고 가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고 거절했다네. 그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선 드문 것도 아닌데······.”
“······.”
아마도 지혜는 명문 사립고를 다닐 테고, 거기선 그런 것도 불가능하거나 특별한 건 아닌 모양이다.
물론 교육적인 목적의 여행이어야 한다는 뭐 그런 조건이 붙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혜는 아마 여러 가지 이유로 거절한 모양이다.
그런 것이 가능한 학교라도 유별나게 굴면 동급생들에게 안좋은 인상을 준다든지, 뭐 그런 이유 때문이겠지.
나는 다른 방법을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럼 회장님, 현실에서 어렵다면 가상현실에선 어떻습니까?”
“가상현실에서?”
“예, 외국 해변만큼이나 경치가 좋은 해변이 있습니다. 트로페 마을이라는 곳인데······.”
“아 혹시 자네의 영상에서도 나왔던?”
“네, 맞습니다. 내일 거기 오렌지를 사려고 갈 생각인데, 아마 지혜도 따라올 겁니다. 그때······.”
“미리 자네들과 만나서 같이 가면 되겠군!”
“네, 그럼 좋을 것 같습니다.”
“좋은 생각인 것 같다네. 그렇게 하도록 하지.”
회장님은 드물게 화색이 되어 말했다.
“그런데 거기서 뭘할 생각인가?”
“이것저것 하면서 놀면서 지혜와 친하게 지내면 좋지 않겠습니까?”
“그렇겠군.”
“놀이감은 제가 한 번 마련해보죠······ 그런데 회장님, 다만 말씀드리고 싶은 게······.”
“뭔가?”
“지혜에게도 정체를 밝히셔야하지 않겠습니까?”
“그, 그런가? 하지만 그랬다가 지혜가 불편해 하면 어떡하지······ 지금은 곤란하지 않겠나.”
“흠······.”
회장님의 반문에 나는 조금 진지하게 고민하였다.
확실히 아버지가 게임에 참견하면 자식 입장에선 즐겁지만은 않으려나?
하지만······.
“회장님, 지혜와 좀 더 화목해지고 싶으시다면 당연히 정체를 밝히시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타인으로써 친해지는 것과 가족으로써 친해지는 것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가족으로써 가까워지는 것이 목적인데, 약간의 껄끄러움이 문제겠는가?
지혜가 게임에 빠져 사는 중독자도 아니고, 아버지의 마음을 영 모를 리 없다.
또 회장님도 필요 이상으로 지혜를 귀찮게 할 리도 없다.
나는 두 사람에게 분명히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가족이란 그런 뭔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지만 타이밍이란 것은 분명히 있다네. 내 촉으로는 지금 얼굴을 드러내면 지혜는 분명 부담스러워할 거야.”
“그럼 내일 함께 논 다음 정체를 밝히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리곤 진심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흠······ 그래, 그런다면 좀 나아질지도 모르겠군. 외국에선 캐치볼 대화라는 것도 있으니 공놀이라도 한 다음에 대화를 나누면 뭔가 나아지지 않겠나.”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좋아, 자네에게 부탁하겠네. 내일이 벌써부터 기대되는군.”
회장님은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크흠, 하며 체통을 다시 찾으시려는 듯했다.
이미 딸에 관한 애정에 목말라하시는 모습을 충분히 보이신 뒤라서 늦은 감이 있지만, 나는 모른 척 하기로 했다.
“여, 여하튼 요즘도 지혜와 잘 놀아주는 것 같아서 고맙네.”
“제가 딱히 감사받을 정도의 일을 한 적은 없습니다, 회장님.”
“이래저래 자네를 통해서 지혜와 말문이 트인 것은 사실이지 않나. 내 그 점은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네. 그리고 자넨 우리 가족의 돈이나 보고 꼬이는 파리떼 같지도 않고 말이야.”
“······지혜에게 그런 사람들이 꼬인 적이 있습니까?”
나는 부자들의 삶에 대한 감각이나 지식이 없어서 그런 의문과 호기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내가 그렇게 묻자, 회장님은 질렸다는 듯이 말했다.
“왜 없겠나? 지혜가 7살 때부터 그냥 친해진 친구들의 부모들은 죄다 그걸 연줄 삼아 나에게 선을 대려고 했다네. 노골적으로 어릴 때부터 혼약을 맺자니 하는 대가리에 총구녕 난 것 같은 것들도 있었고. 에헴, 미안하군, 말이 좀 거칠어 졌다네. 어쨌든 그런 날파리들 때문에 지혜는 지금껏 동년배 친구도 제대로 없었다네.”
“그런······ 저로선 생각도 하기 어려운 일이군요.”
“크흠, 어쨌든 그 아인 많이 외로운 아이지······ 그걸 겉으로 잘 드러내지만 않을 뿐이라네. 그래서 그동안 내가 무심했던 게 더 미안해지는군. 여하튼 지혜를 슬프게 만든 건 나만으로도 충분하니, 자네는 그러지 말게나.”
“예, 저는 그런 경우 없는 사람들처럼 굴진 않을 겁니다.”
“그런 것도 있는데, 내가 말한 건······ 아니, 아닐세. 말해도 긁어 부스럼일 것 같군.”
“······?”
회장님은 뭔가 말하려는 듯했지만 마음을 바꾸신 듯 했다.
곧 회장님은 헬름을 다시 쓰셨다.
“자네 일을 방해하는 건 이쯤하고 난 다시 아버지께 돌아가보겠네. 아이템을 만드는 거라고 했던가? 열심히해보게나.”
회장님은 그렇게 말한 뒤, 내일 농장을 좀 더 일찍 찾아오기로 하고서 대장간을 떠나셨다.
멀리서 보니 치킨그리폰을 말처럼 타고 있는 지혜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계셨다.
나는 자식을 가진 마음도 모르며, 딸을 가진 마음은 더더욱 모르지만 회장님은 지금 지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실 것 같았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곤 나도 흐뭇하게 웃곤, 망치를 들고 다음 할 일을 했다.
“어디보자······ 그러니까 오늘 만들 무기는 뭐로 해볼까나······.”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대장기술의 제작 카탈로그를 훑어보았다.
오늘도 전설 무기의 레플리카로 해볼 생각이었는데, 유독 이름이 특이한 것이 있었다.
[대장기술, 얼음한(Icemourne) - 레플리카
유명한 B모 회사의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에서 등장한 명검의 패러디. 그 검은 차가운 저주의 힘을 가지고 있으며 사악한 흑마법사의 영혼이 봉인되어 있다. 한 왕국의 왕자가 자신의 백성을 죽인 악마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 검을 들었다가 미쳐버린다. 그리고 왕자는 왕국으로 돌아와 자신의 아버지 왕을 죽이는 폐륜을 저지른다. 물론 레플리카에 불과한 이 검에 그런 저주는 없다.
필요한 재료 : 아다만타이트급 재질 이상의 금속
필요한 도구 : 대장기술 Lv10, 망치, 용광로]
“······.”
······방금 가족애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걸 만들어도 좋을까?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확실히 만들어보고 싶은 명검이긴 했다.
50년은 더 된 고전 게임에 나온 명검······ 아니 마검이지만, 꽤 멋도 있어서 실제로 제작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 B모 회사가 최근에는 좀 흔들리고 있는 걸로 아는데, 보고 있으면 좀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하튼 나는 곧바로 제작 버튼을 눌렀다.
“얼음한이 굶주렸다. 오게 두어라······.”
나는 그 검에 관련된 명대사를 중얼거리면서 망치로 모형을 두들겼다.
이 검은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롱소드 정도의 길이? 하지만 폭이 넓은 검이다.
그리고 마치 ‘해골을 검으로 형상화한 것 같은’ 검인데, 무슨 뜻이냐면 검의 그립과 크로스가드 부분이 그런 장식으로 멋들어지게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실전용으로 좋은 형태의 검일지는 의심되지만, 적어도 멋은 있었다.
나는 그렇게 마검을 벼려냈다.
······어쩐지 사악한 흑마법사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 195화 가족의 사랑과 저주받은 마검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