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화 12일차 선술집 종료 >
“공진군, 시화군. 그리고 미나양과 지혜 모두 있구먼.”
“오셨습니까, 블루스 어르신.”
어느 틈에 블루스 어르신과 드래곤씨가 오셨다.
나는 인사를 하고선 두 분께 우선 오디주스를 서비스로 내놓았다.
“이건 포도주스인가?”
“아닙니다, 오디주스입니다. 뽕나무 열매말입니다.”
“아하, 알고 있다네. 여러모로 몸에 좋지. 게임에서 그게 의미가 있나 싶지만.”
“버프가 좀 더 좋긴 하더군요.”
“하하, 그럼 영 의미가 없는 건 아니군.”
블루스 노인과 드래곤씨는 오디주스를 제법 맛있게 마셨다.
나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면서 두 사람이 오기 전에 만들던 것을 내놓았다.
“이건 뭔가?”
“바바로아입니다. 둘 다 딸기 바바로아인데, 홍차와 같이 드셔보십시오.”
“허허허, 이런 음식을 내놓은 이유가 있을 터인데?”
“예, 오늘 세계수의 숲에 가서 엘프들에게 이걸 대접하고 뽕나무와 누에를 받았습니다.”
“오, 거기 간 모양이군. 경치가 제법 좋은 곳이지 않나?”
“그렇더군요. 다만 사람들의 발길이 그리 와닿지 않는 곳처럼 느껴졌습니다.”
“엘프 마을 입장이 좀 까다롭고, 경치는 좋은데 오지에 가까우니까. 사냥에 더 효율적인 곳으로 가려고 하지. 경치 좋다고 가는 사람은 아직 드무니 말일세.”
“······.”
블루스 노인의 말에 나는 조금 아쉬운 표정이 되었다.
사람들이 사냥 외에도 좀 더 게임을 즐기는 것에 눈을 돌리면 이래저래 게임이 더 재밌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블루스 노인은 홍차를 한 모금하곤 말했다.
“아쉽다는 표정이군.”
“예, 사람들이 여전히 슬로우 라이프를 별로 즐기지 않는 것 같아섭니다.”
“후후후······ 그게 자네가 아쉬워할 점이 있나? 아하, 사람들이 그런 것에 눈을 돌리면 자네가 돈을 더 벌 수 있기 때문이로군?”
“그런 속물적인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목적 외에도 어쩐지 자격지심 같은 것이 생겼습니다. 레거시 퀘스트나, 골렘과 함께 히든피스를 남긴 누군가······ 어쩐지 그 누군가는 제가 이러길 바라면서 히든피스를 남긴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 자가 그런 생각으로 남겼다고 해도 자네가 꼭 그걸 임무라고 생각할 필욘 없네.”
“맞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저······ 제가 즐기는 재미를 다른 사람들도 느낄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흠······ 자넨 무심하면서도 가끔은 시인처럼 감상적일 때가 있군. 아, 이거 정말 맛있네. 이것도 지혜와 구웠나?”
“네, 항상 그렇지만 빵 종류는 꼭 스킬에 의존하지만은 않고 지혜의 도움을 받아서 만듭니다. 그래서인지 더 맛이 좋습니다.”
이야기가 다소 다른 곳으로 흘러, 지혜의 제빵실력에 대해 말하게 되었다.
그러는 한편 드래곤씨는 오늘도 묵묵부답이었는데, 어쩐지 바바로아는 맛있게 드시는 것 같았다.
그렇게 간식도 내드리고, 다음은 오늘 신메뉴인 칵테일을 대접했다.
“크으······ 전문 바텐더들이 내놓는 거랑 비교해도 손색이 없군. 약간 홈메이드 느낌이 나긴 하지만 말일세.”
“요번엔 보드카를 위주로 간단한 것만 만들어 본 것입니다. 다음 번엔 리큐르를 만들어서 좀 더 다양한 칵테일을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조금 기대되는군. 보아하니, 다른 손님들도 많이들 마시는 듯하고. 돈 꽤나 벌렸겠는데······ 만석꾼 땅부자인 자네에게 이제 그런 돈은 푼돈이겠지?”
“어르신만큼 부자는 아니죠.”
블루스 노인의 농에 나도 웃으며 농으로 대답했다.
블루스 노인은 허허허, 웃으면서 칵테일을 마시고 수다를 계속했다.
대략 오늘 한 일에 대해서 말하게 되었다.
“우루사이라는 숲의 수호자를 잡고 뿌리가닥도 얻었습니다. 시화씨가 크게 도와주었죠.”
“얼마나 강한 녀석이었는지 잘 모르겠군.”
블루스 노인이 그렇게 말하자, 시화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본래는 저 혼자선 감당하지 못 했을 것 같지만, 상당히 지친 상태에다가 엘프 전사 두명과 모두가 도와주어서 수렵할 수 있었습니다.”
“허허, 그렇군. 어쨌든 여건이 되는대로 그 마장기의 재료들을 모아보게. 내 직감이긴 하지만, 그걸 만들면 향후에 크게 도움이 될 것 같네.”
“예, 이제 특수한 재료는 드래곤하트와 축성받은 마일스톤이란 것 정도 뿐이군요. 나머진 보석들인데, 그건 노슬론 마을에서 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루사이 사냥에 관한 이야기가 끝나자, 다음으론 총기 양산을 위해 마을에 조치를 취한 것을 말했다.
“조각상점을 지은 다음엔 대장간을 업그레이드 했습니다. 시화씨의 아이디어인데······ 대장간을 업그레이드 시키고 마탑과 분업을 시키는 구조로 총기를 생산하면 양산이 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가능할 것 같나?”
“대장간 쪽에서 마력격발총의 재료라고 할 수 있는 머스킷은 제작에 문제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다만 마법공학회로세공을 할 하급 마법사들을 양성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카데미를 지었습니다.”
“아카데미라면 학교를 말하는 건가?”
“예, 유저도 학생이 될 수 있지만, NPC들을 양성해서 마법사나 전사로 만드는 것이죠. 아, 그 외에도 용병길드를 만들어서 기존의 NPC를 고용하는 방법도 취했습니다. 대충 그러니 마탑 쪽의 문제도 어느 정도는 해결될 듯싶었습니다. 정확한 결과는 내일 쯤 알 수 있을 것 같지만요.”
“흐흠, 그렇군. 뭔가 특이사항은 없고?”
“아, 생활 스킬도 가르칠 수 있다고 해서 그것도 교육과정에 추가시켰습니다. 총기 양산과는 관계가 없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기대가 되는 부분입니다.”
“사람들이 아카데미에서 생활 스킬을 배울 수 있을지도 몰라서 말인가?”
“예, 어디까지나 기대일 뿐이지만요.”
블루스 노인은 내 말을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면서 칵테일을 마셨다.
“자네의 레거시 퀘스트를 완료하는데에도 도움이 될 테고, 농사꾼들이 늘면 땅을 임대하는 사람들도 많아질 테니 자네에겐 더더욱 돈이 되겠지. 좋은 선택일 것 같네.”
호평을 받으니 나도 자신감이 생겼다.
블루스 노인은 칵테일을 다 마셨는데, 빙그레 웃곤 다음 말을 이었다.
“오늘도 연주할 생각이지 않나?”
“네, 그런데 오늘은 미나가 노래하진 않고······.”
“알고 있네, 우리 지혜가 노래해보고 싶다지?”
“아시고 계셨습니까?”
내가 그렇게 반문하자, 블루스 노인은 히죽 웃었다.
지혜도 조금 놀란 모습이다.
특히 지혜를 향해서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블루스 노인이었다.
“집안 사용인들 말로는 지혜가 돌아오자마자 노래 연습을 하더라고 말하더군. 그래서 혹시 자네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네.”
“하, 할아버지. 제가 하고 싶다고 한 거예요.”
“아무렴. 난 공진군을 꾸짖는 게 아니란다. 기왕하고 싶다는 거 더 멋지게 해보자고 그러는 거지.”
“더 멋지게요?”
지혜는 블루스 노인의 말에 조금 의아한 모습이었다.
나도 무슨 말인지 조금 알 수 없었다.
“그럼 미나양, 지혜양. 꺼내게나.”
“네! 여기 플루트!”
“아코디언입니다.”
블루스 노인의 말에 미나와 시화가 각각 플루트와 아코디언을 꺼냈다.
“자네 만돌린 하나만으로는 좀 심심하잖나? 합주하는 게 어떤가 해서 말이야. 자, 나도 바이올린!”
“······.”
블루스 노인도 바이올린을 꺼냈고, 드래곤씨는 말없이 커다란 첼로 하나를 인벤토리에서 꺼냈다.
나와 지혜는 그런 모습에 조금 놀라면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면서도 어쩐지 조금 재밌다는 기분이 들어서 서로 웃게 되었다.
블루스 노인도 웃으면서 말했다.
“자, 그럼 어디 한 번 시작해보세. 지혜야 준비됐니?”
“네!”
지혜는 깡총 뛰듯이 스탠드바 좌석에서 내려왔다.
“다들 연주하는 방식은 익혔겠지?”
“네!”
“그럼 신명나게 해보세. 하나 둘 셋.”
블루스 노인의 사인에 맞춰 우리들은 합주를 시작했다.
아주 잔잔한 간주와 함께 노래가 시작되었다.
연주가 시작되자 사람들의 주목이 몰렸는데도, 지혜는 아주 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분수에 동전을 던져 소원을 비는 소녀에 대한 초반부 가사, 아주 발랄하고 상큼한 분위기의 노래였는데 지혜는 그것을 잘 소화해내며 부르고 있었다.
대략 우연한 계기로 첫눈에 반한 남자에게 어프로치를 하는 소녀의 이야기를 담은 가사가 계속 이어졌다.
“Hey, I just met you, and this is crazy. but here's my number. So call me, maybe?"
지금 막 만났지만 전화번호를 건네면서 전화해줄래? 라고 묻는 부분을 노래할 때였다.
그전까진 사람들을 향해 노래하던 지혜가 나를 바라보았다.
만돌린을 연주하면서도 그녀를 보고 있던 나는 눈이 마주쳤다.
지혜는 수줍은 듯이 웃으면서 노래를 계속 이었다.
계속해서 비슷한 가사가 이어진다.
너를 바라보고 있다거나, 너에게 빠져버렸다던가, 그럴 줄 몰랐다거나······ 음률은 상큼하지만 가사내용은 다소 나에겐 낯간지러운 사랑노래였다.
하지만 지혜는 아주 잘 불렀다.
금방 선술집의 사람들이 지혜의 열창에 빠져드는 모습이 보였다.
흡사 라이브를 잘 부르는 아이돌을 보는 분위기다.
그런데, 조금은 위화감이 든다.
“······So call me, maybe?"
후렴구처럼 계속 반복되는 그 가사, 그것을 말할 때마다, 혹은 노래 속의 소녀가 사랑에 빠진 내용의 가사를 부를 때마다 나를 바라보는 지혜였다.
이게 노래의 힘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지혜의 모습이 평소와는 달라보였다.
뭐라고 해야되나······ 그래, 지금의 지혜는 조금 미나같았다.
성숙하고, 어른스러운 매력이 느껴진 것이다.
그래서인지 눈을 마주칠 때마다 두근거리는 기분이 느껴졌다.
어쨌거나 연주와 노래는 계속 이어졌고, 어느덧 마지막까지 완창하게 되었다.
짝짝짝짝짝!
선술집의 사람들은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그러자 지혜의 모습은 곧 본래의 모습대로 돌아왔다.
사람들의 시선이 부끄러운 듯이 약간 빨갛게 된 얼굴로 인사를 하곤 스탠드바 좌석에 앉은 것이다.
지혜가 그렇게 부끄럼을 타자, 블루스 노인이 히죽 웃었다.
“어떠니, 지혜야?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것도 쉽지는 않지?”
“부, 부끄러워요.”
“그런데 아주 잘 부르더구나. 자랑스러울 정도였단다.”
“······.”
지혜는 블루스 노인의 말에 볼을 빨갛게 하면서도 시선을 나에게 돌렸다.
나는 그런 지혜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환하게 웃었다.
“아주 잘했어, 지혜야.”
“고, 고마워요!”
부끄러워하다가도 어쩐지 기쁜 듯이 대답하는 지혜였다.
미나는 그런 지혜에게 “너도 아이돌 안할래?”라고 묻기도 했다.
지혜는 그건 곤란하다며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 뿐이었다.
어쨌든 오늘도 선술집이 훈훈한 분위기로 마무리되는 듯했다.
노래를 부르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은 반응인데······ 미나나 지혜에게 계속 부탁해서 불러달라고 해볼까?
음, 내가 부르는 건 아무도 안 봐주겠지?
< 191화 12일차 선술집 종료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