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화 양잠소, 보드카 >
“교관님, 아카데미 교육과정에 생활 스킬도 추가시킬 수 있습니까?”
나는 곧바로 교관에게 사실을 확인해보았다.
그러자 교관은 조금 난색인 모습이었다.
“안 될 건 없습니다만, 생활 스킬을 추가하면 여러모로 거추장스러워질 수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그렇죠?”
“일단 생활 스킬의 범주가 너무 넓다보니 과목 수가 너무 늘어납니다. 그런 과목들마다 선생들도 모아야하죠. 물론 학생들도 모일지 의문입니다. 게다가 실습장을 마련하려면 아카데미 부지도 무척 넓어야하고요. 그만큼 돈도 많이 들텐데······.”
“부지와 돈 문제는 상관없습니다. 학생들도 얼마가 모이든 가르치기만 하면 됩니다. 다만 선생들을 모을 수 있을까요?”
나는 좋은 선생들이 있다면, 자연히 학생들도 모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말했다.
예를 들어서 요리를 가르친다고 할 때, 현실에선 만나기 어려운 미슐랭 2스타나 3스타 급의 실력을 가진 요리사가 선생이라면 당연히 학생들도 늘어날 것이다.
단순히 요리 스킬을 배우는 것만이 아니라 직접 요리하면서 현실의 요리실력도 늘릴 수 있다면, 굉장한 엔터테인먼트 사업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거리가 모자란 장인들이라면 많습니다. 그 중에 실력자도 많죠. 선생을 모집한다고 하면 줄을 서서 모일 겁니다.”
“좋아요, 그럼 고용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단 말이군요. 고용비 걱정은 하지 말고 모으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영주님.”
“그럼 곧바로 건물을 지어보려는데······.”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건물의 미리보기를 보았다.
기본 미리보기에서 보이는 아카데미는 목조 건물의 매우 초라한 모습이었다.
그대로 짓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내가 요구한 교육과정을 제대로 수료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크기의 아카데미를 지어야 했으므로, 나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이건 제가 하기 보단 건설회사에 맡기는 쪽이 좋겠군요. 교관님을 교장으로 선출할 테니, 아카데미에 필요한 사항을 건설회사 쪽에 말씀해주십시오. 대금은 저에게 청구하시고요.”
“제, 제가 교장이라니······ 제게 그럴 자격이 있을까요?”
“지금까지 말씀을 나눈 걸 보니, 교관님은 충분히 그럴 능력도 자격도 있는 것 같습니다. 믿고 맡길 테니,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마, 맡겨만 주십시오!”
교관은 군례를 취하면서 대답했다.
그렇게 아카데미 일은 교관에게 맡기게 되었다.
“휴우, 마을에서 할 일은 이쯤에서 마무리 된 것 같네요.”
“이제 농장으로 가실 건가요?”
“네, 가서 양잠을 해볼 생각입니다. 뽕나무를 심고 엘프 장로가 말한 양잠소를 지어봐야겠습니다.”
시화와 잠깐 그런 대화를 하곤, 우리들은 농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돌아가는 길에 다른 농장들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밭의 작물이나 과수하는 나무들이 다양해졌다.
물론 농장의 수도 늘어났는데, 새로 지어진 새내기 농장들도 저편에서 보였다.
우리들은 그런 풍경을 구경하면서 농장으로 향했다.
농장에 도착하자마자 시화는 콧노래를 불며 호수에서 낚시를 시작했고, 미나와 지혜는 동물들을 쓰다듬으면서 수다를 떨었다.
각자 잘 놀고 있으니, 나는 할 일을 해야겠다.
바로 뽕나무를 심는 거지!
“주인님, 뽕나무를 심으려고 하시는 겁니까?”
“응, 맞아.”
“양잠을 목적으로 잎을 취하실 수도 있지만, 뽕나무의 열매도 식용할 수 있습니다. 열매의 이름은 오디입니다. 그래서 뽕나무의 다른 이름은 오디나무이기도 합니다.”
“아, 오디는 몇 번 들어본 적이 있던 거 같은데, 그게 뽕나무 열매였구나.”
골렘이 조언으로 약간의 상식을 말해주었다.
그렇게 대중적인 인지도를 가진 과일은 아니지만, ‘오디’는 시골에선 흔하게 보거나 들어볼 수 있는 열매다.
요즘은 양잠을 가내수공업으로 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뽕나무를 심는다면 이 오디를 채취할 목적으로 심을 것이다.
물론 공장식으로 양잠하는 것에도 뽕나무 잎은 필요하니까 그 걸로도 소비는 되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나는 새로운 옷감인 비단을 만들기 위해서 뽕나무를 먼저 심기로 했다.
100개분의 부지를 확보하고, 그곳을 옥스와 태산이랑 개간했다.
그런 다음 비료를 뿌리고 여분의 분수기를 만들어서 물을 주었다.
이제 4시간 정도 기다리면서 나무가 쑥쑥 자라길 기다리면 된다.
“그런 동안에 양잠소를 지어놓을까.”
4시간 동안 할 일을 찾아봐야 하므로, 나는 양잠소를 미리 만들어놓기로 했다.
곧바로 건축 스킬의 제작 카탈로그를 찾아보았다.
[건축, 양잠소
비단을 만들 목적으로 누에를 키울 때, 누에들을 기를 수 있는 건물. 구조는 누에나방을 이용한 산란실과 누에들에게 뽕나무잎을 먹이는 축사로 나뉜다. 누에는 비단을 만들거나 동충하초의 재료가 되기도 하며, 번데기는 식용으로도 쓰인다. 다만 번데기를 못 먹는 사람에게 번데기를 억지로 권하진 말자.
필요한 재료 : 목재 60개, 벽돌 40개, 못 30개, 황토 30개
필요한 도구 : 조합 스킬, 건축 스킬 Lv8, 망치]
축사와 비슷하면서도 누에나방들이 날아가지 못하도록 다소 폐쇄적인 모습의 건물이었다.
이 건물에 누에를 풀어놓으면 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들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아직 알 수가 없다.
일단 건물부터 지어보기로 하면서 나는 망치를 들었다.
브어어엉!
태산이가 건물에 필요한 벽돌과 황토를 만들어주었다.
농장 건물이기에 특별한 멋을 낼 필요는 없어서 그저 열심히 망치질만 하면 되었다.
땅땅땅, 망치를 두드려 건물을 완성한 나는 흐르는 땀을 바람이의 시원한 바람으로 식히곤 양잠소의 안을 둘러보았다.
안은 설명대로 누에나방을 키워 누에를 얻을 산란실이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누에들만 모아놓아서 뽕나무 잎을 먹일 축사가 있었다.
“주인님, 가지고 계신 누에들을 풀어놓으셔도 좋습니다. 아직 뽕나무 잎이 없지만, 다른 나뭇잎을 주어도 애벌레들이 먹을 순 있습니다.”
“누에들은 뽕나무 잎만 먹는거 아니었어?”
“번데기로 우화하기 위해서 뽕나무 잎의 성분이 필요할 뿐, 먹이 자체는 다른 나뭇잎으로도 가능합니다.”
“그렇구나. 인벤토리에만 놔둘 순 없으니······.”
나는 곧바로 50마리의 누에들을 산란실에 두고, 다른 50마리의 누에들은 축사에 두었다.
곧 골렘이 과수하는 나무들의 잎을 가져와 누에들을 먹였다.
꼼지락대면서 잎을 먹는 모습이 귀여웠다.
벌레를 보고 귀엽다고 하는 건 조금 감상이 어긋나는 것이려나?
어쨌든 양잠소도 그렇게 지었다.
그런 다음엔 나는 선술집을 운영하기 위해서 필요한 작물들을 농사지었다.
근면한 옥스가 또 밭을 갈고, 작물들을 심으면서 오늘은 좀 다른 술을 만들어 볼까, 라는 여유로운 생각도 했다.
“그러고 보니 칵테일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이전부터 계속 했었는데 말이지.”
“칵테일을 만들려면 보드카가 필요합니다. 보드카가 칵테일의 베이스로 자주 이용되기 때문입니다.”
“보드카라······ 보드카는 밀로 만드는 거지?”
“밀 뿐만이 아니라 당분을 함유했다면 어떤 작물로도 만들 수 있습니다. 다만 질이 좋은 걸로 인정받는 것은 밀이나 호밀로 만든 것들입니다.”
“과연. 밀이라면 지금 좀 남은 것이 있으니까······ 바로 발효시켜 볼까.”
나는 여분의 밀로 보드카를 만들기로 하고, 발효통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제작 카탈로그를 살펴보았다.
[발효, 보드카
보드카의 어원은 ‘생명의 물((Жизденя вода)’이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술로 알려져 있지만, 기원이 폴란드라는 주장도 있다. 저렴한 가격에 매우 독하여서 ‘값싸고 취하기 쉬운 술’로 취급된다. 일반적으로는 다른 술의 표준적인 도수인 40도로 희석하여 마시지만, 독한 술을 좋아하는 러시아인들은 95도까지 증류하여 마시기도 한다. 어떤 폴란드 보드카는 알코올 농도가 96%인데, 소독용 에탄올의 알코올 농도는 80%다. 간이 작살나고 싶지 않다면 너무 독한 보드카는 피하도록 하자.
필요한 재료 : 밀 혹은 적당한 작물 10개
필요한 도구 : 발효통, 농사 스킬 Lv5]
어렵지 않게 보드카의 레시피를 찾을 수 있었다.
굳이 밀을 쓰지 않아도 된다면 다른 작물을 이용해서도 만들 수 있단 의미지만, 나는 싸구려 보드카를 양산하기 보단 밀로 만든 고급 보드카를 만들길 원했기에 그리 많이 만들진 않기로 했다.
무엇보다 지금 목적으로 하는 것은 보드카를 이용해서 칵테일을 만들어 보는 것이고 말이다.
[보드카 발효액 - 1시간 59분]
여하튼 몇 개의 발효통으로 보드카 발효액을 만들었다.
그런 다음, 나는 주섬주섬 낚시도 하고, 다른 작물을 심거나 하면서 선술집을 운영할 준비를 했다.
“저기요, 오빠.”
“응, 왜 그래 지혜야?”
“그······ 어제 했던 약속이요.”
“약속? 아, 혹시 그 노래 부르기로 한거?”
“네······ 연습했어요.”
지혜가 약간 부끄러움을 타면서 웃었다.
나도 방긋 웃으면서 지혜에게 물어보았다.
“무슨 노래를 연습했어?”
“혹시 Call me maybe라고 아세요?”
“아······ 주로 부르진 않았지만 제목은 들어본 것 같아. 근데 나는 올드 팝송을 주로 알아서······ 아니, 이것도 연도를 생각하면 올드 팝송인가 이젠······.”
“다, 다행이다······.”
“응?”
“아, 아니에요! 어쨌든 그 노래······ 불러 볼게요.”
“그래······ 그런데 꼭 사람들 앞에서 부르기 뭣하면 그럴 필요까진 없어.”
약속 비슷한 걸 하긴 했지만, 강요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 그래도 꼭 부르고 싶어요. 그게······ 한 번 노래에 관한 설명이라도 찾아보시는 게 어때요?”
“그럴까?”
지혜가 어쩐지 안절부절한 모습으로 말하자,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곤 바로 만돌린을 꺼내 악기 연주 스킬에서 그 노래를 찾아보았다.
[악기 연주, Call me maybe
2011월 8월에 팔매된 캐나다 팝가수 칼리 레이 젭슨의 히트곡. 상큼한 분위기로 사랑과 고백, 어프로치를 다루는 가사의 노래이다. 칼리의 히트곡이라고 하지만 싱글 발매 당시에는 각광받지 못 했는데, 발매 반년 후 유명 팝가수 저스틴 비버와 그의 여자친구 셀레나 고메즈에 의해 발굴되었다. 그 두 사람의 트위터로 소개되어 빌보드 차트가 올라갔고, 칼 리가 홈 메이드로 만든 영상이 히트치면서 유명해졌다. 잔잔한 분위기이면서도 애절한 소녀의 마음을 잘 반영한 노래이다.
필요한 도구 : 적당한 악기, 악기 연주 Lv2]
“이야 자세하게 적혀 있는데. 나중에 한 번 넷튜브에서도 찾아봐야겠다. 그런데 지혜는 사랑 노래 좋아하는구나?”
“어······ 네.”
미나가 불렀던 Country roads와는 가사의 내용이 많이 다를 것 같은 곡이다.
여하튼 지혜는 선술집에서 그걸 부르기로 하면서 연습을 하기로 했다.
내가 연주를 도와주면서 불러 볼 건지 물어보았지만······ 어째서인지 지혜는 혼자 연습하기로 했다.
어쨌든 농장에서의 시간이 느긋하게 흘러갔다.
< 189화 양잠소, 보드카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