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화 조각상점 >
세계수의 숲 엘프 마을에는 마법사 길드는 없었다.
대신 엘프 마법사는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텔레포트 서비스를 부탁할 수 있었다.
본래는 엘프 마을의 기여도나 호감도를 얻어야하지만 바바로아 파티를 벌인 덕분인지 엘프 마법사는 별 말 없이 소정의 골드만 받고 텔레포트를 시켜주었다.
우리들은 곧 하펜 마을의 광장으로 이동했다.
“재밌었네요, 좋은 숲 구경이었어요.”
“응, 다음에도 또 갈 일이 있었으면 할 정도네.”
미나의 말에 나는 맞장구를 치면서 말했다.
현실에 있었다면 꽤나 좋은 관광명소가 되었을 것 같은 세계수의 숲이었다.
“그럼 이제 뭘 하실 거죠, 공진씨?”
“아, 마을에 온 김에 우선 마을 회관을 들러볼 생각입니다. 오늘 민원이 있나 확인해보려고요. 시화씨는 혹시 바쁘십니까?”
“아니요······ 아직 휴식 시간인데, 좀 더 같이 다녀도 괜찮을까요?”
“물론 괜찮죠.”
시화도 좀 더 같이 다니기로 하면서 우리는 마을 회관을 향해 걸어갔다.
가는 와중에 나는 클라드 마을의 상황에 대해서 시화에게 물어보았다.
“클라드 마을은 순조롭게 발전 중입니다. 방위 문제를 해결하니, 마을이 저절로 발전하더군요. 자경단 훈련도 순조로워서 이제 스스로 마을을 방어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우리 길드가 항시 주둔해서 만일의 사태에도 대비 중입니다. 무엇보다 유저들도 많이 오가게 되었죠.”
“유저들이요?”
“네, 클라드 마을 주변에는 괜찮은 사냥터가 많습니다. 그동안은 마을이 너무 발전하지 않아서 거점으로 삼기 어려워 유저들이 오지 않았지만, 이제 있을 건 다 있으니 문제가 없죠. 그리고 용병 선술집도 지어놔서 그곳에서 퀘스트도 발주해주기 때문에 유저들의 편의도 좋아졌습니다. 다 공진씨 덕분이군요.”
“뭐, 제 덕분이라고 할 것 까지 있겠습니까.”
가벼운 잡담을 나누는 사이 우리들은 마을 회관에 도착했다.
마을 회관에서 퀘스트를 주는 일도 있기 때문인지 몇몇 유저들도 들락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어서 오십시오, 영주님.”
“안녕하세요, 별일 없어요?”
마을회관 직원이 나에게 인사를 했다.
나는 그에게 친근하게 말했고, 그는 서류 하나를 꺼내며 말했다.
아마도 민원들이 적힌 서류 같다.
“영주님이 결정해주셔야 하는 민원 하나가 있습니다. 조각상점의 건설허가를 내달라는 겁니다.”
“조각상점이라······ 혹시 예술가 길드의 조각가 소니키 씨의 민원입니까?”
“네, 맞습니다. 정식으로 조각품을 만들어 팔고 싶다는 군요.”
“그 외의 민원은 없고요?”
“없습니다.”
“그럼 제가 직접 찾아뵈어서 이야기를 나눠보죠. 고마워요, 수고하세요."
마을회관에서의 볼 일은 그렇게 간단히 끝났다.
우리들은 예술가 길드로 향하기로 하고서 마을회관을 나섰다.
광장 쪽으로 다시 향했기에 예술가들의 공연과 음악소리가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었다.
물론 각종 동물들과 함께 다니고 있는 우리들도 남의 시선을 사긴 매한가지였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예술가 길드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에필리아씨.”
“어서오세요, 영주님.”
예술가 길드의 안내 카운터를 지키는 사람은 여전히 길드장 에필리아였다.
매그너스에 있던 때보다 훨씬 밝은 모습인 것이, 묻지 않아도 하펜 마을에서의 생활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죠?”
“마을 회관의 민원을 받고 왔습니다. 소니키 씨의 민원인데, 조각상점의 건설 허가를 받고 싶다고 들었습니다.”
“아, 그 일 말씀이시군요. 곧 소니키를 불러오겠습니다.”
에필리아는 그렇게 말하곤 예술가 길드 안쪽으로 향했다.
그리곤 얼마지 않아서 소니키가 나타났다.
“영주님!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소니키씨. 지난 번 일 이후로 처음이군요. 오늘은 회관에 넣은 민원 때문에 왔습니다.”
“오, 이런. 저 때문에 걸음을 하셨다니. 실례가 아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뇨, 별로 그렇진 않습니다. 거기서 그냥 허가를 할 수도 있었는데, 한 번 말씀을 나눠볼까해서 직접 찾아왔습니다. 오히려 제가 실례가 아닌지 모르겠군요.”
“아휴, 영주님이신데 그런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뭐든 말씀만 하십시오.”
소니키는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그럼 한 가지 궁금해서 여쭙는 겁니다만, 조각상점이 보석상점을 겸할 수는 없습니까?”
“보석상점이요?”
“네, 조각술과 겸해서 하는 거죠. 이방인들에게 조각과 보석 상품을 팔면서 동시에 조각술과 보석세공술을 배울 수 있게요.”
“흠······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하진 않습니다요. 하지만 보석의 경우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량으로 발주해 팔 필요는 없습니다. 단지 보석세공과 조각품의 성능을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군요.”
“그런 정도라면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전시품으로 몇 개를 만들어 놓으면 될 테니까요.”
“그런 정도라면 좋습니다.”
소니키와의 논의는 순조로웠다.
나는 그에게 곧바로 건물을 건설하러 가지 않겠냐고 말했다.
소니키는 기대가 많이 컸는지 흔쾌히 그러기로 했다.
곧 우리들은 소니키를 동행하여 광장의 한 공터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영지건설의 카탈로그를 검색했다.
[영지 건설, 조각상점
조각품을 취급하는 상점. 입체적인 예술인 조각은 보고 있는 이들에게 많은 예술적 만족감을 줄 수 있다. 굳이 예술적인 만족감뿐만 아니라, 전사에겐 용기를, 마법사에겐 영감을 고무시킬 수 있다. 조각이 일으키는 기적을 영지민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면 조각상점을 짓도록 하자. 직접적인 버프로 도움이 될 뿐만이 아니라 마을의 행복도도 상승한다.
필요한 자금 : 100만 골드
필요 조건 : 번영도 12,000 이상]
그렇게 평소처럼 조각상점을 지으려던 때였다.
“영주님, 저와 협동건설을 한다면, 처음부터 멋지게 상점을 지을 수 있습니다.”
“협동건설요?”
“네, 제가 디자인을 담당하는 것이죠. 수락해주신다면 바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조각가 ‘소니키’가 조각상점의 건설의 디자인을 담당하길 원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Y/N]
소니키의 말을 따라 곧바로 커맨드 메시지가 떴다.
나는 별로 고민하지 않고 Yes를 선택했다.
그러자 소니키가 푸른 조각상점 모형을 변형시키는 것이 보였다.
건물 디자인에 관한 미적 감각이 없는 나로선 하기 힘든 일이었다.
소니키는 그저 간소한 목재 건물이었던 모형을 현대적인 느낌의 건물로 만들어냈다.
“이제 건설을 시작하면 됩니다, 영주님.”
“저도 돕도록 하죠.”
곧바로 망치를 들고 건물의 제작을 시작했다.
목조 토대를 만들고, 벽돌을 쌓기도 하며 쇼윈도를 만들기 위해 유리를 장착시키기도 했다.
특히 쇼윈도 부분을 신경썼다.
그곳에 조각품을 전시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시화도 느긋했기 때문에 조금 돕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언제나처럼 사람들이 새로 건설되는 건물을 구경하기도 했다.
“간판에 적힌 걸 보니 조각상점이라는군.”
“조각? 그거 달빛······.”
“어허, 그 이름을 말해선 안 돼.”
“조각에도 뭐 버프 같은 게 있던가?”
“있으니까 건물을 지어주는 거 아닐까?”
사람들의 수다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곧 건물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번엔 소니키와 함께 만들어서인지 내부의 인테리어도 충실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당장이라도 뭔가 판매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전에 동상을 만들어드리긴 했지만, 일반적인 조각품은 보여드린 적이 없군요. 한 번 솜씨를 보여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이죠, 부탁드립니다.”
소니키의 말에 나는 흔쾌히 허가했다.
소니키는 가볍게 목재로 뭔가를 조각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스킬을 사용하는 듯 하면서도 그는 섬세한 부분은 스킬이 아니라 직접 조각하는 장인 같은 모습도 보였다.
그는 노상에서 조각을 했는데, 사람들은 조각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어라, 불돌이를 만드는 거였군요?”
“예, 아주 귀엽고 늠름한 녀석이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죠.”
소니키가 만들던 것은 불꽃에 타오르는 듯한 진돗개의 모습.
그러니까 상급 정령이 된 불돌이의 모습이었다.
귀여우면서도 거의 다 자란 진돗개가 잘 표현되어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멋진 조각을 구경하는 것만이 끝이 아니었다.
[멋진 조각품을 감상하셨습니다.]
[수작 조각품 ‘불돌이’
메이거스의 베테랑 조각사 소니키가 만든 수작 조각품. 자신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넨 하펜 마을의 영주 ‘사공진’이 부리는 불의 정령 ‘불돌이’를 모델로 썼다. 보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조각이 움직여 친근하게 꼬리를 흔들 것 같다. 이 조각품의 소유자는 감상 보너스를 전부 받는다. 소유자가 아닌 사람은 감상 보너스를 절반 밖에 받지 못한다. 조각품의 감상 보너스는 한 번에 하나씩 밖에 적용되지 않는다.
감상 보너스 : 추위저항 소폭 상승, 힘 + 20, 민 + 20, 불속성 마법의 효과 소폭 상승]
“오오! 나 능력치가 올랐어!”
“흠, 저걸 만약에 산다면 10이 아니라 20의 능력치를 항상 올릴 수 있단 말인가?”
“대단하잖아? 생활 스킬이 이렇게 좋은 줄 몰랐는데.”
“조각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면 한 번 해볼까? 사는 건 힘들지 몰라도 심심풀이 삼아 내가 만들어보는 것도 좋을지도······.”
금방 사람들의 피드백이 들렸다.
아무래도 전략은 잘 먹힌 모양이다.
“이런 것을 쇼윈도에 전시하겠습니다. 팔리지 않더라도 가게 홍보나 스킬 홍보 둘 중 하나는 될 겁니다요.”
“좋습니다. 소니키씨를 믿겠습니다.”
“저야 말로 건설 허가를 내려주신 것만이 아니라 함께 건물을 지어주셔서 어떻게 감사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영주님과 마을에 도움이 되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소니키와 나는 그렇게 악수를 나누었다.
이렇게 한 건이 해결되었고, 건물을 짓느라 조금 지친 우리들은 주스를 마시면서 시간을 좀 보냈다.
“다음은 뭘 하실 겁니까?”
“시화님 말대로 해볼까요, 대장간을 업그레이드 하는거 말이죠.”
“아, 마력격발총을 대량 생산하려는 것 말이군요.”
세계수의 숲에 가기 전에 시화와 이야기 했던 일이었다.
대장간을 업그레이드 하여서 마력격발총의 대량 생산을 한 후, 마탑이 마력세공을 하는 식으로 마력격발총을 대량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메이거스에 납품할 총들도 만들 수 있을 것이고, 필요하다면 클라드 마을이나 세계수의 숲 엘프 마을과의 교역에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좀 더 쉬다가 대장간으로 가보죠.”
“네, 여기 구경거리도 많으니 심심하진 않군요.”
광장에는 여전히 공연 중인 예술가들이 많아서 시화의 말대로 심심하지 않았다.
다만 저들을 위해서 극장을 만들어준다거나 할 순 없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나중에 알아보기로 했다.
우리들은 쉴 만큼 쉰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 187화 조각상점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