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화 작은 바바로아 축제 >
나는 우루사이를 구제하러 가기 전에 엘프 전사에게서 엘프들은 뭔가 종교적인 문제? 같은 걸로 요리를 하지 않는 다는 말을 들어서 다시금 장로에게 그 사실을 확인해야했다.
장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세계수의 직계자손인 우리들은 율법으로 자연에서 얻는 것을 함부로 훼손해선 안 된다네. 그래서 육식을 멀리하고 과일과 자연 상태의 작물, 그리고 채소가 주식이지. 아, 육식이 금기는 아닐세. 살생을 해야 해서 다소 멀리할 뿐이지.”
“생식만 해야하는 것은 아니겠죠?”
“조리만 우리가 하지 않는다면 이미 만들어진 것을 받아먹는 건 율법에 문제가 없지. 그래서 한때는 이종족의 요리사를 초대해 요리를 해먹기도 했다네. 조삼모사 같은 일이지만, 뭐 어쩌겠나? 세계수의 가르침인걸.”
“세상엔 돼지고기를 못 먹거나 소고기를 못 먹는 종교도 있는데, 딱히 이상한 건 아닙니다. 도리어 납득이 되기도 하고요. 숲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어서 생긴 교리 아니겠습니까?”
“그런 특이한 종교는 들어본 적이 없네만, 이해해준다니 기쁘군.”
엘프 장로와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났다.
나와 지혜, 그리고 미나와 시화도 도와서 음식을 만들 차례였다.
“오늘은 바바로아를 만들어 봐요!”
“바바로아라······ 말로만 들어봤지, 먹어본 적도 없는 간식인데.”
“젤라틴을 이용해서 만드는 아주 단 간식이에요. 정말 맛있을 거예요.”
지혜는 그렇게 말하면서 해맑게 웃었다.
정말로 빵 만드는 일이 즐거운 모양이다.
하긴, 나도 이런 멋진 곳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면 기분 좋을 것 같다.
여하튼 우리는 바바로아를 만들어보기로 하고, 젤라틴을 만들기로 했다.
“젤라틴은 돼지고기나 소고기의 부산물들을 이용해 만드는 건데, 게임에선 어떻게 되어 있으려나.”
“저, 한 번 해봤어요. 조합 스킬로 간단하게 만들 수 있도록 되어 있어요. 멧돼지고기로도 만들 수 있는데, 굳이 고기가 아니라 가죽이어도 되요.”
“그런가? 한 번, 검색 해볼게.”
지혜의 말을 들은 나는 즉시 조합 스킬의 제작 카탈로그를 검색해보았다.
[조합, 젤라틴
가죽, 뼈 등을 구성하는 콜라겐을 알칼리로 녹여 얻는 유도단백질. 정확한 영어명은 프로티즈(protease)다. 제조공정에 있어서 본래는 알칼리 용액으로 녹인 뒤 젤라틴을 추출해야하며, 먹을 수 없는 공업용 젤라틴과 식용 젤라틴이 구분되어 있다.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도록 본 게임에선 조합 스킬을 이용해 얻을 수 있도록 구현하였다. 당연히 식용 젤라틴이지만, 젤라틴 자체로는 아무 맛도 없으니 반드시 조리 스킬을 이용하여 요리를 하자.
필요한 재료 : 각종 동물의 고기 혹은 가죽 혹은 뼈 혹은 인대 등
필요한 도구 : 조합 스킬]
젤라틴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 잘 적혀 있었다.
내가 상식적으로 아는 것과 똑같았다.
젤라틴은 제조공정상 공장에서 만들어야 할 정도로 까다로워서 수제 레시피는 없다.
그래서인지 조합 스킬로 만들도록 되어 있는 모양이다.
멧돼지고기나 가죽은 많으니까, 만드는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어쨌든 조합스킬을 사용해서 만드니, 뜨끈뜨끈하고 네모나게 각진 젤라틴 덩어리가 만들어졌다.
“윽, 맛없다.”
“당연하잖아요, 설명에도 써져 있지 않았어요?”
“그야 그렇지만, 나는 호기심을 참을 수 없어서.”
한 입 먹어봤는데, 말 그대로 ‘맛이 없었다.’ 쓴맛이라거나 그런 의미가 아니라 정말로 무미건조한 아미노산의 맛이었다.
흠, 젤라틴으로는 진짜 상어 지느러미를 대신해서 샥스핀도 만든다는데······ 하긴, 샥스핀은 그 상어 지느러미나 젤라틴이 맛있어서 먹는 게 아니라, 식감과 양념맛으로 먹는다지?
상어 지느러미를 얻는 과정이 너무 악독해서 젤라틴으로 대체하는 것이 옳다는 말을 뉴스에서 본적이 있었다.
그런데 딱히 식감도 별로 좋진 않은데······ 하긴, 어느 미슐랭 3스타의 쉐프가 샥스핀을 맛보고 저평가했던 일도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젤라틴을 그냥 먹는 건 아니다.
“우선 찬물에 담가서 부드럽게 풀어주세요.”
“알았어. 물방울아, 부탁해.”
냐옹!
곧바로 물방울이 냄비에 차가운 물을 만들어주었다.
거기에 젤라틴을 담갔다.
젤라틴이 곧 흐믈흐믈 해졌는데, 지혜가 계속 다음 절차를 알려주었다.
“그 다음엔 중탕으로 끓여서 녹여줘야 해요.”
“불돌아!”
왈왈왈!
물방울 다음에는 불돌이가 나설 차례였다.
냄비를 끓여 중탕하여 젤라틴을 녹였다.
미나와 시화도 문제 없이 따라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엘프들이 모여서 구경하고 있었다.
음, 선남선녀들이 모여서 구경을 하니, 다소 부담스럽지만, 요리를 하지 않는 교리를 가진 그들에게 요리하는 모습은 진풍경인 모양이다.
“다음은 과일을 정해야 해요. 대표적으로 바바로아를 만들기 좋은 과일은 딸기와 망고, 그리고 복숭아에요.”
“딸기랑 망고는 있는데, 복숭아는 아쉽게도 없네.”
“복숭아는 우리들이 가지고 있다네.”
마찬가지로 구경하고 있던 장로 엘프가 나서서 말했다.
“세계수의 숲 특산의 아주 맛있는 복숭아지. 한 번 그걸로 만들어 주겠나? 복숭아에 달리 대가를 요구하거나 하진 않겠네.”
“그럼 좋습니다.”
나는 장로 엘프에게 복숭아를 받았다.
보기만해도 탐스러운 황도여서, 그대로 베어 먹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베어 먹기엔 보는 눈이 많아서 그냥 바바로아를 만드는데 쓰기로 했다.
“황도를 으깬 다음엔 레몬즙과 설탕을 넣어주면 좋아요.”
골렘이 손수 수확한 레몬을 짜서 설탕과 함께 황도와 섞었다.
복숭아의 단맛과 신맛이 잘 어우러질 것 같은 느낌이다.
“생크림은 휘핑하면서 흰자를 넣고 거품을 만들어주면 되요.”
다음엔 생크림 휘핑이다.
지혜의 말대로 생크림을 저은 뒤, 흰자를 넣고 거품이 날 때까지 저어주었다.
이걸로 대략적인 준비는 다 끝났다.
“복숭아 으깬 것에 녹인 젤라틴과 크림을 넣어 섞으면 거의 다 만들었어요.”
지금까지 만든 것을 전부 섞었다.
그러자 흰색의 먹음직스러운 혼합물이 만들어졌다.
“마지막으로 컵이나 용기에 부은 다음 냉장고나 찬물에 식혀서 굳혀야해요.”
“그건 물방울이 해결해줄 수 있어!”
다시 한 번 물방울에게 부탁하여 용기에 담은 혼합물을 차게 식혀 굳혔다.
그리고 용기를 따듯한 물에 담가서 뒤집으면 손쉽게 안의 혼합물, 바바로아를 빼낼 수 있었다.
“완성이에요!”
“음, 정말 맛있겠는데? 만들기도 쉬웠어.”
“네, 젤라틴만 있다면 집에서도 쉽게 만들 수 있어요.”
그렇게 먹음직스럽게 완성된 바바로아를 일단 장로 엘프에게 맛보여주기로 했다.
그는 엄격하고 진지하고 근엄한 모습으로 플레이팅한 바바로아를 엘프제 티스푼으로 베어먹었다.
“음, 정말 맛있군. 허허허······ 말랑말랑한 식감에 황도의 단맛과 레몬의 상큼한 맛이 잘 어울리네. 이 정도면 우리 마을의 어느 엘프들도 만족할 거야.”
“다행이군요.”
“많이 만들어 줄수록 자네에게 필요한 양잠 재료를 많이 주겠네. 어떤가, 만들어주겠는가?”
“흠, 일단 양잠 재료는 많이 필요하고, 게다가 누군가가 먹지 못하는 건 불행한 일이니까 마을 사람들 전부가 시식할 수 있도록 만들어 보겠습니다. 기왕하는 거, 복숭아 외에도 다른 맛도 어레인지 해보죠.”
“오! 기대하겠네.”
“하하, 장로님은 이미 복숭아 맛을 먹어보셨잖습니까? 다른 사람걸 빼앗아 먹진 마십시오.”
“이런!”
엘프 전사가 중간에 끼어들어서 장로에게 은근한 핀잔을 주었다.
장로는 뜨끔했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허허 웃으면서, 계속해서 바바로아를 만들었다.
이번엔 소량 생산이 아니라, 젤라틴을 대량으로 만들고, 대량의 재료를 이용해서 한 번에 커다란 용량을 만들었다.
우선 복숭아로 대량의 바바로아를 만들고, 다음엔 딸기를 첨과해 만들었다.
마지막으로는 망고맛으로 했다.
그렇게 바바로아를 잔뜩 만들어서 마을 사람들이 한입씩 할 수 있도록 해주었더니, 엘프 마을은 축제의 분위기였다.
이 사람, 아니 이 엘프들에게 맛있는 식사는 매우 소중한 모양이다.
“우리도 먹자. 음, 마시쪙!”
요리를 전부 마친 우리들도 시식을 시작했다.
우유나, 홍차, 주스와 함께 먹으니 꿀맛이었다.
여하튼 그렇게 바바로아 파티를 벌인 후에는 장로 엘프에게서 감사의 인사를 받을 수 있었다.
“자, 여기 필요하다고 했던 뽕나무 씨앗이라네. 특별히 질좋은 것으로 100개를 준비했지. 누에도 100마리를 맞췄다네. 애벌레 상태니까 번데기로 만드는데에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걸세.”
“감사합니다, 소중히 쓰겠습니다.”
“하는 김에 양잠에 대해 조언을 좀 해주도록 하지. 알다시피 양잠이란 누에를 키워 고치를 생산하는 과정을 일컫네. 알에서 애벌레로, 번데기에서 나방으로 누에는 성장하지. 하지만 양잠에서 필요한 것은 그 번데기, 즉 고치일세. 고치에서 비단을 만들려면 그 고치를 삶아서 만들어야하지. 애석한 일이지만 그렇게 하면 번데기는 죽게 된다네.”
“엘프의 입장에선 꺼림칙한 일이 아닙니까?”
“그렇지. 그래서 우리가 요리를 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네. 극도로 청빈하게 사는 우리들도 살아 있는한 고기를 먹거나 옷을 잣기 위해 생명을 다치게 해야 한다네. 그러니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검소함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채식과 생식을 하지. 뭐, 그래도 가끔은 즐거워야하지만 말일세.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지.”
장로 엘프는 계속 양잠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여하튼 고치를 이용해 비단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을 걸세. 하지만 포인트는 장기적인 생산을 위해 일정한 누에들은 번식을 시켜야 한다는 것일세. 100마리의 누에가 있다 하여서 그걸 전부 삶아 비단으로 만들면 다음엔 무엇으로 비단을 만들겠나?”
“그렇군요. 그럼 한 번에 누에가 번식하는 양이 얼마인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만.”
“자넨 요점을 잘 아는군. 자연적으로는 한 번에 2개의 알을 낳는다네. 하지만 자네가 농사 스킬이 높거나 생명의 정령을 사역할 수 있다면 번식량을 늘릴 수 있지. 자넨 정령사로 보이지만, 생명의 정령을 부릴 만큼의 재능은 보이지 않는군······.”
“대신 농사 스킬이 높습니다. 벌써 10레벨을 바라보고 있군요.”
“아, 그럼 4마리 쯤 번식하겠군. 즉, 50마리의 누에만 나방으로 우화시켜 번식시켜도 암수 25쌍이 알을 4개씩 만들어 주어 현상유지가 가능하단 말이지. 물론 누에를 더 양산할 생각이라면······.”
“나방으로 우화시키는 누에를 늘리면 되겠군요.”
“정답일세. 아, 참고로 양잠을 하려면 당연히 양잠소가 필요하다네. 이걸로 내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건 다 가르쳐 준 것 같군.”
“감사합니다.”
장로 엘프의 도움으로 양잠의 대략적인 방식을 알 것 같았다.
나는 슬슬 이곳에서의 볼일이 끝난 것 같다고 느꼈다.
하펜 마을로 돌아갈 때가 된 것이다.
< 186화 작은 바바로아 축제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