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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플레이어-203화 (203/239)

< 184화 어쩐지 간에 좋을 것 같은 녀석 >

여성 엘프가 마을 장로를 부르러 간 사이, 우리들은 몇몇 엘프 마을 주민들을 지켜보게 되었다.

엘프의 가장 큰 특징이야 아름다운 외모에 기다란 귀겠지만, 그것보다 눈에 띄는 것은 그들의 차림새였다.

“엘프들 옷을 유심히 보니까, 대부분 실크를 입고 있네요.”

“여기서 양잠에 필요한 뽕나무나 누에를 얻을 수 있단 게 사실인 모양이네.”

본래 엘프하면 나뭇잎 같은 걸 옷으로 만들어 입는 이미진데, 실크를 입으니 좀 고급져 보인다.

물론 엘프라고 꼭 그런 차림만 하라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우리 양잠 기술에 관심이 있나?”

그때, 우릴 감시하고 있던 남성 엘프 전사가 말했다.

“네, 여기 온 이유 중 하나가 양잠에 필요한 재료를 구할 수 있다고 들어서였습니다.”

“확실히 그렇지. 그런데 비단을 사러 온 것이 아니라, 양잠 자체에 필요한 재료들을 구하러 온 거라고? 그것도 이방인이?”

“보시다시피 저는 농부라서요.”

“흠······ 확실히 그렇게 보이는군.”

남성 엘프 전사는 내 차림을 보고선 뭔가 수긍하면서 말했다.

흠, 이번엔 스스로 농부라고 말하긴 했는데, 내가 그렇게 척봐도 농부 같은 차림인가?

하긴 밀짚모자가 좀 그런 것도 같다.

그런데 밀짚모자는 해적도 쓰잖아? 아, 그건 만화였던가······.

“혹시 양잠기술이나 비법은 비밀이라거나, 그런 건가요?‘

‘뭐라고? 그런 건 또 뭔가? 수상한 사람이 아니란 것만 확인되고 돈만 내면 얼마든지 사갈 수 있을 걸세.“

“아······ 그렇군요.”

“다만 우리들은 화폐 거래보단 물물교환을 좋아하는데······ 그대들이 교환하기 좋은 물건이 있는지 모르겠군.”

“흠, 대체로 어떤 것을 좋아하십니까? 혹시 농작물이라든지?”

“세계수의 숲은 풍요롭지. 따로 농사를 짓지 않아도 채집과 수렵만으로 먹고 살 정도로 말이야. 농작물은 우리에게 별 메리트가 없다네.”

노슬론 마을과는 좀 다른 입장인 모양이다.

곧 남성 엘프 전사는 말을 이었다.

“굳이 좋아하는 것을 꼽으라면······ 보석은 좋아한다네. 우린 광업을 별로 안 좋아하거든. 먼지를 묻혀가며 광석을 캐는 일을 우리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네. 피부가 상하니까.”

“그렇······군요.”

약간 황당한 이유 같으면서도 당연한 이유인 것 같아서 당혹스러웠다.

엘프들도 자신들이 잘생기거나 예쁘단 걸 자각하는 걸까?

피부가 상하기 때문에 광업을 기피한다는 말에서 어쩐지 그런 느낌을 받았다.

“보석이라······ 보석의 공급처는 있지만, 지금 당장은 보석이 없군요. 혹시 다른 것은 선호하는 것이 없습니까?”

“그것 외라면······ 나 같은 전사들은 뛰어난 무기 같은 것에 흥미가 많지. 물론 엘프제 무기가 최고지만, 무기수집욕이란 것이 있으니 말이야. 혹시 괜찮은 무기라도 있나?”

“아······ 그거라면 일단 이게 있습니다만.”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톱날검을 꺼냈다.

“이게 뭔가? 특이하게 톱처럼 생긴 검이군.”

“마법공학은 처음 보시는 겁니까? 이렇게 작동도 가능한 겁니다.”

“오! 톱날이 자동으로 돌아가는군?”

“네, 덕분에 손쉽게 뭔가를 자를 수 있습니다. 물론 이건 공구가 아니라 무기라서 보통은 적을 찢는데 쓰지만요.”

“굉장하겠군! 뭐 또 다른 것은 없나?”

“다른 거라면 이게 있습니다만.”

“그건 뭔가?”

내가 보인 것은 마력격발총이었다.

역시 처음 보는 모양이었다.

“이건 원거리 무기입니다. 총이라고 합니다. 정확히는 마력격발총이지만요.”

“총? 흠,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한데······.”

그가 총에 대해 들어본적이 있는지 헷갈려 하자, 시화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메이거스에서 쓰는 무기입니다. 화약과 총탄을 이용해 발포하는 무기죠. 활과는 달리 직사사격이 주류인 무기죠.”

“아, 메이거스라면 마법과 돈을 밝히는 나라가 아닌가? 그런 괴짜들이 쓰는 무기라면 납득이 가는군. 혹시 메이거스에 온 거라면 악의는 없었네. 하지만 사실이 아닌가?”

“예······ 혹시 총을 사용하는 것을 보여드릴까요?”

“그래도 되겠는가?”

“네, 다만 소리가 크고 위험하니 놀라지 마십시오.”

나는 남성 엘프 전사에게 그렇게 말하곤 표적으로 쓸 나무 토막 하나를 50미터 쯤 되는 곳에 두었다.

남성 엘프 전사는 뭔가 기대에 찬 눈빛이었다.

나는 그의 기대를 어긋나게 하지 않으려고 제대로 조준하여 사격했다

타앙!

“오! 이건 굉장하군! 소리만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나무토막을 쇠구슬이 관통하면서 굉장한 위력을 내는 것 같네. 엘프의 화살만큼이나 강력해.”

총탄을 사격해 한 번에 나무토막을 명중시키자, 그가 감탄하며 말했다.

총성 때문인지 다른 엘프 주민들도 모여들었는데, 우리들은 좀 더 시범을 보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사격을 몇 번 더 했다.

아예 엘프 남성 전사에게 총을 빌려줘서 사격을 시켜보기도 했다.

“굉장해, 조준해 정확히 하면 활보다 훨씬 간편하게 위력을 낼 수 있는 무기로군. 다만 사거리가 좀 짧아 보인다네.”

“네, 그런 편이죠.”

“하지만 이런 위력이면 위험한 포식자나 마왕군도 쉽게 상태할 거야. 흥미롭군.”

현대화기는 그렇지도 않지만, 게임 속의 머스킷은 활보다 사거리가 짧을 수 있었다.

여하튼 이걸로 엘프들이 무기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곧 그 이유도 알 수 있었다.

“우리 엘프들 스스로도 방어할 순 있지만 말일세, 가끔 마계의 사악한 자들이 숲에 침범하지. 그래서 우리들은 무기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네. 양적으로 많은 것만이 아니라 질적으로 좋은 것도 최고지. 우리 같이 완벽한 종족에게 완벽한 무기만 있다면 최고이지 않겠나?”

“그렇군요. 그럼 이 총과 필요한 것을 거래할 수 있을까요?”

“난 좋다고 본다네.”

“그렇군요. 혹시 그럼 또 다른 것은 흥미를 가질 법한 교역품이 없을까요?”

“교역품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우리들은 다른 종족의 요리에 흥미가 좀 있다네. 우리가 좀 미식가 기질이 있어서 말이야. 하지만 웃긴 점은 뭔지 아나? 우리 꼰대······ 아니, 장로님들은 요리가 아닌 생식을 해야한다고 말한다네. 물론 그냥 먹어도 맛있는 열매는 많지만, 세상에 맛있는 고기나 빵이 얼마나 많은데······ 크흠, 어쨌든 우리는 맛있는 걸 좋아한다네. 음식 뿐만 아니라 술도 좋아하지.”

“아 그럼 혹시······.”

그의 말을 들은 나는 혹시 하는 생각에 인벤토리에 남아 있던 사과파이 하나와 와인을 꺼냈다.

“조금 드시겠습니까?”

“오······ 이건 파이잖는가? 몇 달만에 본 음식인지······ 음, 치즈맛이 정말 좋군. 캬, 와인도 정말 맛있다네.”

남성 엘프 전사는 잘 생긴 얼굴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게걸스레 음식을 먹었다.

가관인 것은, 그런 그를 다소 부럽게 보는 다른 엘프들이었다.

선남선녀들이 그렇게 바라보는 모습을 보니 다소 어색하다.

문제는 여분의 음식이 그리 많지 않아서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다음에 올 땐 음식과 음료를 더 많이 챙겨와야겠다.

여하튼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을 때, 여성 엘프 전사가 돌아왔다.

나이가 지긋이 든 장로 엘프들과 함께 말이다.

그들이 오자 우리들에게 모여 있던 엘프들은 그들에게 인사를 하며 예를 표했다.

그래서 우리들도 그들에게 살짝 인사를 했다.

“어서오게 이방인들이여, 특히 자네는······ 선택 받은 자로군.”

“네? 저 말인가요?”

“그렇다네. 자넨 창조주에게 선택받은 자이지 않은가?”

“창조주······ 그런 것도 같습니다.”

나는 애매한 대답을 했다.

아무래도 생활의 달인이 된 것이나 수상한 쪽지를 줏은 것 등을 말하는 것 같다.

그가 어떻게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오해하게 할 것도 같군. 우리들은 조금 예언에 재능이 있다네. 그래서 장로가 되었지. 마을을 이끄는데 초라하지만 보탬을 하고 있다네.”

“그렇군요.”

“하지만 예언이라고 해봐야 영혼과 정령이 속삭이는 것 외에는 알 수가 없다네. 우리들에게 뭔가 원하는 것이 있어서 왔을 터인데, 말해 보겠는가?”

“네, 저희는 세계수의 뿌리가닥과 양잠에 필요한 뽕나무와 누에가 필요해서 왔습니다.”

“양잠이야 어렵지 않지만, 세계수의 뿌리가닥을 달라고 하는 건, 일족에게 큰 은혜를 입힌 자들이 아니면 어렵다네.”

“어······ 방법이 없을까요?”

장로의 말에 나는 조금 난색을 표하며 말했다.

장로는 수염을 조금 쓰다듬더니 대답했다.

“자네는 창조주에게 선택받은 자이니, 조금은 호의를 베풀겠네. 우리 일족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까진 아니지만, 신뢰를 보여주는 일을 해주면 그것을 주겠네.”

“어떤 일입니까?”

“우리 세계수의 숲 북쪽에는 사악한 마계가 이어져 있단 것은 알고 있겠지?”

“네, 알고 있습니다.”

“가끔 그곳으로부터 음모를 꾸미는 흑마법사들이 찾아와 못된 짓을 하기도 한다네. 그리고 최근에는 우리 손으로만 처리하기엔 너무 슬픈 일이 생겼지.”

“무슨 일입니까?”

“숲의 수호자 중 하나였던 우루사이가 언클린의 흑마법사에 의해 타락해버렸다네. 그는 이성을 잃고 날 뛰고 있지. 전사들을 보내 그를 영면에 잠들도록 해야하지만······ 그와 친하게 지낸 자들이 많아서 쉽지 않은 일일세. 하지만 그대들이 도와준다면 아주 좋을 것 같군.”

“우르사이라면······ 동물입니까?”

“동물이라······ 그대들의 입장에선 그렇게 보이겠지. 하지만 수만년의 숲을 지킨 태초의 곰이라네. 단순한 동물이라고 생각하지는 말게나.”

우르사이라니, 어쩐지 간이 좋아질 것 같은 이름의 곰이다.

“어떤가? 위험한 일이 되긴 하지만, 도와주겠는가?‘

장로가 그렇게 물었고, 나는 시화를 바라보았다.

시화는 자신 있게 말했다.

“도와드리겠습니다. 우르사이는 구원을 맞이하고 영면에 잠들 것입니다.”

“자넨 굉장한 전사로 보이는군. 그 갑옷하고 무기······ 심상치 않아 보인다네. 다른 이들은 뛰어난 전사로 보이지는 않네만. 혼자서 괜찮겠는가?”

“혼자서 싸우진 않을 겁니다만, 제 능력이라면 아군을 충분히 지키며 싸울 수 있습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우리도 손을 놓고 있진 않겠네. 길잡이도 삼아서 뛰어난 전사 두 명은 붙여주지. 유용할 걸세.”

촌장과의 거래는 그렇게 이뤄졌다.

곧바로 두 명의 엘프 전사들이 길잡이로 붙었는데, 우리와 이야기했던 그 남성 엘프 전사와 여성 엘프 전사였다.

여성 엘프 전사는 여전히 차가운 태도였지만, 남성 엘프 전사는 성격이 조금 유한 듯했다.

“나도 우르사이와 친하게 지냈었지만, 나는 그를 잠들게 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거라네. 친구가 고통 받는 것만큼 가슴 아픈 것은 없으니, 하루 빨리 그를 안식에 들게 하는 게 옳은 일이라고 믿는다네. 때마침 도움이 필요했는데, 그대들이 와줘서 정말 좋군.”

“저도 미약하나마 돕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그는 친근하게 그런 말을 했고. 나는 정중히 대답했다.

우리들은 그렇게 숲 깊숙한 곳으로 안내 받았고, 어느덧 목적지에 도달했다.

그곳에는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곰이 있었다.

< 184화 어쩐지 간에 좋을 것 같은 녀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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