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3화 세계수의 숲 >
여유롭게 티타임도 즐긴 우리들은 세계수의 숲에 가기로 했다.
골렘에게 농장을 잘 지키라고 하면서 정령과 동물친구들을 데리고 농장을 떠났다.
어딘가에서 기타 소리가 들리는 시골길을 지나, 마을로 향하면서 가벼운 수다를 떨었다.
“100정의 총기를 납품해야하는데. 약간 고민이 되는군요. 총은 사과파이랑 달리 한 개를 만드는데 시간이 좀 걸려서 말이죠. 우선은 사람들이 마법공학을 배우도록 유도하기 위해 홍보영상을 찍었지만······ 당장 생산량을 늘릴 방법이 없을지 궁금하군요.”
“흠, 그럴 경우엔 대장간을 업그레이드 해주는 것은 어떻습니까? 대장장이가 좀 더 일하기 쉽도록 해준다면 생산량이 늘어날 겁니다. 그럼 그에게 제작을 대량제작을 의뢰해도 되겠죠.”
“아하······ 그런 다음 마탑에 부탁하거나 아니면 제가 직접 회로세공작업을 해도 되겠군요. 세계수의 숲에 다녀오면 한 번 해봐야겠습니다.”
시화와 유용한 대화를 나누면서 걸어가니, 어느덧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은 오늘도 활기 찬 모습이었다.
어제와 비교해보자면, 예술가들이 확고하게 자리 잡은 모습이었다.
화가들이 곳곳에서 유저들의 초상화를 그려주기도 하며, 음악가나 광대들은 길거리 합동공연을 하기도 했다.
몇몇 유저들은 등에 만돌린이나 류트같은 기타를 매고 다니기도 했다.
그걸 실제로 연주하는지, 아니면 그저 패션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문득 나는 레거시 퀘스트가 얼마나 진척 되었는지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것을 확인해보았다.
[퀘스트, 창조주의 유언
당신은 창조주가 남긴 유산을 가질 자격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얻는 길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창조주가 당신에게 원하는 것은 이 세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창조주가 남긴 유산을 쫓고자 한다면 이 세상을 더욱 풍요롭게 바꾸십시오. 만약 원하지 않는다면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해도 상관없습니다.
클리어 조건 : 퀘스트를 받은 시점에서 게임 내 50%의 유저들이 생활 스킬을 가지도록 유도.
클리어 보상 : 100,000,000 업적점수, 창조주의 유산
클리어까지 진척률 : 65/100%]
마지막으로 확인했던 것보다 15%가 늘었다.
상당히 순조롭다는 느낌이 들었다.
농사, 대장기술, 조리, 재봉, 낚시, 그리고 예술 스킬들, 꽤 많은 가지 수의 생활 스킬들을 홍보했으니 그 중에서 하나라도 배워주는 모양이다.
흠, 예술가들을 데려오면서 잠깐 잊고 있었는데, 보석세공에 관해선 잠시 방치해둔 상태였다.
우선 조각사에게 보석상점이나, 뭔가를 만들어주어야겠지만 그것 외에도 보석세공이나 조각에 대한 홍보가 필요하다.
한 번 다시 소니키를 찾아가서 상담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어쨌든 우리들은 흥겨운 마을의 풍경을 지나쳐 마탑에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마법사 아가씨.”
마탑에 들어서면 오늘도 역시나 마법사 아가씨가 우릴 반겨주었다.
그녀에게 인사를 하곤 오늘 찾아온 이유를 말했다.
“세계수의 숲으로 텔레포트 서비스를 받고 싶은데요.”
“어머, 거기 좋죠. 숲이 정말 아름답거든요. 저도 한 번 가보고 싶어요. 하지만 힘든 여행지 중 하나죠.”
“뭐 때문에 힘들죠?”
“야생 동물들 중에 포악한 이들도 있는데······ 이건 뭐 레벨이 높으면 큰 위협은 아니지만요. 그것보다 일단 엘프들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아요. 마을이라곤 엘프 마을 하나뿐인데 말이에요. 아참, 그래서 텔레포트도 숲의 입구까지 밖에 못해드려요. 그래도 괜찮겠어요?”
마법사 아가씨의 말에 나는 시화를 바라보았다.
시화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괜찮습니다.”라고 말했다.
“최강이라고 불리는 흑태자님과 같이 가신다면 안전할 것도 같네요. 뭐 때문에 가시는 진 몰라도 행운을 빌게요.”
그녀와의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우리들은 곧 텔레포트 서비스를 받게 되었다.
빛이 우리를 삼켰고, 곧 전혀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세계수의 숲.
그곳은 대한민국에선 더 이상 보기 힘든 상그럽고 푸른, 거대한 숲이었다.
“아, 여기의 지도가 없는데 길을 찾아갈 수 있을까요? 생각해보니 노슬론 마을에서도 시화씨는 길을 잃지 않던데, 그런 길을 다 외우신 겁니까?”
“아닙니다. 그건 아무래도 힘들죠. 이걸로 안내받는 겁니다.”
“어머, 예쁜 돌이네요. 빛이 나고 있어요.”
시화는 그렇게 말하면서 룬 문자 같은 것이 새겨진 돌을 꺼냈다.
미나의 말대로 빛이 나고 있었고, 그 빛이 어쩐지 방향을 가리키는 느낌이었다.
“마일스톤이라고 합니다.”
“네? 그건 마장기 이름 아니었나요?”
“정확히는 이 게임의 세계관에서 통용되는 종교의 이름입니다. 마일스톤 교라고 하죠. 이런 신성한 돌을 마일스톤이라고 부르며 숭배하는 겁니다. 신성국가 밀리아리움의 국교도 그겁니다.”
“흠, 토테미즘 같은 것에서 발전된 종교란 느낌이네요.”
“비슷합니다. 어쨌든 이 돌의 능력은 이름 그대로 이정표처럼 길을 안내해주는 역할입니다. 나침반처럼 방향을 알려주는데, 북쪽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목적지 자체를 알려주죠. 그래서 가지고 있으면 여러모로 편리합니다.”
“아하······ 하지만 저는 농장에서 별로 떠나질 않으니 쓸 일이 별로 없겠군요.”
“언젠가 모험을 떠날 땐 하나 구비해두십시오. 이게 있으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으니까요.”
시화와의 대화를 통해 게임에 관한 간단한 상식 하나를 더 얻게 되었다.
그의 말대로 언젠가 게임 속에서 여행이라도 다니게 되면 가지고 다녀야겠다.
물론 농부가 농장을 떠날 일은 그다지 없을 것 같지만 말이다.
곧 시화를 따라서 우리들은 숲 안으로 들어섰다.
키가 무척이나 큰 나무의 숲······ 기분 탓일지는 몰라도 마음이 평온해지고 삼림욕으로 숨이 더 잘 쉬어지는 느낌이다.
“정말 거대한 숲이군요. 여기가 대체 어느 쯤이 있는 거죠?”
“여긴 메이거스와 밀레스의 사이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의 북쪽은 마계와 인접해있죠. 밀레스와 메이거스가 중앙 중립지대 외에서 무력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완충해주면서도 동시에 마계의 침략을 막아준다······ 는 세계관 설정입니다.”
“엘프들이 마계를 감시한다, 라는 클리셰인가요?
“그런 셈입니다.”
판타지 이야기에서 장수하는 엘프들은 그런 수호자나 감시자 역할로 나온다.
나는 조금 엘프들의 모습이 기대되었다.
그들은 보통 선남선녀로 묘사되니 말이다.
어떤 모드가 굉장히 활발한 고전게임의 엘프같은 모습은 바라지 않지만, 명작 판타지 영화인 반지의 제왕 속에서 나오는 엘프들 같은 모습 정도는 되었으면 좋겠다.
설마하니, 모드도 쓰지 않은 고전게임의 괴악한 미적취향의 엘프가 등장하는 건 아니겠지?
여하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숲을 걸어갈 때였다.
“저기 보십시오.”
“어머, 노루네요!”
“귀엽다······.”
굉장히 큰 노루가 다가오고 있었다.
시화의 존재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온순한지는 몰라도 적대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들에게 다가와선 미나와 지혜의 손길을 받고 있었다.
일본 나라 현의 명물이기도 한 노루는 귀여운 외모로 정평나있지만, 사실 성격은 괴팍하다는데.
여기의 노루는 그렇진 않은가보다.
나는 간식이라도 줄까, 하면서 사과를 꺼내 지혜와 미나에게 주었다.
그녀들은 조심스럽게 사과를 노루에게 건넸는데, 노루는 킁킁 하면서 사과의 냄새를 맡더니 입맛을 다시곤 사과를 씹어먹기 시작했다.
생명과의 교감이 경이로운 모양인지 미나와 지혜 모두 웃음꽃이 가득하다.
멍멍멍!
왈왈왈!
월월월!
실버, 골드, 불돌이도 금방 노루와 친해졌는지 그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흐뭇한 광경인데, 몇몇 다른 동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람쥐, 토끼, 새, 고슴도치, 기니피그······숲이라서인지 여러 동물들이 나타났다.
다만 육식동물들은 보이지 않았다.
하긴, 초식동물들이 모인 곳에 육식동물들이 나타나면 난리가 나겠지.
“꺄하핫, 간지러워.”
“······귀여워.”
지혜와 미나는 다람쥐와 고슴도치를 만지고, 어깨에 올려보는 등 교감을 이어나갔다.
과일조각을 주는 것도 잊지 않고 말이다.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건 현실에선 좋지 않다지만, 게임인데 뭐 어떤가!
나도 조금 분위기나 생김새에서 공감이 되는 기니피그를 쓰다듬으면서 교감을 했다.
브어어어엉
삐이익 삐익!
꼬꼬꼭!
냐아옹
음머어어
태산이, 바람이, 호크, 물방울, 그리고 옥스도 동물들과 잘 어울려 노는 듯했다.
음, 일단 우리들은 엘프 마을로 가야하는데, 동물들과 노는 것에 정신이 팔렸다.
하지만 재밌어서 이동하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었다.
우리들은 동물들이 질려서 떠날 때까지 놀았고, 한참 후에야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우리들은 계속해서 숲이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
어느 곳은 그늘이 아주 깊은 곳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하늘이 보이기도 했는데, 그 사이로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저것이 바로 세계수입니다.”
“대단하군요. 구름에 가려서 끝이 보이지도 않아요.”
“네, 누군가들은 저 위에 히든피스가 있을 거라고 믿기도 하죠. 그런데 당연히 저곳을 등반한 사람은 없습니다. 엘프들이 그걸 허락할 리도 없고 말이죠.”
시화는 나직이 웃으며 말했다.
여하튼 우리들은 계속 걸었고, 어느덧 ‘엘프 마을’로 추정되는 곳에 도착했다.
“저곳입니다.”
“아름다운 마을이네요. 아니, 마을이라기보단 숲 자체인 것 같아요. 건물들도 다 나무 자체가 집이 된 것들이네요.”
미나가 그렇게 말했고, 나는 그 말에 십분 공감했다.
엘프들의 마을답게 숲속에 있으면서도 목책 같은 것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건물들도 나무가 통째로 그 건물의 형상으로 자란 것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그곳에 다가가기 전에 시화가 말했다.
“여기서부턴 제 뒤에 꼭 붙어 계십시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우리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시화의 그런 말에 나는 조금 긴장이 되었다.
미나나 지혜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라, 우리들은 시화를 선두로 하여 마을에 다가가야만 했다.
그러자 엘프들을 볼 수 있었다.
다행히 모드도 안쓴 고전게임의 양키센스의 엘프는 아니었다.
남자이면서도 선이 가늘고 미남인 엘프와 여성의 아름다움이 한껏 반영되어 있는 여성 엘프가 다가왔다.
그런데 둘 다 등에는 활을 매고 손에는 작은 방패와 검을 들고 있어서 전사 같은 모습이었다.
“여긴 무슨 일이냐, 숲 밖의 이방인들이여!”
“교류를 하고자 찾아왔습니다. 결코 적대적인 의도는 없습니다.”
시화는 비어 있는 양손을 보이며 그 엘프들에게 말했다.
그의 말대로 엘프들은 경계가 대단했다.
“우리들은 이방인들과 교류하지 않는다! 당장 우리 마을에서 떠나지 않는다면 공격하겠다!”
“한 번이라도 저희들이 그대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시험 받을 수는 없습니까?”
시화는 그런 경계심에도 침착하게 대응했다.
그런 침착한 대응 때문인지, 두 엘프는 잠시 우리들을 살폈다.
“······확실히 위협적으로 보이진 않는구나. 너는 강해보이지만. 여기 있어라, 장로님을 불러오겠다. 장로님이 거절하시면 마음을 접고 돌아가도록.”
그리고 그렇게 말하며 여성 엘프는 누군가를 부르러 가버렸다.
< 183화 세계수의 숲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