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6화 11일차 선술집 >
-내가 준 선물의 가치를 알아보겠느냐?
호수의 여신이 그렇게 물었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네,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그렇다니 다행이다. 부디 좋은 곳에 사용하길 바라겠노라.
“적어도 악용은 하지 않겠습니다.”
-마음씨가 곱구나. 그런 너에게 부탁을 해도 좋겠느냐?
“말씀하십시오,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돕겠습니다.
-별 거 아니다. 내가 전사와 기사들을 축복할 수 있단 것을 널리 알려주었으면 하는구나. 나의 존재는 나를 기억해주는 이들이 많을수록 확고해진다. 허나 호수에 묶여 있는 나로선 나의 존재를 스스로 알릴 순 없구나.
“그런 거라면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염려 마십시오.”
-좋다, 내가 전사와 기사들을 축복하기 위해선 그들이 내 동상 앞에 무릎 꿇고 기도를 해야만 한다. 그대가 내 동상을 만들도록 했으니, 그 소유권을 이용해 이득을 취해도 관계없노라. 나의 탓으로 호수와 농장의 평화가 어지럽혀지지는 않도록 하라.
“알겠습니다.”
어려운 부탁이 아니라서 기꺼이 돕기로 했다.
그리고 여신님은 그런 부탁을 하면서, 나의 편의도 봐주었다.
기도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호수나 농장이 어수선해질 수도 있는데, 그러진 말라고 말한 것이다.
물론 그건 나의 편의만이 아니라 여신 자신의 편의를 생각한 걸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쁠 건 없으니 악감정은 갖지 않았다.
적당하게 선술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에 한정해서 농장을 개방하여 기도하도록 하면 될 것 같았다.
선술집 손님들은 곧잘 농장을 구경하기도 하니 말이다.
-그럼 나는 이만 가보겠다, 이방인이여.
여신은 마지막 말을 남기고 호수 속으로 사라졌다.
“맙소사, 너무 아름다운 여신이었습니다. 영주님.”
“소니키씨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영주님께 도움이 됐다니 다행입니다. 길드 돌아가면 음유시인들에게 이 일을 알려서 노래라도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소니키는 다분히 판타지주민 다운 말을 하면서 나에게 인사를 하곤 농장을 떠났다.
“뭔가 굉장한 일이 일어난 것 같네요.”
“호수의 여신이라고 하니까, 아서왕 신화 같아요.”
미나와 지혜가 각각 그렇게 말했다.
그녀들도 어지간히 방금 일어난 일이 신기한 모양이다.
“그런데 여신님이 준 성배는 어디에다 쓰는 거예요?”
“아, 이거 말이야? 그러니까 뭐라고 해야 하나······.”
미나의 물음에 막상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어렵다기보단 조금 복잡하다고 해야 하나······ 여하튼 나는 설명해보려고 했다.
“마법공학에 말이야······ 말도 안 되는 쇼윈도우 제작품이 있어. 사실상 만들지 말라는 식의 거대 로봇이 있는데. 그걸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 중 하나를 받아버렸어.”
“그래요?”
“어디보자······ 자, 여기. 이거야.”
나는 미나와 지혜에게 마장기 ‘마일스톤’의 제작 카탈로그를 보여주었다.
미리보기로 마장기의 화려한 몸체와 복잡한 재료들을 보자, 지혜가 말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재료를 모으는 게 대단히 어려울 것 같네요.”
“응, 그리고 마법공학 레벨도 10레벨이나 필요해서 여간해선 만들기 어려울 거야. 뭐······ 정령술이나 대장기술은 어쩌다보니 거의 다 만족시켰지만 말이야.”
나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말했다.
이거, 만들 수 있을지 없을지 감이 잘 안 온다.
다른 재료들도 얻을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흠······ 대표적으로 드래곤 하트는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얻기엔 무리가 따를 것 같은데?
“여하튼 이제 선술집을 열어야겠다.”
“오늘도 술을 팔고 인생을 바꿔줄 시간이네요!”
미나가 활짝 웃으며 내가 했던 말을 말했다.
나는 피식 웃으면서도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나는 목공 스킬로 푯말을 만들고 거기에 글을 썼다.
[호수에 여신님이 살고 계십니다. 전사나 기사 분들은 동상 앞에 무릎 꿇고 기도를 하면 축복을 받습니다. ※선술집 손님에 한정하여 동상이 있는 곳을 개방하겠습니다.]
이렇게 글을 써놓으면 일단 선술집 손님들이 들어오면서 읽을 것이다.
힘들게 일일이 알려드릴 필요는 없겠지.
나는 망치를 땅땅 두드려 푯말을 땅에 박곤 선술집을 열었다.
얼마지 않아 첫 손님이 왔다.
“주인 아저씨, 저기 푯말을 봤는데. 동상 앞에 기도하면 축복을 준다는 게 사실이에요?”
“네, 정확히 어떤 버프를 주는지는 모르겠지만 호수의 여신님이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호수의 여신이라니······ 처음 들어보네요. 한 번 가봐도 되죠?”
“물론이죠.”
그는 술과 음식을 주문하곤 그것을 내오는 사이에 기도를 하고 왔다.
“주인 아저씨, 이거 대박인데요? 체력이랑 힘, 민첩이 대폭 올랐어요. 그것도 하루 동안이요. 이런 것이 왜 갑자기 생긴 겁니까?”
“어쩌다가 운 좋게 성배를 얻었는데요, 그걸 조각사님에게 부탁해서 복원하고 동상도 만들었더니 호수에 여신님이 깃들었습니다.”
“대박······ 이거 돈 받고 버프 파셔도 될 거예요.”
“그럴수도 있긴 하지만······ 선술집 손님이시면 따로 돈을 받고 싶진 않습니다. 선술집 매상이 오르면 그게 그거잖아요?”
“이야, 주인 아저씨는 마음씨고 곱네요. 꼭 대박나세요.”
손님은 덕담을 늘어놓았다.
곧 이어서 다른 손님들도 푯말을 읽고 찾아왔다.
나는 그분들에게 음식이나 음료를 주문하는 대가로 기도할 수 있도록 했다.
그들 모두 버프효과에 놀라면서 만족해했다.
곧 선술집이 손님으로 가득찼다.
“오호, 오늘은 손님이 더 많은 느낌이구먼.”
“오셨습니까, 어르신.”
블루스 노인과 드래곤씨도 왔다.
“아무래도 바깥의 푯말 때문인가?”
“예, 어르신. 저는 전사나 기사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버프 효과가 대단히 좋은 모양입니다.”
“허허, 그럼 나도 한 번 해보고 오겠네. 어쩐지 진짜 아서왕 신화의 기사가 된 기분도 낼 수 있을 것 같으니.”
블루스 어르신은 그렇게 말씀하시곤 드래곤씨와 함께 동상에 기도하러 가셨다.
그리곤 잠시 후 돌아왔다.
“대단하군! 하루 동안 지속되는 특별 버프라니. 그리고 여신의 말을 들어보니, 신앙심을 가지면 호수의 기사도 될 수 있는 모양일세. 이곳이 성지가 된 셈이지.”
“좋은 일일까요?”
“돈 되는 일 아니겠나? 버프에 값을 물려도 될 정도지.”
“그런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냥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선술집 손님이 늘어나면 그걸로 돈이 되니까요.”
“박하게 굴지 않겠다는 건가? 아니면 이제 그 정도 돈은 푼돈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음, 적어도 후자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뭐 잘난 곳이 있다고 그런 배부른 생각을 하겠습니까.”
“허허허, 만석꾼이 농담도 잘하는구먼. 그래, 오늘은 뭐 특별한 뉴스는 없나?”
블루스 어르신은 오늘 근황을 물어보셨고, 나는 오늘 한 일들을 말했다.
“아하, 그래서 마을에 예술가들이 생기기 시작했구먼. 꼭 유럽 거리 같은 분위기가 되어서 나쁘지 않았다네. 물론 그 지독한 소매치기들은 없지만 말이야. 나쁘지 않은 일이었네.”
“네, 하지만 어떻게 사람들이 예술 스킬에도 관심을 가지게 할지 약간 고민입니다. 홍보 영상을 만들어 볼까 하지만요. 사실 그 방법뿐이지만요.”
“흠, 노래, 연주, 춤······ 사실 효과가 없진 않은 것들일세. 각자 버프나 디버프를 걸거든. 다만 기본적으로는 생산 스킬로 취급받아서 바드나 가수, 댄서는 취급이 아쉽지.”
블루스 노인도 딱히 좋은 방법은 없는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할 뿐이었다.
그때, 미나가 끼어들면서 말했다.
“그러지 말고, 오빠. 한 번 연주해보는 게 어때요? 만돌린 샀잖아요?”
“아, 그거? 여기서 말이야?”
“네, 연주 스킬도 배웠는데. 한 번 해봐요. 혹시 아는 곡이면 제가 노래를 불러볼게요.”
“그럴까?”
나는 미나의 말에 혹해서 만돌린을 꺼냈다.
그러자 블루스 노인이나 드래곤씨, 지혜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과연 연주를 할 수 있을까? 그런 눈치였다.
일단 나는 만돌린을 쳐본 적은 없었다.
비슷한 기타도 쳐본 적이 없다.
하지만 악기 연주 스킬을 이용해볼 생각이다.
“악기 연주.”
만돌린을 들고 작게 말하니, 마치 노래방 선곡표처럼 노래 리스트가 떴다.
나는 혹시? 라는 생각에 아는 팝송 하나를 검색해보았다.
[악기 연주, Take me home, Country roads
웨스트버지니아를 배경으로 한 컨트리 음악. 가사가 서정적이며 보통의 컨트리 음악이 그렇듯이 기타 연주와 참 잘 어울린다. Country roads라고 줄여서 보통 부르는 곡이다. 존 덴버가 직접 작사했다. 너무 유명해진 나머지 웨스트버지니아의 주가로 정해졌다.
필요한 도구 : 적당한 악기, 악기 연주 Lv1]
내가 팝송을 대부분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 백미 같다고 여기는 고전 컨트리 음악이다.
이걸 부른 존 덴버가 직접 웨스트버지니아의 풍경을 떠올리며 작사한 걸로 유명하다.
그만큼 아주 서정적이고 좋은 노래지.
“미나야, 혹시 이 곡 알아?”
“알아요! 저도 올드 팝송 좋아하거든요. 80년 전 노래라니, 저보다 몇 배는 더 오래된 노래지만 두고두고 회자되니까요.”
“부를 줄도 아는 거야?”
“물론이죠. 혹시 귀를 기울이면이라는 애니메이션 알아요? 어릴 때 그 애니메이션의 번안곡으로 부르는 거에 빠져서 알게 됐었죠. 다만 한국어 번안곡은 없어서 영어로 많이 불렀어요. 연주해봐요.”
“알았어.”
나는 자신하는 미나의 말에 연주를 시작해보려고 했다.
미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목을 가다듬었다.
스킬을 실행시키자, 시스템 메시지 창이 떴다.
[3초 후, 연주가 시작됩니다.]
[리듬에 맞춰 떨어지는 노트를 적중시키십시오.]
대충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베틀처럼 리듬게임을 하는 것이다.
다만 베틀이 아니라 악기를 다루는 것인데, 느낌이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았다.
곧 3초후 연주가 시작되었다.
단지 눈앞의 시스템 창에 떨어지는 노트에 맞춰 줄을 튕길 뿐인데, 부드러운 기타음이 울렸다.
내 연주가 시작되자 미나는 맑은 음성으로 노래를 불렀다.
영어 발음도 정확하고 음과 박자도 잘 맞는 것을 보니, 많이 불러봤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았다.
그녀의 노랫소리가 선술집 안에 퍼졌고, 곧 많은 손님들이 그녀가 노래를 부르는 스탠드바 쪽에 주목했다.
그걸 연주하는 나도 마치 황홀경에 빠진 것처럼 기타연주와 노랫소리에 빠져들었다.
가장 유명한 후렴구를 지날 무렵에는 감수성이 터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도 절로 노래를 부르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미나의 아름다운 노래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그저 몸만 흔들 뿐이었다.
근처의 지혜나 블루스 노인, 그리고 오늘도 헬름을 써서 무뚝뚝해 보이는 드래곤씨도 어깨를 들썩였다.
미나는 그렇게 나와 눈을 마주치면서 노래를 부르다가, 다시금 후렴구에 도달했을 때 말했다.
“함께 불러요.”
“그래!”
그녀가 제안하자, 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녀와 내가 선창하고 후창하자, 마치 도미노 현상처럼 지혜도 따라 부르고, 블루스 노인도 따라불렀다.
곧 선술집의 많은 사람들도 따라 불렀다.
술을 마시면서 느긋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말이다.
약간 서양의 밴드 술집과는 다른 분위기지만, 한국에선 떼창이 문화이지 않은가?
짝짝짝짝짝짝······.
“최고다!”
“브라보!”
“앵콜! 앵콜!”
그녀가 마지막까지 노래를 완창하자, 손님들은 박수를 치고 환호했다.
“아하하, 고마워요!”
그리고 연예인 지망생이라서 그런지 미나는 쇼맨쉽 있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나는 그녀를 훈훈하게 바라보았다.
< 176화 11일차 선술집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