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5화 호수의 여신 >
나는 여전히 자경단원들을 훈련시키는데 열중인 시화에게 다가가서 하펜 마을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공진씨. 이곳은 저희에게 맡겨놓으십시오.”
“시화님만 믿겠습니다.”
“그럼 여기 오늘분의 제작 재료입니다.”
[강화석 4개]
[블랙솔져의 정수 50개]
[그늘거미의 정수 50개]
[쉠블러의 정수 1개]
[미스릴 20개]
[비단 20개]
“비단? 비단은 어디서 난 거죠?”
“수도의 의류점에서 샀습니다. 굉장히 희귀한 재료입니다. 미스릴이 더 희귀하긴 하지만요.”
“흠······ 혹시 양잠으로 비단을 만들 순 없을까요?”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공진씨의 골렘은 알고 있을지도 모르죠.”
“아, 그럴 것 같습니다. 제가 골렘에게 물어보죠.”
나는 농장으로 돌아가면 비단에 대해서 골렘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정확히는 양잠을 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이다.
이 게임에서도 현실처럼 누에고치를 이용해서 양잠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마을에 돌아간다고 해서 바로 제작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우선 마을에서 들러야 할 곳이 몇 곳 있었고, 그 일이 끝나면 선술집도 열어야 한다.
흠, 오늘 선술집에선 느긋하게 연주라도 해볼까······ 그런 느긋한 생각을 하면서 나는 미나와 지혜에게 돌아갔다.
나는 그녀들에게 하펜 마을로 돌아가면 할 일을 말했다.
“우선 상단 사무소를 들러서 클라드 마을을 지원하도록 말할 거야.”
“좋은 생각이네요. 여기에도 식료품점이 생겨서 사람들이 풍족하게 먹을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지혜는 굶주린 마을 사람들을 봐서 그런지, 연민어린 모습으로 말했다.
역시 심성이 아주 고운 아이다.
보통 드라마나 소설에서 보면 재벌집 자녀분들은 성격이······ 좀 그렇고 그렇던데 지혜는 그러지 않아서 생소하다.
그런데 생소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편견인 걸까?
뭐, 지혜에 물어보기엔 실례인 것 같아서 그냥 말을 삼켰다.
“그런 다음엔 목화씨를 사고······ 예술가 길드를 들러볼 생각이야.”
“성배를 복원하려고 그러는 거죠?”
“응, 정말로 촌장의 말처럼 되는지 궁금하니까.”
미나의 말에 나는 그렇게 답했다.
우리들은 이제 하펜 마을로 가기로 했고, 마법사 길드로 향했다.
마법사 길드엔 벌써 다른 마법사들이 와 있었다.
용병 선술집에 의해 떠돌이 마법사들이 모였다고 귀띔을 들을 수 있었다.
이런저런 인프라를 지어서 마을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고 느껴졌다.
여하튼 우리들은 텔레포트 서비스를 받았다.
우리들은 하펜 마을의 광장으로 텔레포트했다.
그곳은 언제나처럼 북적였는데, 또 다른 모습이 보였다.
“저기 봐요! 악사들이 거리에서 연주를 하고, 댄서들이 춤을 추고 있어요.”
하펜 마을에 벌써부터 거리의 음악가들이 생겼다.
유저들이나 NPC들이 그들의 예술행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소한 일에 불과했지만 어쩐지 마을의 활기가 더욱 커진 느낌이었다.
“예술도 생활 스킬 중 하나라지? 어째 영주님이 농부 아저씨라서 그런진 몰라도 생활 스킬을 밀어주네.”
“아이돌처럼 예쁜 댄서님들에게 후원하는 건······ 개인방송에 후원하는 거랑 차이가 있을까?”
“노래랑 음악소리 듣기 좋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평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그 사람들이 직접 예술 관련 스킬을 배우려고 하기 보단, 그저 돈을 주고 이용하려는 것이 대부분이란 점이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좋은 거지만, 로렌은 기왕이면 그들도 조금은 예술행위를 직접 하면서 즐기길 바랐다.
레거시 퀘스트 때문이든 아니면 슬로우 라이프에 대한 인식을 퍼트리는 목적에서든 말이다.
우리들은 그런 풍경을 구경하면서 상단 사무소를 찾아갔다.
“안녕하십니까, 영주님!”
“안녕하세요, 크리스 씨.”
들어가자마자 크리스가 군기가 바짝 든 모습으로 인사를 했다.
나는 일부러 친근하게 인사를 하면서 그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했다.
그래도 좀처럼 이 젊은 소년 NPC는 굳은 자세를 풀려고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NPC들은 사람다운 것을 넘어서 개성이 다양하단 느낌을 받았다.
어쨌든 나는 그에게 클라드 마을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아직 그곳은 구매력이 그렇게 많진 않을 겁니다. 그러니 이윤을 많이 내려고 하기 보단, 그곳에 물류와 돈이 돌도록 해주십시오. 그곳의 잉여작물을 사들이고, 기호품 같은 것을 싸게 파는 방식으로요.”
“알겠습니다. 영주님의 뜻대로 그곳에 경제를 활성화해보겠습니다.”
“좋아요, 아, 그러면 오늘 제작에 쓸 다이아몬드가 좀 필요한데요.”
“여기 있습니다, 영주님. 하는 김에 황금과 은도 샘플을 가져가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러죠, 필요할지도 모르니까요.”
[다이아몬드 원석 4개]
[황금 10개]
[은 30개]
나는 그에게 보석과 금은을 받았다.
그 후 그에게 수고하라는 말로 인사를 하곤 상단사무소를 나왔다.
그런 뒤, 나는 식료품점으로 향해 목화씨를 샀다.
농장에 돌아가자마자 목화씨를 심어보기로 하고, 우리는 다음 목적지인 예술가 길드로 향했다.
그곳에 들어서니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어서오십시오, 영주님.”
“또 뵙네요, 에필리아 씨. 새로운 예술가 길드는 마음에 드십니까? 수도의 예술가 길드에 비해선 작습니다만.”
“집이 커봤자, 공허하기만 한 곳에선 예술혼을 불태울 수 없습니다. 예술과 멀어진 매그너스보다 이곳이 더 활기 찬 것 같네요. 마을 사람들이 저희 예술가들을 환영해주고 있습니다.”
“다행이군요.”
“헌데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그게······ 예상치 않게 의뢰할 일이 생겼습니다.”
나는 클라드 마을의 촌장에게 받은 ‘허름한 성배’를 꺼냈다.
그리곤 촌장에게 들은 이야기를 그녀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복원을 해줄 조각가를 찾으시는 거군요.”
“네, 하는 김에 어울리는 동상도 만들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적당한 사람이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에필리아는 그렇게 말하곤 길드 안쪽으로 들어가선 누군가를 데려왔다.
덩치가 다소 큰 슬라브 계열의 서양인 같은 사람이었다.
“이쪽은 소니키라고 합니다. 저희 예술가 길드 최고의 조각가입니다.”
“반갑습니다, 사공진이라고 합니다.”
“저도 반갑습니다, 영주님.”
곰 같은 덩치에 비해 그의 손은 굳은 살이 박혀 있으면서도 섬세했다.
그리고 성격도 온순한 듯했다.
“이걸 복원하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할 수 있습니다. 본래 모습대로 복원하겠습니다.”
“그림 같은 것도 없는데, 그게 가능합니까?”
“스킬의 힘으로 저는 복원해야할 대상의 본래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리고······ 이 성배에 어울리는 여신상이 필요한데요.”
“말씀은 들었습니다. 반드시 여신이 호수에 깃들도록 성배와 동상 모두 만들겠습니다.”
“믿음직스럽군요. 아참, 혹시 이게 도움이 될까요?”
나는 그에게 황금과 은을 건네보았다.
그러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황금은 성배를 복원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군요. 은은 여신상을 만들 때 쓰겠습니다. 분명 아름다운 여신상이 될 겁니다.”
“그럼 소니키씨, 저를 따라 농장으로 함께 가죠.”
일행에 조각가 소니키가 합류했고, 우리들은 농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는 돌아가면서 자신과 성격이 비슷한 것 같은 옥수의 머리와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옥스는 그의 손길이 싫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농장에 들어서자, 감탄을 했다.
“정말 좋은 농장이군요. 호수와 잘 어울립니다.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모두 영주님이 만드신 겁니까?”
“네, 딱히 예술적으로 만든 것은 아니지만요.”
“하하, 예술이란 게 별거 아닙니다. 자연스러움 자체도 예술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농장에는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멋이 가득합니다. 보고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이는 모습이군요.”
소니키는 다소 예술가다운 말을 했다.
그의 말대로 나는 내 농장에 있으면 마음이 놓인다, 그의 말이 고상하기만 한 말은 아닌 것 같다.
“저는 먼저 성배를 복원하겠습니다. 저기 대장간도 보이는데, 제가 써도 괜찮겠습니까?”
“네, 하지만 용광로를 달구려면 제 불돌이를 쓰십쇼, 불돌아, 이분을 도와주렴.”
왈왈!
내 말에 불돌이는 펄쩍펄쩍 뛰면서 짖고는 그를 쫄랑쫄랑 따라갔다.
실버와 골드도 소니키를 따라갔다.
“음, 나는 그동안 목화를 심어야지.”
“저도 도울게요.”
“저도요.”
소니키가 성배를 복원할 동안, 나와 미나, 지혜는 목화 농사를 거들었다.
사실 밭은 옥스와 태산이가 갈아주고, 물은 분수기와 물방울이 뿌려주면서 씨앗은 바람이가 뿌려주니, 우리들은 그냥 놀면서 농사짓는 것이다.
우리들은 하하호호 웃으며 목화를 심었다.
그 후로는 호수에서 수영도 하고, 낚시도 하고, 물장구를 치거나 태산이와 물방울, 호크를 데리고 놀았다.
그러는 사이 대장간에서 소니키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나왔다.
성배를 들고 있는 아름다운 여신상과 함께 말이다.
“영주님, 모두 만들었습니다.”
“정말 아름답군요. 은으로 만들어서 그런지 더 예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째 낯이 익은데······.”
“저희 길드 마스터의 모습을 모델로 한 건 비밀입니다요.”
“하하, 그러죠.”
여신상의 얼굴이 낯이 익다 싶었는데, 에필리아의 모습이었다.
소니키가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는 몰라도 어울리긴 했다.
어쨌든 이걸 호수 근처에 설치하면 여신이 호수에 깃든다는 걸까······.
“이쯤에 설치하면 적당할 것 같아.”
나는 여신상을 호수 쪽을 바라보도록 설치했다.
그러자 황금으로 복원된 성배가 아름답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빛이 호수에 깃들었다.
“오오······!”
그러자 호수는 엄청나게 투명해졌다.
나루터의 배가 허공에 뜬 것처럼 말이다.
물이 너무 많아져서 그 속의 물고기가 훤히 다 보일 정도였다.
그저 맑다, 라는 수준이 아니라 ‘투명하다.’라는 수준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푸른색 머리의 아름다운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연히도 그녀는 호수에 깃든 여신 같았다.
-그대, 나의 성배를 복원한 사람인가?
그녀의 목소리는 귓속말처럼 귓가에 직접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에게 대답했다.
“복원한 사람은 따로 있긴 합니다만, 제가 의뢰한 것이긴 합니다.”
-성배의 소유권은 그대에게 있다. 그대는 나에게 보금자리를 주었구나.
“호수가 마음에 드십니까?”
-그렇다. 풍요롭고 마음이 안정되는구나. 이곳에서 나는 이제 사람들을 축복해줄 수 있다. 명예로운 기사들에게 호수의 축복을 주겠노라.
“음, 잘은 모르겠지만 버프 같은 것을 주는 겁니까?”
-단순한 버프가 아니다. 자격을 갖춘 자는 호수의 기사가 되어 나의 가호를 받는 것이다. 그들은 쉽게 지치지 않을 것이며, 쉽게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전투에 관해선 문외한이라 잘 모르겠군요. 잘 알 것 같은 사람에게 말해보겠습니다.”
나는 잘은 모르겠지만, 시화에게 말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은혜를 입힌 자야, 그대는 전사가 아니기에 내 가호를 받지는 못하지만, 그 대신 이것으로 보답하겠노라.
호수의 여신은 그렇게 말하곤 두 손을 모았다.
그러자 그녀의 손 복원한 성배와 똑같은 성배가 놓였다.
-받아라, 이것은 그대에게 주는 나의 고마움의 표시다.
성배를 바치고 성배를 선물로 받는 꼴이 되는 것 같았지만, 어쨌든 그 성배를 받았다.
그러자 호수의 여신은 모습을 감추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아이템의 이름을 확인했다.
[호수의 여신이 축복한 성배]
그것은 분명 ‘마일스톤’이라는 마장기를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 중 하나였다.
< 175화 호수의 여신 > 끝